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자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우리가 제대로 아는 건 없었다

나는 생존자다

“이런 사고가 나게 되면 늘 보상이 먼저 나와요. 보상이. 생명 앞에 돈을 이야기하고.. ‘돈을, 보상을 잘해 줄게’, ‘돈 때문에 너희들 그러지?’ 이 한마디에 그냥 다 무너져 내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족의 이야기는 못내 아프다. 그건 삼풍백화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참사를 대하는 경박하고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를 콕 집어내고 있어서다.

 

사실상 원인이 분명히 있는 인재지만, 마치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인 것처럼 취급하고 그래서 그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서둘러 보상 이야기를 꺼내며 돈으로 덮어버리려 하는 듯한 천박한 행태들이다. 그건 삼풍백화점 유족이 눈물을 꾹꾹 삼키며 피처럼 토해놓는 말처럼, 그들이 먼저 보낸 가족으로 이미 헐어버렸지만 애써 버텨내려 했던 삶의 옹벽을 또 한 번 무너뜨리는 일이다. “금전으로 목숨을 대신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는 신이다>로 사이비종교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꺼내놓음으로써 사회적 충격과 파장을 일으켰던 조성현 PD가 그 후속편으로 <나는 생존자다>를 내놨다. 총 8회로 형제복지원, JMS, 지존파 그리고 삼풍백화점을 다뤘다. 전작에 비해 유사한 사건들로 묶이지는 않지만, 대신 조성현 PD가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들여다본 건 제목에 담겨있는 것처럼 ‘생존자’라는 키워드다. 그저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고 그 후에도 여전히 생존의 고통스런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생존자’다.   

 

당시 끔찍했던 사건들을 실제와 재연된 영상을 통해 꼼꼼히 그 진상을 담아내면서도, 생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절절한 인터뷰가 중심이 되어 이들의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통의 삶을 전한다.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고 경찰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에 끌려 갔다 몸도 정신도 망가져 버린 채 현재까지도 그 시간에 멈춰 살아가는 생존자들이나, <나는 신이다>를 통해 교주 정명석의 성범죄를 용감하게 폭로했지만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메이플이나 조성현 PD, 또 지존파에 의해 살인 공장에 납치되었다가 9일 간의 사투 끝에 도망쳐 살아 남았지만 그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생존자, 그리고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족들... 

 

<나는 신이다>가 숨겨진 사실을 꺼내놓는 폭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나는 생존자다>는 이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도 빼놓지 않았다. 거의 홀로코스트에 가까운 형제복지원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그 폭력을 주도한 박인근 원장이 미미한 처벌을 받고 그 가족들이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건 당시 이 사건이 군부독재의 비호 아래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공개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유야무야 처리된 것. 

 

그렇다면 군부독재의 시대를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과거의 잘못과 선을 긋지 못하는 현 정부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까. 어쩌면 당장의 현실과 이익에만 집중하다 그런 일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생존자다>는 그것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고통스런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의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요구하는 생존자에게 비웃음을 던지는 가해자들이 존재하는 한 이건 결코 과거의 일이 될 수 없다고 이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한국 사회의 강령은 개발시대 이후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잘 사는 것, 부유해지는 것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그 풍조가 형제복지원, JMS, 지존파, 삼풍백화점 사건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건으로 발현된 증상은 저마다 달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원인은 강박에 가까운 돈과 성공, 성장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자다>가 삼풍백화점 참사를 다룬 마지막 회의 부제가 ‘돈으로 쌓은 탑’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보다 많은 수익을 내려는 백화점 측의 무리한 설계 변경 요구가 있었고, 이를 허가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있었다. 또 들어가야 할 철근을 빼돌린 부실공사가 있었고, 붕괴될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영업이 인명보다 중요하다 여긴 경영진들의 무책임이 있었다.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결국 ‘돈’이다.

 

형제복지원과 경찰이 공조해 무고한 아이들까지 잡아간 데는 더 많은 국가보조금과 뇌물이 있었고, JMS의 정명석이 감옥에 수감된 이후에도 이 사이비 교단이 계속 유지된 데는 2인자 정조은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지존파의 엇나간 폭력의 이면에도 양극화된 돈에 대한 박탈감이 존재했고, 삼풍백화점 붕괴에는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려 무리한 설계 변경까지 하려 했던 경영진과 뇌물을 받고 이를 무마해 준 공무원들이 있었다.  

 

그러니 가족을 잃고 절망하는 유족들에게 먼저 보상 이야기를 내놓는 건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믿는 여전한 돈 지상주의적 발상이 아니고 뭘까. 그래서 그런 비극을 과거로 빨리 밀어내고 앞으로만 가려는 행태는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 같은 또 다른 삼풍백화점의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다. 사실 생존자나 유족들도 그 끔찍했던 당시 사건들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건 고통 그 자체다. 그럼에도 왜 인터뷰에 응하게 됐는가를 묻는 조성현 PD의 질문에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렇게 안하면 잊어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잊기 때문에 널리 좀 퍼지게 해주세요. 수고스러워도.” 그러니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역시 이 사건들을 눈 부릅뜨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또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므로.(사진:넷플릭스)

‘태계일주4’, 기안84가 18살 셰르파에게 감동한 까닭

태계일주4

“너네 존경스럽다. 존경스러워.” MBC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이하 태계일주4)>에서 기안84는 네팔의 젊은 셰르파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30킬로에 달하는 짐을 이마에 메고 가파란 산길을 오르내리는 일을 하는 아이들. 이제 겨우 스무살, 열여덟살인 라이와 타망은 그 길을 하루에도 서너 번 정도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시작점인 마을 루클라의 한 식당에서 소년 셰르파들을 만난 기안84는 그들과 함께 짐 나르는 걸 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결국 고행 길을 자청하게 됐다. 머리 끈에 의지해서 30킬로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산길. 기안84는 중심조차 잡기 힘든 그 일을 이 어린 소년들은 묵묵히 별 힘든 내색도 없이 하고 있었다. 

 

배달 1회에 버는 돈은 1500루피. 한화로 1만5천원 정도다. 그런데 식당에서의 한끼 식사가 500루피 정도 한단다. “밥 먹고 나면 돈이 안남잖아.” 기안84가 그렇게 말하자 소년은 “그래도 배는 불러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삶이 그토록 힘겨운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소박한지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돈 많이 벌면 하고 싶은 일이 “부모님 즐겁게 해드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소년들이다. 

 

<태계일주4>는 그 시작을 뭉클한 감동의 이야기로 열었다. 지금껏 <태계일주>가 기안84 특유의 날것의 웃음과 재미를 먼저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시작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지가 ‘차마고도’라는 극한의 오지라는 점과, <태계일주>는 주마간상식의 여행이 아니라 그들 삶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이라는 점은 왜 이런 시작을 했는가를 공감하게 한다. 먼저 그들의 진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일종의 예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계일주4>의 첫 회는 현지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그들과 나누는 정으로 겉으로는 기안84 특유의 유쾌함이 가득 했지만 보는 내내 먹먹함이 있었다. 순박하고 밝은 표정의 소년 셰르파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졌다. 12살, 13살부터 시작했다는 그 일이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삶의 무게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풍경이 아름답잖아요. 히말라야 산도 그렇고. 들기 전엔 몰랐는데 막상 하니까 땅만 보고 가는 거야 내가.” 기안84는 일일 셰르파 체험을 온몸으로 한 소회를 그렇게 전했다. 짐을 잔뜩 짊어지고 오르면서 기안84는 소년들에게 이걸 하니 하늘을 못보는게 아쉽다고 말한 바 있다.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야 되고, 걸어간 걸로 돈 벌어서 그걸로 가족들 먹고 살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느낌인데 당장 앞만 보고 가는 삶이 셰르파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의 여행이란 즐거움과 재미로만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여행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만 고민하는 경향이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정작 현지가 소외되는 일이 생긴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저 재미를 위한 배경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안84가 먼저 네팔의 셰르파들의 삶을 비록 하루지만 직접 경험해 전해주면서 이 여행의 문을 연 건 <태계일주4>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쩐지 그래서 <태계일주4> 첫 회의 주인공은 기안84가 아닌 저 소년 셰르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으로 펼쳐질 4인방이 뭉쳐 떠나는 차마고도의 여행은 즐거움과 재미도 가득할 테지만, 이러한 진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이 여행에 기꺼이 동승하고픈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기안84의 <태계일주>가 각별한 여행 예능으로 다가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사진:MBC)

‘대환장 기안장’, 기안84의 상상을 현실화한 진의 실행, 지예은의 찐공감

대환장 기안장

“나도 울릉도 구경가고 싶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에서 기안84는 창밖으로 펼쳐진 울릉도의 풍광을 보며 말한다. 화창한 날씨에 더더욱 빛나는 울릉도의 풍광이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예은이 신세한탄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나도, 울릉도 왔는데...” 그러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안84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 한 번만 어디 갔다 오면 안될까?” 기안84의 말에 지예은은 발까지 동동거리며 “한번만 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기안84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진이다. 사장이 기안84이고 진은 사원(?)이지만, 오히려 기안84가 진의 눈치를 보는 건 요령이나 타협 따위는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장님 놀러왔어?” 그 말에 지예은이 “그럼 우리는 구경도 못해?”라고 묻자 진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이어진다. “못하지. 우리는 일하러 온 거고 이분들이 구경하러 온 건데.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야.”

 

결국 기안84는 꼬리를 내린다. “그래, 놀러온 게 아니지.” 그리고 반성한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네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 야, 진짜 너 아니었으면 이 봉도 없어지고 1층에 문도 뚫고 지금 다 했을 텐데.. 세탁기 하나 장만하고... 근데 그건 기안장이 아니야.” 단호한 진에 굴복하며 사죄하는 기안84의 모습에 손님들은 빵 터진다. 혹여나 울릉도 구경이라도 갈 줄 알았던 지예은의 짜증 가득한 투덜거림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이 장면은 <대환장 기안장>의 완벽한 케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안84조차 자신이 웹툰처럼 상상한 기안장이 실제로는 어떨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처음 기안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조차 황당하고 불편한 그 곳에서 자꾸만 타협하고픈 마음을 먹게 됐다. 자신 혼자 불편하다면 상관없는데, 자신의 상상으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 

 

마침 목수인 손님이 오자 벽을 뚫어 2층과 1층을 봉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면 어떨까 기안84가 고민했지만, 그 때 진이 나서 결사반대했다. 그건 기안장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실로 기안장에 투숙하겠다며 지원한 손님들이라면, 저마다 기안84식의 하룻밤을 기대했을 터였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기안84가 출연하니 <효리네 민박> 지옥편이 될 거라고 지원자들이 예상했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너무 쉽게 집에 들어가는 게 꼴보기 싫었다”며 2층으로 난 문을 설계했던 식으로 기안장에는 기안84가 키득거리며 내놓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는게 불편해서 내려올 때 쓰는 슬라이드로 올라가는 걸 손님들에게 허용할까도 고민했던 기안84였다. 그 때마다 그걸 막은 것도 진이었다. 진은 문지기를 자청해 슬라이드로 오르려는 이들에게 다시 내려가서 제대로 클라이밍을 해 문으로 들어오라고 지적하곤 했다. 

 

상상은 기안84가 했지만 그걸 원칙 그대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래서 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안84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는 사장이 흔들릴 때마다 멘탈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일정 때문에 사장이 부재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역할을 했다. 매끼 손님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맛나게 요리해주고, 기안84가 부재할 때 손님들과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인가를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기안84와 함께 그가 사는 방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자원한 진은 그 선택 그대로 요령 없이 기안84의 삶 그대로를 체험한 셈이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어, 이 힘겨움과 불편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예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찐 공감’ 역시 세 사람의 케미에 균형을 맞춰줬다. 기안84와 진이 ‘낭만’ 운운하며 힘든 상황들을 감당하려 할 때, 지예은은 MZ대세 다운 솔직한 투덜거림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감하게 했다. 과도한 낭만으로만 기울어졌다면 감흥이 덜했을 이 체험에 현실적인 찐 공감으로 균형감을 줬다고나 할까.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의 웹툰적 상상력과, 진의 원칙을 지키는 실행력 그리고 낭만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안장에 지예은이 현실감을 부여하는 찐 공감이 더해져 완성됐다. 9편으로 마무리된 시즌1은 사실상 이 실험적인 도전의 적응기에 가까웠다. 적응할만 하니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즌2로 돌아온다면 적응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기안장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물론 기안84와 진, 지예은이 만들어낸 완벽한 앙상블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진:넷플릭스)

대환장 기안장

“사람들이 집에 쉽게 들어가는 게 싫었거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기안84가 상상해 지은 민박집의 문이 2층 꼭대기에 달려 있는 이유가 그렇단다. 기안84가 슥슥 상상해서 그려놓은 민박집 기안장은 들어가려면 벽에 만들어놓은 클라이밍을 해서 문까지 기어 올라가야 한다. 어떻게든 들어가보려 클라이밍을 시도하던 직원 역할의 진이 진입에 실패하고 기안84가 실소를 터트리며 하는 그 말에 또 다른 직원인 지예은이 투덜댄다. “아 집에 못들어가잖아요.” 

 

이것은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의 기막힌 민박집 광경이다. 바지선 위에 지어져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민박집은 일단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잠도 테라스처럼 생긴 바깥에 고치처럼 매달려 자야한다. 그래서 비라도 오면 쫄닥 젖을 수밖에 없다. 가까스로 클라이밍을 해 들어가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야 숙소 겸 주방이 있는데 거기도 계단 따위는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따온 오르내리는 봉이 있을 뿐이다. 그 봉을 타고 내려갔다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올라오려면 다른 사람들이 밑에서 받쳐주고 올려주고 해야 하는 생고생이 펼쳐진다. 물론 야외에 워터슬라이드까지 갖춰진 ‘5성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걸 타고 내려오면 바다로 뛰어들게 되어 있다. 이러니 이런 상상을 구현해놓은 기안장 앞에서 푸념이 터져나올 수밖에.

 

기안장이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건, 기안84가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마구 그려낸 ‘낭만’의 결과다. 클라이밍이 숙소에 쉽게 들어가는 게 싫었다는 다소 위악스런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2층과 1층 사이를 연결하는 봉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낭만이 만들어낸 결과다. 고치처럼 매달려 자는 잠자리는 밤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잠든다는 낭만이 빚어낸 것이고, 워터슬라이드도 숙소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낭만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적 상상이 현실과 마주하면 어떤 불협화음을 낼 것인가. ‘대환장 기안장’은 바로 이 지점을 예능적 재미의 포인트로 만들었다. 

 

진짜 현실이라면 이런 민박집이 가능할 리가 없지만 그 상상을 진짜 울릉도 앞바다에 구현해낸 건 우리에게는 ‘효리네 민박’으로 잘 알려진 제작진의 공이다. 정효민 PD와 윤신혜 작가의 이 합작품은 그래서 ‘효리네 민박’의 기안84 버전처럼 보인다. 기안84와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의 진 그리고 ‘SNL코리아’의 뜨는 별 지예은이 운영하는 기안장에 일반인 투숙객들을 모집해 함께 지내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은 정반대다. ‘효리네 민박’이 힐링 그 자체였다면 ‘기안장’은 ‘킬링’에 가까우니까.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건 울릉도에 첫 입도한 세 사람이 마주한 태풍 앞에서다. 바다 위에 떠있는 기안장에서 지낼 수 없게된 이들은 대안으로 마련해 놓은 산 속 별장(?)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 곳 역시 만만찮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아슬아슬한 레일 위를 기묘한 기구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주방과 옛 군대 내무반 같이 꾸려진 잠자리가 한 공간에 있는 숙소는 굴뚝없는 아궁이 때문에 요리를 하면 연기에 질식할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젠틀하고 긍정적인 진의 입에서도 “인간아-”라는 볼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첫 손님들 역시 그 불편함에 역시 기안84라는 긍정과 이건 너무했다는 부정이 오간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여행과 편안한 숙소에 대한 기대를 깨버리는 이 불편함 속에서 간간히 기안84식 낭만이 고개를 든다. 불편한 잠자리를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에 저편 밑으로 펼쳐진 압도적인 바다풍경이 그렇고, 배 위 야외에서 하늘에 지천으로 떠있는 별자리들이 그렇다. 그 불편함은 숙소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지워낸 자연적인 것들을 오롯이 다시금 눈앞으로 끌어내는 요소가 된다. 또 프라이빗을 강조하는 숙소들이 투숙객들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것과 달리 이 곳은 뭐 하나를 해도 같이 해야 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생겨난다. 

 

물론 날 것의 만화적 상상을 구현하다 보니 다소 위험해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편리함과 안전함 속에만 있다 보니 느끼는 위화감이 아닐까 싶다. 기안84의 만화적 상상은 그렇게 우리의 인공적인 편리함에 갇힌 삶을 오히려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주는 포복절도의 웃음과 재미도 빼놓을 수 없지만.(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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