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평범함을 가장 잘 연기해내는 배우

 

그는 <아저씨>의 원빈처럼 멋지게 달리지 못한다. 베테랑 스타 형사지만 달리는 폼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같다. 원빈은 <아저씨>라는 작품에서 전혀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지 않지만, <악의 연대기>의 베테랑 스타 형사를 연기하는 손현주는 오히려 편안한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 점은 아마도 손현주라는 배우가 관객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일 것이다.

 

사진출처:영화<악의 연대기>

드라마 <추적자>는 그의 이런 친근한 이미지가 서민들의 정서와 만나면서 폭발한 드라마였다. 백홍석이라는 형사였지만 그는 형사라기보다는 한 평범한 아빠에 가까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무참한 죽음을 발견한 그는 아저씨 같은 몸으로 뛰고 또 뛰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힘겨움과 절박함이 오롯이 시청자들에게 느껴졌다.

 

<악의 연대기>에서 손현주가 연기하는 최창식 반장은 같은 형사지만 백홍석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그는 한 때 백홍석 같은 순수한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권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아줄이 거의 손아귀에 닿을 즈음 그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건이 터진다. 무슨 일에선지 그를 죽이려 하는 인물과 사투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그가 백홍석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그것은 정당방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바닥을 굴러 어렵게 올라선 자리에 서게 된 최창식 반장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안에서 조금씩 생겨난 악의 씨앗들이 어느 순간 표면 위로 솟아오른 것일 게다. 선과 악의 경계는 그렇게 얄팍하고 어떤 계기에 의해 불쑥 그 얼굴을 내민다. <악의 연대기>는 바로 저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의 수송담당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관한 글에서 쓴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악인의 얼굴? 그런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악의 연대기>라는 영화의 최창식 반장 역할에 손현주만한 연기자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는 심지어 악역을 연기하고 있어도 어딘지 짠한 느낌을 주는 그런 배우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여전히 옆집 아저씨 같은 그 모습과 때로는 동료들을 동생들처럼 끔찍이 챙기는 따뜻함을 가진 인물. 최창식 반장에서는 저 손현주라는 배우가 가진 인간적인 냄새 같은 것이 묻어난다.

 

<악의 연대기>는 꽤 잘 짜여진 영화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전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긴박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바로 손현주라는 배우다. 그는 영화 속에서 악역이지만 이상하게 관객들은 그 악역이 범죄를 은폐하려 하는 그 시도들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걱정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러면 안되는데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물에서 인물에 이런 몰입을 하게 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어떤 역할을 하든 일단 심정적인 동조나 동정을 하게 만드는 건 손현주의 연기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가 과거 누군가의 평범한 남편 같은 역할에서 완전히 다른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그는 여전히 그 평범함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연기자다. 다만 다른 역할이라는 옷을 바꿔 입었을 뿐.

 

<사랑>, 위대한 안현수, 그 뒤엔 위대한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절박했으면 안현수 선수는 고장 난 몸을 그토록 혹독하게 몰아세웠을까. 그가 무릎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한 몸을 이끌고 러시아 귀화까지 결심하게 된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한참 기량이 떨어지는 러시아 선수들과의 대회에서도 입상조차 하지 못한 그는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랬던 그가 다시 몸을 회복하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 러시아의 영웅이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네 언론에서도 안현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성적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안현수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빛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를 비로소 완벽하게 해준우나리의 사랑이었다. 러시아로 와달라는 안현수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우나리는 그를 보고 그저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은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안현수 선수를 위해 우나리가 보여준 사랑은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헌신적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함께 지내지 못해 선수촌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우나리는 오갔다고 한다. 오로지 안현수 선수가 그녀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 먼 길을 매일 오가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자그마한 선수촌내의 숙소 맨 바닥에서 갖가지 요리를 해 안현수 선수에게 차려주는 우나라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5분이면 뚝딱 해치우는 그 한 끼 밥을 위해 2시간을 준비하고 개수대도 없는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는 우나리의 얼굴에서는 그러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잘 먹는 자식을 보며 흐뭇해하는 어머니들의 마음 같은.

 

그토록 오래 준비해왔던 올림픽에 러시아 대표로 첫 경기를 가지게 됐을 때 우나리가 안현수 선수에게 한 말은 메달을 따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가 다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그녀의 사랑에서는 연인 그 이상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첫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그를 보며 그토록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헌신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의 기적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케이트 선수로서는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에 다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싹쓸이한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그라도, 또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습을 해온 그라도, 그의 몸과 마음을 살뜰히 챙겨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휴먼다큐 사랑>이 안현수와 우나리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자 한 것은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까지 갔다가 다시 기적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사랑의 힘이었다. 안현수 선수의 이야기는 보통의 서민들에게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어벤져스>와는 다른 <매드맥스>의 입소문 질주

 

79년도에 상영되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던 멜 깁슨의 <매드맥스>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훨씬 다이내믹한 카메라 기술과 CG로 총무장해 다시 돌아온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더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의 <매드맥스>가 사막과 펑키한 폭주족들 그리고 헤비메탈한 스타일을 엮어낸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환호 받았다면 돌아온 <매드맥스>는 이것을 심지어 예술적인 영상연출로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영화 <매드맥스>

모래 폭풍 속으로 뛰어 들어가 질주하는 차들을 잡아낸 영상은 마치 초현실주의 예술 작품의 세계 속에 관객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사람을 피 주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물질화되어 보이는 육체가 터지는 폭탄 위로 날아다니고, 질주하는 자동차 위에서 다른 자동차로 뛰어오르는 장면들은 액션을 넘어선 퍼포먼스로 보인다. 장대 위에 사람을 태워 마치 낚시질하듯 도망치는 여자들을 낚는 장면의 기발함은 이 감독의 상징체계가 얼마나 남다른가를 잘 보여준다.

 

놀라운 건 영상연출만이 아니다. <매드맥스> 특유의 의상과 헤비메탈 스타일은 하나하나가 캐릭터처럼 보인다. 자동차 앞에 매달려 진군의 헤비메탈 연주를 하는 괴상한 사내가 주는 기묘함은 <매드맥스>만의 독특한 세계를 잘 대변해준다. 온몸에 하얀 칠을 하고 죽음을 구원이라 부르며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워보이들이나, 자유와 희망을 찾아 도주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를 돕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같은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잘 구축된 캐릭터들이다.

 

무엇보다 맥스보다 더 주목되는 여주인공 퓨리오사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이다. 한쪽 팔이 잘려져 기계 팔을 덧대고 있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주인공 맥스는 마치 퓨리오사를 돕는 조력자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폭력에 맞서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퓨리오사는 똑같은 폭력으로 남성적 폭력의 세계에 대항하고 있지만 그녀가 지키는 여성들은 척박한 사막 위에 씨앗을 심으려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사막은 이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다. <매드맥스>가 호주라는 공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드라이 랜드라고도 불리는 호주의 특징을 이 영화가 가장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막화가 진행되는 그 곳의 풍경들은 아마도 조지 밀러 감독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막이라는 텅 빈 공간은 그래서 감독의 손길에 의해 기막힌 스타일의 이야기들이 채워지는 가능성의 스크린이 되었다.

 

<매드맥스>는 새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어벤져스2>의 수치가 얼마나 무색한 것인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케팅과 극장의 몰아주기로 탄생한 천만 관객이 영화의 질적 우수함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2시간이 어떻게 훌쩍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압도적인 몰입감의 재미에 심지어 예술미까지 느끼게 되는 영상 연출, 그리고 결코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영화적 메시지까지. <매드맥스>의 입소문 질주는 천만 <어벤져스2>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12>과 서울대, 그 부조화의 재미

 

우리에게 서울대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혹 막연한 스펙의 가면으로만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가면 뒤에 실제로 웃고 우는 학생들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서울대를 찾아간 <12>이 흥미로웠던 건 그 막연한 느낌으로만 다가왔던 그 곳에서 공부하고 땀 흘리고 있는 학생들과 직접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물론 대학은 본래 예능의 텃밭이었다. 대학 특유의 자유로움은 예능과 만나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곤 했으니 말이다. 과거 1998년에 방영됐던 <캠퍼스 영상가요>는 대표적이다. 강호동이 MC를 맡은 이 프로그램은 끼 많고 재주 많은 대학생들을 발굴해냈는데, 이 프로그램이 인연이 되어 연예계에 입성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혁재는 대표적이고 전현무, 류수영, 샘 해밍턴도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은 인물들이었다.

 

<12>도 대학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과거 충주대에서 깜짝 이벤트로 일이 커진 게릴라 콘서트<12>의 레전드에 해당한다. 본래 목적지는 문경이었으나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르게 된 충주대에서 군것질할 돈이나 벌어보자고 했던 게릴라 콘서트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진 열기가 <12>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하지만 서울대를 찾아간 <12>의 그림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공부 잘하는 수재들 많기로 유명한 서울대는 어찌 보면 무식하고 놀기 좋아하는 <12>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만점자 세 명을 찾아오라는 미션이 너무나 쉬운 서울대라는 공간과 수능수학으로 알고 있는 정준영과의 만남이라니.

 

수조의 물의 양을 재오라는 미션을 받고 황당해하던 정준영은 그러나 지나는 학생의 차분한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이성의 방에서 세 명의 학생을 오목으로 이기라는 미션을 받은 데프콘은 그 게임이 오목인 줄 몰라 모눈지에 갖가지 귀여운 그림을 그려내는 여학생들을 만나고는 즐거워했다.

 

또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학생들에게 연주시키라는 미션을 받은 김종민은 단 10분 연습으로 환상적인 곡 연주를 성공시킨 음대생을 만났고,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받은 차태현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SNS를 뒤져 김태희 뺨치는 미모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서울대생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느껴지는.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수능 만점자를 찾아오라고 해서 막막해 했던 김주혁이 나중에는 만점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발견했던 순간이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집결지로 왔는데, 그 장소에서만 만점자들을 몇 명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서울대라는 공간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부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서울대가 어딘지 놀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면, 늘 퀴즈 게임 등을 통해 무식을 뽐내왔던 <12>은 공부와는 영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와 <12>이 의외로 잘 어울리고 그 섞여드는 과정이 흥미로울 수 있었던 건 공부와 놀이의 부조화가 그 안에서 깨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2>의 놀이에 적극적이었고, <12>은 서울대의 그 면학 분위기에 자못 진지해지기도 했다. 이 놀이와 공부가 어우러지는 공간은 또한 서울대 캠퍼스가 해외의 대학들처럼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도시인들에게는 녹지와 공원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는 대학 캠퍼스는 특유의 지성적인 분위기가 발길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닌가.

 

대학이 어느 순간부터 스펙이 되어버린 지금, ‘서울대라는 이름은 그 스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스펙으로만 막연히 그려지는 서울대는 허상일 뿐이다. 그 안에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젊음의 열정을 불태우고 각각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실제적인 대학생들이 있다. 그 가면으로서의 스펙이 아닌 실제 서울대의 민낯을 살짝 보여주는 시간. <12>과 서울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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