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라디오스타'를 살리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사실 말이 쉬워 '빵빵 터진다'고 표현하지 실제로 빵빵 터지는 토크쇼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달라진 '라디오스타'는 '빵빵 터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5초에 한 번씩 웃음 폭탄을 날리는 토크쇼. 무엇이 '라디오스타'의 이런 속도감 넘치는 웃음(?)을 가능하게 한 걸까.

'황금어장'에서 '라디오스타'는 늘 자투리 방송이었다. '무릎팍도사'에 의해 분량이 좌지우지되는. 그래서 이 토크쇼는 길어봐야 20분을 넘긴 적이 없고, 심지어 단 몇 분이 방영됐던 적도 있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아쉬워했지만, 바로 이 '짧다'는 것은 '라디오스타'만의 확실한 토크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 핵심은 속도다.

'라디오스타'는 말 그대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토크의 롤러코스터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네 명의 MC를 앉혀두었다는 것은 그 방송분량을 위한 각축전(?)이 얼마나 치열했을까를 짐작케 한다.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무릎팍도사'가 혼자 MC를 하며 북치고 장구치던 모습을 보다가 '라디오스타'를 접하면 그 속도감이 배가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노출이 필요하기 때문에 MC들은 장황한 이야기보다는 툭툭 치는 짧은 토크를 활용한다. 권투로 치면 끊임없이 잽을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잽이 한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네 사람이 서로 다투듯이 던지기 때문에 토크는 더 빠를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방송분량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끼어들기 때문에 촌철살인의 토크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몇 년 간을 이 환경 속에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그 속도감 있는 토크 전개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라디오스타'가 '황금어장'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자 갑자기 늘어난 방송시간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곧바로 '라디오스타'는 초심을 다잡았다.

김구라는 이 '라디오스타'만의 토크 스타일을 1시간이 넘는 방송분량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아예 게스트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어떨 때는 등을 보인 채) 툭툭 던지는 그의 직설어법은 게스트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오랜 만에 나온 혜은이의 지나치게 편안한 복장에 "너무 편안하게 나오셨다"고 직언을 하고, 여전히 혼자 지내는 송은이에게는 "기구하구만"하고 이야기를 던짐으로써 그녀의 '남자 없는 삶'을 유머로 풀어놓게 한다. 김영호와는 적당한 긴장감을 만들어 스스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도 연출하고, 김혜선에게도 연하남과의 러브신 얘기를 하며 "얼굴들이 아주 좋으십니다"하는 말로 은근한 웃음을 만들었다.

김구라가 전방에서 치고 나가고 윤종신이 떨어진 토크(?)를 다시 곱씹으며, 김국진과 규현이 의외의 토크를 툭툭 던지면서 '라디오스타'는 예전 20분 시절의 속도감을 그대로 찾아왔고, 여기에 전 후반을 나눠 '고품격 노래방' 코너를 연결하자 음악 토크라는 감성적인 부분까지 덧붙이게 되었다.

'라디오스타'가 이제는 '무릎팍도사' 없이 온전히 1시간을 과거의 속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랜 시간 그 짧은 시간의 토크쇼를 통해 단련된 MC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구라는 단연 빛난다. 그의 때론 물고 때론 스스로 무너지고 때론 엉뚱하면서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토크는 '라디오스타'의 동력이 되고 있다.


'나가수', 노래자랑이 아닌 쇼인 이유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에서 막춤을 추면 1등이다? 그 첫 번째 물꼬를 연 가수는 김범수였다. '얼굴 없는 가수'였던 그는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면서 박명수와 함께 춤을 추었다. 어딘지 막춤에 가까운 듯, 한편으로는 코믹하게 보이는 김범수의 춤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청중평가단은 그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바비킴은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다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부르면서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바비킴 역시 춤을 췄다. 그 후로 바비킴의 어딘지 술 한 잔 걸치고 덩실덩실 추는 듯한 그 막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춤의 바톤은 김경호가 물려받았다. 김경호는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부르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추는 예상치 못한 춤으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고, 어딘지 수줍은 듯한 몸 동작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반전을 이루면서 그를 단박에 '국민언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윤민수다. 조금은 과도한 감정이입의 창법으로 일관해오던 그는 ADD 4의 '빗속의 여인'을 부르며 마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춤을 꺼내들었다. 그의 개다리춤은 청중들을 열광케 만들었고 그는 꿈에도 그리던 1위를 처음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있다기보다는 웃음을 주는 이들의 막춤에 도대체 어떤 힘이 숨겨져 있어 추기만 하면 1등을 거머쥐게 만드는 걸까. 이것은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이제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익숙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처음 이소라가 무대에 올라 '바람이 분다'를 조용히 불렀을 때,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관객들은 진심이 담긴 노래가 가진 힘을 '나는 가수다'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나는 가수다' 무대에 이제 청중들은 적응이 된 상태다. 그들은 노래를 잘한다. 그 사실은 처음엔 놀라웠지만 지금은 당연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노래만 잘 하는 줄 알았던 가수가 춤을 추면 어떨까. 물론 '얼굴 없는 가수'라고까지 불리던 그들이 추는 춤이니 거기서 프로페셔널한 멋진 춤을 기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춤을 통해 뭔가 다른 걸 보여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청중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민수가 '빗속의 여인'의 첫 소절을 막 끝냈을 때 인순이가 한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드디어 쇼를 점점 알아가기 시작하는군요."

'나는 가수다'는 때론 성대대결이라고 부를 정도로 질러대는 고음과 소름끼치는 가창력의 대결 양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순이가 말하는 것처럼 '쇼'를 보여주려는 가수들이 있었다. '가창력 자랑(?)'에 지친 청중들에게 쇼는 흥겹고 즐거우면서도 그 자체가 가수들의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들에 대한 헌사라는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막춤과 순위가 어떤 하나의 법칙처럼 상관관계를 갖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무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온전히 그 무대가 청중들을 위한 것이라는 '쇼'가 가진 인상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지칭하듯, 가수의 또 다른 정체성은 못하거나 어울리지 않아도 청중을 위해 기꺼이 쇼를 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정글',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 악어섬이 보여준 건 '생존'이었다. 그 극한의 낯선 상황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김병만과 리키 김이다.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면서 정글에서의 생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반면 그 생존 앞에 힘겨운 얼굴을 보인 두 사람이 류담과 광희다. 하지만 악어섬을 탈출(?)해 힘바족 마을로 온 그들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낯선 힘바족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류담과 광희의 새로운 가치가 드러났다. 바로 '공존'의 가치다.

낯가림이 심한 김병만보다 류담이 돋보인 건 열린 마음이다. 아무에게나 다가가 말을 걸고(물론 힘바족 말도 잘 모르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웃어주고, 때론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주자, 힘바족들도 조금씩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힘바족 여인들에게 김병만은 그저 '키 작은 친구'였지만, 류담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사위삼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유는 하나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가 드러난다. 제 아무리 살아남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결국은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담과 광희가 열어놓은 공존의 물꼬에 김병만도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고, 마을 한 가운데 그늘집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냇물가에 작은 간이 목욕탕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어가게 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병만에게도 공존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왜 이런 조그만 목욕탕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사과를 나눠주고 함께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류담과 광희는 마치 힘바족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들과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차츰 적응을 하게된 김병만 역시 나무를 타고 오르는 힘바족 청년들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한층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무지 못 오를 것이라 생각한 그 나무 타기를 선보인 김병만에게 힘바족 청년은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공존을 위한 여러 가지 법칙들이 선보여졌다는 것이다. 힘바족이 쓰는 언어를 하나하나 적어서 간단한 것이나마 말을 건네는 행위, 함께 먹을 것을 건네고 먹는 행위, 마을 사람들에게 선의를 보여줘 마음을 얻으려는 행위, 또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행위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건 류담의 반전이 보여준 '웃음'의 힘이었다. 한번 웃겨주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사실 이것은 '웃음의 기원'을 추론할 때도 등장하는 얘기다. 뭔가 낯선 존재에 대한 극한 두려움이 '사실은 난 너의 적이 아니야'라는 긴장의 이완을 보여주면서 생겨난 게 치아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즉 웃음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웃음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공존'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어쩌면 생존보다 더 강한 욕구가 공존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을 넘어선 후의 극도로 외로운 삶을 떠올려보거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윌슨씨(사실은 배구공인)를 보며 오열하던 톰 행크스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글의 법칙'이 전편에서 생존을 보여주고, 이어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병만보다 더 빛난 류담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존'의 가치를.


투박한 진심의 드라마, '영광의 재인'

'영광의 재인'(사진출처:KBS)

강은경 작가의 작품은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드라마다. 그래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 편의 동화나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와 '영광의 재인'은 이란성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주인공은 한 절대악에 의해 운명의 머나먼 여정으로 내쳐지고, 그 주인공은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는 일련의 미션이 놓여져 있다. 선과 악은 미션을 두고 대결을 벌이고, 먼 여정을 끝낸 주인공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정의는 결국 승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정형화되어있고 전통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 구조는 눈에 보인다. 하지만 왜일까.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이 꿈틀대고, 측은지심이 생겨나고 주인공을 결국은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래도 그 과장된 설정이 우리의 마음을 쿵쾅대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제빵왕 김탁구'가 시대를 과거로 돌려 빵이라는 온기를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대결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영광의 재인'은 현재 당면한 청춘들의 현실 문제를 끌어들인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모든 스펙이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막혀버린 세상에 던져진 청춘들이 어떻게 세상과 맞서느냐는 문제다. 김영광(천정명) 선수의 아버지가 운전기사였다는 사실과, 어릴 적 버려진 윤재인(박민영)이 간호조무사로 등장한다는 점은 이들의 낮은 태생(?)을 에둘러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이 드라마의 절대악으로 등장하는 서재명(손창민)으로부터 "겨우 운전기사 아들 주제에"라는 말이나, "간호조무사 주제에'라는 막말을 듣는 존재들이 된다.

바로 이 현실을 자극하는 설정이 먼저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는다. 하지만 판타지는 바로 그 현실 위에 세워진다. 지극히 가난하고 평범한 이 두 사람은 성실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선한 마음이라는 덕목으로 차츰 이 고된 사다리를 척척 올라간다. 거대그룹에 들어가기 위한 입사시험은 문제를 풀어야 고개 하나를 넘을 수 있는 사실상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어쩌면 이미 결정된 게임이지만(이 드라마는 사필귀정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저 서재명 같은 절대악이 김영광 선수를 무시하고 권력으로 밟아대면 댈수록 그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라마의 극적 장치들이 온통 동원된다. 사실은 아니지만 남매라고 알고 있어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을 아파하고 있는 두 사람, 남편의 숨겨둔 딸로 오인해 한없이 미워했지만 알고 보니 그 남편이 버렸다는 걸 알게 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내, 한없이 까칠하게 굴지만 사실은 깊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아들, 그리고 그를 유일하게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을 갖고 병원에서 수십 년만에 깨어난 여자 등등. 이런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평이한 장면 속에도 그 내면에 흐르는 감정의 기류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영광의 재인'의 이러한 수많은 극적 장치들은 자칫 인위적이고 식상한 드라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재인'에 눈을 빼앗기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그 선의 때문이다. 가진 것 없고, 심지어 가족도 없이 방황하다 김영광의 집에 들어와 유사가족의 기쁨을 만끽하는 재인의 행복을 우리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뭐 하나 없어도 정정당당함과 패기만으로 당당히 성공하는 김영광의 고군분투를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작금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자그마한 위안이 느껴진다. 세상의 수많은 김영광 선수들에게 보내는 진심. 힘내요. 김영광 선수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