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여유 뒤에 숨겨진 그들의 부지런함이란

 

웬일일까. 나영석 PD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자주 프로그램에 등장해 이 일 저 일 시키고, 참견하던 <삼시세끼> 정선편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촌편 시즌2의 이 차승원과 유해진은 거의 쉬는 법이 없다. 늘 무엇이든 손에 일을 잡고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할 기세다.

 


'삼시세끼 어촌편2(사진출처:tvN)'

밥 먹고 만재슈퍼에 슬슬 마실을 다녀온 참에 차승원은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다. 배추를 썰고 절이고, 무와 부추, 양파 등 야채에 고춧가루와 새우젓, 액젓을 넣어 김칫소를 만든다. 찹쌀풀을 만들어 넣어 걸쭉해진 속을 배추에 일일이 발라주고 장독에 쟁여두자 두고두고 꺼내먹을 김치가 완성된다.

 

그 와중에 유해진은 박형식을 데리고 방파제에 달라붙어 있는 배말을 따고 통발에 잡힌 놀래미를 꺼내온다. 김치를 담그고 난 차승원은 쉬지 않고 저녁을 준비한다. 유해진은 불을 피우고 밥을 안치고 차승원은 유해진이 따온 배말을 넣은 배말 시래기국을 뚝딱 만들어내고 놀래미도 소금과 라임을 뿌려 직화구이로 내놓는다.

 

아침에도 유해진은 눈 뜨자마자 통발을 확인하러 나간다. 수확 없이 그가 돌아오는 동안 차승원은 칼국수를 해먹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미리 해놓는다. 눌은밥에 찌개를 재탕해서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유해진은 갑자기 판대기를 가져와 고양이 벌이를 위한 캣타워를 뚝딱 뚝딱 만들어낸다.

 

물론 방송이 빈 구석 없이 빽빽하게 편집한 탓도 있겠지만 유해진과 차승원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다. 특히 차승원의 일은 끝이 없다. 유해진과 박형식이 바다낚시를 나가고 잠시 다리를 뻗을 법도 한데 그는 살뜰히도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한다. 하다하다 혹여나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올 걸 대비해 칼을 갈아두기도 한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을 하니 나영석 PD로서는 굳이 이런저런 지시나 참견을 할 필요가 없을 터다. 흥미로운 건 티 안 나는 집안 일이 실은 하루 종일 해도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집에 있으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고 보면 차승원고 유해진이 만재도에서 풍족한 저녁을 챙겨먹고 술 한 잔의 여유를 보여줄 수 있는 이유가 드러난다. 하루 종일 이렇게 끊임없이 준비하고 손을 놀려 놓으니 그런 여유도 느낄 수 있는 것.

 

미리미리 밀가루 반죽을 해놓으니 칼국수의 맛을 즐길 수 있고, 배말을 한 가득 따오니 시원한 배말 시래기국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전날 던져놓은 통발이 아니었다면 박형식이 스테이크 같다며 먹었던 커다란 놀래미 구이도 언감생심이었을 게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이 어디 있나. 그만큼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있기에 그런 여유도 맛보는 것이다.

 

이들의 부지런함을 보며 집 안과 밖에서 늘 무언가를 손에 놓지 않고 계실 부모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냥 당연히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집이 그런 무수한 손길들에 의해 가능해진 여유라는 것. 바깥양반 참바다 유해진과 안사람 차줌마의 재게도 움직이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지는 이유다



과도한 관심 힘들다? 그러려면 왜 출연했나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이경규의 딸 이예림의 인스타그램 셀카 사진이 한 매체에 의해 기사화됐다. 기사는 몰라보게 예뻐진이예림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영 냉담하다. 애초에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아빠를 부탁해>에 이경규가 딸과 함께 출연한 것이 마치 2세 연예인 만들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경규는 딸과 함께 광고도 찍었다.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도 찍고. 연예인이 따로 있을까.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최근 송종국 부부의 이혼 소식 때문에 MBC <아빠 어디가>에 함께 출연했던 지아, 지욱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아이들의 엄마는 그 고통을 토로하며 관심을 자제해달라고 애원했다. 송종국 부부의 이혼 소식과 함께 갑자기 기사화된 윤후에 대한 이야기에도 모친인 김민지는 몇 주 전 찍은 사진을 기사로 내다니. 무서운 세상. 인스타그램 그만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에게조차 이런 불편한 관심들이 집중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고통에 대해 호소하는 부모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여기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건 왜일까. 거기에는 방송에 동반 출연하는 연예인 가족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불편한 정서가 깔려있다.

 

이른바 금수저 물고 나왔다는 표현 속에 들어 있듯이 이들은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방송의 문턱을 넘었다. 게다가 인기도 얻었고 그런 관심 덕택에 광고도 찍었다. 아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연예인으로서의 행보를 보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렇게 연예인으로서 얻을 건 얻어간 그들이 이제 그 관심 때문에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것이 대중들로서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관심들이 쏟아질 것을 애초에 몰랐던 것일까. 결국 연예인 가족 예능이란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의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부모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심사숙고 했어야 할 일이다. 당장 아이와 함께 출연해 관심도 받고 광고도 찍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져올 부담 또한 분명히 있다는 걸 인식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들은 그래서 아이들에게조차 이렇게 쏠리는 지나친 관심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부모가 나서서 불편함을 호소할 때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한다. 애초에 특별한 과정 없이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어렵다는 방송의 문턱을 쉽게 넘어간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던 대중들이다. 그러니 거기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리얼리티쇼(우리는 관찰카메라로 순화된 표현을 쓰지만)는 그 자체로 당사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저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단 연예인이든 그 가족이든 방송에 나오겠다고 결심한다면 또한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걸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래서 위험한 것이 아이들의 방송 출연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부모가 결정하면 싫어도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 과연 그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방송 출연을 통해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기란 관심과 다른 이야기가 아니며, 관심은 과도해지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이 결국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들이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아닌가



토크쇼 외면 시대, <해피투게더>가 살 길은

 

3.7%.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해피투게더3>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유재석이 말했듯 시즌4를 향해 가기 위한 일종의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지난 주 새롭게 바뀌었으나 어딘지 산만했던 프로그램은 한 주가 지나자 훨씬 정리된 느낌(?)이었다. 게스트의 100가지 물건을 강당 같은 스튜디오에 늘어놓는 프로그램의 도입부분은 과감히 사라졌고, 대신 후반부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물건들을 갖고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전부를 구성했다.

 


'해피투게더3(사진출처:KBS)'

게스트로 출연한 조정석과 배성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배성우는 전혀 웃기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빵빵 터트렸다. 형사 연기를 하고 있을 때 형사 목소리로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는 배성우의 이야기는 그의 엉뚱한 매력을 잘 드러내줬다. 조정석 역시 과거 <건축학개론>에서 했던 납득이의 대사들이 상당 부분 애드리브에 의한 것이라는 걸 들려줬다.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하기 위해 지난주의 앞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자 뒷부분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전형적인 <해피투게더>식의 연예인 토크쇼가 되어버렸다. 물론 컨베이어 벨트가 있고 거기 물건들이 올라와 그걸 통해 이야기를 끄집어내긴 하지만 그들이 테이블에 앉아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방식은 단지 사우나에서 이 공간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줬다.

 

이렇게 되니 게스트의 출연 역시 과거 <해피투게더>가 보여주던 방식 그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유재석은 끊임없이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복기하고 그렇게 캐릭터를 끄집어냈고, 박명수는 특유의 콕콕 찌르는 멘트들로 프로그램에 적당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 전현무와 김풍은 전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건 과거 <해피투게더>의 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익숙한 유재석과 박명수 그리고 게스트들의 전형적인 토크쇼로 회귀한 것.

 

유재석은 시청자들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고 그걸 또 프로그램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을 포함한 MC들도 필요하면 하차하겠다는 뜻까지 언뜻 내비쳤다. 그 진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재석이 진심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연예인 토크쇼에 대한 시청자들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시청자들은 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JTBC에서 하는 <썰전>이나 <비정상회담> 나아가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을 연예인 토크쇼의 변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들의 관전 포인트는 <해피투게더>가 보여왔던 연예인 토크쇼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썰전>은 시사나 정치라는 특수한 소재를 가져왔기 때문에 연예인 이야기는 들어갈 틈이 없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이 아닌 외국인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틀이고, <냉장고를 부탁해>는 토크쇼라기보다는 웬만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요리 버라이어티쇼에 가깝다. 즉 스튜디오에서 하는 예능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해피투게더>는 지금껏 시즌을 거듭하면서 위기 때마다 변신했고 그 진화를 성공시켜 왔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예능의 경향을 읽어야 하고 달라진 시청자들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토크쇼라는 형식 자체가 먹히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고 그것도 연예인 토크쇼는 제아무리 재미있어도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가 자리를 잡은 것은 유재석이나 김구라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거기 매회 기막힌 사연과 이야기들을 갖고 출연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지석진이 중국에서 한류스타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나 개리가 힙합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몇 권의 노트를 빼곡히 가사로 채웠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긴 하지만 시청자들의 이야기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상이몽>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여주거나, <썰전>처럼 정치나 시사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의 현안을 쉽게 알려주거나, <비정상회담>처럼 외국인의 관점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토크보다는 버라이어티쇼에 더 초점을 맞춰 눈을 떼지 못하게 하거나 해야 시청자들은 비로소 몰입한다.

 

<해피투게더>는 일반인을 출연시킬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토크쇼보다는 스튜디오에서 벌이는 버라이어티쇼를 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그나마 연예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쿵쿵따같은 게임쇼를 하는 편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몰입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쟁반노래방같은 버라이어티 요소들을 더욱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재석의 진심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육룡>의 시대, 진정한 역사 교육이란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는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이라는 실존 역사적 인물 이외에도 이방지, 무휼, 분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과거 같았으면 실제 역사의 왜곡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을 수도 있는 인물설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들은 실제 역사와 가상을 구별할 줄 안다. 사극은 진짜 역사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대 하나의 허구로 꾸며진 드라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대중들이 이렇게 역사적 사실에 허구의 틈입을 허용한 건 단지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깔려 있는 의도의 진정성 때문이다. 역사라는 건 완벽한 팩트일 수 없다. 그것은 기록하는 자의 시선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의 역사다. 그들의 관점이 담겨진 편향된 역사일 수 있다.

 

거기에 삭제되어 있는 건 다름 아닌 민초들의 역사다. <육룡이 나르샤>에 허구로 들어간 세 인물, 이방지, 무휼, 분이는 그 삭제된 민초들을 대변하는 인물이 된다. 조선을 개국한 건 몇몇 왕들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민초들 또한 있었고 그들의 희생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 같은 팩션 사극의 허구를 허용하는 이유가 된다.

 

<육룡이 나르샤>가 과거처럼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극, 이를테면 <주몽>이나 <선덕여왕>, <태조 왕건> 등등의 사극과 달리 여러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 다양한 관점들을 포섭하려 하고 있는 데는 지금의 대중들이 생각하는 달라진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즉 역사는 몇몇 한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의 관점만이 투영된 사극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다른 관점들이 혼합된 사극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이제 대중들은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 이성계다 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 그 이면에는 이방원도 있었고 정도전도 있었다. 또 정몽주라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인물도 있었고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모른 채 스러져간 민초들도 무수히 있었을 것이다. 이제 역사는 그 다양한 관점들과 그걸 통한 토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역사의식을 제대로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이 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교과서는 많은 사례들과 관점들을 하나의 재료로서 제공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다양한 관점들을 담은 다양한 교과서들이 담보되고 그것이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역사의식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 하는 단초이자 실마리가 되어야 진정한 역사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정교과서 논란이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런 다양성을 해치고 한 가지 관점을 마치 정답처럼 제시함으로써 획일화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국가관이나 애국 같은 단어들이 덧붙여지지만 그것은 특정인들을 위해 역사를 호도하는 일이 된다.

 

본래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창업을 노래한 용비어천가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것은 태조의 6대 선조를 한 마디로 찬양하는 노래다. 그런데 왜 사극 <육룡이 나르샤>는 그 육룡을 조선창업을 했다는 태조의 6대 선조에 대한 찬양이 아닌 민초들이 함께한 조선 건국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을까. 그것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기록이 편향해 내놓았던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다. 누군가 몇몇 사람들의 역사로 기록하려 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이처럼 가려진 것들은 어차피 재해석되고 새롭게 가치매김 된다는 걸 하다못해 <육룡이 나르샤> 같은 사극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지금은 육룡의 시대. 역사의 주역은 왕만이 아니라 민초들도 함께 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한 마리의 용의 관점을 정답처럼 제시하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그건 과연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일일까. 이러다 진짜 역사의식에 대한 공부는 교과서보다 <육룡이 나르샤> 같은 사극을 통해서나 배우는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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