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미

독특하다. KBS 수목드라마 ‘페이스 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의학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독특하다. 의학드라마가 주로 응급의학과나 외과 의사들을 주인공으로 다뤄온 건, 그들의 영역이 직접적인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그래서 수술을 하는 상황 또한 긴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미를 추구하는 성형외과는 직접적인 생명과는 거리가 있어 좀체 소재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페이스 미’의 성형외과 의사 차정우(이민기)는 어딘가 다르다. 그는 응급의학과와 성형외과를 모두 섭렵한 전문의다. 이런 인물을 세운 이유는 ‘페이스 미’가 다루는 성형외과 수술이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차정우 역시 가슴 수술이나 안면 윤곽 수술 같은 걸로 돈을 버는 개업의인 건 맞다. 하지만 응급의학과를 굳이 했던 것처럼 환자들의 감정에 애써 선을 그으려는 그의 냉정함 뒤에는 오히려 그 감정을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이 인물의 숨겨진 다정함이 느껴진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사망해 엄마가 자신에게 너무나 집착하는 걸 못 견뎌 성형을 해달라는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지속적인 스토킹에 폭력까지 당해온 피해자가 또 당할 피해를 걱정한다. 성전환 수술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2차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피의자로 지목된 환자를 위해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해줌으로써 진범을 잡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냉정해 보여 어딘가 돈벌이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외과 의사가 사실은 범죄피해자들의 마음까지 걱정해 수술을 해주기도 하고 사건의 진상을 상처 부위를 통해 설명해주기도 하는 그런 일들이 펼쳐진다.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하는 작품으로서는 독특하지 않은가. 

 

‘페이스 미’에서 독특한 건 차정우만이 아니다. 사건 수사에 함께 뛰어들게 되는 강력계 형사 이민형(한지현)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저 강하고 터프한 면모로 그려지곤 하던 범죄스릴러의 전형적인 강력계 형사와 달리, 이 인물은 어딘가 밝고 해맑고 나아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공감능력의 소유자다. 모두가 차정우 의사에 대해 그저 돈벌이에 눈먼 속물 취급을 할 때도 이민형은 그가 한 행위들 속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려 했던 마음을 읽어낸다. 즉 형사지만 이 인물 역시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만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페이스 미’는 그래서 차정우와 이민형이라는 어딘가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범죄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눈이랑 코랑 얼굴 윤곽을 좀 바꾸면...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을까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달라지고 싶은데 성형수술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도 같고...” 눈, 코, 얼굴 윤곽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 한 여성의 그 말만 들으면 마치 성형 중독에나 걸린 인물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여성이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해왔다는 사실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 그 곳을 찾았다는 걸 드러내 준다. 결국 그 여성은 스토킹 범죄자에 의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게 되는데, 차정우의 수술과 이민형의 수사가 공조해 이 여성은 얼굴은 물론이고 마음의 상처까지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의학드라마와 형사물의 공조는 주로 법의학을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를 통해 자주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얼굴에 난 자상의 흔적을 통해 사건 정황까지 파악해내는 차정우라는 독특한 성형외과 의사의 등장은 색다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범죄스릴러가 진실을 찾아내고 범인을 잡는 것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 나아가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고 다독이는 방식 또한 새롭다. 

 

냉정 속에 다정을 숨긴 차정우 역할을 이민기 배우가 제 옷 입은 듯 소화해내며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면, 그 무게감 위에서 이민형 역할의 한지현 배우는 경쾌하게 발랄한 모습으로 극의 균형을 맞춰준다. 이질적인 소재의 독특한 결합이 눈에 띠지만, 균형 잡힌 대본과 연기의 앙상블이 봉합의 흔적을 잘 지워내고 있는 작품이다.(글:일간스포츠,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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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플랑크톤’, 방황 대신 방랑을 택한 청춘들의 로드무비

Mr.플랑크톤

“이제부터는 네 인생에 그 어떠한 목적지도 두지 마.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리다가 길을 잃잖아? 그럼 그건 방황이야. 지금 너처럼. 근데 아무런 목적지 없이 떠돌다가 길을 잃지? 그럼 그건 방황이 아니라 방랑이야, 방랑. 나처럼. 어때? 나랑 같이 방랑자 안 될래?” 넷플릭스 드라마 ‘Mr.플랑크톤’에서 해조(우도환)는 길을 잃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재미(이유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 

 

방황이 아닌 방랑. 이건 로드부비 형식을 가진 이 작품이 하고 있는 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들은 길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그 곳을 떠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또 다시 길을 떠난 후 그 길 위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래서 바다와 설산과 섬을 넘나드는 모험이 펼쳐지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액션, 코미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로맨스가 겹쳐진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채워지지만 거기에는 늘 쓸쓸하고 애틋하고 가슴 먹먹한 아픔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 아픔은 왜 이들이 방황이든 방랑이든 길바닥 위에 던져졌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이 청춘들은 어째서 저 따뜻한 집이 아니라 집 바깥으로 내쳐졌고, 그 차가운 곳에서 만나 서로의 맨살을 부벼 그 온기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을까. 버려진 자들의 아픔을 애써 웃고 장난치고 떠드는 시간들로 채워넣으며 잊으려 했을까. 조용 작가가 전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상처를 입고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통해 그럼에도 괜찮다며 보듬는 치유의 과정을 보여줬다면, ‘Mr.플랑크톤’은 버려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 얼마나 소중한가를 해조와 재미 그리고 어흥(오정세)이 그려나가는 로맨틱 로드무비를 통해 그려낸다. 

 

해조는 보관해둔 정자가 바뀌는 실수로 잘못 태어난 인물이다. 어엿한 가정에서 단란하고 행복하게 성장했지만 뒤늦게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집안은 비극의 수렁으로 빠져버린다. 엄마는 죽고 실의에 빠진 아빠마저 자신에게 냉담해지자 해조는 집을 나와 길바닥을 헤맨다. 버려진 길고양이처럼 헤매던 그를 도박장을 운영하는 봉숙(이엘)이 거둬 키우고 사람 찾는 일빼고는 뭐든 다 해주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알게된다. 자신의 머리 속에 새알심 같은 종양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재미는 보육원에서 자라 자신을 찾는 새 엄마가 나타나지 않자 스스로 엄마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인물이다. 해조와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그 후에 엄청난 부자인 종갓집 장손 어흥(오정세)을 만나 이제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지만 조기 폐경 진단을 받는다. 결혼식 날까지 이 사실을 숨기고 갈등하던 재미 앞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해조가 나타나고, 다짜고짜 재미를 들쳐업고 해조가 달아나면서 이 ‘방랑’이 시작된다. 

 

액면으로 보면 ‘납치’지만, 해조와 재미의 서사는 그런 현실감과는 거리가 먼 은유적 이야기에 가깝다. 정자가 바뀌는 실수로 잘못 태어났다고 하지만, 해조의 이런 상황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탄생이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어느 정자가 난자에 도달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고, 어떻게든 새 엄마의 마음에 들어 자식이 되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데려가지 않아 스스로 아이에게 잘 해주는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신기해 엄청 비싼 피아노도 길바닥에 나와 있으면 괜히 짠해 보여. 길바닥에 나오면 다 그렇게 본래의 가치가 변하나봐. 한번 버려진 거니까 내가 더 아껴줘야지.” 재미의 대사는 진정한 어른의 시선이 어떤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심지어 어떤 가격으로) 있느냐에 상관없이 타자의 가치를 진정으로 들여다봐주는 시선.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마음이라고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를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재미가 해조의 가치를 알아본 이유이기도 하다. 

 

“저 바닷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건 플랑크톤들이 햇빛을 받아서 지들이 막 발광을 하고 있는 거야. 걔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거라고.” 해조는 혼수상태 속 상상에서 자신을 찾아온 어린 동생 승아에게 바다에 비춰진 노을빛을 보며 그렇게 말한다.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지 밥. 먹이사실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 하지만 그 하찮은 것들이 그렇게 빛을 내면서 산소가 나와 우리의 생태계가 유지된다며 놀랍지 않냐고 말한다. 

 

‘Mr.플랑크톤’은 바로 이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 버려진 것 같은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고 보여준다. 그 누구도 모를 깊은 산 중의 눈 내린 설원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서 피어난 작은 토끼풀처럼, 길 위에서 방황을 굳이 방랑이라 치부하며 떠도는 청춘들을 저 바다 깊숙한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플랑크톤 같은 존재라고 말해준다. 설사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해도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아름다운 가치를 가졌다고 해조와 재미, 어흥, 봉숙 같은 인물들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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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의심과 불안이 겹치자 생겨난 기막힌 심리 스릴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정말로 엄마가 범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너 때문이겠지. 엄만 너 볼 때마다 힘들었을 거야. 시신 묻은 게 떠올라서 괴로웠을 거고. 피하지 말고 똑바로 봐. 그거 못견디겠어서 누구라도 죽이고 싶은 거잖아. 너. 장하빈. 엄마 그렇게 만든 건... 사람 때문 아니고... 의심이야.”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대부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프로파일러인 아버지 장태수(한석규)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점점 그 현장에 딸 하빈(채원빈)의 흔적들이 나오자 불안해진다. 혹여나 딸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건의 실체가 아주 조금씩 드러난다. 하빈은 범인이 아니라 엄마를 죽게 만든 이들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출팸에 접근했다. 하빈의 친구였던 이수현(송지현)이 그 가출팸에 있었고, 무슨 일인지 엄마가 이수현의 사체를 땅에 묻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빈은 누군가의 협박으로 엄마가 죽게 됐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누군가를 찾아 자기 손으로 복수하려 했다. 

 

하지만 장태수는 엄마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수현의 시신을 묻은 것 때문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을 한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가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하빈 때문이었다. 하빈이 혹여나 이수현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이 이유였다. 그래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엄마가 대신 시체를 묻었다며 장태수는 그것이 ‘너 때문’이라고 딸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너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며 딸을 질책하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딸을 그만큼 사랑했다는 의미다. 너무 사랑해서 조금 다른 아이이긴 하지만 보통 아이처럼 키우고 싶어했던 엄마였고, 그럼에도 이수현의 사체를 보고는 딸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걱정, 불안이 겹쳐지면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거였다. 그 결과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파멸이었다. 장태수의 말처럼 하빈의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건 사람(하빈도 아니고 또 누군가의 협박 때문도 아닌) 때문이 아니고 의심(딸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때문이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시청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미로 속에 빠뜨리는 이유는, 단순한 사건의 흐름과 범인을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밑에 깔려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누군가 범인처럼 보이고, 이상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행동을 하는 감정과 심리들이 숨겨져 있다. 가족이 범인일 수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의심과 걱정이 뒤섞인 불안은 하빈의 엄마가 사체를 암매장하는 그런 일까지 벌이게 만든다. 

 

그런데 이건 하빈의 가족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제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사건의 진실 속에서 또 한 축을 차지하는 박준태(유의태)와 그의 숨겨져 왔던 아버지 정두철(유오성) 그리고 박준태의 연인 김성희(최유화)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그것이다. 박준태가 술에 취한 채 잠든 후 깨어보니 옆자리에 죽어있던 송민아(한수아)를 보고 자신이 죽였다 착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김성희에 의해 조작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 순간 등장한 김성희가 “차라리 술 때문”이라고 하라며 그의 아버지가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사실을 꺼냄으로써 박준태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기막힌 건 그의 아버지 정두철이 이 일이 진짜 아들의 짓이라 부정하면서도 의심하며 자신이 송민아의 사체를 토막내 처리했다는 점이다. 저 하빈의 엄마가 이수현의 사체를 처리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그리려 하는 건, 가족에 대한 작은 의심, 불신이 얼마나 큰 뼈아픈 사건들로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자식이기 때문에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 부인하면서도, 혹여나 그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의심이 만들어내는 작은 틈. 그 틈으로 이 부모들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저 벌어지는 사건의 끔찍함이나 그 범죄자를 잡아내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을 담는 범죄스릴러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하나의 사건 위에서 여러 인물들이 이를 통해 갖게 되는 감정과 심리상태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촉발시키는 사건의 파장들을 따라간다. 

 

아마도 범인은 하빈도 박준태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들보다는 김성희가 더욱 의심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든 그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하빈과 박준태 같은 가족이 의심과 불안 사이의 틈에서 괴로워하며 겪게되는 고통스런 과정들이고, 그럼에도 그걸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만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장태수 같은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들을 표정 하나 말 하나로 표현해내는 한석규와 채원빈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호연과, 같은 대사라도 뉘앙스 차이에 의해 달리 들릴 수 있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한아영 작가의 섬세한 대본, 그리고 이 복잡해보이는 미로 같은 사건들을 길을 잃지 않게 연출해내면서 그 위에 인물의 심리까지 영상언어로 담아낸 송연화 감독의 삼박자가 합쳐져 실로 기막힌 심리 스릴러가 탄생했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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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가족

“자식 가진 사람이 왜 몰라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거 다 내 행복이지 얘네 행복이야?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왜 해준이가 눈치를 봐야 돼?”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윤정재(최원영)은 자꾸만 강해준(배현성)에게 잘하라고 하는 그의 이모 강이현(민지아)의 말이 거슬려 술기운을 빌어 그렇게 말한다. 어려서 해준이 엄마는 서울에 돈 벌러 간다며 이모에게 아이를 맡겼고, 윤정재는 바쁜 이모 때문에 혼자 집을 지키는 해준이 눈에 밟혀 잠깐 봐주겠다며 데려와 키운 것이 한 세월이 됐다. 이제 해준은 정재를 아빠라고 부르고 정재 역시 해준을 자식이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해준에게 “잘해라”, “은혜를 꼭 갚아라”라고 하는 이모의 말들이 정재에게 탐탁찮은 이유다.   

 

이 장면은 이 제목부터 심상찮은 ‘조립식 가족’이 담고 있는 가족의 특별함을 잘 드러낸다. 윤정재와 강해준은 성도 다르지만 함께 살면서 부자 관계가 된다. 그렇게 살면서 가족이 된 건 강해준만이 아니다. 윗층 사는 김산하(황인엽) 역시 윤정재를 가족으로 생각한다. 그 역시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아런 나이에 동생이 사고로 죽었고 그 비극으로 그의 엄마는 심지어 어린 산하를 원망할 정도로 피폐해지다가 이혼했다. 아빠 김대욱(최무성)과 함께 살지만 아래층 윤정재 역시 엄마 없는 산하를 아들처럼 대했다. 그리고 윤정재의 친딸인 윤주원(정채연) 역시 이들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가족관계가 형성됐다. 윤정재와 김대욱이 티격태격하며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부부 같은 관계가 되고, 김산하와 윤주원 그리고 강해준이 남매 같은 관계가 된다. 엄마도 없고 성도 다르지만 가족이 된 그들. 그래서 ‘조립식 가족’이다. 

 

‘조립식 가족’은 그래서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담아내는 가족드라마지만, 그 갈등양상은 과거의 가족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가족이 최고’라는 거였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남들이 힘겹게 해도 귀가해 함께 저녁을 먹는 그 정경으로 모든 것들이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가족 내에도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다시 넉넉한 가족의 품에 안기는 결말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이런 최후의 보루로서의 가족의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좋은 것이지만, ‘가족만이 최고’로 나가는 혈육에 대한 집착이 당연한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그 많은 ‘출생의 비밀’ 코드들이 등장해 “너는 내 핏줄”이라며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던 부모가 부자가 되어 나타나 자식의 팔자를 한 순간에 고쳐버리는 판타지가 그려지곤 했다. 과거 가족주의 시대의 엇나간 풍경이다. 

 

‘조립식 가족’은 정반대 구도로 과거식의 가족주의에 선을 긋는다. 엄마도 없고 성도 다르지만 가족이라 말하는 이들 앞에 유전적인 친부모들이 등장한다. 강해준에게 나타난 부자 친아버지는 당연한 듯 그를 아들이라 부르며 미국 유학을 시켜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또 김산하에게도 어린 시절 떠났던 엄마 권정희(김혜은)가 나타나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하지만 그 역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두 사람 모두 진짜 가족은 단지 핏줄이어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비록 ‘조립식 가족’처럼 보일지라도.

‘조립식 가족’은 중국 후난TV에서 방영됐던 중국드라마 ‘이가인지명’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특유의 신파적 감성과 반복적인 갈등 상황이 전개되는 면이 있다. 이들 ‘조립식 가족’을 위협하는 친부모들의 모습이 다소 작위적으로 위악을 부리는 장면들과 그럼에도 끈끈한 가족애를 보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립식 가족’이 공감을 주는 건, 이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상이 우리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 같은 혈연 중심의 ‘가족이 최고’를 그리는 가족드라마는 거의 사라졌다. 삶이 바뀌었고 가족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드라마들이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리메이크작이지만 ‘조립식 가족’이 묻고 있는 ‘진짜 가족’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글:일간스포츠,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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