‘옥씨부인전’, 시작부터 시청자들 뒤흔든 감정의 정체

옥씨부인전

“제 이름은... 구덕입니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제 주인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임지연)는 이름을 묻는 옥태영(손나은)에게 그렇게 말한다. 구덕이. 사람 이름을 어찌 구더기라 지을까. 그것도 구더기처럼 살라고. 하지만 이건 ‘옥씨부인전’이 그리는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의 현실이다. 노비들의 이름을 그러했다. 구덕이의 아버지는 개죽이(이상희)였고, 송서인(추영우)의 몸종도 쇠똥이(이재원)였다. 구더기, 개죽, 쇠똥 같은 미천한 존재들. 심지어 ‘몸종’이라 불리던 그들의 이름이다. 

 

‘옥씨부인전’은 바로 그 역사의 기록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채 구더기처럼 때론 개죽처럼 길가에 널린 쇠똥처럼 살다간 이들의 기록이다. 어쩌다 운명에 이끌려 옥태영의 삶을 대신 살게 된 구덕이가 자신을 추적하는 추노꾼들을 피해 살면서도 자신 같은 억울한 처지에 놓인 힘없는 민초들의 편에 서서 그 입장을 대변해주는 외지부(변호사)로 활약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 옥태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삶이고, 따라서 진짜 자신의 삶을 애써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질 참이다. 

 

그런 구덕이의 진가를 알아보고 첫 눈에 큰 깨달음과 더불어 사랑에 빠지는 송서인(추영우)의 처지도 만만찮다. 명문 송 대감댁 맏아들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기녀에게서 태어난 서자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며 길 떠나는 길동이처럼 집을 나선 송서인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던 기방에 갔다가 그 곳에서 예인의 길에 들어선다. 자기도 모르게 예인들의 소리와 춤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그가 예인이 되기로 작심한 건 다름아닌 구덕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사는 게 힘드니까요. 이런 걸 보는 동안에 한 시름 잊는 겁니다. 눈먼 아비가 어미도 없이 젖동냥으로 키운 심청이가 왕비마마가 되다니요. 현실에서 가당키나 합니까?” 멀찍이 심청전 한 마당을 내려다보며 소리가 별로니 품평이나 하는 그에게 구덕이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좋은 겁니다. 우리한테는 오지 않을 행복한 날들을 상상하면서 대리만족 하는 게지요.” 그 때 송서인은 알게 된다. 하루하루 수고한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이 예인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직접 소설을 쓰고 그걸 춤과 연기를 곁들여 전하는 전기수로서 유명해졌지만 그가 예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안 송대감(허준석)은 집안을 욕보인다며 질책한다. 그래서 그는 송서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신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구덕이도 송서인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갖고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구덕이는 옥태영이라는 이름을 갖고 평생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야하고, 송서인 역시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간다. 

 

두 개의 이름. 진짜와 가짜. 무대 밖의 삶과 무대 위의 삶. ‘옥씨부인전’은 조선사회라는 배경을 끄집어와 이 양자를 뒤엎는다. 구덕이와 송서인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진 운명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한 진짜 삶이고 현실이라면, 옥태영과 천승휘의 삶은 비록 가짜지만 그걸 뒤집고 그 운명과 맞서는 삶이다. 그들은 모두 그래서 각자의 무대 위에 오른다.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 연기하는 삶은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어간다. 참으로 전복적인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옥씨부인전’은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을 판사 장드코라스가 기록한 ‘마르팅게르의 귀환’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브로 백사 이항복이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대가 다르고 공간이 달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찌 이리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는 감정의 파고가 느껴지니 말이다. 

 

노비와 양반으로 나뉘어져 노비들은 개돼지처럼 살다 죽어야 하고 양반들은 그 위에 군림하는 사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울림을 준다. 그건 우리가 사는 삶이 반상으로 나뉘어진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있어서다. 그래서 구덕이와 송서인에게서는 지금의 아픈 현실 앞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낮은 자들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때로는 억울하게 죽어가면서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네 가슴을 뜨겁게 하는 건 뭐냐? 그래그래 네 꿈은 무엇이냐?” 송서인이 물었을 때 구덕이가 하는 말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꿈.. 아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요. 발목이 잘리거나 머리채가 잘리지 않고.. 그저 사는 것이요.” 그렇다. 이들의 꿈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고 부귀영화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늙어 죽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현재의 우리들이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래서 ‘옥씨부인전’이 주는 위로와 공감은 크다. 사극의 틀을 갖고 반상이 나뉘어진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아픔과 행복과 위로가 공감된다. 연기 잘 하는 건 이미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거의 작두를 탄 듯 그 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임지연과 ‘오아시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토록 멋진 조선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추영우는 물론이고 다른 사극이었다면 장삼이사로 나왔다 사라지곤 했을 막심, 도끼, 백이 같은 인물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김재화, 오대환, 윤서아에게도 ‘예인들의 힘’이 느껴진다.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지만 기분좋게 심상찮다. (사진:JTBC)

‘조립식 가족’, 이 얼기설기 가족을 단단히 조립시킨 이 아빠

조립식 가족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 따뜻하게 밥을 해줄 수 있나? 그래서 제가 염치없는 짓을 너무 많이 했죠?”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20년만을 돌고 돌아 아들 강해준(배현성)에게 돌아온 강서현(백은혜)은 아들을 그동안 돌봐주고 키워준 윤정재(최원영)에게 그렇게 말한다.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지만 윤정재라는 인물은 이런 말조차 서운해한다. “자꾸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서운해 합니다.”

 

윤정재는 그런 사람이다. 김산하(황인엽)도 강해준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아들처럼 키웠고 실제로 아들이라 생각한다. 윗층에 이사온 이웃이었고 그래서 아버지 김대욱(최무성)이 있지만 엄마 권정희(김혜은)가 버리고 간 김산하의 빈 자리를 채워준 건 바로 윤정재였다. 또 돈 벌러 서울 간다고 떠났다 돌아오지 않은 엄마로 인해 강해준이 느낄 빈 자리 역시 윤정재가 채워줬다. 

 

그는 강서현의 말대로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이상한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따뜻한 밥을 해주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들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식구이자 가족이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김대욱과 김산하, 강해준 그리고 친 딸인 윤주원(정채연)을 한 가족처럼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다. 그에게 주변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하고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이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가 또 아이들에게서 듣기 싫어하는 말은 ‘갚는다’는 말이다. “아빠한테 갚을라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친아빠를 따라 미국 농구 유학을 갔다가 발목 부상으로 돌아온 강해준은 그간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8억이 든 통장을 이 아빠 앞에 꺼내놓는다. 아빠를 챙기고픈 해준의 마음이지만, 윤정재는 서운함을 느끼며 불같이 화를 낸다. 

 

“누가 그래 갚으라고? 너 아빠가 그런 거 하라고 미국 보냈어? 너 가기 전에 아빠가 뭐랬어? 딱 너 재미있는 만큼만 하고 오랬지? 설거지에 서빙? 네가 왜 손이 야무져. 아빠가 가게에서 그런 거 하라고 시킨 적 있었어?” 그러자 강해준이 울먹이며 말한다. “아니 그런게 아니고 아빠가 그래도 내를 10년 동안 키아주고...” 

 

하지만 그런 말도 이 아빠는 싫어한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키워 줘? 키우는 거지. 잘 먹고, 잘 자고, 재밌게 살고 그러라고 키우는 거지. 돈 내놓으라고 키우는 거야? 갚으라고 키우는 거냐고?” 그러면서 8억이 든 통장을 돌려주며 가져가라고 하고는 “자꾸 뭐 갚는다” 그런 소리 하지 말란다.  

 

윤정재라는 아빠의 이런 모습은 해준을 돌봐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괜스레 해준에게 “잘하라”고 하는 해준의 이모 강이현(민지아)에게 서운하다고 했던 말 속에도 담겨있다. “자식 가진 사람이 왜 몰라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거 다 내 행복이지 얘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해준이가 눈치를 봐야 돼?” 그러면서 “잘해라”, “은혜를 꼭 갚아라”고 하는 강이현의 말을 탐착찮아 한다. 

 

사실상 윤정재라는 아빠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색다른 가족이 조립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인물이다. 핏줄이 아니어도 함께 밥 먹고 지내온 그들을 가족으로 보듬고 그렇게 실제로 새로운 가족이 되게 만드는 인물. 가족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해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빠라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요즘 같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조립식 가족’은 조금 구식의 신파적 요소도 적지 않다. 또한 권정희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의 극적 서사 같은 요소들은 다소 과하게 여겨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약점들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이 ‘이상한 아빠’ 때문이다. 너무 따뜻해서 미치겠는 이 아빠를 보다보면 모든 것들이 다 용서된다. 그리고 저런 가족이 우리 사회에도 대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가족의 재조립이 필요하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인 건 크게 잘못된 일이 없다. 다만 그래서 더 이상 가족은 필요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게다. 우리 시대에 맞는 대안적 가족의 재조립. 각자의 행복이 우선되면서도 서로를 보듬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지나친 혈육 지상주의로 빠지지 않는 가족의 가능성을 이 ‘이상한 아빠’가 너무나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

페이스 미

독특하다. KBS 수목드라마 ‘페이스 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의학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독특하다. 의학드라마가 주로 응급의학과나 외과 의사들을 주인공으로 다뤄온 건, 그들의 영역이 직접적인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그래서 수술을 하는 상황 또한 긴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미를 추구하는 성형외과는 직접적인 생명과는 거리가 있어 좀체 소재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페이스 미’의 성형외과 의사 차정우(이민기)는 어딘가 다르다. 그는 응급의학과와 성형외과를 모두 섭렵한 전문의다. 이런 인물을 세운 이유는 ‘페이스 미’가 다루는 성형외과 수술이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차정우 역시 가슴 수술이나 안면 윤곽 수술 같은 걸로 돈을 버는 개업의인 건 맞다. 하지만 응급의학과를 굳이 했던 것처럼 환자들의 감정에 애써 선을 그으려는 그의 냉정함 뒤에는 오히려 그 감정을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이 인물의 숨겨진 다정함이 느껴진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사망해 엄마가 자신에게 너무나 집착하는 걸 못 견뎌 성형을 해달라는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지속적인 스토킹에 폭력까지 당해온 피해자가 또 당할 피해를 걱정한다. 성전환 수술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2차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피의자로 지목된 환자를 위해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해줌으로써 진범을 잡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냉정해 보여 어딘가 돈벌이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외과 의사가 사실은 범죄피해자들의 마음까지 걱정해 수술을 해주기도 하고 사건의 진상을 상처 부위를 통해 설명해주기도 하는 그런 일들이 펼쳐진다.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작품으로서는 독특하지 않은가. 

 

‘페이스 미’에서 독특한 건 차정우만이 아니다. 사건 수사에 함께 뛰어들게 되는 강력계 형사 이민형(한지현)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저 강하고 터프한 면모로 그려지곤 하던 범죄스릴러의 전형적인 강력계 형사와 달리, 이 인물은 어딘가 밝고 해맑고 나아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공감능력의 소유자다. 모두가 차정우 의사에 대해 그저 돈벌이에 눈먼 속물 취급을 할 때도 이민형은 그가 한 행위들 속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려 했던 마음을 읽어낸다. 즉 형사지만 이 인물 역시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만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페이스 미’는 그래서 차정우와 이민형이라는 어딘가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범죄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눈이랑 코랑 얼굴 윤곽을 좀 바꾸면...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을까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달라지고 싶은데 성형수술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도 같고...” 눈, 코, 얼굴 윤곽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 한 여성의 그 말만 들으면 마치 성형 중독에나 걸린 인물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여성이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해왔다는 사실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 그 곳을 찾았다는 걸 드러내 준다. 결국 그 여성은 스토킹 범죄자에 의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게 되는데, 차정우의 수술과 이민형의 수사가 공조해 이 여성은 얼굴은 물론이고 마음의 상처까지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의학드라마와 형사물의 공조는 주로 법의학을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를 통해 자주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얼굴에 난 자상의 흔적을 통해 사건 정황까지 파악해내는 차정우라는 독특한 성형외과 의사의 등장은 색다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범죄스릴러가 진실을 찾아내고 범인을 잡는 것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 나아가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고 다독이는 방식 또한 새롭다. 

 

냉정 속에 다정을 숨긴 차정우 역할을 이민기 배우가 제 옷 입은 듯 소화해내며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면, 그 무게감 위에서 이민형 역할의 한지현 배우는 경쾌하게 발랄한 모습으로 극의 균형을 맞춰준다. 이질적인 소재의 독특한 결합이 눈에 띠지만, 균형 잡힌 대본과 연기의 앙상블이 봉합의 흔적을 잘 지워내고 있는 작품이다.(글:일간스포츠, 사진:KBS)

‘Mr.플랑크톤’, 방황 대신 방랑을 택한 청춘들의 로드무비

Mr.플랑크톤

“이제부터는 네 인생에 그 어떠한 목적지도 두지 마.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리다가 길을 잃잖아? 그럼 그건 방황이야. 지금 너처럼. 근데 아무런 목적지 없이 떠돌다가 길을 잃지? 그럼 그건 방황이 아니라 방랑이야, 방랑. 나처럼. 어때? 나랑 같이 방랑자 안 될래?” 넷플릭스 드라마 ‘Mr.플랑크톤’에서 해조(우도환)는 길을 잃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재미(이유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 

 

방황이 아닌 방랑. 이건 로드부비 형식을 가진 이 작품이 하고 있는 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들은 길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그 곳을 떠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또 다시 길을 떠난 후 그 길 위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래서 바다와 설산과 섬을 넘나드는 모험이 펼쳐지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액션, 코미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로맨스가 겹쳐진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채워지지만 거기에는 늘 쓸쓸하고 애틋하고 가슴 먹먹한 아픔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 아픔은 왜 이들이 방황이든 방랑이든 길바닥 위에 던져졌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이 청춘들은 어째서 저 따뜻한 집이 아니라 집 바깥으로 내쳐졌고, 그 차가운 곳에서 만나 서로의 맨살을 부벼 그 온기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을까. 버려진 자들의 아픔을 애써 웃고 장난치고 떠드는 시간들로 채워넣으며 잊으려 했을까. 조용 작가가 전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상처를 입고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통해 그럼에도 괜찮다며 보듬는 치유의 과정을 보여줬다면, ‘Mr.플랑크톤’은 버려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 얼마나 소중한가를 해조와 재미 그리고 어흥(오정세)이 그려나가는 로맨틱 로드무비를 통해 그려낸다. 

 

해조는 보관해둔 정자가 바뀌는 실수로 잘못 태어난 인물이다. 어엿한 가정에서 단란하고 행복하게 성장했지만 뒤늦게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집안은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버린다. 엄마는 죽고 실의에 빠진 아빠마저 자신에게 냉담해지자 해조는 집을 나와 길바닥을 헤맨다. 버려진 길고양이처럼 헤매던 그를 도박장을 운영하는 봉숙(이엘)이 거둬 키우고 사람 찾는 일빼고는 뭐든 다 해주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알게된다. 자신의 머리 속에 새알심 같은 종양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재미는 보육원에서 자라 자신을 찾는 새 엄마가 나타나지 않자 스스로 엄마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인물이다. 해조와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그 후에 엄청난 부자인 종갓집 장손 어흥(오정세)을 만나 이제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지만 조기 폐경 진단을 받는다. 결혼식 날까지 이 사실을 숨기고 갈등하던 재미 앞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해조가 나타나고, 다짜고짜 재미를 들쳐업고 해조가 달아나면서 이 ‘방랑’이 시작된다. 

 

액면으로 보면 ‘납치’지만, 해조와 재미의 서사는 그런 현실감과는 거리가 먼 은유적 이야기에 가깝다. 정자가 바뀌는 실수로 잘못 태어났다고 하지만, 해조의 이런 상황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탄생이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어느 정자가 난자에 도달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고, 어떻게든 새 엄마의 마음에 들어 자식이 되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데려가지 않아 스스로 아이에게 잘 해주는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신기해 엄청 비싼 피아노도 길바닥에 나와 있으면 괜히 짠해 보여. 길바닥에 나오면 다 그렇게 본래의 가치가 변하나봐. 한번 버려진 거니까 내가 더 아껴줘야지.” 재미의 대사는 진정한 어른의 시선이 어떤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심지어 어떤 가격으로) 있느냐에 상관없이 타자의 가치를 진정으로 들여다봐주는 시선.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마음이라고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를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재미가 해조의 가치를 알아본 이유이기도 하다. 

 

“저 바닷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건 플랑크톤들이 햇빛을 받아서 지들이 막 발광을 하고 있는 거야. 걔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거라고.” 해조는 혼수상태 속 상상에서 자신을 찾아온 어린 동생 승아에게 바다에 비춰진 노을빛을 보며 그렇게 말한다.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지 밥. 먹이사실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 하지만 그 하찮은 것들이 그렇게 빛을 내면서 산소가 나와 우리의 생태계가 유지된다며 놀랍지 않냐고 말한다. 

 

‘Mr.플랑크톤’은 바로 이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 버려진 것 같은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고 보여준다. 그 누구도 모를 깊은 산 중의 눈 내린 설원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서 피어난 작은 토끼풀처럼, 길 위에서 방황을 굳이 방랑이라 치부하며 떠도는 청춘들을 저 바다 깊숙한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플랑크톤 같은 존재라고 말해준다. 설사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해도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아름다운 가치를 가졌다고 해조와 재미, 어흥, 봉숙 같은 인물들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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