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라미란과 함께라면 좀비도 일제도 안 무섭네

 

마동석, 라미란 보러 영화관 간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만한 상황이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가장 먼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의 마동석이 그렇고, 입소문을 타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2백만 관객을 돌파한 <덕혜옹주>의 라미란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이 두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신스틸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이 사실상 흥행 보증수표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이들에게 부여한 걸까.

 

사진출처:영화<덕혜옹주>,<부산행>

<부산행>에서 마동석이 연기하는 상화는 아내와 함께 부산행 KTX를 탔다가 좀비들과의 일전을 벌이게 되는 평범한 인물이다. 조금 껄렁껄렁한 건달 같은 느낌을 보이지만, 아내인 성경(정유미)이 하는 말 한 마디면 무조건 복종하고 또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같은 걸 지키는 그런 사내. 어찌 보면 대단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이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그의 우직한 상식은 하나의 판타지로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상화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은 마동석이라는 배우로부터 나온다. 잘 단련된 몸으로 터질 듯한 근육을 드러내며 좀비가 아니라 괴물이 등장해도 맨 주먹으로 때려눕힐 것 같은 그 이미지는 그 두렵고 황당한 상황 속에서 관객들이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는 머리 쓰지 않고 몸으로 부딪쳐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내며, “욕 먹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빠들이라는 서민 영웅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부산행>에서 주인공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다.

 

<부산행>에 마동석이 있다면 <덕혜옹주>에는 라미란이 있다. 물론 영화적 장르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며 사건도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 속에서 마동석과 라미란은 닮은 구석이 많다. <부산행>의 상화가 KTX의 생존자들을 지켜내는 인물이라면, <덕혜옹주>에서 라미란이 연기한 복순이란 인물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옆에서 때론 엄마처럼 때론 언니처럼 든든히 지켜주는 인물이다.

 

친일파 앞잡이인 한택수(윤제문)의 행태 앞에서 꼿꼿이 맞서며 때론 주먹까지 날리는 복순이의 행동은 <덕혜옹주>라는 비장하고 슬플 수밖에 없는 영화 속에서 시원한 사이다가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온 몸을 던져 덕혜옹주를 지키려는 그 마음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마음으로 공유되기도 한다. 물론 덕혜옹주의 그 비극적인 이야기가 가진 무게감이 이 영화의 중요한 매력이긴 하지만, 그 안에 숨통을 트게 해주는 라미란의 역할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부산행>의 마동석이 그렇하듯이, <덕혜옹주>의 라미란 역시 복순이라는 캐릭터에 더해 배우로서 그녀가 갖고 있던 이미지가 일조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응답하라1988>에서부터 영화 <히말라야>까지 라미란이 주는 든든한 면모는 <덕혜옹주>의 복순이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마동석과 라미란이 이처럼 관객들에게 박수 받는 존재가 된 건 이들이 독특한 서민 영웅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잘났고 신분이 다르고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조금 못났고 신분도 비천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서민이지만 그래도 상식이 살아있고 든든히 기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들. 지금의 대중들이 희구하는 영웅이란 이런 인물이 아닐까.

 

마동석과 라미란. 물론 <부산행><덕혜옹주>라는 좋은 작품이 있고 또 그걸 전면에서 끌어주는 공유나 손예진 같은 배우들의 저력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마동석과 라미란은 이 두 영화를 보는 이유가 될 정도로 잘 어우러진 면이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신스틸러라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나간 트렌드, 버텨내지 못한 <스타킹><오마베>

 

SBS <스타킹>9년 만에 종영했다. 지금은 쓸쓸히 종영하게 됐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타킹>이 가진 의미는 남달랐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일반인들이 스타가 되는 길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 그 첫 포문을 열었던 무대가 다름 아닌 <스타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인들이 방송에 나오는 일이 점점 일상화됐고, 최근에는 1인 방송 같은 개인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스타킹>은 트렌드에 뒤쳐진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스타킹(사진출처:SBS)'

그래도 한 때는 토요일 저녁에 편성되어 때론 MBC <무한도전>을 위협하기도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만큼 온 가족이 편안히 둘러 앉아 별다른 집중을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하지만 일반인이 스타가 된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지 않자 <스타킹>은 여러 변화를 시도하며 재기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말에서 물러나 주중으로 들어왔지만 이마저도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사실 <스타킹>의 폐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의 정체성 자체가 이미 달라진 트렌드를 이겨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몸짱을 뽑고, 목청킹을 뽑는 식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시리즈화해 그 과정을 담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었지만 이마저도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결국 SBS 예능국 입장에서는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고유의 생명력이 다한 것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SBS에서 <스타킹>과 함께 폐지가 결정된 <오 마이 베이비> 역시 달라진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육아예능이 끝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이 소재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이 긍정적 시각보다 더 많아진 게 현실이다. 이렇게 된 건 육아예능에 끝없이 달라붙었던 비판들, 이를 테면 아직 방송 출연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송에 노출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 하는 점이나, 자주 제기되곤 했던 홍보 논란들, 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까지 나오게 되면서다.

 

MBC <아빠 어디가>가 그 물꼬를 열었지만 육아예능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그 과실을 따먹은 게 사실이다. 그 인기에는 추성훈의 딸 추사랑과 송일국의 삼둥이가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그들이 모두 하차한 이후 이 프로그램도 시들해졌다. <오 마이 베이비>는 상대적으로 타 방송사의 육아예능보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에 대한 팬덤이 나름 형성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미 트렌드가 되지 못하는 마당에 더 지속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됐을 터다. 대중들은 지금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이다.

 

<스타킹>이나 <오 마이 베이비>는 모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어떤 중심적인 트렌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트렌드는 바뀌기 마련이다. 그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하지 못한다면 폐지될 수밖에 없다.

 

SBS 예능국은 최근 들어 <동상이몽>, <신의 목소리>, <스타킹>, <오 마이 베이비> 등 프로그램들을 대거 폐지시키고 <꽃놀이패>, <미운우리새끼>, <맨인블랙박스>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주말 예능도 시원찮고 그렇다고 주중 예능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는 반응들은 SBS가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스타킹><오 마이 베이비>의 폐지결정이 요즘처럼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른 시기에 너무 느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차피 변화하는 트렌드를 막을 수도 싸워 이겨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전전긍긍할 게 아니라 과감히 변화하는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SBS 예능국이 이번 폐지 결정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복면가왕>에 밀리는 <판듀>, <1> 못 따라가<런닝맨>

 

제 아무리 주말예능이 예전 같지 않아도 해도 지상파3사의 예능에 있어 주말예능이란 자존심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말예능이 엎치락뒤치락 할 때마다 지상파3사의 예능 이미지도 달리 보인다. 주중에 다소 부진해도 주말예능이 살아있다면 해당 방송사의 예능 이미지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판타스틱듀오(사진출처:SBS)'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SBS 주말예능은 SBS 예능의 이미지 전체를 깎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현재의 주말예능경쟁은 이미 전반전을 MBC <복면가왕>이 후반전을 KBS <12>이 양분하는 구도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복면가왕>13.3%의 시청률을 냈고 <12>은 무려 16.5%의 시청률로 주말 예능의 최고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동시간대에 방영된 SBS<판타스틱듀오>5.3%, <런닝맨> 역시 5.3%에 머물렀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의 반절도 되지 않는 성적을 낸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전적으로 SBS 주말예능의 안이한 전략과 프로그램 만듦새에서 비롯된 일이다. <복면가왕>은 복면 콘셉트를 새롭게 도입해 주말 음악 예능의 신기원을 열었지만 뒤늦게 주말에 편성된 <판타스틱 듀오>는 어딘지 다른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던 아이템들을 섞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연가수들도 그다지 새롭지 않고 무엇보다 여전히 가창력 대결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되었다.

 

<복면가왕> 역시 가창력을 선보이는 음악 프로그램은 맞지만 거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복면 뒤의 가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가수들의 풀도 굉장히 다양하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니 뒤늦게 시작한 <판타스틱 듀오>는 무언가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을 극대화해 어필했어야 하지만 음악 예능 대결에서 <복면가왕>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머무르고 말았다.

 

사실 이미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복면가왕>과 유사한 콘셉트의 음악 예능을 경쟁적으로 붙여놓는다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독보적인 새로움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잘해도 2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듀오>의 실패는 새로움에 도전하지 않은 SBS 예능의 전략적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런닝맨>의 경우는 유재석이 작년 시상식에서 반드시 동시간대 1위를 달성하겠다고 말하면서 절치부심했던 걸 떠올려보면 지금의 흐름은 너무 소소해진 느낌이다. 물론 올 상반기 초반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 노력한 면들이 있었지만(그래서 시청률도 괜찮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적 틀이 보편적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런닝맨>은 중국판이 대박을 내면서 SBS 예능의 효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의 이야기다. 게다가 <런닝맨>은 초반의 참신하고 새롭던 게임들의 시도들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지금은 또 다시 게스트를 초대해 단순한 게임만 조금 달리하는 형식적인 틀에 점점 매몰되어 가고 있다. 한 번을 해도 임팩트 있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아이템들이 제시되지 못하는 한, <런닝맨>은 갈수록 주말예능 경쟁에서 힘겨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SBS 주말예능은 한 때 <K팝스타><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이 주도하면서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그 때 이들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수위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겨봐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걸 했다는 점이다. 그저 당장의 리스크를 줄이려 누군가 했던 성공 공식들을 가져와 조합하는 방식으로는, 또 매번 치열한 아이템을 내놓기보다는 그저 매주가 흘러가는 듯한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것으로는 부활을 꿈꾸기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부산행>, 재난공화국에 날리는 마동석들의 일침

 

대규모 폭력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군대병력을 충원하여 국민여러분들을 안전하게 지켜드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사는 재난영화의 공식적인 클리셰에 가깝다. 재난영화 속에서 늘 정부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국민을 안심시키고는 저들 살 궁리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사진출처:영화<부산행>

하지만 똑같은 클리셰에 해당하는 대사인데도 <부산행>의 이 대사는 영 달리 들린다. ‘폭력사태라는 표현이나 군대병력같은 단어들이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에서 특정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측의 브리핑과 상반되게 군대병력이 좀비로 돌변해 국민을 공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우리는 상상이 아닌 실제 이런 현실을 맞닥뜨린 적이 있지 않은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클리셰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대사가 된다는 것. 이건 <부산행>이라는 좀비 장르의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본래 B급 장르로서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좀비 장르가 신드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1천만 관객 돌파라니!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는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건 우연이 아니다. <부산행>은 그 영화 곳곳에 우리네 재난 공화국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게 의도된 장면과 설정들이 들어가 있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하게 느낀 장면은 KTX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글바글 얼굴을 가득 달라 붙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좀비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스치듯 보이는 장면들이다. 마치 바닷물이라도 그 안으로 들어온 듯 물밀 듯 차오르는 좀비들의 이미지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월호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KTX 역시 우리네 재난공화국을 표징한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시속 3백 킬로로 달려가는 그 속도 위에서 좀비들과 사람이, 또 사람과 사람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목에 담겨진 부산행이 과연 살아남은 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끝을 낙관할 수 없다. 다만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세기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안심해도 된다고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당국자들의 거짓말이 있을 뿐이다.

 

좀비 장르이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성을 우리 앞에 내미는 <부산행>에서 마동석은 서민들의 영웅이면서도 가장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애초부터 주인공도 아니고 불쑥 이 KTX 행에 올라탄 후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 목숨을 건 사투에 뛰어든다. 재난의 한 가운데서 그나마 온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하고 심지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다시 그 재난 속으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시대의 마동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마동석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들은 원래 욕먹고 인정 못 받고 무시당하고 그래도 희생하면서 사는 거야.” 좀비 장르를 보며 심지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건 <부산행>이 애초에 추구하는 것이 좀비물이 아니라 사회물이었다는 걸 잘 말해준다. 천만 관객은 우리네 재난공화국의 참상을 거기서 다시 봤고, 그 안에서 혼자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던지는 이기심을 봤으며, 이런 재난 상황에 무능한 당국을 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며 사라져간 이름 모를 서민들을 보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건 바로 그 재난공화국의 현실과 숭고한 서민들을 표징하고 기꺼이 재난에 몸을 던진 마동석 같은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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