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는 파스타라는 요리를 그대로 닮은 드라마다. 때론 톡 쏘고 때론 부드럽게 넘어가며, 때론 팽팽한 면발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파스타'. 그 독특한 맛은 어떤 레시피로 이루어져 있을까.

1. 강한 마늘향 같은 마초 요리사의 톡 쏘는 맛 : 드라마 ‘파스타’의 기본 향은 강한 마늘향 같은 마초 요리사 최현욱(이선균)의 톡 쏘는 맛.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강한 인상을 갖고 있지만, 알다시피 이 마늘은 올리브 오일에 볶아지면 맛도 부드러워지고 향도 은은해진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마치 마늘처럼 강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오가면서 극에 긴장과 이완을 주는 인물이다.

2. 부드러운 올리브 오일 같은 여주인공 : 바로 그 마늘 같은 최현욱을 부드럽게 바꿔주는 부드러운 올리브 오일 같은 여자, 바로 서유경(공효진)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뭐든 그 속에서 요리해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내면을 가진 여성으로, 요리하면 할수록 맛있어지는 파스타처럼 이 드라마의 과정을 성장스토리를 이어가며 재미있게 만드는 인물이다. 강하기만 할 것 같은 최현욱을 말랑말랑한 멜로의 감정에 빠뜨리면서 바꿔나가고, 나아가 주방의 강압적인 분위기도 부드럽게 바꿔주는 마치 파스타를 부드럽게 해주는 올리브 오일 같은 여자.

3. 파스타 면발 같은 팽팽한 긴장감 : ‘파스타’라는 드라마의 팽팽함은 두 가지 대결구도에서 나온다. 그 하나는 요리사들 간의 위계질서 속에서 생겨나는 긴장감. 그리고 또 하나는 남자 요리사와 여자 요리사 사이에 생겨나는 긴장감. 새로운 셰프로 들어온 전형적인 마초 요리사 최현욱(이선균)은 이 팽팽한 맛을 만들어내는 인물. 그로 인해 새로 투입된 요리사들은 기존 요리사들과 부딪치게 되고,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로 인해 여자 요리사들은 모두 쫓겨나고 겨우 서유경(공효진)만 살아남는다. 한편 새로 라스페라의 셰프로 들어온 오세영(이하니)은 서유경을 사이에 두고 최현욱과 대결한다.

4. 바질이나 치즈 같은 풍미를 내는 조연들 : 기본적인 파스타 본연의 맛에 풍미를 가미하는 바질이나 치즈처럼 이 드라마에는 김산(알렉스)이나 오세영(이하늬) 같은 주연을 받쳐주는 인물들이 있다. 김산은 부드러운 치즈맛처럼 여주인공 서유경의 힘겨움을 감싸 안는 인물. 가시 위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선인장 같은 서유경을 마음에 품는다. 오세영은 톡 쏘면서도 부드러운 바질 같은 향미를 가진 인물로, 최현욱의 호적수처럼 서면서도 사실은 그를 지지한다.

5. 그 밖의 맛을 가미하는 명품조연들 : 파스타에 따라 붙는 피클처럼 이 드라마에는 맛을 가미하는 다채로운 명품 조연들이 있다. 늘 쉐프 최현욱과 갈등구도를 세우는 부주방장 금석호(이형철)와 그 밑의 요리사들, 정호남(조상기), 민승재(백봉기), 한상식(허태희)이 그렇고, 최현욱이 데리고 온 이태리 유학파 요리사들, 선우덕(김태호), 필립(노민우), 이지훈(현우)이 그들이다. 이 둘로 나누어진 파트들은 드라마에 묘한 대비효과를 준다. 유학파가 비주얼과 스타일에서 서구적인 맛을 낸다면, 국내파는 친근한 토종 국산의 맛을 낸다. 이밖에도 퇴출된 여성 요리사들 이희주(하재숙), 박미희(정다혜), 박찬희(손성윤)나 사장이었다가 막내로 복귀한 설준석(이성민)은 모두 만화적으로 처리되어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드라마 '파스타'의 맛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6. 전체의 맛을 묶어주는 미드 같은 스타일 : 파스타의 맛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그것을 먹는 레스토랑의 분위기인 것처럼, 드라마 '파스타'가 그려내는 스타일은 미드식이다. 남녀 간의 멜로는 쿨하고, 라스페라라는 직장에서의 일은 살벌할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이 둘이 서로 엮어지면서 때론 긴장을 주고 때론 이완을 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다. 어찌 보면 '파스타'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요리사 판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드라마의 매 편마다 어떤 일정한 에피소드를 제시하고, 그 끝맺는 장면에서 음악과 함께 세련되게 연출되는 스타일은 미드의 그것을 그대로 빼닮았다.

'스타킹',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쇼의 진화

1979년 MBC 인기 오락프로그램이었던 '묘기 대행진'. 인상 좋은 아저씨가 모자에서 연실 비둘기를 꺼냈다. 그 때마다 브라운관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바로 1세대 마술사인 알렉산더 리, 이흥선 마술사다. 이 프로그램에는 송재철 관장이라는 초인간(?) 스타도 있었다. 그는 이륙하는 헬기를 80여 분 동안이나 멈추게 하고, 160톤짜리 보잉737기를 무려 38미터나 끌었다. 자기 배 위로 자동차를 지나가게 한다거나 입으로 자동차 끌기, 쌀 한 가마니 메고 달걀 위 달리기는 오히려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 스타의 매력은 가끔 격파를 실패하기도 하는 그 인간적인 데 있었다.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이주일이 무대 위에만 오르면 강박처럼 "뭔가 보여주겠습니다"하고 말하던 시절, 이른바 쇼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흥선 마술사와 송재철 관장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었다. '묘기대행진' 같은 프로그램들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실제 서커스단과 곡예단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었다. 동춘 서커스단이 해체 위기에까지 갔던 것은 TV라는 매체가 매일같이 쏟아내는 엄청난 볼거리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볼거리가 너무나 많아지면서 쇼의 시대도 저물었다. 차돌을 깨고, 입으로 차를 끄는 차력이나,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는 마술은 더 이상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마당에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라는 형식은 힘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보여주기 보다는 대화의 장으로서의 토크쇼와, 무대 밖으로 나가 현장의 리얼함을 스토리 형식으로 담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전부다. 이런 시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쇼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스타킹'이다. 물론 '스타킹'의 시작은 'UCC의 프로그램화'에서 비롯됐다. 특별한 UCC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초대되어 자신들만의 장기를 보여주고, 출연진으로 앉아있는 스타들이 이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는 아이디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 "이젠 나도 스타"를 외치게 된 달라진 세태를 제대로 포착해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의식에 의한 무리한 볼거리에 대한 집착은 이 프로그램의 훌륭한 초심을 흐려놓았다. 몇몇 아이템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은 과도한 의욕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논란의 논란을 거쳐 '스타킹'은 제작진까지 교체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난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스타킹'의 달라진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한 때 우리 눈을 매료시켰지만 늘 반복적인 아이템과 비슷한 연출로 인해 사라져갔던, '무언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의 현재적인 실험이다.

달라진 '스타킹'에는 과거 이흥선 마술사가 대중들의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했던 것처럼,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가 출연해 출연진들이 가까이서 보는 와중에 동전을 둘로도 만들고 사라지게도 하는 마술을 선보인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최현우 마술사 스스로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마술에도 어떤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마술이라도 묵묵히 보여주기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 이 신세대 마술사는 출연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술을 선보인다. 때론 애프터 스쿨의 가희나 티아라의 효민이 마술을 보조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그녀들의 섹시한 이미지는 마술의 매력을 부가시킨다.

'특별한 볼거리'에 대한 범주의 확장 또한 특기할만한 점이다. 초창기 '스타킹'은 춤이라던가 노래, 웃음, 외모처럼 흔히 '무대 위에서의 특별함'을 소재로 한정지은 점이 있다. 이러한 외관에 집중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스타킹'이 비판의 불씨를 가지게 되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타킹'은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으로 그 소재를 넓혔다. 약수터에서 돌을 손바닥으로 쳐 건강을 유지한다는 약수터 건강킹 봉화산 때려맨이나, 불편한 몸으로 그저 아들을 위해 엄마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연했다는 '앉은 꽃 예숙씨', 그리고 일을 하다가 스티로폼 쌓기의 달인이 된, '평택 이반장' 같은 인물들은 바로 그 일상 속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갖고 '스타킹'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상 속의 특별함'이 쇼로서 가능한 것은 그것이 갖는 독특한 이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생활의 달인'이 다큐의 형식으로 그 독특한 이야기성을 통해 프로그램화되는 것처럼, '스타킹'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쇼의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획 아이템으로 '스타킹'이 신년과 함께 내놓은 '숀 리의 다이어트 킹' 같은 코너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갖게 된 '스타킹'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이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아이템은 작금의 쇼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소할 수 있는 일상이 이야기를 갖고 특별해질 수 있는 데는 '스타킹'만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평범할 수 있는 일반인이 올라올 때, 스타들이 기꺼이 그를 보조해주는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스타킹'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스타킹'은 그 영역 역시 넓혀가고 있다.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리틀 이용대 추찬'이 나오자 실제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가 출연하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이 출연했을 때 국립오페라단 소프라노인 이지은이 출연하는 식이다.

게다가 이를 담아내는 제작진들의 연출에 대한 노력이 이 볼거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통상적인 카메라가 스튜디오에서 고정된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스타킹'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스튜디오에서 ENG카메라가 유독 많이 활용되는 것은 그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잡아내려는 제작진의 의도다. 심지어 스튜디오의 공간적 한계도 어떤 순간에는 무너져버린다. 스튜디오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스튜디오 천장에 닿을 듯한 스티로폼 16개를 들고 방청객석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굳이 찍는 장면은 스튜디오가 갖는 닫힌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은 쇼의 진화, 혹은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다. 일반인과 스타 사이의 벽을 깨고,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벽을 깨며, 그저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끄집어내고,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들에게 남다른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타킹'은 이렇게 이 시대의 쇼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쇼는 늘 그래왔듯이 여전히 재미있다.

명품 남성 캐릭터 전시장, '추노'의 여성 캐릭터 문제점

'추노'의 이다해가 또 구설수에 올랐다. 과도한 화장, 노출신에 이어 이번에는 극중 송태하(오지호)와의 갑작스런 키스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항간에는 언년이 살생부, 혹은 '추노 데스노트'가 화제가 될 정도다. 언년이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다해 때문에 줄초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다해가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논란이 됐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이 방영될 때, 그녀는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도중에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유는? 캐릭터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민혜린이란 캐릭터는 극 초반에는 거대 언론사 사장인 아버지에 반항하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후에 가면 그 언론사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여성 캐릭터로서의 멜로에 있어서도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요령부득의 인물이었다. 그녀의 언니인 혜령의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면서, 그 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노동운동을 함께 하던 이동욱(연정훈)과 연인관계인 듯 보였는데, 나중에는 그 형인 이동철(송승헌)을 짝사랑한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민폐형 캐릭터에 상황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인물이니 이다해로서도 연기한다는 게 실로 어려웠을 터다.

그렇다면 '추노'의 언년이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추노'에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는 드라마판 '놈놈놈'을 연상시킬 정도로 멋지게 그려지고, 그들이 추적하는 송태하(오지호) 역시 슬픈 운명 속에 굴하지 않고 서 있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때론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업복이(공형진)는 물론이고 심지어 악역을 맡고 있는 황철웅(이종혁)이나 천지호(성동일)조차 멋있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렇지 못하다. 언년이는 날아오는 화살 앞에 그저 비명을 지를 뿐, 그 화살을 손목으로 받아내는 송태하 같은 능동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원손을 구하기 위해 달려야만 하는 송태하의 발목을 잡는(스스로도 극중에서 그런 대사를 한다) 그런 캐릭터다. 오히려 대길 패거리와 함께 다니는 설화(김하은)가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이 캐릭터 역시 민폐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기껏 노래를 불러주거나 말을 지키는 캐릭터다.

여각의 큰 주모(조미령), 작은 주모(윤주희) 역시 최장군만 바라보며 그를 연모하는 해바라기형 캐릭터들이다. 그들이 극에서 그 이외에 부여받은 역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업복이 옆에서 애틋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초복이(민지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명나라 자객인 윤지(윤지민)가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였으나, 송태하의 단칼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러니 '추노'라는 사극에는 남성 캐릭터들은 우글우글한 반면, 이렇다 할 여성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뇌성마비 연기를 하고 있는 이선영(하시은)이 호평 받는 것은 그녀가 이 남성들의 판이 되어버린 사극에서 그 설정 때문에 한 발짝 물러나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고 보면 이 모든 화살을 이다해가 맞는 이유도 명백히 보인다. 이다해가 연기자로서 어떤 주장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니라면, '추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언년이 논란은 모두 제작진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화장은 연출에 의해 의도된 것이고, 노출 역시 의도된 신들이며, 그것을 갖고 블러 처리를 하거나 뺀 것도 모두 연출에서 한 것이지 이다해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년이의 수동적이고 민폐적인 캐릭터는 작가가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만큼 섬세하게 고민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그러니 여주인공으로서 도드라진 이다해가 모든 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다해가 "여배우로서 사는 게 힘들다"고 토로한 것은 이로써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 캐릭터를 하나의 인형이나 남성들의 판타지, 혹은 꿰다 논 보릿자루처럼 그려놓는 한,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는 그 한계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선덕여왕'이 그린 여성 캐릭터와 '추노'가 그리고 있는 여성 캐릭터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듯이, 드라마를 보는 제작자의 여성에 대한 시선은 그 캐릭터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구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 않을까. '추노'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의 전시장이지만, 또한 여성 캐릭터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지금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네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족드라마는 우리 드라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 해온 드라마 장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본래 이 장르가 추구하는 가족애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와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파괴되어 가는 가족의 틀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 보여주면서 자극적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문영남 작가는 '수상한 삼형제'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지금 이 드라마는 35.4%(AGB닐슨 자료)의 시청률로 전체 주간시청률 1위에 올라있다.

한편 일일 가족드라마로 시청률 장기집권(?)을 해온 KBS 일일드라마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너는 내 운명'이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은데 이어, 종영한 '다함께 차차차' 역시 배배 꼬인 관계와 지나치게 질질 끄는 드라마 진행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열에 들어갔다.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에만 치중하는 경향 때문일까. 그럼에도 종영하는 시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33.5%로 전체 주간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라는 설정에, 자신이 준 자식이 배우자의 형의 자식이라는 거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적 상황을 통해 신파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드라마는 자식을 얻기 위해 첫째 며느리에게는 대리모를 강요하고, 둘째 며느리가 그 대리모를 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그녀를 내쫓는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며느리 수난사라는 설정은 작금에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로, 가족드라마의 퇴행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가족드라마의 시청률은 전체 4위인 25.9%에 올라 있다.

어째서 가족드라마들이 과거의 훈훈한 가족 이야기의 범주를 지키지 못하고 파국적인 이야기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시청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비교적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훈훈한 가족애를 다루면서도 시청률 최고를 차지하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층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류의 위상을 통해 미드와 일드 같은 선진적인 드라마와 접촉하면서, 우리 드라마들은 그간 실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진화의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유독 가족드라마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왜? 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족드라마가 변화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퇴행적인 양상을 예고하는 길이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확장의 길이 아닌 과거의 틀에 만족하던 가족드라마는 결국 가족애라는 끈끈한 힘을 자극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장의 탄생이다. 가족 복수극의 유행이다. 이처럼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가족드라마가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근간으로 하는데, 가족드라마의 갈등은 가족 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분명, 윤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싸우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막장드라마는 이 윤리의 선을 넘어섬으로서 자극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결국 이것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몇몇 드라마들이 가족드라마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작년에 등장해 호평은 물론 시청률까지 최고를 기록한 '찬란한 유산'이 대표적이다. 이 가족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의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족애를 넘어서는 인간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유산을 자식이 아닌 타인에게 준다는 설정은 혈연과 가족의 고리를 넘어선다. 이것은 최근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물론 멜로드라마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가족의 형태에 있어서)' 같은 작품으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인이지만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의 확장으로 보인다. 가족에서 유사가족으로의 확장.

가족드라마는 지금, 막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사가족이라는 인간애로 확장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지만, 그것이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진화를 꿈꾸지 않는 한,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상투적인 보수적 코드의 반복이거나, 파국적인 가족드라마의 윤리적 탈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으로의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 같은 드라마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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