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리에게’ 신혜선 친구이자 ‘정년이’ 김태리 언니

정년이

지니TV 오리지널 ‘나의 해리에게’가 종영했다. 그 끝은 경계성 정체성 장애를 겪던 주은호(신혜선)가 이제 또 다른 인격인 주혜리(신혜선)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이 드라마는 가슴 저릿한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 상처 입은 과거를 안고 있던 정현오(이진욱), 강주연(강훈)도 모두 행복을 찾아갔다. 

 

경계성 정체성 장애를 가져 주은호와 주혜리를 오가는 1인2역을 했던 신혜선과, 그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시킨 정현오 역할의 이진욱, 그리고 극중 이름인 강주연처럼 사실상 진짜 주연 역할을 해낸 강훈은 물론이고 조연이지만 톡톡 튀는 연기로 백혜연이라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극을 발랄하게 만들어준 조혜주, 주은호를 좋아했지만 한 발 물러서 그 사랑을 응원하는 문지온 역할을 단단하게 연기한 강상준까지, 더할 나위 없는 배우들의 매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 작품에서 도드라진 배우는 주은호가 주혜리가 되어 미디어N 서울 주차관리소에서 일을 할 때 함께 일했던 김민영 역할을 한 오경화다.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주혜리를 기다려온 김민영 앞에 이제 정체성을 회복해 돌아온 주은호가 “너와 있던 시간이... 참 행복했어.”라고 말할 때 그건 마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 같았다. 이런 친구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그런 인물이 김민영이었기 때문이다. 주은호가 자신은 사실 친구가 없다고 하자, 김민영은 유명 방송국 아나운서가 왜 친구가 없겠냐며 자신보다 훨씬 멋진 친구들이 수두룩 빽빽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주은호가 “친구는 멋진 걸로 뽑는 게 아니잖아. 친구는 그냥 뽑는 거잖아. 조건 없이. 마음이 통하는 사람한테 스며드는 거잖아.”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바로 김민영이라는 인물을 콕집어 설명한 것이니 말이다. 

 

사실 이 드라마 속에서 이 인물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분량에도 켜켜이 감정을 쌓아 끝내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건드리는 여운은 오경화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배우의 모습은 극중 주은호가 김민호를 ‘마음이 통하는 사람한테 스며드는 거’라고 설명하는 그 대목에 딱 어울린다. 너무나 보통의 평범한 모습으로 슬쩍 등장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온 이 배우의 저력은 도대체 뭘까. 

 

이것이 그저 배역의 힘이나 우연하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건, 현재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정년이’에서 이 배우가 보여준 연기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윤정년(김태리)의 언니 윤정자로 등장해 꿈을 향해 나가려는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암시롱도 않당께. 야 그런 꿈이 있다는 것도 다 네 복이다, 어? 네 마음이 정 그러면 가서 끝까지 한번 부딪혀 봐.”라며 정년이를 떠나보내주면서 그는 “성공 못해도 자꾸 집 생각나고 서러운 생각 들면 돌아와잉? 내가 밤에도 문 안 잠글랑게.”라고 말해준다. 

 

짧은 장면이지만 ‘정년이’에서 윤정자의 역할은 사실상 생계 때문에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당대의 청춘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중대하다. 시청자들은 윤정자의 마음에 빙의되어 정년이를 응원하게 된다. 정년이가 세상에 나가 꿈을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이 윤정자 같은 꿈꾸지 못하는 이들을 대리해주는 것처럼 여겨지고, 또한 그건 현재의 모든 꿈꾸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 우리들을 대리해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그 응원의 마음을 갖게 만드는 이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가. 

 

오경화는 그 역할을 속으로 감정을 꾹꾹 누르지만 그래도 튀어나오는 울먹임을 섞어 연기했다. 그리고 이런 속으로 꾹꾹 눌러놓는 연기는 ‘나의 해리에게’에서 정체성을 찾은 주은호가 주혜리를 떠나보내는 이별파티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해달라고 하자 김민영이 이를 외면하며 하는 대사에서도 등장한다. “근데 있잖아. 난 주혜리랑 인사하기 싫어. 난 주혜리랑 이별한 적이 없거든. 이별할 필요도 없고. 친구끼리 이별하는 거 손절인데, 난 주혜리랑 손절한 적이 없어서. 그래서 난 인사를 못해. 혜리야.” 

 

물론 이 장면에서 오경화의 연기는 저 ‘정년이’에서의 언니다운 어른스러움과는 달리,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난 투정이 섞여있다. 그것이 멋진 스펙과는 상관없는 진짜 친구의 마음이라는 걸 그는 연기로 표현한다. 친구는 멋진 걸로 뽑는 게 아니라던 주은호는 그래서 김민영에게 “너 멋지다”고 말한다. 세상이 말하는 멋짐(스펙)과 김민영이 보여주는 ‘멋짐’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그들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친구가 된다. 

 

오경화를 보면 늘 멋져 보이는 주인공들의 화려함에 가려 진짜 멋진 그 주변인물들이 있다는 걸 우리가 간과하곤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옆에 평범한 삶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있어 주인공이 빛나는 게 아닐까. 김민영과 윤정자가 있어 주은호도 윤정년도 빛이 난다는 걸 오경화 배우는 분량은 적어도 그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여운을 담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는 오경화라는 배우에 우리가 마음을 빼앗긴 이유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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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의 이 말은 장태수(한석규) 팀장이 처한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해준다. 늘 사건을 대하며 범죄행동을 분석하는 게 일인 그는 딸 장하빈(채원빈)이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 하다못해 그녀가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팬던트 하나도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그것들이 말해주는 의미들이 프로파일러인 그에게는 남다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만 범죄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자신이 지금 수사하고 있는 살인사건과 연루된 냄새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프로파일러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를 그려낸다. 그의 이런 직업병(?)은 이미 그를 비극의 수렁 속에 빠뜨린 바 있다. 과거 캠핑을 갔다가 어린 하빈과 그의 동생 하준이 산에서 실종됐고 수색 끝에 발견된 건 죽은 하준과 피투성이가 된 하빈이었다. 장태수는 직업적 감각으로 하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추궁했고 그녀를 의심하게 됐다. 그의 아내 윤지수(오연수)는 그런 장태수를 못견뎌하다 이혼했고, 그녀에게 덥친 비극 속에 서서히 무너져 결국 자살했다. 장태수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하빈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 애쓰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수사하는 범죄와 자꾸만 연루된다.

 

직업적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파고 들어야 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장태수는 딸이 설혹 범인이라고 해도 결코 물러서거나 포기할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하빈 역시 만만치가 않다. 범죄현장에 자꾸만 하빈이 있던 정황과 증거들이 발견되고, 하빈 역시 그것들을 은폐하려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프로파일러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숨막히는 일이 아니냐고 친구가 말했을 때 그녀는 “거짓말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실을 파고드는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며 더 정교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딸과의 대결구도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장태수가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스릴러이면서, 동시에 그의 가족에 닥친 비극의 진실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그 의심의 대상이 가족이라는 점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끝없이 가족 간의 갈등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과연 장태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며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가족이면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는 죽은 아내 윤지수의 말이 자꾸만 그의 귓가에 울려퍼지지만, 장태수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이 드라마는 프로파일러들이 사건을 봐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 놓는다. 이를 대변하는 두 인물은 장태수의 팀에 들어온 이어진과 구대홍(노재원)이다. 이어진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사건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대홍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사건의 진실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프로파일링의 선택지가 아니다. 사건과 동시에 사람도 봐야 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장태수처럼 그 사건이 가족과 관계되어 있다고 여겨질 때 이런 직업적인 균형감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장태수는 과연 의심하면서도 가족이라 회피했던 딸을 이제 마주하고, 그녀의 굳게 닫힌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바로 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장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갈수록 미로 속에 갇혀 버린다. 딸을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장태수의 그 미칠 것 같은 갑갑함과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추리가 시작된다. 갑자기 자살하기 전 윤지수가 백골사체로 발견된 수연을 땅에 묻는 장면까지 떡밥으로 제시되자 시청자들은 또다시 충격에 빠진다. 하빈만이 아니라 윤지수 또한 과거 사건들과 연루된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태수가 어서 딸 하빈의 굳게 닫힌 방을 열고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주기를 바라게 된다. 또 이 가족의 비극과 맞닿아 있을 것 같은 윤지수에게 과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밝혀주기를 바라게 된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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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상관없어...” 신혜선의 상처를 치유시킨 강훈의 고백(나의 해리에게)

나의 해리에게

“전 상관없어요. 혜리씨. 왜냐하면 난 그냥 혜리씨가 있어주기만 하면 되거든. 내 옆이 아니어도 살아서 건강하기만 하면 난 그걸로 충분해요.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대도 난 괜찮아. 원하면 내가 거기 같이 가줄 수도 있어요. 나 진짜 다 버리고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그딴 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혜리씨. 왜냐하면 전요 혜리씨. 처음부터 혜리씨가 그 누구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거든.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라… 내가 혜리씨를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그래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강주연(강훈)은 갑자기 사라져 너무나 보고 싶었던 주은호(신혜선)를 보고는 그렇게 외친다. 물론 강주연이 기다렸던 건 주은호가 아니라 그의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 주혜리(신혜선)였을 게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눴고 그리워하게 됐던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던 주혜리를. 그래서 돌아온 그가 주은호인지 주혜리인지 너무나 궁금해하지만 그는 결국 그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주혜리를 좋아했던 건 ‘누구라서’가 아니라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어서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주은호는 강주연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준다. 바로 옆에 서서 주은호를 걱정하고 보살피려 한 정현오(이진욱)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는 깜짝 놀란다. 주은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정현오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혼을 꿈꾸는 주은호에게 이를 거절하고 이별 통보까지 했던 그였다. 자신이 홀로 감당해야할 할머니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주은호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갖게 된 사실이 그는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괴롭다. 주은호가 아닌 주혜리가 되고 싶을 정도로 그 이별 통보가 아팠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주은호가 주혜리가 되어 돌아온 것 같은 그 광경이 그에게는 몹시 아프다.

 

실제로 주은호는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던 정현오가 결혼을 한다는 사내에서의 소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부모를 잃었고, 숲으로 들어간 동생을 잃었으며 그 빈 자리를 유일하게 채워줬던 사랑하는 사람 정현오와도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가 비혼주의자라서인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다니. 물론 그건 소문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주은호는 무너지고, 방송사고를 내고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주은호는 자신을 버리고 싶어진다. 대신 주혜리가 궁금하고 되고 싶어진다. 그 애가 왜 행복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은호는 숲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버리고 주혜리가 되고 싶어서 심지어 자기 팔에 주혜리가 가졌던 상처까지 내며서 자기를 버리려 한다. 그는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난 언제나 혜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주혜리. 넌 행복해? 만약 니가 행복하다면 나는 이제 너로 살아보려해. 내가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끝내 혜리가 되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강주연에게 고백한다. 그건 그가 모든 걸 버리고 그 숲 속 오두막집을 찾아가면서도 버리지 못한 한 가지가 있어서였다. 정현오가 작은 메모지에 그린 목걸이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주혜리가 되려는 주은호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었다. 

 

‘나의 해리에게’는 구도로만 보면 주은호를 두고 정현오와 강주연 그리고 문지온(강상준)까지 사랑하게 되는 4각구도의 멜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계성 정체성 장애를 겪으며 주은호와 주혜리를 오가는 이 인물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밀고 당기는 꽁냥꽁냥 멜로와는 차원이 다른 걸 담고 있다. 그건 강주연이 ‘누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보다 ‘존재론적인 사랑이야기’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심지어 동생이 실종되면서 결코 행복할 수 없던 삶을 살아온 주은호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불행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인격을 꿈꾸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음 생을 꿈꾸거나, 과거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삶을 꿈꾸는 회귀물에 빠지는 건 그래서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현재의 내가 싫고 불행하게만 느껴져 차라리 다른 인격이 되고 싶은 그를 끝내 붙잡아주는 건 뭘까. ‘나의 해리에게’는 그 질문에 강주연이라는 인물의 사랑을 통해 답하고 있다. 그 누구여서가 아니라 그런 내게도 와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설혹 불행의 늪에 빠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딱 하나”라고 믿는 강주연에게 주은호는 자신이 주혜리가 되지는 못했다며 대신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했던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아까 주연씨가 했던 말은 내가 주연씨한테 하고 싶었던 말예요. 맞아요. 나도 처음부터 그 누구라서 그쪽을 좋아했던 게 아니고 그저 내게 와줘서 이런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요. 주연씨.” 그가 강주연을 꼭 안아줬던 건 주혜리여서가 아니라 고마움 때문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주은호가 강주연을 안아주는 장면은 이 대목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강주연의 말이 사실 주은호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뜻은, 자신이 주혜리가 되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행복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강주연의 그 말은 주은호가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는 의미다. 주은호가 안은 건 강주연만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드디어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너무 아파서 다른 인격을 가진 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제 그 모험 같은 여정을 돌아서 인간 존재의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상실감과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단 한 순간도 행복한 적 없었다고 생각했던 주은호는 드디어 그 먼 길을 돌아와 알게 된다.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던 정현오를 붙잡아 잠깐 동안 함께 있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준다면 말해야지. 말해줘야지. 말해줘야지. 고마워. 내 사랑. 이런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의 해리에게’는 그래서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다소 우리에게는 낯선 장애를 소재로 삼은 멜로드라마지만,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도 마음 속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나의 해리에게’는 묻고 있다. 당신의 혜리는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 모두의 혜리는? 그리고 우리가 붙박혀 살아가는 현실과 우리가 꿈꾸는 행복 사이에서 저마다 하나씩 혜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다시 현실로 되돌리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런 내게 와준 소중한 존재들이 옆에 있어서 힘겨워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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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의 고통 가득 인간적인 얼굴에 대책없이 빠져든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어두운 밤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차 한 대가 달려나간다. 부감으로 비춰지는 그 광경 속에서 이 차는 어떤 방향으로 갈 지를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만이 거기 차가 있고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차가 한 참을 지났을 때 저 편에 온통 불빛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건 딱 봐도 사건 현장이다. 어둠 속을 뚫고 그 차들이 모여 빛이 겹쳐져 있는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차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어둡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첫 회의 오프닝 시퀀스다. 그 차를 몰고 진실을 향해 가는 인물은 바로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다. 현장을 슬쩍 훑어 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척척 알아보는 이 인물은 어딘가 이 일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오정환(윤경호) 강력1팀 팀장이 투덜대게 만들 정도로 퉁명스럽게 현장을 훑어본 후 곧바로 귀가한다. 그의 마음에는 아내가 죽고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딸 장하빈(채원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딸이니 챙겨야 한다는 부성애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는 딸을 의심한다. 

 

장태수가 딸을 의심하게 된 건 하빈이 어려서 겪은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캠핑을 갔다가 남동생과 함께 산으로 들어간 어린 하빈이 동생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피투성이로 나타난 하빈. 장태수는 하빈이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닦달하지만 끝내 하빈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 일로 장태수는 아내 윤지수(오연수)와 틀어지게 된다. 결국 이혼하고 윤지수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렇게 남겨진 장태수와 장하빈은 결코 원만한 부녀 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마침 산 속의 어느 허름한 집에서 발견된 2리터에 가까운 피로 사체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곳에 무슨 일인지 장하빈이 왔다 간 흔적들이 발견된다. 마지막 핸드폰이 켜졌던 위치가 바로 그 사건이 발생한 대화산 부근으로 찍혔고,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섬유가 장하빈이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팬던트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장태수는 딸을 의심하게 된다. 그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바로 딸이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처럼 프로파일러인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용의자가 자꾸만 딸 장하빈으로 좁혀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공적으로는 프로파일러로서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그 화살이 자신의 가족을 향할 때 갖게 되는 고통이 그것이다. “범죄자 마음을 귀신 같이 읽으면서 애 마음을 그렇게 몰라?” 아내 윤지수가 아들의 죽음에 딸을 의심한 장태수를 나무란다. “무조건 믿어야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장태수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한다. 

 

아들의 죽음이 딸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그것 때문에 이혼한 아내가 자살하게 된 것까지 장태수는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또다시 딸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딸을 믿고 싶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앞에서 장태수는 괴로워한다.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으로 들어온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보기 위해 의심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 장태수는 범죄 현장에서는 베테랑이지만 가족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파탄지경의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신입으로 들어온 구대홍(노재원)은 장태수와도 또 그를 롤모델로 삼는 이어진과도 다른 따뜻한 성품의 프로파일러다. 사람보다 사건을 우선시하는 저들과 달리, 그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장태수와 그 딸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쉽게 그 일을 발설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 이면에 무언가 저들이 겪었을 아픔이나 고통을 들여다보려 한다. “가출한 아이들이요. 어떻게든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환경에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가해자로 생존하려는 거죠.” 가출팸을 그저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시선과 달리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장태수는 그의 신입들인 이어진과 구대홍의 서로 다른 사건에 대한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 또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사건 현장의 증거들이나 정황을 통해 합리적으로 딸을 의심하지만, 딸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떤 심리적 고통이나 아픔을 갖고 있는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건 장하빈이 아버지 장태수를 한 집안에서 함께 있는 것조차 힘겹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하준이 말야 정말 사고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장하빈의 그 말은 장태수에게는 마치 그들의 죽음에 장하빈이 연루된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어쩌면 장하빈에게는 그들의 죽음이 아빠의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 만든 것이라는 토로일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달려나가는 자동차처럼, 장태수는 막막한 어둠 속에 놓여 있다. 그건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범죄현장 앞에 서 있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딸의 마음을 마주하고 그 문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고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끝내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장태수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그러져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어두운 공간 속에 놓여진 장태수의 모습을 연출적으로 보여주는 건 그의 심리를 이만큼 정확하게 담아내는 미장센이 없어서다. 여기에 그 역할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한석규의 내면 연기가 묻어난 얼굴과 표정이 대책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음영에 도드라진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이 인물은 가시덤불 가득한 그 어둠의 길들을 헤치고 끝내 진실을 향해 나아가 그걸 마주하게 될까. 그것이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가진 매력적인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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