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이동욱, 이렇게 슬프고 악동같은 저승사자라니

 

우리에게 저승사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검은 도포 차림에 갓을 쓰고 파리한 입술을 한 채 망자들을 인도하는 모습. 거기에 인간적인 느낌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세상과의 인연은 끊어버리는 냉정한 역할을 하는 그들이니. 하지만 이제 그 굳건했던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깨져버릴 것 같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그려내고 있는 저승사자(이동욱) 덕분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물론 이 저승사자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저 <전설의 고향>에 나오던 그런 모습처럼 차가웠고 섬뜩했다. 하지만 도깨비 김신(공유)과 동거하기 시작하면서 이 저승사자는 때론 귀엽고 때론 아이 같으며 때론 깊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듯한 쓸쓸함 같은 것들이 묻어났다. 물론 전생의 기억을 못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는 어딘지 모든 게 지워져버린 백지상태의 존재처럼 그려졌다.

 

<도깨비>에서 저승사자는 없는캐릭터다. 그는 이름이 없고 명함이 없다.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집도 없어 보인다. 그는 도깨비의 집에 얹혀산다. 가족은 당연히 없고 친구도 있을 리 없다. 그에게 있어 보이는 건 동료들(저승사자들)인데, 그 동료들도 그와 그리 친해보이지는 않는다. 동료들은 그저 회식 때 돈을 내는 존재로 그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없는캐릭터가 하는 일은 망자들의 기억을 지우는 일이다. 이승을 떠나기 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그는 망자들을 떠나보낸다. 저승사자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슬픔 같은 것들은 그가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고 또 그들을 떠나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모두가 그를 떠난다. 기억조차 남기지 않은 채.

 

없다는 건 모든 것이 없는상태에서는 자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없는캐릭터가 써니(유인나)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없다는 것이 자각된다. 그래서 그는 삼신할미 앞에서 그녀를 보고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이런 일은 또 벌어진다. 김신이 갖고 있었던 과거 왕비의 초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기억이 없던 그가 써니와 김신을 만나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그건 그가 그간 자각하지 못했던 슬픔 같은 감정들이 그의 안에 응축되어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이름도 없고 명함도 없고 직업도 없고 하다못해 핸드폰 하나 없어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저승사자지만, 그런 없는 것이 하나 중요하지 않은 듯 써니는 그의 가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써니에게 명함이 있냐고 묻는 저승사자에게 그녀는 예쁜 얼굴이 명함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저승사자의 취미가 어느새 써니가 된 까닭이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 같은 존재여서일까. 저승사자의 사랑은 그래서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취미가 뭐냐고 묻는 써니의 질문에 그는 써니씨가 취미라고 말하고 써니씨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에 맹목적으로 끌린다.”고 한다. 새로 생긴 써니씨라는 취미가 신의 계획 같기도 하고 실수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저승사자가 슬픈 캐릭터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포함해 사실상 인연을 끊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그가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다. 그는 도깨비 김신과 마치 형제 같은 브로맨스 관계를 만들었고 지은탁(김고은)에게는 마치 오빠 같고 삼촌 같은 관계가 되었으며 무엇보다 써니와는 연인 관계가 되어버렸다. 죽음을 통해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운명의 그가, 함께 살고픈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래서 비극을 내포한다.

 

<전설의 고향> 속의 천편일률적인 저승사자 캐릭터 이미지는 확실히 깨져버렸다. 인간적인 면들을 부여한 <도깨비>의 저승사자는 그래서 이제는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닌 어딘지 쓸쓸하고 슬픈 존재로 재탄생했다. 이것은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캐릭터 해석에 의해 가능해진 일이지만 또한 이동욱이라는 배우가 드디어 제 몸에 맞는 인생 캐릭터를 입음으로서 구체화됐다.

 

이미 <아이언맨>을 통해 슬쩍 드러난 것이지만 이동욱은 어딘지 겉으로는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에 안으로는 뜨거운 열정 같은 걸 갖고 있는 배우다.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한없이 냉정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그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때는 마치 그 얼음이 녹아들어 흘러내리는 물 같은 처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도깨비>의 저승사자 캐릭터는 더할 나위 없이 이동욱의 이러한 진가를 드러내준다. 이토록 슬프고 처연하면서도 악동 같은 저승사자라니

경쟁 뛰어넘는 하모니, <팬텀싱어>가 주는 위로

 

3중창의 미션을 끝내고 순위에 따라 살아남은 네 팀들은 탈락 위기에 처한 두 팀 6명 중 한 명씩을 골라 4중창 팀을 만들어야 한다. JTBC <팬텀싱어>의 남성 4중창단을 만드는 궁극적인 목표가 점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4중창 팀을 꾸리는 과정은 어찌 보면 잔인해 보인다. 6명 중 선택받은 네 명은 4중창 팀에 각각 들어가 다시 노래할 수 있지만 남은 두 명은 탈락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팬텀싱어(사진출처:JTBC)'

결국 마지막 두 명으로 남은 이들은 김현수와 류지광. 그들은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마음은 이미 접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때 마지막 반전이 일어났다. <팬텀싱어>는 남은 두 사람을 탈락시키기보다는 이미 예선전에서 탈락한 이들 중 두 사람을 다시 구제해 또 하나의 4중창단을 만들기로 했던 것. 이 사실이 발표되자 김현수와 류지광의 얼굴은 환해졌고, 또한 소식을 들은 살아남은 다른 4중창단 출연자들도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물론 이런 선택들, 즉 탈락 위기에 있는 출연자를 구제해주는 풍경이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패자부활전의 형태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종종 써오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텀싱어>의 이 선택이 다르게 느껴졌던 건 거기 담겨진 진심어린 환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순간 경쟁자라는 것도 잊었고 심사위원과 출연자라는 위치도 잊고 기꺼이 그들의 부활을 반겼다. 어째서 이런 정경이 가능해졌던 걸까.

 

그 첫 번째는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오디션 형식의 서바이벌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도대체 서바이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신과 곽동현이 부른 카루소나 백인태, 유슬기가 부른 소월에게 묻기를’, 고은성, 권서경의 ‘Musica’, 손태진, 김현수의 꽃이 핀다’, 박상돈, 유슬기, 백인태의 ‘Quando I'amore diventa poesia’, 이동신, 고훈정, 이준환의 ‘Luna’ 등등. 하나하나가 공연 무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심사위원들은 물론 심사를 하지만 그 압도적인 무대에 그저 감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이러한 실력자들을 탈락시키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을 다시 모아 한 팀을 더 부활시키는 선택이 합리적이라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건 심사위원도 원하는 일이고 시청자들도 원하는 일이며 심지어 거기 경쟁자로 나서 있는 출연자들도 원하는 일이다. 경쟁은 경쟁이지만 그 자체보다 더더욱 새로운 무대를 보고픈 욕망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탈락자 구제의 훈훈한 풍경이 기꺼이 받아들여지게 된 까닭은 이 프로그램이 표방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경쟁이 아닌 하모니이기 때문이다. <팬텀싱어>의 독특한 구조는 윤종신이 말하듯 혼자 기량으로 잘 한다고 해서 살아남는 오디션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보다는 함께 어우러지고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배려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절정의 하모니가 당락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서바이벌의 구조가 진행될수록, 솔로에서 듀오로, 듀오에서 트리오로 이렇게 한 단계씩 하모니의 강도를 높이는 것도 독특한 형식이다. 이렇게 되면 경쟁과 하모니의 균형이 점점 만들어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해야 하지만 동시에 하모니 역시 더 중요해진다. 이런 특징은 떨어뜨리기보다는 함께 한다는 의미를 심지어 경쟁자들에게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팬텀싱어>의 훈훈한 정경이 가능해진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팬텀싱어>은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보여준 풍경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하는 스토리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이 오디션의 궁극적 목적이 실력의 우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남성 4중창단이라는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려 하기 보다는 배려하는 오디션이고 자신의 기량만을 뽐내기보다는 타인의 기량을 드러내게 해주는 오디션. <팬텀싱어>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은 살벌한 경쟁적 현실 속에 놓여진 대중들을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해주는 힘이 아닐까

진실의 은폐, <솔로몬의 위증>이 건드리는 것들

 

저희 반에 빈 책상만 네 개예요. 그게 어른들의 보호고 도움이에요? 그럼 전 안 받을래요. 필요 없어요.” 고서연(김현수)이 말하는 빈 책상 네 개. 어째서 이 빈 책상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더 큰 잔상으로 남을까.

 

'솔로몬의 위증(사진출처:JTBC)'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은 학교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한 학생 이소우(서영주)로부터 시작한다. 평소 그를 괴롭혀온 최우혁(백철민)과 그 친구들에 대한 미심쩍음이 있었지만 학교는 서둘러 이를 덮으려 하고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사실 학내 폭력사태나 혹은 자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걸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학교 이야기는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너무나 많이 읽어온 것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일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이야기 같은 현실감을 준다.

 

물론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소 최우혁과 그 친구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이주리(신세휘)가 그를 따르는 박초롱(서신애)과 함께 최우혁이 이소우를 죽였다는 고발장을 만들어 서연의 집 앞에 놓아두게 되고, 이를 입수한 언론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터트리자 두려움을 느낀 초롱은 주리와 말다툼 끝에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다. 즉 한 학생이 죽고, 다른 한 학생은 혼수상태가 되며 다른 학생은 그로 인해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 물론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고서연은 친구들의 책상이 하나씩 비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을 둘러싼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 고발극에 가깝다. 드라마가 고발하려는 건, 한 학생의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 진실을 제대로 알려 하기보다는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처리하려는 어른들이다. 그 어른은 다름 아닌 학교와 경찰과 언론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학교는 그럴 듯한 추모식을 거창하게 열었지만 그건 죽은 학생을 진심으로 추모하려하기보다는 서둘러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함이었다. 경찰은 고발장을 보게 된 후 이 사건으로 갖게 된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심리 상담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아이들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한 구실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박기자(허정도)흥미에 더 관심이 많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보도를 내기 위해 그는 금수저 천지인 정국고에서 위선과 허위를 폭로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는” ‘정국고 파수꾼이라는 가명의 SNS 계정을 추적하려 한다.

 

박기자는 본래 사람은 자기 유리한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가만있는 게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은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나이라며 너 네가 어른들 도움 없이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연은 안다.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라고 했지만 결국 자기 반에 빈 책상만 늘어가게 됐다는 것을.

 

결국 <솔로몬의 위증>은 그래서 이렇게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거나 혹은 자기들 유리한대로만 하려는 어른들에 대항해 아이들이 직접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담는 드라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네 부끄러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부끄러운 현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들의 이런 반발에 심정적 지지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은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에 나온 학생들이 또박또박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던질 때 어른들이 갖게 되는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것들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교실에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아이들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짠할 땐 짠? <인생술집> 의도는 알겠는데 딜레마는

 

tvN <인생술집>은 대놓고 음주방송이다. 한 몇 년 만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런 음주방송이 지금 버젓이 나가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음주방송과 연관된 단어들은 물의’, ‘논란’, ‘하차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타개하신 라디오 DJ 이종환도 과거 음주방송을 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고 <컬투쇼>의 정찬우도 한때 음주방송으로 물의를 빚은 후 사과를 한 바 있다.

 

'인생술집(사진출처:tvN)'

물론 이러한 음주방송과 <인생술집>의 음주방송은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음주방송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술집>이 음주방송을 내걸은 데는 그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 게스트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이 프로그램이 연남동 밤거리를 스케치하며 깔아놓는 내레이션처럼, 하루의 피곤함을 위로하기 위해 드는 술잔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이다.

 

하지원이 게스트로 출연한 3회에서 신동엽이 건배사 같은 게 있냐고 묻자 그저 !”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란 표현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인생술집이라는 네 자를 가지고 그녀는 인생 뭐 있어? 생각 좀 그만 해. 술이 앞에 있잖아. 집중!”이라는 재치 있는 사행시를 선보였다. 그녀가 건배사로 말한 !”과 사행시의 정서는 묘하게 어울린다.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일반인들의 술자리 이야기에서 여성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혼자인 처지와 사랑, 결혼 등을 말한다. 그러면서 하며 함께 술을 마시면서 한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이 짠이 정말 짠해서 짠이 아니고 기분 좋은 짠이었으면 좋겠다.” 짠할 땐 짠. 아마도 이 여성이 말하고 있는 이 부분은 음주방송을 내거는 과감함을 통해서라도 <인생술집>이 추구하려는 바일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 위로가 되는 짠! 그래서 술집앞에 인생이라는 무게 있는 단어를 달았을 테니.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술집>은 결국 재미를 줘야 하는 방송이고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재미는 웃음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어떤 따뜻함이나 호감을 통해 갖게 되는 즐거움, 때로는 그 시간의 흥취가 주는 포만감 등등. 재미 요소는 웃음 이외에도 많다.

 

게다가 음주방송이라는 걸 내걸었기 때문에 <인생술집>은 그저 희희낙락하는 모습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그건 자칫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기 보다는 출연자 자신들이 즐기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다. 물론 그 모습이 시청자들까지 즐겁게 만든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위로가 아닌 소외감 같은 걸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인생술집>은 술 한 잔이 경계심을 허물어내는 그 순간을 통해 게스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걸 추구하지만, 음주방송이라는 지점은 어떤 면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딜레마를 만든다. 너무 재밌게 노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 어딘지 과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그래서 술을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인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때때로 무거워진다.

 

이것은 <인생술집>의 음주방송이 허락되는 지점이 갖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는 하지만 그만큼의 재미와 의미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자칫 비난받기도 쉬운 아슬아슬한 지점에 <인생술집>은 서 있다. 그래서 방송은 그저 자연스럽게 게스트를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술 마시기 전에 술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고, 항상 신동엽은 자주 하는 건배사를 물으며 적당한 시점(?)이 되면 노래를 권한다. 그건 일종의 방송의 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틀을 음주를 통해서라도 깨려는 의도 사이에서 제작진이 어떤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도는 나쁘지 않다. 결국 술에 취하기보다는 사람에 취하는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것처럼 음주 자체보다 그 분위기와 흥취에서 나오는 진솔함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의도는 어떤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때론 왜곡될 위험성도 있다. <인생술집>은 그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방송을 펼쳐나가지 못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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