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와이프>, 아내와 변호사 넘나드는 전도연의 클래스

 

역시 전도연이다. tvN의 새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은 아내이자 변호사인 김혜경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사실 아내와 변호사라는 두 캐릭터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아내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고, 변호사라는 직업 역시 장르물의 견고한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하지만 <굿와이프>는 다르다. 이 드라마가 짚어내고 있는 핵심적인 포인트는 아내이자 변호사라는 김혜경의 위치다. 그녀는 남편 이태준(유지태)이 불륜스캔들에 휘말려 아내로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해 무려 15년 동안 헌신했던 가정을 박차고 나와 변호사로서 자신을 세워야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맡게 된 변호가 불륜 사실 때문에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가진 한 아이의 엄마라는 건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진 의뢰인에 대해 그녀는 동병상련의 깊은 공감을 통해 더 변호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국 이길 수 있었다.

 

즉 김혜경이 해온 15년 간의 아내로서의 삶은 남편의 배신 때문에 허탈한 시간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삶을 통해 접하게 된 여성들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제 변호에 있어서도 그것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굿와이프>가 여타의 아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나,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혜경이 다시 변호사로 돌아와 첫 번째 사건을 이기는 그 과정은 그래서 아내로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김혜경이라는 본인으로서 서게 됐을 때의 그 성취감. 그런 것들이 첫 번째 승소를 하고 법정을 나오는 김혜경의 기쁜 얼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굿와이프>는 이렇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홀로 독립해 서게 되는 김혜경이라는 여성의 성장스토리를 다루지만, 의외로 숨겨놓은 반전 요소들도 들어 있어 훨씬 극적 재미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억울하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녀의 남편 이태준이 아내인 김혜경을 통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 드라마의 주요 포인트지만, 그 뒤에는 또한 이태준의 욕망이 어른거린다. 이 부분은 단순해 보이는 성장드라마가 다양한 이야기들로 변주될 있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 그리고 아내로서의 모습과 변호사라는 직업으로서의 면면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굿와이프>에 대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법정극이 그려내는 반전에 반전의 이야기와 아내에서 독립해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성장해가는 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은 온전히 전도연이라는 든든한 배우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싶다.

<봉이 김선달>의 신스틸러들,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봉이 김선달이라는 민담이 나오게 된 데는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가 선달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과거에 급제 했지만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당대의 현실이 그 캐릭터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셈이다. ‘봉이라는 호가 붙게 된 연유 역시 닭을 봉황이라 팔아먹는 당대 사회의 물욕에 대한 풍자가 들어가 있다.

 

사진출처:영화<봉이 김선달>

물론 이 소재를 지금 굳이 가져온 데는 당대의 사정과 지금의 현실이 어느 정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일 수 있다. <봉이 김선달>이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탐관오리들과 양반들 뒤통수를 침으로써 잠시나마 통쾌함을 선사할 김선달이란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에 충실하게 진지함을 빼고 가벼운 코미디 속에 세태 풍자를 끼워 넣는다. 호란 이후 조선인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화살받이 노릇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러나 그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 곳에서 김선달(유승호)은 보원(고창석)과 견이(시우민)를 만나 어차피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몸 마음껏 누리며 살겠다고 선언한다.

 

양반들을 대상으로 닭을 봉황이라 속여 팔고, 여장을 한 채 사내를 꼬드겨 돈을 뜯어내고, 그저 평범한 칼을 충무공의 칼이라 속여 팔아먹는다. 그렇게 번 돈을 김선달은 하룻밤 풍류로 날리고 나눠가지라며 저잣거리에 돈을 뿌린다. 물론 이러한 유쾌한 사기극은 중간 지점부터 변곡점을 만들어 후반에는 복수극으로 돌변함으로써 영화의 극성을 높여놓는다.

 

이미 많이 알려진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사기극은 그 자체로는 기발하다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코믹 연기가 그것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승호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때로는 꽃미남으로 아낙들의 마음을 빼앗고, 때로는 여장을 한 채 뭇사내의 마음까지 빼앗으며, 심지어 왕 행세를 하기도 한다. 그 옆을 지키며 그와 함께 사기극의 연기를 돕는 보원은 살벌한(?) 외모와 정반대의 귀요미 모습으로 끊임없이 웃음을 준다. 보원과 케미를 만들어가는 윤보살(라미란)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보여준다.

 

후반부에 대동강으로 중심으로 하는 스펙터클보다 사실 <봉이 김선달>을 유쾌하게 만들어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유승호는 물론이고, 고창석, 라미란 같은 이들이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그들이 왜 신 스틸러라 불리는가를 제대로 증명해보여주었다. 특히 여장한 김선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양반으로 등장한 최귀화는 이 영화가 주목시킨 연기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봉이 김선달>은 그 민담이 갖고 있는 풍자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를테면 그가 선달로 불리게 된 이유를 영화에서는 그와 공조해 역적들을 몰아낸 왕이 이야기 해준다. 즉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렇다고 체제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봉이 김선달>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 오락물이 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인 듯 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는 조금 밋밋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여름 시장을 겨냥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신스틸러들의 활약 덕분이다. 그것은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같은 인물을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데서 확인된다. 그들이 있어 <봉이 김선달>은 그나마 충분히 유쾌해질 수 있었다.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과 수지의 냉소적 사랑

 

너 나 몰라?” “알아 이 개XX.”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호통치고 욕하는 걸로 과거의 관계를 현재로 이어나갔다. 눈이 쌓인 혹독한 겨울, 얼마나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도로 위를 노을(수지)은 비틀대며 걸어가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발견한 준영(김우빈)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냥 돈이나 몇 푼 집어 던지고 돌아서려던 그였지만, 그녀의 무언가가 그를 잡아끈다. 그건 다름 아닌 애틋함이다. 그 애틋함이 함부로그의 가슴을 건드린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노을도 준영도 한가한 사랑 타령을 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노을은 아버지가 뺑소니를 당하고 어이없게 다른 사람이 대신 뺑소니범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돈이면 뭐든 함부로되어버리는 현실을 알아버린다. 죽은 아버지 앞에서 고인에 대한 애도는커녕 그 자식들에게까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는 빚쟁이들처럼. 현실은 그렇게 냉정하기만 하다.

 

준영의 엄마 영옥(진경)은 가방끈 짧다는 이유로, 검사가 된 최현준(유오성)에게서 스스로 물러나 그의 아이인 준영을 혼자 키워낸다. 영옥은 준영을 검사 만들어 그의 아버지인 현준에게 자신이 아들을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준영은 검사가 되진 못했다. 대신 톱스타가 됐지만 그것 때문에 엄마인 영옥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채 1년을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톱스타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고, 게다가 유일한 세상의 끈인 엄마와 데면데면한 준영에게 사랑 따위는 사치스런 이야기다. 죽은 아버지에게서 빚만 잔뜩 물려받은 노을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하는 세상 중의 을이다. 그녀 역시 사랑 같은 건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그녀가 툭 내뱉은 알아 이 개XX.”라는 말 속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냉소와 함께, 그에 대한 일말의 마음 같은 것이 들어가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준영과 을이 보여주는 냉소적인 시선은 사랑 따위는 개나 줘버릴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건 돈이거나 스펙으로 모든 게 결딴나는 그런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뺑소니를 쳐 사람을 죽이고도 다른 사람을 대신 감옥에 가게하고 자신은 해외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세상.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그런 세상. 돈과 권력이 있는 집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정의롭게 행동하고도 벌을 받아야 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사랑 따위의 감정은 허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함부로 사람에게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는 세상 앞에서 준영은 막돼먹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노을은 돈 앞에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비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진심일까. 어쩌다 보니 스스로를 막 대하게 된 청춘들의 작은 반항이 아닐까. <함부로 애틋하게>는 그러나 바로 그런 세상 속에서 여전히 남은 작은 희망을 바로 그 사랑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어찌 보면 요즘 세태와는 조금 다른 옛사랑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 그래서다.

 

애틋하다애가 타는 듯이 깊고 절실하다는 뜻이다. 주로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애틋함이란 어쩌다 보니 가져서는 안 되는 현실 속에서 함부로쑥 들어오는 그런 감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함부로 들어온 감정은 넘어서는 안 된다 여겨왔던 그 선을 넘게 됨으로써 더더욱 애틋해진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조금은 구식처럼 보이는 옛 사랑은 과연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선을 넘어 애틋하게다가올 수 있을까. 함부로 슬금슬금 넘어오는 이 사랑이야기가 어쩌면 희망 없는 세상에 작은 훈훈함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이야기가 산으로 간 <사냥>, 그럼에도 돋보인 안성기

 

그 산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영화 <사냥>의 포스터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엉뚱하게도 이 영화의 뒤늦은 후회처럼 들린다. <사냥>의 이야기가 엉뚱하다는 의미로 산으로 갔기때문이다.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말 그대로 사냥에 비유한 이야기다. 인간의 사냥과 동물의 사냥 그 차이를.

 

사진출처:영화<사냥>

갱도가 무너져 죽을 위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살아남은 문노인(안성기)은 산에서 우연히 금맥을 발견하고 그걸 캐러 들어온 엽사들과 비교된다. 그 질문은 단 한 가지다. 사냥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동물의 사냥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지만, 인간의 사냥은 생존과 무관한 욕망 때문이다.

 

문노인과 엽사들의 대결은 그래서 이 두 가지 차원의 사냥이 중첩된다. 문노인의 사냥은 지켜야할 목숨들을 위한 것이지만, 엽사들의 사냥은 금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명쾌할 수 있는 대결구도지만 영화는 어찌 된 일인지 자꾸만 곁가지를 덧붙인다. 무너진 갱도에서 벌어진 일들까지야 이야기의 전제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전의 가족관계 이야기까지 괜스레 파고들어 본격 스릴러와 추격전이 갖는 밀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문노인에게 숨겨진 비밀스런 설정 역시 인간과 동물의 사냥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으로 보면 문노인의 이러한 비밀은 너무나 과한 느낌이다. 그것이 그려내는 상징적인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의도로 인해 장르가 어떤 기대감을 채워주기보다는 널뛰는 느낌을 만든 건 감독의 지나친 의욕의 결과다.

 

훨씬 더 단순화했어야 했다. 산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더 집중했다면 저 <최종병기 활>이 보여줬던 긴박한 재미들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이라는 의미 부여를 과도하게 하려던 결과, 본연의 스릴러 장르의 재미들은 상쇄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보이는 가족코드 또한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가족 코드를 가져와 문노인의 절박함을 더하려는 의도 역시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굳이 출생의 비밀같은 틀에 박힌 설정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아귀를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열어놓고 추격전의 디테일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최근 <시그널>로 주목받은 조진웅 같은 배우를 데려다놓고 굳이 쌍둥이 설정까지 했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쌍둥이라면 그 설정이 주는 특별한 재미요소들이 있어야 했지만 <사냥>에서는 그걸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렇게 연기 잘하는 조진웅의 연기 역시 영화는 잘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결함들이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든 건 안성기의 독보적인 연기력이다. 65세의 나이에 람보 영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을 뛰어다니며 액션 연기를 선보이고, 한없이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의 결함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일관되게 채워 넣는 그 저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마치 <사냥>이라는 요령부득의 연기 미션 속에서 홀로 그걸 수행해내는 듯한 모습이라니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