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더 게스트’를 만든 빙의 연기자들, 윤종석, 전배수, 유승목...

한 마디로 올해 최고의 역대급 스릴러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형 엑소시즘’을 표방한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가 종영했다. ‘무서워 못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공포와 스릴러를 넘나들며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빙의라는 소재를 가져와 공포 스릴러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면서도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들까지 끄집어내려 했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수훈갑은 그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한 빙의 연기자들이었다. 

박일도라는 큰 귀신에 빙의된 인물들을 연기한 연기자들은 진짜 말 그대로의 ‘빙의된’ 연기를 보여줬다. 어린 화평의 삼촌 역할로 출연해 시작부터 확실한 몰입감을 만들어냈던 한규원, 최신부 역할로 소름 돋는 빙의자의 끔찍함을 보여준 윤종석이 이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면, “박일도-”하고 외치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배수는 이 배우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KBS <오늘의 탐정>에서도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준 전배수는 아마도 향후 주목받는 배우가 될 거라 여겨진다. 

폐차장 주인으로 등장해 동생이 빙의자인 줄 오인하게 만들고 결국 빙의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든 이중옥, 임산부 빙의자 역할을 놀랍게 해낸 김시은, 귀신을 보는 영매 역할을 연기한 명불허전 아역배우 허율, 윤화평의 아버지로 빙의된 부마자로서의 끔찍함과 부성애의 뭉클함을 동시에 선사한 명품 조연 유승목, 강길영(정은채)의 파트너로 따뜻한 형사지만 빙의되어 그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소름 돋게 만들었던 박호산 등등. <손 더 게스트>는 그 빙의 연기를 해낸 많은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가 빈틈없이 채워진 드라마였다. 

그 중에서도 뒤통수를 때리는 역대급 연기를 보여준 인물들은 빙의된 것도 아니지만 빙의자 그 이상의 사이코패스 연기를 보여준 박홍주 역할의 김혜은과, 처음부터 최윤의 옆에서 그를 지켜주는 줄 알았지만 악마가 들어온 모습으로 ‘어둠의 미사’를 주관하는 연기를 보여준 양신부 역할의 안내상, 결국 박일도였다는 것이 드러난 윤화평의 할아버지 역할의 전무송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박일도를 받아들여 봉인해버린 윤화평 역할의 김동욱이 그들이었다. 

이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박일도임을 드러내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소화해낸 전무송과, 그 귀신을 받아들여 봉인하려 하지만 오히려 박일도에게 지배당하기도 하는 모습을 오가는 연기를 해낸 김동욱은 역대급 엔딩을 가능하게 해준 장본인들이다. 끝내 최윤(김재욱)을 지켜내며 혼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과, 한쪽 눈을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재회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돌아보면 <손 더 게스트>는 좋은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기자들이 숨은 공헌을 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많은 빙의자들은 진짜 말 그대로의 ‘빙의 수준의’ 연기 몰입을 해냈다. 그리고 이것은 <손 더 게스트>는 해외의 그 어떤 엑소시즘 장르나 스릴러와도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그 어떤 물량 투입이 만들어내는 스릴러와는 확실히 다른 ‘역대급 인력 투입을 통한’ 스릴러의 완성. 어쩌면 여기에 우리네 스릴러의 강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사진:OCN)

‘손 더 게스트’가 그리는 분노가 지배한 사회의 혼돈

갈수록 충격적이다. 한 사람씩 빙의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다루던 OCN 수목드라마 <손 더 게스트>는 이제 한 마을을 뒤덮어버린 빙의자들이 마치 좀비 떼처럼 창궐하는 이야기로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박일도 큰 귀신이 처음 빙의자를 낳았던 바닷가 마을 계양진. 구마의식을 하며 점점 몸도 영혼도 어둠에 피폐되어가는 신부 최윤(김재욱)과 정직 징계를 받게 된 형사 강길영(정은채) 그리고 부상을 입은 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윤화평(김동욱)은 함께 그 계양진을 찾았지만 이미 마을을 뒤덮어버린 양신부(안내상)의 어둠이 사람들을 부마자로 만들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었다. 

슬쩍 최종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깔린 복선에는 최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구마의식을 하려할 거라는 것과, 그를 구하기 위해 영매인 윤화평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박일도를 봉인한 채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히 그를 제거하려 할 거라는 암시가 담겼다. 결국 좀비 떼처럼 변한 부마자들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신부를 해결하는 것만이 마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됐다는 것. 

거의 공포에 가까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시청자들 역시 계속 벌어지는 사건에 빙의된 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손 더 게스트>가 무얼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손 더 게스트>는 이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어떤 문제들을 건드린 걸까.

그 단서가 되는 건 여기 빙의된 자들이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돈” 얘기만 하는 아내와 딸들 앞에서 갑자기 변해 골프채를 들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나, 약자들을 지켜야할 경찰이 오히려 창문을 깨고 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 주유소에서 툭하면 구박하고 손찌검을 하는 사장을 죽인 아르바이트생이나, 고장 난 버스를 고치는데 짜증을 내며 비하하기까지 하는 손님들을 모조리 죽인 관광버스 운전기사 같은 이들을 촉발시킨 ‘어둠’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가 가끔씩 신문 사회면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질렀지”하고 다시 보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툭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 속에는 우리네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누적되며 쌓여온 ‘분노’의 감정들이 어느 비등점을 넘어 폭발하며 생겨난 일들이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라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 사건들을 <손 더 게스트>는 그래서 ‘빙의’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풀어내려 했던 것이다. 

최종회가 펼쳐질 계양진 마을의 좀비 떼처럼 들고 일어난 빙의된 부마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분노가 지배한 우리네 사회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혼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 회에 담겨지게 되겠지만 분노는 제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사랑이 전제된 숭고한 희생 같은 것들이 오히려 해결책이 된다. 분노와 악의 화신이 된 양신부를 막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던지려는 윤화평과 최윤 그리고 강길영의 희생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손 더 게스트>가 담은 메시지가 만만찮게 다가온다.(사진:OCN)

‘골목식당’을 통해 백종원이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처음 백종원이 성내동 만화거리의 식당들을 찾아갔을 때만 해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분식집은 가족들이 음식 맛있게 한다는 소리만 듣고 덜컥 음식점을 인수했다가 장사가 안돼 가게를 내놓은 상태였고, 피맥집은 장사의 개념 자체가 없어 피자집을 할 것인지 맥주집을 할 것인지조차 그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장사를 하고 있는 중식집은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세세한 부분들이 지켜지지 않아 특징적인 맛을 내지 못하고 있었고, 이 골목의 에이스로 보인 파스타집은 퓨전파스타 하나를 빼놓고는 특별한 맛이 없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너무 많은 문제들을 가게마다 갖고 있었지만 백종원은 각각의 가게에 맞는 솔루션을 갖고 조금씩 변화를 유도해갔다. 분식집은 아예 색다른 레시피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김밥을 마는 기술이 능숙한 걸 보고는 멸치 국물을 내고 그렇게 우려낸 멸치를 다시 김밥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멸치를 국물용으로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똥만 빼고 전부 끝까지 쓰는 방식이니 원가를 줄일 수 있었고 따라서 가격은 낮추면서 좋은 품질의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새로운 레시피를 전수받은 아주머니가 그 김밥에 어묵이나 맛살을 추가했던 걸 백종원이 빼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다 넣은 김밥이 더 낫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백종원은 당연히 다 넣는 걸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며, 하지만 실제 맛에 있어서는 더 넣는다고 더 좋아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결국 기본을 지키는 것이 맛을 내는 비법이라는 것. 그러고 보면 국수 맛을 냈던 것도 전통적인 방식인 멸치를 충분히 우려내 국물의 깊이를 만드는 그 기본에 있었다. 

파스타집은 이미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을 충분히 갖고 있는 가게인 만큼 백종원이 제시하는 솔루션도 달랐다. 그냥 파스타가 아니라 좀 더 특징적인 파스타, 즉 한국적인 맛이 들어간 퓨전파스타를 시도해 보라고 한 것. 하지만 일주일 간 미션을 받고 청년들이 준비한 파스타는 한 마디로 ‘과유불급’이었다. 시식단으로 초빙한 이태리인들은 이들이 내놓은 흑임자 파스타 같은 퓨전이 전혀 파스타로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며 한 번 맛을 보고는 입을 닦아버리곤 했다. 

백종원은 “파스타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데 그 편견을 깨보자”고 직접 나서 기본적인 알리오올리오에 열무와 고사리만을 각각 넣어 변주를 한 파스타를 내놓았다. 혹평을 하고 돌아서던 이태리인들은 이 맛을 보고는 금세 “개선됐다”며 놀라워했다. 결국 파스타집 청년들은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퓨전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알게 됐다. 

중식집은 이미 푸드코트에서 오래도록 요리를 해왔던 사장님이기 때문에 백종원은 그 잘못된 습관들을 고치는 쪽으로 솔루션을 잡았다. 그래서 짬뽕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국물을 보관하는 법이나 탕수육에 어떤 고기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또 좀 더 바삭하게 튀겨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같은 것들을 변화시킴으로서 전체적인 음식 맛을 끌어올렸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방식이 맛을 내지 못하는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된 사장님은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엄청난 맛의 차이를 낸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편 피맥집 사장은 피자집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자신만의 강점이 없다는 백종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다른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자 만드는 방법을 몸에 익혀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채 가게를 오픈한 그에게는 이 통과의례가 가장 절실한 과제였고, 백종원은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그 기본을 배울 수 있는 피자집을 연결해주었다. 

이번 성내동 편은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기본’과 ‘초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장사가 잘 안될수록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했던 습관을 반복하고 너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 백종원이 말한 것은 그럴 때일수록 기본과 초심에 충실한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쉽지 않은 현실 앞에 절망하고 있는 창업자들이라면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창궐', 시도는 참신하지만 남는 아쉬움들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내놓은 영화 <창궐>과 <부산행>은 닮은 점이 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한 좀비 장르라는 점이 그 첫 번째다. <부산행>은 좀비 장르의 마니아적인 특성을 훌쩍 뛰어넘어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비슷한 건 다소 폐쇄적인 특정 공간에 집중된 좀비 장르라는 점이다. <부산행>은 영화의 대부분이 부산까지 가는 KTX와 몇몇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창궐>은 제물포항과 궁이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흥미롭게 보이는 유사점은 서구의 좀비 장르와 사뭇 다른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좀비가 바로 민초라는 시선이다. <부산행>에서는 가족이 좀비로 변화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또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좀비들을 통해, 우리네 집단주의적인 문화와(나아가 군사문화가 더해진) 그로 인해 대립과 갈등이 가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우리네 상황을 에둘러 담아낸 바 있다. 

<창궐>은 좀비를 ‘들에 있다고 하는 귀신’을 뜻하는 야귀로 해석했다. 그런데 야귀떼들이 보이는 습성이 흥미롭다. 야귀떼들은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며 눈이 시뻘개지고 결국은 가족을 포함한 사람을 습격한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이 이 야귀라는 존재의 특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이들이 이렇게 된 건 영화가 처음부터 특별한 설명 없이 보여준 ‘헬조선’의 풍경들 때문이다. 왕 이조(김의성)는 힘이 없고 대신 권력을 농단하는 김자준(장동건)에 의해 휘둘린다. 그래서 그의 간계 속에서 심지어 자식마저도 역모로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왕이 관심을 갖는 건 자신의 왕좌뿐이다. 그래서 야귀떼가 창궐하고 있는 제물포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야귀가 궁으로 들어오고 왕의 측근으로 있던 조씨(서지혜)가 야귀로 변하게 되면서 궁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씨에게 물린 왕이 조금씩 야귀로 변해가고, 또 이런 상황들을 이용하는 김자준의 눈빛이 점점 벌겋게 물들어가면서 야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만들어진다. 굶주린 민초들의 생존본능으로서의 야귀가 조선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보였지만, 알고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왕좌의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진짜 야귀들’이 궁안에 있었다는 것. 

이렇게 권력욕이 탄생시킨 야귀와 그로인해 굶주린 민초들이 변한 야귀를 구분해서 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헬조선’과 ‘국정농단’ 같은 최근 몇 년 전 우리네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청에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이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민초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하고 묻는 대목은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욱 명쾌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좀비라는 상징의 우리 식 해석, 게다가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좀비 장르를 엮어 보여주는 액션이라는 기획 포인트들은 이 작품이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든 요인들이다. 하지만 기획과 상징적 메시지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주는 재미는 이러한 시대적 정서를 이야기와 액션 속에 응축했다 폭발시키는 그런 섬세한 장치들을 통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창궐>은 이런 영화적 재미를 장르적으로 구현해내는데 있어서 많은 허점들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는 민초들의 피폐해진 삶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좀비 장르의 특징들인 충격적인 장면들과 액션들이 채워진다. 주인공인 이청의 성장담은 이런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본래부터 엄청난 무공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밋밋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왕이 있어야 백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뒤집어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그 메시지는 결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아니지만, 이청이라는 인물이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17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그리고 현빈과 장동건 캐스팅이 화제를 모았고, 조금 색다른 좀비 영화를 보겠다는 그 호기심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입소문이 창궐할 지는 미지수다.(사진:영화'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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