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인턴>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방식

 

영화 <인턴>은 생각 외의 흥행을 거뒀다. 지난 7일 현재 <인턴>의 관객 수는 170만 명에 육박했다. 소소한 휴먼드라마, 게다가 우리네 정서도 아닌 미국식 정서가 담겨진 영화에 이처럼 우리네 관객들이 많이 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사진출처: 영화 <인턴>

물론 로버트 드니로에 앤 헤서웨이의 조합이 주는 기대감은 분명히 있다. <인턴>의 홍보 포인트가 꽃할배 로버트 드니로를 인턴으로 둔 젊은 여사장 앤 헤서웨이라는 건 확실히 그림이 된다. 무수한 작품에서 놀라운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드러냈던 로버트 드니로. 게다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 신입이었던 앤 헤서웨이가 이제 젊은 CEO로 나온다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17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 동원을 한 <인턴>의 의문은 좀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가진 낸시 마이어스 특유의 따뜻한 휴먼드라마의 힘일까. 그런 점이 없지는 않다. 이 영화는 인턴으로 들어온 70세 벤(로버트 드니로)이 인터넷 쇼핑몰로 단 몇 년만에 큰 성공을 거둔 줄스(앤 헤서웨이)에게 일종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영화다. 즉 회사에서는 벤이 줄스의 인턴이지만, 인생에서는 줄스가 벤의 인턴이라고 말해주는 영화.

 

그 안에는 우리에게도 잘 통하는 아날로그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줄스가 운영하는 회사의 대부분은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굴러간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지시도 이메일로 전달되고 고객들도 직접 대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불만사항도 인터넷으로 통해 전해지고 수정된다. 이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온 벤은 다른 인턴이 컴퓨터 주변기기와 스마트폰을 꺼내놓는 장면에, 오래된 가방에서 노트와 펜, 계산기를 꺼내놓는다. 디지털로 어딘지 쿨해 보이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회사에 벤은 따뜻한 아날로그적 인간관계를 풀어놓는다.

 

이러한 아날로그 정서를 바탕으로 사장을 보필하는 충직하고 경험 많은 벤 같은 비서(혹은 친구나 동료)에 대한 판타지도 있다. 워킹맘의 입장인 줄스는 그래서 일과 가정생활 모두를 잘 해내고 싶은 직장여성들과 공감하는 면이 있다. 벤은 정서는 아날로그지만 마인드는 혁신적인 사람이다. 능력 있는 여성이 가정사 때문에 집안에 주저앉는 것을 그는 안타깝게 바라본다.

 

<인턴>의 성공에는 연기자들에 대한 믿음과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정서의 훈훈함이 분명 깔려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만한 성공의 이유를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건 <인턴>이라는 제목에서 찾아지지 않을까.

 

이 영화는 미국의 기업들이 일종의 사회 기여 차원에서 하는 시니어 인턴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즉 은퇴한 시니어들을 기업이 인턴으로 채용하는 일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젊은 인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 속에서의 인턴이 우리나라에서의 인턴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인턴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저 <미생>의 장그래(임시완) 같은 인물이거나 현재 방영중인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황정음)일 것이다. 정규 채용이 되기 위해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하는 존재. 그렇게 죽어라 일해도 정규채용은커녕 쫓겨나기 일쑤인 그런 존재.

 

즉 이 영화의 인턴이라는 제목은 기묘하게도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CEO와 거의 대등한 위상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녀의 일은 물론이고 삶까지 인생 상담을 해주는 인턴. 우리네 인턴과는 너무나 달라서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그런 인턴이 이 영화에는 존재한다.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인턴이라는 착시효과의 판타지를 보게 된다면, 중년 이상의 관객들은 영화가 말해주는 아날로그 정서와 은퇴해도 여전히 강력한 능력으로 남아있는 경륜이 효용가치가 있다는 판타지를 보게 된다. 물론 워킹맘들은 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일과 가족을 모두 지켜내는 판타지를 들여다볼 것이다.

 

이러니 기묘하게도 <인턴>이라는 영화는 우리네 인턴제와는 너무나 다른 미국식 인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우리 정서와 판타지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다 들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인턴판타지와 실버 세대의 인정 욕구 그리고 워킹맘들의 판타지가 그것이다.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네 관객은 이 영화를 우리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예뻤다>, 무려 3배나 뛴 시청률의 비결

 

지금껏 이처럼 드라마틱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있을까. MBC <그녀는 예뻤다>의 첫 회 시청률은 4.8%(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다. 사실상 드라마로서는 회생이 쉽지 않은 시청률 수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2회에 7.2%로 훌쩍 시청률을 올리더니 그 후로 매회 1%씩 시청률을 올렸고 마침내 13.1%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에 올라섰다. 시작과 비교하면 무려 3배나 뛴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무엇이 이런 드라마틱한 시청률의 원인이었을까. 그 첫 번째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초 기대감이 워낙 낮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지상파 드라마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상황과 캐릭터들 그리고 뻔한 스토리 전개가 그간 지상파 로맨틱 코미디물이 시청자들에게 준 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첫 시청률 4.8%에는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에 기대감 없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황정음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더더욱 스테레오 타입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즉 황정음은 <내 마음이 들리니>, <비밀>이나 <킬미힐미>를 통해 절절한 입장을 드러내는 드라마에서 확실한 연기력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는 어딘지 과거 초창기 그녀의 존재감을 알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리얼하게 술 취한 연기를 선보이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예뻤다> 역시 그 정도의 가벼운 작품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첫 회를 본 후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로맨틱 코미디에 항상 등장하는 예쁜 여 주인공의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역변한 인물 김혜진(황정음)이라는 캐릭터가 먼저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가 처한 일과 사랑이 기막히게 엮어진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은 마음을 열었다. 낮은 스펙과 역변한 외모 때문에 어딘지 자신의 가치를 한없이 평가절하 하는 김혜진이라는 인물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미생이기도 했다.

 

황정음은 김혜진 캐릭터를 입고 말 그대로 훨훨 날았다. 작정한 듯 망가지는 모습은 그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김혜진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술 취한 연기로 주목을 끌었다면 그녀는 이 작품에서는 술 취해 핸드폰을 부르는 모습이나 감기약을 먹고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 모습 같은 디테일로 보는 이들을 깨알같이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차츰 극중 김혜진의 진가를 차츰 알아가는 김신혁(최시원)의 입장이 되어갔다. ‘그녀는 예뻤다(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는 생각의 변화를 황정음이 김혜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것.

 

경쟁작이었던 <용팔이>가 버티고 있었지만 매 회 시청률을 올렸고 <용팔이>가 떠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반등한 <그녀는 예뻤다>는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와 황정음이라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로맨틱 코미디도 사회적인 맥락을 담아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고, 황정음은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시트콤으로 웃음을 주기만 하던 배우가 아니라 이제 정극은 물론이고 희극까지 모두 소화해내는 연기자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캐릭터와 내용이 이토록 그 드라마의 행보와 맞아떨어질 수 있다니.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배캠>에서 듣는 만재도 유해진의 신청곡이라니

 

지난 105일 저녁 7시 즈음,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특별한 노래신청(?)이 들어왔다. 라디오를 듣던 분들이라면 반색했을 노래신청. 바로 참바다 유해진이 보낸 노래신청이었다. 과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언제든 노래신청을 하라 했던 배철수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유해진은 마돈나의 ‘La Isla Bonita’를 신청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노래를 신청한 곳이 흥미롭다. 다름 아닌 <삼시세끼> 어촌편2를 찍기 위해 떠난 만재도에서 신청한 노래라는 것. 배철수는 이 조금은 애잔하면서도 신나는 리듬의 마돈나 노래를 틀어주며 그 노래를 듣고 어깨 춤을 들썩일 유해진의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동 시간 그 사연과 노래를 들은 청중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1을 눈여겨봤던 시청자들이라면 유해진이 그 만재도 벽지의 집에서 찾아낸 조금은 낡은 라디오를 기억할 것이다. 구멍가게가 하나 뿐인 섬이다. 그것도 주인이 언제 문을 열어줄지 몰라 갈 때마다 헛걸음을 하게 하는 구멍가게. 그러니 문화생활이라고 별게 있겠는가. 그런 곳인지라 낡은 라디오의 직직 대며 나오는 노래가 남다른 감흥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월요일 저녁. 어딘지 일주일의 첫 날이 주는 피곤함을 달래주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뜻하지 않게 흘러나온 만재도 참바다 유해진의 음악신청은 잠시나마 도시의 바쁜 일상을 떠나 그 멀고도 먼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도시에서 떨어진 만큼의 그 여유로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 유해진이라는 어딘지 유유자적하는 인물이 그것도 마돈나의 ‘La Isla Bonita’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일 상상은 생각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을 흐뭇하게 만든다.

 

1987년도에 마돈나가 발표한 ‘La Isla Bonita’란 노래의 뜻은 영어로 ‘The Beautiful Island’라고 한다. 그러니 그 출렁이는 듯한 음률에 더해진 이런 의미는 만재도라는 공간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이번 주부터 방영될 <삼시세끼> 어촌편2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건 당연지사다. 라디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삼시세끼>를 연결해주었고 그로써 도시와 섬을 연결해주었으며 나아가 도시인의 지친 마음과 저 섬의 유유자적을 연결해주었다.

 

유해진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노래를 신청하고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과정은 <삼시세끼> 어촌편이 갖고 있는 일상의 느낌을 잘 말해준다. 누구나 노래를 신청하는 라디오가 아닌가. 유해진은 이 노래신청을 통해 <삼시세끼>에서의 자신이 배우가 아닌 도시를 잠시 떠나 섬에 들어간 아주 보통 사람의 일상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니 대중들이 그의 일상에 쉽게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일 게다.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의 모습에는 과장됨이 거의 없다.

 

<삼시세끼> 정선편이 마무리되고 금요일 밤이 어딘가 헛헛함을 느꼈다면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해준 위안과 편안함이 적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갑자기 들리는 유해진의 만재도 소식에 반색했다면 잠시 멈춰 누리는 여유에 우리가 그만큼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낡은 라디오와 <배철수의 음악캠프><삼시세끼>. 달라도 닮은 구석으로 우리의 일상을 조금은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육룡이 나르샤>는 왜 정의와 힘에 대한 화두를 던졌을까

 

아마도 여말선초의 이야기가 사극으로 자주 등장하는 건 우리네 역사에서 이 때가 가장 극적인 순간이기 때문일 게다. 고려 말의 혼탁했던 시기, 그 어둠을 깨치고 개혁을 꿈꾸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이야기는 현재의 삶이 팍팍해지면 해질수록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정도전>이 나라가 아닌 백성을 선택하고 새롭게 세운 나라가 왕이 바뀌어도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도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부재한 정치체계에 대한 열망을 담아냈던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면 <육룡이 나르샤>가 이 시기를 다시 소환한 이유는 뭘까. 우리 시대의 어떤 결핍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걸까.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의 첫 방송은 이 대하사극에 등장할 이방원이나 이방지, 분이 같은 여러 인물들을 두루 설명하고는 있지만 진짜 메인 스토리는 육룡 중 첫 번째 용 이성계에 대한 이야기다.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있지만 웬일인지 변방의 호랑이로만 살아가는 이성계(천호진). 그가 중앙 정계로 들어오는 과정과 그를 견제하는 이인겸(최종원)의 이야기.

 

이인겸은 사람을 부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 하나는 그 사람이 욕망하는 걸 이뤄주고 부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약점을 잡고 부리는 것. 하지만 이성계는 욕망도 약점도 도통 보이질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계를 그는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것. 하지만 이인겸은 간자를 통해 이성계의 약점을 알아낸다. 그것은 이성계의 집안이 사실은 원나라 쌍성총관부의 조소생(안길강)의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으나, 원이 쇠퇴하자 그를 배신함으로써 고려의 무장으로 자리를 잡게 된 사실이다.

 

백성들의 존경과 칭송을 한 몸에 받는 이성계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이런 자신의 불미스런 과거사였던 것. 그는 자신의 부하가 배신을 하자 이미 한 번 배신한 그에게 또 한 번 배신하지 말라며 그 배후를 묻지 않고 베어버리는 인물이다. 그만큼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 결국 이 약점을 알아낸 이인겸 앞에 이성계는 고개를 조아리며 한번만 봐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인겸은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불의를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다. 그는 아이를 낳은 아녀자들을 잡아다가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고 그 돼지를 요리해 먹는 인물. 결국 젖을 먹지 못한 그 어미의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는 백성의 고혈을 빠는 관료들의 불의를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 불의를 자신의 아버지인 이성계가 단박에 뿌리 뽑을 것이라 믿었던 어린 이방원(남다름)이 이인겸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무력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정치력을 가져야만 불의를 깨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육룡이 나르샤>의 첫 번째 용 이성계가 던진 화두는 힘만으로는 또 정의에 대한 의지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견고한 현실이다. 남다른 힘을 갖고 있는 이성계지만 그는 한 때의 불의로 인해 태생적인 약점을 잡히는 인물이고, 어린 이방원은 죽어 나가는 백성들을 목도하며 남다른 정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지만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이것은 훗날 이방원이 그토록 힘을 희구하게 된 이유가 된다.

 

불의를 깨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정의에 대한 의지와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육룡이 나르샤>의 첫 번째 용 이성계는 보여준다. 이건 어쩌면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두 가지 동력, 정의에 대한 의지와 힘. <육룡이 나르샤>가 지금의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는 첫 번째 화두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