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이 소림사에 간 까닭은

 

피겨스케이팅, 정글에 이어 이번에는 소림사다. 김병만이 <키스 앤 크라이>에 출연해 피겨스케이팅을 한다고 할 때만 하더라도 제 아무리 달인이라도 그렇게 빨리 빙판에 적응할 줄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단 몇 개월 만에 찰리 채플린, 타잔이 되어 빙판 위에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다.

 

'주먹쥐고 소림사(사진출처:SBS)'

그가 정글에 간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나무 타고 야생에서 놀던 그라고 해도 정글 속에서 직접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해 그것도 같이 간 팀들과 함께 생존한다는 것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현재를 보라. 스카이 다이빙에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까지 소유한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척척 집을 만들고 먹거리를 구해 심지어 먹방을 보여주는 생존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그가 새해 첫 날부터 SBS 설 특집 파일럿으로 방영될 <주먹쥐고 소림사> 촬영을 위해 소림사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또 다른 김병만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건 이러한 그의 진화과정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소림사는 영화든 무협지든 중국무협을 경험한 대중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수련을 통해 고수가 될 수 있는 곳. 이소룡이나 성룡은 물론이고 이연걸 같은 중국의 액션스타들이 거쳐간 곳.

 

<주먹쥐고 소림사>에는 김병만을 위시해 장우혁, 장미여관의 육중완,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 그리고 틴탑의 니엘이 합류했다. 이들이 각각 갖고 있는 개성들은 소림사 체험과 만나 저마다의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춤의 황제 장우혁이 시도하는 화려한 검술이나, 외모만은 무협에 딱 맞는 육중완이 관우가 쓰던 춘추대도를 연마하는 모습, 최고의 체육돌인 김동준이 보여주는 사권과 유일하게 소림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허약체질의 니엘이 보여줄 봉술이 그것이다. 김병만은 성룡의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취권을 선보인다고 한다.

 

뭐든 김병만이 하면 독특한 김병만표 예능으로 탄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프로그램 아이템 자체가 김병만이라는 독특한 인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토크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강점인 김병만은 그것을 특화시켜 달인의 연장선으로서 피겨 스케이팅을 했고 정글에 갔으며 이번 소림사에 도전하게 된 것. 게다가 이 아이템들은 평소 김병만이 해보고 싶었던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획은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 제작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즉 기존 예능이 일단 틀과 형식을 만들어놓고 거기 출연할 출연진들을 섭외하는 방식과 달리, 특별한 개성을 가진 인물을 먼저 세워두고 그 인물에 맞는 도전을 설정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방식은 향후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기존 방식의 대안으로 자리할 공산이 크다. 이미 연예인 프리미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때 기왕에 연예인을 기용하겠다면 그들이 왜 그 프로그램에 적합한가를 명확히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예 특정 연예인의 개성을 오히려 예능화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김병만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김병만은 소림사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저 체험 정도에 머문다면 물론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무예 연마와 그로 인한 괄목상대할 성장을 보여준다면 역시 김병만이라는 신뢰가 만들어질 것이다. 자신의 꿈을 도전으로 이어가며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재미와 의미를 전하는 김병만의 행보는 향후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출연자란 그저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도전과 같은 꿈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걸 김병만의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다.

<별그대>, 전지현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요즘 전지현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CF를 포함해 전지현은 늘 비슷한 이미지를 고수한다.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낄 시점이 왔다. 차기작에서도 생머리를 휘날리며 남자 주인공만 바꾸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난 JTBC <썰전>에서 김구라가 한 이 말은 아마도 3,4년 전만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은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별에서 온 그대>에서만큼은 합당한 평가가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흔히들 연기는 연기자의 고유영역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연기란 대본과 캐릭터와 연출이 함께 만들어내는 복합물이다. 즉 제 아무리 좋은 연기자도 그저 그런 대본과 캐릭터, 연출을 만나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가 없다. 때로는 좋은 연기력이 나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배우들에 대한 연기력 논란이 자주 나오는 데는, 작품이 가진 허술함을 비겁하게도 여배우 한 명의 연기력에 뒤집어씌우는 경향에서도 비롯된다. 물론 연기의 기본기가 없는 건 논외의 문제지만.

 

그런 점에서 이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라는 캐릭터는 분명 한때 CF퀸으로만 각인되어 있던 전지현의 배우 근성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한 면이 있다. “나 천송이야-”라고 허세를 부리면서도 속으로는 점점 도민준(김수현)이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자신에 놀라는 인물. 도민준에게 실연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처연해지다가 술을 마시고는 금세 총 맞은 것처럼-”을 코믹하게 불러대는 인물. 깨어난 아침 전날의 구질구질한 자신을 하나하나 기억해내며 창피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인물.

 

흔히들 망가진다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배역에 대한 몰입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망가질수록 아름답다는 얘기는 몰입할수록 더 배우로서 빛이 난다는 얘기다. 전지현이 천송이에 이토록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천송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일깨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전지현이 연기하는 건 다름 아닌 천송이라는 연기자다. 연기자를 연기한다는 점은 기묘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전지현이 연기하는 천송이는 드라마나 영화 속의 모습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나온 일상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 리얼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막연히 여배우라면 술 마시고 주정을 하거나, 싼 티 나게 춤을 추고, 채인 남자에게 스토커처럼 저주의 메시지를 날리는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천송이는 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짜 여배우의 일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캐릭터다. 한때 최고로 잘 나가던 여배우가 마시는 술이 와인이나 위스키가 아니고 소주이며, 마트에 장보러 나와서도 원 플러스 원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그 보통의 서민과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서 이 캐릭터의 친근함과 리얼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즉 역할이 여배우지만 우리가 알던 여배우의 모습이 아닌 실제 일상을 끄집어내는 천송이라는 캐릭터는 그것을 연기하는 전지현 그 자신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한참을 보다보면 그것이 천송이인지 아니면 전지현인지 아리송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결국 몰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연기자와 배역이 하나로 어우러져 어떤 게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태에 이르는 것.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은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연기를 보여준다. 마치 천송이라는 배역을 통해 지금껏 갖가지 CF가 자신에게 덧씌운 이미지들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는 듯 하나하나 깨부수는 듯한.

 

이 드라마에서 전지현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은 그래서 중의적으로도 읽힌다. 그것은 물론 외계인 도민준을 지칭하는 제목이 분명하지만, 늘 별처럼 저 멀리서 신비한 이미지로만 존재하다가(그래서 그것이 배우로서의 변신을 저해하기도 했던) 이제는 그런 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직업적인 땅으로 내려앉은 전지현을 떠올리게도 만든다는 것. <별에서 온 그대>가 깨운 전지현의 배우 근성은 그래서 앞으로 그녀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감격시대>, 때 되면 돌아오는 낭만주먹에 대한 향수

 

다시 낭만 주먹이다. 정치주먹 유지광과 이정재를 다뤘던 <무풍지대(1989)>, 거지 왕 김춘삼을 다뤘던 <왕초(1999)>, 김두한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먹들을 다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야인시대(2002)>에 이어 이번에는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감격시대>.

 

'감격시대(사진출처:KBS)'

정치주먹이 등장하는 <무풍지대>는 시대적으로 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만, <왕초><야인시대>는 그래서 <감격시대>와 함께 같은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겹칠 수밖에 없다. 이들 작품에는 서 모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등장하며 그 외에도 이미 한 몫씩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반가운 주먹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왕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주인공인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은 물론이고 최고의 캐릭터라 찬사를 받은 맨발 윤태영, 섬뜩한 악역을 선보인 발가락 허준호가 주목을 받았다. 거지왕 김춘삼을 주인공을 삼았기 때문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주변인물로 처리되었다. 김두한 역할은 이훈이 연기했고 시라소니는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 시라소니는 그다지 주목되는 역할이 아니었다.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조상구가 연기했다.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들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마치 대결을 벌일 듯한 장면에서 시청률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야인시대>에서 두 사람은 대결하지 않는데 이것은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김두한이 화통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양자가 모두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직을 갖고 있는 김두한이 늘 혼자 다니는 시라소니와 대결해서 얻을 게 없었다는 판단이다. 무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자와 홀로 다니는 호랑이로 비교되던 이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후에도 두고두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라소니는 물론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지만 김두한에 비해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던 소재였다. 물론 1985년 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 원작의 동명의 만화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방학기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방학기는 최영의를 소재로 다룬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격투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대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이번 <감격시대>에서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신정태(김현중)가 도비패에 들어가 하는 첫 번째 미션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방학기 원작의 만화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 거의 바닥에 몸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젖히고 발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차츰 몸이 세워지면 달리는 동작은 물론 만화적인 각색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시라소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단박에 만들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이런 세세한 연출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1930년대 이북 지역을 평정하고 상하이까지 이름을 날렸다는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연의 역할이었지 이번처럼 주연인 경우는 <감격시대>가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된 데는 낭만 주먹에서부터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김두한의 이야기에 비해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다소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니는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김두한처럼 무수한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없기 마련이다.

 

<감격시대>가 시라소니를 다루면서도 신정태라는 새로운 인물을 재창조한 데는 이런 한계점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낭만 주먹을 다루는 것이니 주먹들의 일 대 일 대결은 가장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남성 드라마를 주창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여성 시청자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격시대>가 주먹 이야기 이외에도 멜로를 동시에 집어넣고, 액션에도 잘 어울리지만 멜로 또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중을 세운 데는 그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김두한의 이야기가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시라소니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두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다뤄졌다. <감격시대><야인시대>의 리메이크 정도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김두한만큼 주목을 끄는 인물인 시라소니를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인물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을 게다.

 

여담이지만 김두한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김두한은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분뇨 투척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일을 촉발시킨 사카린 밀수사건에는 당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들어 있었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김두한은 국회에 분뇨를 뿌리며 신랄하게 재벌과 정권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거 <야인시대>에서도 다뤄졌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요즘처럼 남성들이 위축되는 시기에 낭만 주먹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거의가 여성 시청자들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 받거나 아니면 예능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체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주도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여성들의 판타지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감격시대>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드라마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여성 시청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판타지가 더 클 수밖에 없겠지만.

'로필3', 김소연의 로맨스에 빠져드는 까닭

 

왜 이 드라마는 대놓고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외쳤을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 현대 여성들의 욕망으로서의 로맨스를 드라마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 로맨스는 아마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테니 말이다.

 

'로맨스가 필요해3(사진출처:tvN)'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외쳤다는 것은 어딘지 로맨스 부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부대끼면서 워킹우먼들이나 워킹맘들에게 로맨스란 사치처럼 여겨지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주인공 주연(김소연)은 약육강식의 직장생활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생겨난 마음의 굳은살로 진실된 마음이나 감정에서는 점점 멀어져가는 인물이다.

 

남자와 헤어지는 일에 울고불고 하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그녀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인물이 바로 앨런(성준)이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주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주연의 집에서 자라며 그녀에게 배운 감성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인물. 따라서 그에게 주연은 여전히 감성의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싱싱으로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앨런이 주완이라는 걸 모르는 주연에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주완은 어린 시절의 잔상으로 남은 못생긴 고구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앨런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사실은 설레게 하는) 그런 남자다. 어떻게 동일인물에 대해 이토록 다른 감정을 갖는 게 가능해질까.

 

이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로맨스의 정체다. 로맨스란 특정한 대상이 갑자기 나타나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똑같은 대상이라도 어떻게 다가가거나 느끼게 되느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로맨스가 필요한 인물은 주연이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것 역시 주연 자신이다. 물론 앨런이 그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폭제일 뿐, 실제 로맨스를 만드는 건 주연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은 현실에 마모되어버린 주연이라는 인물에게 앨런이라는 로맨스를 자극하는 인물을 엮어 나타나는 그 화학반응이다. 그래서 주연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싱싱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가 <로맨스가 필요해3>. 어찌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한 번쯤 꿈꿀만한 판타지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주연에 빙의되어 그녀의 변화를 똑같이 느끼고 겪게 된다면 어쩌면 자신 속에 잊혀졌던 저마다의 싱싱을 찾게 될 지도.

 

바로 이 지점이 김소연의 로맨스에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 이제는 약육강식의 사회생활에 적응되어 살아가는 워킹우먼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혹은 마음 한 구석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것. 그것을 김소연은 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싱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끄집어내려 한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감성을 지워버리고 데드마스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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