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성을 깨는 묘미, 이게 바로 하명희 작가의 힘

 

어찌 보면 너무 뻔한 제목이다. <상류사회>. 드라마들이 지금껏 가장 많이 다뤄왔던 그 소재. 그래서 상투성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재다. 서민들의 선망과 호기심, 궁금증을 자극하려면 서민적인 이야기보다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다루라는 건 드라마계에 오랫동안 내려왔던 불문율 같은 것이기도 하다.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상류사회>는 그 캐릭터들의 구도 또한 익숙하다. 전형적인 재벌가 남자인 창수(박형식) 같은 인물도 있고 남다른 실력으로 그 상류사회에 편입하고픈 욕망을 가진 준기(성준), 그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살아가면서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하는 지이(임지연)나 재벌가 안에서도 차별을 받는 윤하(유이) 같은 인물도 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캐릭터들이다.

 

보통 이 정도 되면 기대할 게 별로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뻔한 소재에 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이니. 하지만 여기에는 이 모든 걸 뒤집어엎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이 뻔해 보이는 드라마의 작가가 다름 아닌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주목받은 하명희 작가라는 점이다. 불륜이라는 뻔한 소재를 완전히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려보라. 상투성을 가져와 그것을 뒤집는 건 하명희 작가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상류사회>의 첫 회를 다시 돌이켜보면 그 안에 무언가 다른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윤하 같은 인물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재벌가 사람들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그 상류사회의 삶에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녀의 엄마인 혜수(고두심)는 제왕적인 남편 밑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 그녀는 딸 윤하에게 자신에게 쌓인 화풀이를 해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윤하가 신분을 숨긴 채 지이 같은 치열한 삶을 사는 청춘과 친구사이로 지내는 건 그가 상류사회에서는 도무지 마음을 열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윤하의 캐릭터는 흔하디 흔한 상류사회의 삶을 통해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질문한다.

 

창수와 준기는 사적으로는 친구지만 공적으로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다. 이 미묘한 관계는 아마도 사적인 사랑이 얽히게 되면서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상류사회에 편입하고픈 욕망과 사적인 사랑에 대한 욕망의 부딪침은 준기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는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청춘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상류사회>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도 그 삶이 고착화된 인물들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외적 환경과 무관하게 순수와 욕망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요컨대 적어도 하명희 작가에게는 그래서 뻔한 구도와 소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대감을 더 높여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 뻔한 구도와 소재의 상투성에 갇혀 있는 것을 이 작가가 깨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과연 <상류사회>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1회보다 2회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복면가왕>, 복면은 가수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백청강에 대한 편견은 꽤 깊다. MBC <위대한 탄생>의 우승자지만 노래 실력보다는 당시 그를 천거한 멘토 김태원의 아우라가 작용했다는 시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연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절하도 백청강에 대한 편견을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이 실패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잘못된 멘토-멘티 시스템으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참가자의 멘토가 동시에 심사를 한다는 건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백청강이 과거 지인의 미니홈피에 한국비하 글을 작성했다는 루머는 그에 대한 편견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조선족을 바라보는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심지어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압도적인 문자 투표를 받는 것이 조선족들의 몰표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가창력에 있어서도 백청강은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들에게 늘 비음과 모창을 지적받았다. 비음이 과하고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원 멘토만큼은 달랐다. 그는 당시 영화 <왕의 남자>의 주제곡인 인연을 부르는 백청강에게 이제 비음을 살려도 된다너무 억누르는 모습은 듣는 이에게도 불편함을 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그에 대한 편견들 때문일까. 직장암으로 2년여 간의 투병생활을 거친 그가 <복면가왕>을 통해 무대에 선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어 보인다. 복면 하나로 이 모든 편견들을 가려버리고 무대에 서자 그의 비음은 마치 카스트라토 같은 섬세한 여성성까지를 표현해내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래서 아무도 남자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그가 복면을 벗었을 때 우리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별의 편견까지 깨버리는 무대라니!

 

백청강의 무대는 여러모로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독특한 지점들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얼굴을 가리니 사라져버리는 편견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를 상상하며 자유롭게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패널로 앉아 있던 이윤석은 백청강의 무대에 대해 이해인 수녀님을 운운할 정도로 여성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웃음을 주지만, 그런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며 듣는 일이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닐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만큼 듣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 얼굴이 주는 편견, 이름이 주는 편견, 성별이 주는 편견, 출신이 주는 편견 그리고 그 가수의 정체성이 주는 편견... 노래 한 곡을 들어도 우리는 너무 많은 편견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얼굴을 가려주는 건 가수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듣는 청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복면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복면가왕>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가수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노래를 듣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보다 자유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여장으로 자신을 가린 채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장기인 비음을 마음껏 써가며 카스트라토처럼 노래 부른 백청강의 무대는 그 진가를 잘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경연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노래 듣는 것이 식상해졌다면 그건 어쩌면 그 오디션들이 만들어낸 많은 선입견과 편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걸 가릴 복면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생각하면 놀라운 김종국과 예능의 인연

 

이 정도면 연기를 해도 괜찮을 듯싶다. KBS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김홍순 PD로 출연하고 있는 김종국 얘기다. 사실 그간 예능에서 활약해온 그지만 연기 도전은 거의 없었다. 권칠인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 까메오로 출연했던 것이 유일한 연기 도전이라면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그랬던 그가 <프로듀사>에서는 의외의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김홍순 PD는 프로그램 보다는 윗사람 눈치 보기와 의전으로 승부를 보려는 PD. 운동회 축구대회에서 국장이 몰고 가는 길을 터주기 위해 상대편이면서도 자기편 사람들을 밀어내는 적극성(?)을 보이는 인물. 그 큰 덩치와 걸맞지 않게 소심한 모습은 이 캐릭터가 가진 웃음 포인트다.

 

연기력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전혀 이 김홍순 역할에서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김종국이 꽤 괜찮은 몰입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이것은 김종국에게 딱 맞춤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마법이기도 하다. 김종국 하면 떠오르는 게 덩치지만 그의 창법은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김홍순이란 캐릭터의 대부분은 김종국이 주는 느낌과 이미지에서 상당부분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국은 김태호 PD를 연기하는 박혁권과 짝을 이뤄 <프로듀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송국 서열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웃음을 주는 것은 어딘지 프로듀서라고 하면 다른 직업과는 다를 것이라 여기지만 이들이 하는 행동은 여느 직장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력보다는 인간관계에 치중하고, 도전하기보다는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모습.

 

김종국이 <프로듀사>에 출연한 것은 기획적으로 보면 중국을 염두에 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중국에서 반응이 열광적인 건 이 드라마에 중국 한류스타 서열 1,2위가 모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1위가 김수현이고 2위가 김종국이다. <런닝맨> 중국판이 만들어지면서 초반에 거기에서 함께 뛰었던 김종국에 중국 팬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그의 든든한 능력자 이미지는 그가 유재석보다 중국에서 더 어필되는 이유다.

 

하지만 <프로듀사>의 김종국은 단지 기획적으로 들어가 있는 구색이 아니다. 그는 이 드라마의 한 부분을 분명히 잘 소화해내고 있고, 그것은 어찌 보면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왜 프로듀서가 아니라 프로듀사인가. 박사, 의사 같은 권력적인 직업처럼 여겨지지만 그 프로듀서들은 사실 신입부터 관리자들까지 보통의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 직업에 대한 강박과 편견을 깨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래서 김홍순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김종국은 예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인기가수로서 맹활약했지만 그 후로 김종국은 줄곧 예능에서 그 근육을 키워왔다. <X> 시절 윤은혜와의 미묘한 캐릭터 관계로 주목받더니 <패밀리가 떴다>에서 확고한 자기 캐릭터를 세웠고 이어 <런닝맨> 능력자로 중국 한류스타로까지 등극했다. <프로듀사> 역시 예능국 PD 이야기를 다루는 예능 드라마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김종국과 예능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김종국은 이번에도 <프로듀사>를 통해서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웬만한 연기자들만큼 충분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무도>, 해외 극한 알바로 진짜 하려던 이야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호도협의 풍광을 즐길 때 저 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마에 태웠던 걸까. 1200여 개의 계단을 가마에 관광객을 태운 채 오르내리며 그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이 더 힘든 건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들은 일할 때 누군가는 놀고 있다는 그 상대적 박탈감은 아닐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이 국내에서 극한알바를 도전했던 의미도 바로 그것이었다. 고층빌딩의 유리벽을 일일이 손으로 닦아내고, 지하 탄광에서 탄가루를 온 몸에 뒤집어쓴 채 석탄을 캐고, 그 많은 택배 상자들을 일일이 차에 실어 나르는 것 같은 일들. 우리가 그 고층빌딩 안에서 창밖의 풍광을 내려다보고, 편안하게 연탄 위에 고기를 구우며, 클릭 하나로 물건을 주문해 받을 때 저편에서는 누군가 그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무한도전>해외 극한 알바특집은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포상휴가를 간다며 방콕까지 가서 굳이 케냐, 중국, 인도로 각각 팀을 나눠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심지어 유재석마저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들은 차츰 그 선택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고된 일을 한 것에 대해 보람마저 느끼게 되었다.

 

중국에서 위험천만한 잔도공 작업을 너무 무서워 포기했던 하하와 정형돈은 가마꾼 알바를 하기 위해 간 호도협에서 그 잔도공 작업 덕분에 관광객들이 관광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가마꾼들의 그 힘겨운 노동 덕분에 가마를 탄 관광객들이 편안히 호도협을 관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그래서였을까. 하하와 정형돈이 마지막으로 10여년 째 그 일을 해온 가마꾼들을 태워주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 일과 관광의 역할을 바꿔 해본다는 것.

 

인도에서 300벌의 빨래를 쉴 새 없이 해야 했던 유재석과 광희는 자신들이 그렇게 힘겹게 한 빨래를 고객에게 갖다 주며 보람을 느꼈다. 도비왈라라 불리는 이 빨래꾼(?)들에게 10년 동안 휴가 없이 매일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재석은 “10년 동안 매일 일한 사람도 있는데 무슨 10주년을 기념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극한 해외 알바 체험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몰랐을 사실들이다.

 

케냐에서 상처 입은 아기코끼리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 박명수와 정준하는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는 약해보였지만 그 일이 주는 보람은 그 어느 것보다 컸다고 여겨진다. 마치 부모 자식 같은 감정을 점점 느끼며 아기코끼리들에게 마음을 주는 그들의 모습은 그저 아프리카의 자연과 야생을 즐기는 관광객들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자연을 보호하려고 헌신하는 이들이 뒤에 있었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휴가를 떠나지 말고 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휴가를 즐길 때 그 뒤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분들의 땀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방콕으로 돌아온 출연자들이 이제야 비로소 진짜 휴가를 즐기게 되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즐거움이 또한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휴가를 극한 노동으로 바꾼 것에 대해 우리가 해도 너무 했다고 했던 마음은 그래서 고스란히 그 해도 너무한 노동이 주는 가치를 절감하게 만든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역발상이 아닌가. 그 극한의 노동 체험이 짜증에서 보람으로 바뀌는 그 과정 역시 시청자들에게 똑같은 경험을 하게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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