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이 촉발한 정치권 공방, 예나 지금이나...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치욕적인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 살아야 비로소 대의도 명분도 있다.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청의 대군에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당시 척화파였던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과 주화파였던 최명길(이병헌)이 치열하게 벌인 논쟁을 다뤘다.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청군이 오기도 전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판이었다. 청군들은 칸이 직접 오는 시기에 맞춰 남한산성을 총공격할 준비에 들어간다. 

사진출처 : 영화 <남한산성>

인조(박해일)는 김상헌의 주장도 최명길의 주장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쉽게 무릎을 꿇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죽어가는 백성들과 군사들을 대의명분을 따지며 버티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살 수 있는 ‘말의 길’을 항상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을 통해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김상헌을 통해 청과 맞서 일격을 가할 기회를 엿본다. 

공교롭게도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가져온 역사의 한 대목이 지금의 북핵 위기에 놓여진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현 정치권의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은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결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영화 <남한산성>을 빗대 벌인 공방은 당시나 지금이나 갈리진 여야의 대립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얼마든지 외교적 노력으로 사전에 전쟁을 예방하고 백성의 도탄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민족의 굴욕과 백성의 도륙을 초래한 자들은 역사 속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잘못된 현실 판단과 무대책의 명분에 사로잡혀 임진왜란에 이어 국가적 재난을 초래한 것”이라고 영화 관람 후기를 남겼다. 

홍준표 대표는 “나라의 힘이 약하고 군주가 무능하면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됐다”며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전란의 참화를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무능과 신하들의 명분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이 영화를 빗대 외교적 해법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반면, 홍준표 대표는 이 영화를 통해 ‘안보무능’ 프레임을 꺼내든 것. 

같은 영화, 나아가 같은 역사지만 그걸 보는 관점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너무나 다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서로 입장은 달라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우를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은 최명길이 얘기한대로 칸 앞에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인조에게 김상헌 같은 충신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자신은 영원히 역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입장이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화 한 편을 놓고도 정치 공방을 벌이는 여야는 과연 어떨까.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저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런 서로 다른 논평들을 내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정치적 대결을 위해 영화 한 편을 두고도 ‘아전인수’의 입장을 내놓는 것일까. 

영화 속에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역사에 남은 실존인물들만이 아닌 날쇠(고수)라는 민초가 등장한다. 남한산성 마을 안에 자리한 대장간의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날쇠는 이러한 외세의 침략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조정대신들의 날선 말의 대결들 속에서 결국 죽어가는 건 민초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다. 

농사를 짓기 위한 낫을 만들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낫을 무기로 들게 되지만 그의 말대로 민초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둬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으면 되는 평범한 삶일 뿐이다. 그 작은 민초들의 삶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저들의 치열한 논쟁들이 바로 이 날쇠라는 인물 앞에서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결국 전쟁 속에서도 또 치열한 정쟁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또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가장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민초들이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았고 그 누구도 대단한 삶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굶지 않고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을 원했을 뿐이다. <남한산성>은 그래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팽팽한 설전만큼 날쇠라는 인물의 한 마디가 더 큰 울림으로 남는 영화다. 전쟁이니 화친이니를 주장하기 전에 날쇠 같은 보통의 서민들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는지.

타인의 삶 체험 ‘내방안내서’, 관찰카메라의 새로운 변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은 “멈춰야 할 것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책 출간 이후 너무 많은 일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는 것. 혜민스님은 SBS 10부작 예능 프로그램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이하 내방안내서)>에 출연하게 된 이유로 바로 그 ‘멈춤’의 의미를 다시금 꺼내놓았다. 그러니 <내방안내서>는 그렇게 잠시 멈춘 이들이, 그래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체험할 시간들을 담았다. 

'내방안내서(사진출처:SBS)'

<내방안내서>의 아이디어는 ‘집 바꿔 지내기’라는 콘셉트에서 나왔다. 사실 유명한 외국의 예술가들이 오래 전부터 해왔다는 이 새로운 형태의 여행은 최근 들어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를 모델로 하는 새로운 전 세계 홈스테이식 숙박형태로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해진 호텔이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사는 공간에서 살아본다는 것이 그저 주마간산식 여행과는 다른 진짜 체험으로서의 여행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내방안내서>의 백시원 PD 역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다녀온 여행이 이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방안내서>는 이 색다른 여행을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담았다. 지금껏 관찰카메라는 그 주체가 확실히 한 방향으로만 정해져 있었다. 즉 여행을 하는 관찰카메라는 그 여행자의 시선으로 체험하고 관찰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방안내서>는 서로의 방을 바꿔 지내본다는 점에서 관찰카메라의 주체가 쌍방향적이다. 이를테면 박나래가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인 스쿱 데빌의 집에서 지내며 그가 살던 공간을 체험하고 여행한다면, 반대로 스쿱 데빌과 그의 친구 살람이 박나래의 집에 머물며 서울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내방안내서>는 그래서 관찰카메라들이 그토록 많이 보여줬던 여행기를 담으면서도 그저 지나치는 여행이 아니라 그 곳에서 살았던 방주인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따라서 서로 바꿔서 일상을 살아보는 그들은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너무나 익숙해져 특별할 것 없었던 그 삶이 타인의 눈을 통해 새로워지는 걸 확인할 수도 있다. 혜민스님의 표현방식으로 하자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바꿔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 셈이다. 

물론 혜민스님은 너무 일이 많아져 정작 자신을 쉴 수 없게 된 사실을 토로하며 “스스로 멈추기 위해” 이 특별한 여행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는 것이 주는 불가의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타인이 들어와 내 공간에서 사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나는 내 자신의 삶을 다시금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정반대로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내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지도.

최근 MBC 에브리원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폭발적인 인기로 확인하게 된 외국인들의 우리 문화 체험기 역시 타인의 눈으로 들여다본 내 삶을 관찰한 프로그램이었다. <내방안내서>의 한국에 온 스쿱 데빌과 살람의 모습은 그래서 마치 이 프로그램의 한 대목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다른 점은 그들이 다름 아닌 집을 바꾼 박나래의 집에서 머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방안내서>는 여행 관찰카메라의 진화를 보여줬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한 걸음 더 나간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이들은 서로 다른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얘기하던 혜민스님도 이제 ‘바꾸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방안내서>는 그래서 타인에게 내 방을 안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 삶을 관조하는 재미와 의미가 의외로 크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상상 그 이상, ‘당잠사’의 반 발짝 앞선 예측 깨기

그저 조금 특별한 예지몽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갈수록 변수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래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지며 당연히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졌다. SBS 수목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반 발짝 앞선 예측을 깨는 방식으로 상상 그 이상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사진출처:SBS)'

시작은 홍주(배수지)의 예지몽. 꿈꾼 것이 모두 현실이 되는 걸 알게 된 홍주는 꿈속에서 피를 흘리며 재찬(이종석)과 마주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재찬 역시 예지몽을 꾸는 전개로 곧바로 이어지며 두 사람만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낸다. 

재찬의 예지몽에 등장한 홍주가 유범(이상엽)이 대신 몰다가 벌어진 차사고로 크게 다치고, 혼수상태인 홍주가 차사고로 우탁(정해인)을 죽인 인물로 둔갑해 그 어머니인 윤문선(황영희)까지 사고로 죽게 된 것. 그러자 재찬은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고의로 유범의 차를 박아 사고를 냄으로써 홍주와 우탁 그리고 윤문선 모두를 구해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 정도에서 홍주와 재찬 사이의 멜로와 두 사람이 꿈꾸는 예지몽을 함께 막아가는 사건들이 이어질 것이라 예측하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이 예지몽이라는 판타지 설정은 훨씬 더 깊이 있게 천착한다. 그들이 왜 예지몽을 꾸는 두 사람이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

결국 홍주와 재찬의 연결고리는 두 사람의 아버지들의 선택과 그로 인해 맞이하게 된 죽음과 맞닿아 있다. 홍주의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다 마주하게 된 탈영한 군인들로부터 손님들을 안전하게 대피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재찬의 아버지는 바로 그 탈영병이 버스에서 폭탄 테러를 하기 전 역시 그에게 총에 맞아 사망한 의인이다.

홍주와 재찬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이들의 부모인 두 사람의 의인의 선택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 판타지를 차용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누군가의 작은 선택 하나가 사실은 누군가의 삶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의인이 선택한 자기희생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듯이 이제 예지몽으로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게 된 홍주와 재찬은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눈앞에 벌어질 사건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확장되어 나아간다. 그것은 재찬이 홍주와 어머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사고를 냄으로써 구해내게 된 또 한 명의 생명, 우탁 역시 예지몽을 꾸게 된다는 것. 경찰인 우탁은 박준모(엄효섭)라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인물이 저지르는 폭력을 막으려다 오히려 살인 혐의로 붙잡히게 되는 재찬의 동생 승원(신재하)이 나오는 꿈을 꾼다. 그리고 간신히 이 사건을 막는 홍주와 재찬을 돕게 되며 인연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왜 그들이 예지몽을 꾸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재찬과 홍주가 그랬듯이 우탁 역시 이미 과거의 그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예지몽으로 누군가의 미래를 바꿔놓으면 그 당사자 역시 예지몽을 꾸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이든 예지몽이라는 하나의 설정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하며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의 전개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드라마가 가진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예감하게 한다. 

놀라운 건 이런 전개 속에서 캐릭터들의 매력 또한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멜로가 주가 아니어도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찬과 홍주의 멜로가 이어지고, 브로맨스가 목적이 아니어도 재찬과 우탁의 우정이 생겨난다. 연기자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은 그래서 이종석에서 수지 그리고 정해인으로 점점 확장되어 간다. 판타지를 붙여도 그게 흔한 설정이 아니라 흥미진진해지고 그 안에서 인물들의 매력이 갈수록 커져가는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작품이 놀라운 이유다.

여성, 정착, 일반인... 알고 보면 ‘청춘불패’ 안에 다 있었다

KBS <1박2일>이 폐지됐던 <청춘불패>의 추억을 되살렸다. 지난 2009년 시작해 1년 넘게 시즌1이 방영됐고 2011년에 시즌2가 방영되다 결국 폐지됐던 <청춘불패>다. 사실 시즌2에 와서는 본래의 색깔이 많이 사라져 아쉬움을 주었지만, 강원도 홍천 유치리에서 정착해 농촌의 삶을 사계에 걸쳐 보여줬던 시즌1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박2일> 당시 <청춘불패>에 출연했던 김신영, 나르샤, 구하라 등을 출연시켜 그 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유치리를 방문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비닐하우스에는 그 때 마을 잔치도 벌이고 게임도 했던 기억들이 사진들 속에 담겨 있었고, 출연자들이 머물며 찍었던 빈농가에는 직접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 여전했다. 그리고 <청춘불패>에서 스타가 됐던 마을 어르신 로드 리(이기욱)는 이들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처럼 반겨주었다. 로드 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막걸리 한 잔으로 발그레진 얼굴로 출연자들을 기분 좋게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1박2일>이 1회성으로 방문한 <청춘불패>의 유치리지만,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한 시청자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박2일> 멤버들과 짝을 이루고 게임을 하는 모습 속에서 <1박2일> 멤버들을 쥐락펴락하는 김신영이나 나르샤, 구하라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시청자들에이 <청춘불패>를 다시 되살릴 순 없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적인 면들을 두고 보면 <청춘불패>는 여러모로 앞서갔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행 버라이어티가 유행했던 시절에 <청춘불패>는 정착형 예능을 시도했다.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걸 택했던 것.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행만큼 정착해서 보여주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일시적으로 이벤트적인 여행보다는 훨씬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정착의 풍경이 리얼리티 예능으로서 시청자들이 더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별다른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소소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시청자들이 더 원하는 것이 됐다. 물론 <청춘불패>가 방영되던 당시만 해도 이건 너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다가 <청춘불패>에는 역시 요즘 예능들에 빠질 수 없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었다. 로드 리는 이렇게 프로그램에 들어오면서 스타가 됐던 일반인이었다. 그 이외에도 그의 친구인 유치리의 전 이장 왕구 아저씨(이왕구)도 있었고 그 분들의 부인들이나 동네 어르신들도 <청춘불패>의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했다. 

무엇보다 <청춘불패>가 가치 있게 여겨진 대목은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여성 출연자들이 중심이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너무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편향된 예능 프로그램의 추세 속에서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박2일>로 인해 다시금 재조명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청춘불패>는 지금의 예능 트렌드에 오히려 더 잘 어울렸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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