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한중관계 냉랭해도 개인들은 훈훈하다는 건

이제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외국인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일을 하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고, 공부를 하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으며 그저 여행을 목적으로 오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어가고 있고 외국인들에 대한 문호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그러니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 같은 낯선 동네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한 끼 저녁식사를 청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흑석동에서 촬영된 <한끼줍쇼>에서 우연찮게 베트남에서 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를 만나고, 또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래서 이렇게 다원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특히 이경규와 김성주에게 문을 열어준 중국 유학생과의 한 끼 식사 풍경은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냉각기를 겪고 있는 와중이지만 그런 국가 간의 문제들과는 사뭇 다르게 개개인들은 훈훈한 풍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3년 째 거주 중이라는 하얼빈에서 온 중국 유학생은 기꺼이 이들을 초대해줬고, 자신이 평상시에 먹는 중국에서 가져온 사천식 라면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을 내놓았다. 부족한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마트에 간 김성주는 마침 대학시절 갔던 마트의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반가운 회포를 풀고는 간단한 재료들을 사와 반찬을 만들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진행하며 김풍에게 배웠다는 야매 레시피지만 먹음직한 계란말이를 놓자, 그 좁은 공간에서의 작은 식탁에 채워진 사천식 라면과 계란말이가 너무나 훈훈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마치 민간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교류를 상징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TV를 잘 보지 않아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을 잘은 모른다는 유학생에게서는 그래도 문을 열어준 그 선택이 마치 단단히 닫아버린 한중관계의 문에도 불구하고 그 밑으로는 열려 있는 교류들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학원에서 만나 친구로 지낸다는 같은 동네의 또 다른 유학생을 초대했고 그래서 네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그 모습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왜 중국인들이 한국에 이렇게 많아졌나를 묻는 이경규의 질문에 “인구가 많아서가 아닐까”라는 다소 쿨한 답변을 주면서도 <아빠 어디가>를 통해 김성주를 잘 알고 있다는 유학생에게서는 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유학생은 아예 한국 가수가 좋아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가 어찌됐든 그 관계가 호의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한류 콘텐츠가 미친 영향은 분명히 컸다는 걸 두 유학생은 보여줬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냉각됐던 한중관계는 양군 간 협의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일단 정상화 궤도에 올라섰다. 물론 그렇다고 실질적인 변화가 바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양국이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사실은 고무적이다. 모쪼록 한중관계가 이를 계기로 다시 본래의 호의적인 관계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그래서 콘텐츠 교류 역시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한끼줍쇼>가 보여준 중국인 유학생 두 명과 함께 한 식사는 그래서 이런 시의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묘한 울림을 줬다. 사실 국가 간에 벌어진 대결 양상이 치열했고, 그래서 피해와 손실도 적지 않았지만 그런 갈등과 상관없이 양국의 개개인들은 호의적이며 또한 교류에 대한 갈증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기꺼이 한 끼를 함께 하며 식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한중관계도 <한끼줍쇼>처럼 훈훈해지기를.

패턴의 늪에 빠진 ‘부암동 복수자들’, 초반 기세 어디 갔나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시작이 좋았다. 첫 회에 2.9%(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한데 이어 2회에는 4.6%로 반등한 건 이 드라마의 초반 기세가 만만찮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도 tvN이 주중드라마 9시 30분이라는 새로운 편성시간을 세우고 월화에 이어 수목에도 편성한 첫 타자가 거둔 승기라는 점에서 <부암동 복수자들>의 선전은 큰 의미가 있었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이렇게 된 건 이른바 ‘복자클럽’으로 모인 4인방의 면면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남편이 외도로 가진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아픔을 겪은 정혜(이요원), 교수의 아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맞는 여자 미숙(명세빈), 시장통에서 생선가게를 하며 살아가면서 가진 이들의 갑질을 버텨내는 도희(라미란) 그리고 정혜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게 자기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수겸(준). 불륜과 가정폭력, 갑질 그리고 잘못된 어른들이라는 현실의 문제들을 담은 4인방 캐릭터가 모여 연대하고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렇게 복자클럽 4인방이 뭉치게 된 이후부터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떤 패턴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그 패턴은 이렇다. 공분을 일으키는 인물들, 이를테면 교장 홍상만(김형일)이나 교육감 선거에 나선 백영표(정석용) 그리고 이들과 공조하는 이병수(최병모)가 어떤 일들을 도모하면 복자클럽이 그 일을 방해하거나 혹은 망치거나 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복수’를 한다. 그 과정에서 복자클럽의 정혜, 미숙, 도희는 남다른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 클럽의 존재가 누군가에 의해 미행당하고 남편들에게 밝혀질 위기에 놓인다. 물론 그런 위기로 끝난 상황 때문에 다음 회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별 문제없이 위기를 넘기지만.

이 패턴이 3회 가까이 반복되면서 초반 드라마가 주었던 큰 기대감은 한 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무언가 다채롭지 못하고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뱅뱅 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복자클럽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도 너무 지지부진하고, 사실상 그렇게 드러난다고 해도 이 클럽이 그간 해온 복수의 양태가 그리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위기감 역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된 건 복수의 대상들이 보여주는 공분의 행태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이를 응징하는 복자클럽의 복수방식이 너무 소극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중심을 치고 들어가지 못하고 대산 변죽만 울리는 것 같은 복수들의 연속. 즉 상대방의 행사를 방해하거나 혹은 굴욕을 주거나 하는 방식은 그들이 해온 공분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꺾는 복수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이 되어야 이야기 전개에 속도가 붙고 또 반전도 가능하지만 7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만 서성대고 있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12부작이다. 그러니 이미 중간 터닝 포인트를 지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시작에서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그나마 전개된 건 복자클럽이 생겼다는 정도. 정혜-도희-미숙의 연대와 그들과 자식관계로 얽힌 수겸-서연(김보라)-희수(최규진) 그리고 이들과 대결구도를 갖는 홍상만-이병수-백영표 같은 흥미로운 인물관계 역시 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전개로까지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수목에 드라마 라인업을 가지려는 tvN의 전략적 편성이 효과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현실 담은 코믹 캐릭터 열전

좋은 작품과 ‘좋은 캐릭터’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던가. 좋은 작품에는 눈에 띠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고, 좋은 캐릭터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뜻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저마다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주인공인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는 물론이고 주변인물들인 우수지(이솜), 마상구(박병은), 양호랑(김가은), 심원석(김민석) 하다못해 분량이 많지 않은 윤보미(윤보미) 같은 캐릭터까지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들 캐릭터들이 이렇게 돋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사진출처:tvN)'

남세희는 마치 ‘시리야-“하고 부르면 나올 법한 고저강약 없는 목소리로 무표정을 일관하는 캐릭터다. IT업계에서 잘 나가는 브레인인 그는 모든 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결정하고 선택하려 한다. 심지어 결혼을 ‘선택’하는 일도 사랑 같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살만큼 생활습관이 맞는 대상이고 또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 평생을 갚아나가야 하는 집 대출금을 내는데 도움이 되는 대상이라는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데 이 무표정하고 무감정해 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순간 전해지는 매력은 더 커진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한 부부라 부르지만, 당사자들은 집주인과 세입자인 관계로 그는 윤지호가 자신의 사적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걸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윤지호가 스토커로 추정되는 남자와 다니는 게 영 눈에 밟힌다. 

백미러 하나 수리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오토바이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초절정의 순발력을 발휘하며 몸을 날리는 짠돌이지만, 윤지호를 궁지로 몰아가는 그 스토커의 오토바이를 발로 밀어버리는 장면은 그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낸다. 그가 윤지호에게 말하는 “우리집으로 가자”는 말 한 마디가 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평소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남세희의 친구이자 그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인 마상구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의 제목을 빗대 표현하자면, “이런 사장은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 CEO로서 어떤 권위는 분명히 있지만 권위주의라는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리더십을 보이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철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이 자신이 좋아하는 우수지가 술자리에서 성희롱에 성추행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상대남자를 들이받는 장면은 이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낸다. 투자 건이 무산되는 것을 감당하면서까지 우수지를 지켜내려 하는 모습에서 그가 철없는 인물이 아니라 순수한 인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세희나 마상구가 겉보기와 다른 반전 매력을 통해 그 캐릭터가 돋보이는 것처럼, 우수지라는 캐릭터도 그 반전 모습을 통해 어떤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남세희와 마상구는 그 현실과 부딪치며 어떤 판타지를 주는 인물인 반면, 거꾸로 우수지는 평소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달리 회사생활에서는 지극히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버텨내려는 모습으로 현실의 무거움을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인물이 회사 생활에서 일상으로 겪는 성추행이나 성희롱과 맞서지 않는다는 그 설정은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여성 직장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가를 드러내준다. 맞서는 순간 결국 여성인 자신만 다칠 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맞서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남세희와 윤지호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만큼, 우수지와 그를 좋아하는 마상구가 이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보다 보면 ‘이런 캐릭터들은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건 저마다 코믹하고 반전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그 밑바탕에 드리워져 있는 현실이 이들 캐릭터에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그래서 이런 좋은 캐릭터들을 연기한 좋은 배우들을 발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故 김주혁 비보에 손석희가 전한 그의 따뜻했던 가슴

10월 30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가 전하는 ‘앵커브리핑’은 30년쯤 전 야근 중이다 교통사고 제보를 듣고 현장에 나갔다 겪은 일로 이야기를 열었다. 사고 현장에 급히 나가보니 이미 운전자는 사망한 뒤였고,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면허증을 찾는데, 여전히 그의 가슴이 따뜻하다는 데 놀랐다는 것. 

'뉴스룸(사진출처:JTBC)'

손석희가 ‘앵커브리핑’에서 30년도 더 된 시절에 겪은 이 일을 먼저 꺼내놓은 까닭은 그 날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친숙한 ‘구탱이형’이자 또 한 편으로는 드라마 <아르곤>의 김백진 앵커였던 김주혁이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예능에서는 그토록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동시에 연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철저했던 배우. 김주혁이 우리를 떠났다. 

너무 갑작스런 비보인지라 김주혁의 사망소식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KBS 예능 <1박2일>을 통해 한껏 대중들과 친숙했던 그 모습에서 최근에는 배우라는 본업으로 돌아가 확고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아르곤>을 통해 단단한 앵커의 역할을 200% 소화해내면서 역시 천생 배우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었던 그가 아니던가.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가늠해보면 김주혁은 최근 들어 드디어 연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돌아온 배우라는 직업이고 그래서 영화 <공조>와 <석조저택살인사건>에서의 악역 연기는 훨씬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면이 있었다. 또 아직 개봉하진 않았지만 <흥부> 같은 풍자사극으로 과거 <방자전>을 통해 보여줬던 그의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손석희가 ‘앵커브리핑’을 통해 김주혁의 비보를 애도하는 모습이 더 짠하게 다가왔던 건, 마침 그가 연기했던 <아르곤>에서의 앵커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손석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한 연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시대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드러내는 작품이었기에 그 역할은 아마도 자연스럽게 손석희라는 언론인의 면면을 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마침 얼마 전에는 저널리즘을 다룬 드라마에 출연해서 그 나름의 철학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어서 비록 그것이 드라마이고 또 연기였다고는 해도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연대감도 생겼던 터….” 많은 이들이 그 캐릭터가 손석희 앵커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지만, 손석희 앵커는 거꾸로 그의 연기에서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다고 했다. 손석희 앵커가 고인이 된 김주혁에게 보내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장 큰 애도와 찬사가 어우러진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안타깝게 생을 버렸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 항상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인물이었고 연기에 혼신을 불태웠던 천생 배우였던 그는 그렇게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손석희 앵커가 말하듯 우리는 알고 있다. “굳이 손을 넣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가슴이 따뜻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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