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 풋풋하면서도 먹먹한 이 느낌은 뭘까

 

이 청춘은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런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게 된 걸까.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JTBC <청춘시대>의 윤진명(한예리)에게 청춘의 꽃길 따위는 없다. 알바에서 알바로 새벽까지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는 듯한 하루하루. 엄마가 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동생의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는 누가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냐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녀에겐 자신의 삶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다지만 그녀에게 행복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그런 그녀에게 무례하다. 절박한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그 절박함을 미끼로 함부로 명령하고 함부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권력의 힘으로 제 멋대로 상대방에게 손을 뻗치는 행동들은 추행이자 폭력이 분명하다. 레스토랑 매니저라는 알량한 권력을 가진 자(민성욱)는 마치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 접근해 일자리를 제안하며 은근슬쩍 그녀를 추행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나랑 그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겁먹고. 마치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 윤진명은 그렇게 말하며 매니저로부터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매니저가 던지는 덜 절박하구나라는 말은 가난하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위치에 놓여진 청춘들을 대하는 현실의 냉혹함을 잘 보여준다.

 

사랑 따윈 사치처럼 되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윤진명은 정말 기적처럼 다가온 박재완(윤박)을 밀어낸다.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반복할수록 윤진명의 마음 속에 박재완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녀는 그저 보통사람들처럼 박재완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의 무게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시대>에는 선배인 윤종열(신현수)과 유은재(박혜수)가 만들어가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죽은 아빠와 관련해 어딘가 숨겨진 아픔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자신이 죽였다는 혼잣말과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득 문득 차가워지는 그녀에게서 무언가 비밀스런 과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유은재의 사랑은 우리가 청춘에 기대하는 그 첫사랑의 면면들이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처절한 현실을 부정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강이나(류화영) 같은 청춘도 있다. 대학생이라 속이고 제 몸을 팔아 스폰서 받는 편한(?) 삶을 선택한 그녀. 스스로 쉬운 삶이고 자신을 창녀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삶일까. 그녀가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데는 과거 죽을 뻔 했던 사고에서 그녀의 말대로 운이 좋아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다.

 

셰어하우스에 모인 다섯 명의 청춘들의 제각기 다른 현실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청춘시대>는 청춘을 한 가지 얼굴로만 내밀지 않는다. 그들이 대하고 있는 청춘이란 윤진명이나 강이나처럼 혹독하기도 하지만 유은재처럼 달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상황 속에서 때론 갈등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토닥이고 안아준다. 박재완을 애써 밀어내고 돌아와 그 아픔에 오열하는 윤진명을 송지원(박은빈)이 꼭 끌어안아주는 것처럼.

 

이것은 <청춘시대>가 가진 현실을 다루는 좋은 균형감각이다. <청춘시대>는 청춘이라는 그 지점이 가진 낯설음과 설렘을 내포하지만 그것을 두려움과 처절함으로까지 만들어내는 현실을 또한 외면하지 않는다. 보통의 청춘 멜로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무게감과 진중함이 유쾌한 청춘들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게 된 건 이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작금의 청춘들을 섬세하게 드라마가 들여다보고 그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현실의 무게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모습은 <청춘시대>가 진짜 그리고 있는 청춘의 판타지다. 남녀 간의 달달하고 강렬한 사랑만큼 지금의 청춘들에게 필요해진 것이 위로가 됐다는 건 어쩐지 슬픈 일이다. <청춘시대>의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아가는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가 풋풋하면서도 먹먹해지는 건 그래서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왜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 가난하다 못해 처절한 여주인공과 최고의 위치에 선 한류스타, 게다가 시한부 설정까지 들어 있으니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를 그저 그런 틀에 박힌 멜로 심지어 신파로까지 여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우리네 드라마 시청자가 첫 회만 보면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초반부는 함부로그저 그런 멜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함부로 애틋하게>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들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경희 작가가 왜 틀에 박힌 설정들과 이야기들을 끌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뒤집으려 하는가 하는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드라마가 오해되는 게 못내 안타까워 제작사가 나서서 그 본래 의도로서 얘기했던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명쾌하게 어른들의 세상과 청춘들을 분리해 놓았다. 어른들의 세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최현준 검사(유오성). 그는 정의로운 척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갖가지 부조리와 부정을 저지른 인물이다. 법을 운운하며 공명정대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지만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모른다. 그러니 법을 수호한다기보다는 법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 그의 추악한 진면목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하나는 그에게서 자란 최지태(임주환)고 다른 하나는 그도 모르게 태어나 자라 스타가 된 신준영(김우빈)이다. 신준영은 엄마인 신영옥(진경)의 소원처럼 최현준 같은 검사가 되려 노력하지만 노을(수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덮어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최현준의 진면목을 보고는 흔들린다. 결국 아버지의 비리를 덮어주려다 노을을 죽일 뻔한 일을 저지르고는 검사의 길을 포기한다.

 

신준영은 아버지 최현준과는 달리 염치 있는 인간이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바로 그렇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영원히 검사 자격 따위는 없다며 꿈을 포기한다. 그는 대신 한류스타가 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꿈을 포기한 일은 그에게도 혹독한 벌을 내린다. 엄마인 신영옥이 그를 더 이상 아들로서 대하지 않는 형벌.

 

최현준의 또 한 명의 아들 최지태 역시 염치 있는 인간이다. 그는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는 노을의 키다리 아저씨로 살아온다. 그것이 자신이 대신 사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최현준이라는 어른과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염치없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최현준 같은 어른(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과 그로 인해 처절한 삶에 내몰린 노을(그녀가 영원히 을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어른을 아버지로 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대신 사죄하려는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들.

 

여전히 최현준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신영옥에게 아들 신준영은 그 실체를 고발한다. 그가 노을의 집안을 어떻게 풍비박산냈고 그로 인해 그들이 지금도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털어놓는다. 신영옥은 그제서야 충격에 빠진다. 평생을 기대왔던 믿음이 무너지는 충격.

 

최지태는 쫓겨나게 된 노점상들에게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아버지 최현준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런 최지태의 말을 최현준은 그런 경험조차 없는 그가 던지는 값싼 동정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최지태는 최현준의 어머니 역시 노점상이었다며 그런 경험조차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신준영은 과거 노을의 아버지 뺑소니 사건 수사를 덮으라는 최현준의 명령을 불복해 불이익을 받은 최변호사(류승수)를 찾아가 그 과거의 진실을 다시 밝히려고 한다.

 

최지태와 신준영이 최현준과 맞서는 이유는 노을에 대한 애틋한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면서 연민이면서 동시에 동정이다. 그녀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도무지 저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 있는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염치에 대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함부로 애틋하게>가 왜 전형적인 신파 멜로의 틀과 상투적 설정들을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신파 멜로의 틀이란 어찌 보면 기성세대들의 사고관이다. 기성세대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주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내면화할 때 신파 멜로의 틀이 생겨난다. 고부갈등은 대표적이다. 그러니 이 기성세대의 사고관을 대변하는 전형적 신파 멜로의 틀을 가져오되 그것을 내재화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뒤집어 적극적으로 청춘들이 항변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는 건 꽤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의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했다. 그것은 요즘의 시청자들이 너무 많은 드라마들을 접하고 있고 그래서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뒤에 숨겨놓는 전략은 그래서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도 중반 이후를 통해 드러난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나름의 재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함부로 무치한사회에 대한 애틋한저항이다

국가스포츠에 모두가 열광하던 시대 저물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그리고 2002월드컵까지 국가스포츠를 지상파가 일제히 방영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처럼 여겨진 바 있다. 하지만 2016년 리우 올림픽을 하는 현재는 어떨까. 올림픽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입장은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여전히 국가스포츠냐는 이야기부터, TV를 켜면 지상파 방송3사가 똑같은 중계를 갖고 경쟁하는 것이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W(사진출처:MBC)'

이런 불만이 표면적으로 터져 나오는 가장 흔한 사례는 드라마 결방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이 논란은 특히 잘 나가는 드라마들의 경우 심지어 방송사가 시청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리기도 한다. 월화드라마에서는 <닥터스>가 그렇고, 수목드라마에서는 <W>가 그렇다. 올림픽 중계 때문에 이들 드라마를 결방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 리우 올림픽이 시차 때문에 새벽 중계가 많아진 탓도 있지만 올림픽 중계방송 자체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도 과거만 하지 못한 면은 분명히 있다. 밤 시간대에 하는 올림픽 중계방송도 10% 시청률을 넘기는 건 어렵게 되었다. 겨우 7,8%에 머물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엔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렇게 된 건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는 시청 패턴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굳이 지상파에서 본방을 통해 중계방송 시청을 하기 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하이라이트시청이 익숙하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 자체도 본방보다 인터넷을 통해 이른바 짤방을 보는 것이 익숙해진 세대들이 아닌가.

 

게다가 국가스포츠라고 하면 무조건 봐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는 과거의 유물처럼 되어 있다. 과거 88올림픽 같은 국가적 제전에 국민 모두가 참여해 응원하던 풍경은 요즘처럼 취향이 다양해진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선진국들의 올림픽 같은 국가스포츠에 대한 태도와 유사하다. 미국의 경우 올림픽을 해도 대중들이 더 관심을 갖는 건 개인적 취향이 뚜렷한 저마다의 프로스포츠들이다.

 

무엇보다 지상파의 올림픽 중계방송이 과거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건, 단적으로 올림픽 중계방송을 하지 않는 tvN 같은 케이블 채널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이 시즌에도 여전히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월요일 tvN에서 방영된 <싸우자 귀신아>3%대의 정상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집밥 백선생>의 경우는 오히려 시청률이 3% 이상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이제 올림픽 중계를 해도 각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올림픽 중계와 본방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른바 보편적인 시청을 염두에 둔다면 올림픽 중계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결방은 의외로 강한 반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지상파들이 올림픽 같은 국가스포츠 제전에 모두 뛰어들어 같은 중계를 두고 방송 경쟁을 하는 건 어딘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3사에 올림픽 방송에 있어서 순차방송을 권고한 건 그나마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위한 최소한의 지침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렇게 방송3사가 모두 올림픽 중계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은 그다지 탐탁해하지 않는 눈치다. 국가스포츠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W>, 웹툰 속이라 가능해진 것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 혹은 여자이런 외모와 이미지를 가진 이들을 만찢남혹은 만찢녀라고 부른다. 아마도 MBC 수목드라마 <W>의 상상은 바로 이 용어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와 만화 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엮어가는 멜로와 스릴러. 여기서 만찢남 강철과 만찢녀 오연주 역할에 이종석과 한효주 캐스팅은 맞춤이다. 드라마의 성격상 실사와 만화를 오가는 장면들 속에서 이들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배우들도 없을 게다.

 

'W(사진출처:MBC)'

만화 속 인물과의 모험과 로맨스라는 단순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한 드라마일 수 있으나, 막상 그 세계로 들어가니 의외로 모든 것들이 다 허용되는 거침없는 전개가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W>의 멜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멜로드라마의 과정 같은 것들이 불필요해졌다. 사실 강철이라는 캐릭터를 이상형으로 꿈꾸고 만든 인물이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오연주다. 그러니 뭘 숨기고 잴 것인가.

 

자신이 만화 속 주인공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는 절망, 한강에 투신한 강철을 다시 구해낸 오연주에게 오히려 강철이 왜 구했냐며 화를 내자 오연주는 대뜸 사랑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돌직구에 강철의 마음이 흔들리고 그녀가 원하는 로맨스를 대놓고 선택하라며 여러 선택지들을 늘어놓고는 마치 숙제라도 하듯 그걸 하나하나 실행한다.

 

현실적인 멜로드라마라면 두 사람이 밀고 당기며 속내를 드러낼 듯 드러내지 않는 그 과정들을 거쳐야 이른바 개연성이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웹툰 속 만화 세상에 들어간 오연주에게는 오히려 그런 밀당 없이 바로 속내를 털어놓고 직진으로 달려가는 멜로가 더 개연성이 있다. 이른바 만화 속에서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 같아야 더 리얼한 셈이니까.

 

이 드라마가 멜로적인 달달한 시퀀스에서 다시 긴장감을 높이는 스릴러로 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거침이 없다. 갑자기 들려오는 괴한의 목소리가 화면 위에 글자로 찍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드라마는 다시 쫄깃해진다. 강철의 온 가족을 죽였던 괴한이 이제는 오연주마저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자 순식간에 드라마는 스릴러와 멜로가 동시에 팽팽하게 된다.

 

<W>라는 만찢남 만찢녀의 세계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가 어떤 공감대를 대중들에게 주기만 한다면 얼마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만화 속에 들어가 본 이들은 없다. 그러니 그 리얼리티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대신 그 안에 존재하는 개연성의 법칙들을 작가가 그럴 듯하게 제시해주는 것만으로 이 상상의 세계는 언제든 어디로든 전개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들을 봐왔고 또 그 드라마의 법칙이라는 것들을 꿰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W>를 보면서 묘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틀을 벗어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달려가는데서 나오는 즐거움이다. 만화 속으로 들어가자 <W>는 함부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함부로는 기꺼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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