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던진 SBS드라마의 승부수, 그 의미

 

SBS 드라마가 제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껏 월화수목 드라마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었던 본격 장르물을 연달아 라인 업시킨 것. <신의 선물-14>은 스릴러에 타임슬립이 덧붙여진 드라마이고 <쓰리데이즈>는 추리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액션 스릴러다.

 

'신의 선물 14일''쓰리데이즈'(사진출처:SBS)

미드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우리도 이런 드라마를?”하며 반색할 만하다. 흔히들 장르라고 하면 정해진 문법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네 장르드라마는 일종의 변칙을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응급남녀> 같은 의학드라마를 해도 멜로가 빠지지 않고 가족이 빠지지 않는다. 아니 이 드라마는 사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멜로, 즉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복합 장르 드라마도 일단 메인은 멜로다. 화제가 됐던 <상속자들>도 그렇고 심지어 <감격시대> 같은 남자들의 드라마에서도 멜로는 빠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르물들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멜로드라마는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자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된 데는 장르 드라마의 시도를 통해 얻게 된 일종의 타협의 결과다. 한때 <하얀거탑>이 나왔을 때 대중들은 멜로 없이도 재밌다는 얘기를 꺼내며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시청률로 옮겨지지 못했다. 멜로 없이 본격 장르물로 달린 <하얀거탑>은 그래서 호평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

 

이 학습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 이후에 나온 장르물들은 여지없이 멜로와 가족을 끼워 넣었다. 한 때는 가운 입고 연애만 한다는 무늬만 의학드라마에 대한 비판으로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생겼지만 막상 장르물이 시도된 이후에는 역시 멜로를 넣어야장사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알고 보니 멜로였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세련됨을 보장하는 적당한 장르물과 드라마에 빠지게 해주는 익숙한 멜로의 교집합을 오히려 즐기는 시청자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과 사정을 두고 보면 <신의 선물-14>이나 <쓰리데이즈>를 월화수목에 배치한 것은 시청률면에 있어서는 무모해 보인다. 이들 본격 장르물은 기존 드라마 시청 패턴과는 사뭇 다른 관전 포인트를 요망하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가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 같다고 여겨지는 것은 기존 우리네 드라마 시청 패턴의 독특함을 말해준다. 극장과 집이라는 공간의 차이 때문에 드라마는 확실히 영화만큼 몰입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본격 장르물이 가진 이야기의 촘촘함은 시청자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패턴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이것은 기존 지상파들의 방영 패턴이 수동적인 본방사수에서 점점 선택적 시청으로 바뀌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IPTV나 티빙 같은 모바일 시청은 직접 선택해서 원하는 시간에 본다는 점에서 몰입도가 훨씬 높다. 물론 극장이라는 몰입을 극대화한 공간을 가진 영화만큼의 몰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저 채널 돌리다 무심코 세워두고 보는 시청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재는 안방극장이 점점 시스템화되어가는 추세다. 점점 대형TV가 일반화되어가는 건 이런 변화를 잘 말해준다.

 

콘텐츠의 수용패턴은 전적으로 시청자들의 기호나 취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디어 환경에 의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 변화 속도를 보면 이제 TV 시청 패턴이 바뀔 날도 머지않았고 이미 이 변화는 시작되었다. 다만 미디어 변화에 맞지 않는 시청률 추산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신의 선물-14>이나 <쓰리데이즈>의 시청률은 당연히 낮다. 이들 콘텐츠가 과거의 시청패턴을 반영하는 현재의 시청률 추산 시스템에서 좋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도 IPTV와 다운로드를 포함한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는 시청률 추산을 다시 내본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당면한 시청률이 광고 수익으로 연결되는 마당에 이런 시도가 결코 쉬울 리 없다. 하지만 향후 이 본격 장르물에 대해 SBS 드라마가 던진 승부수는 분명 시청률 그 이상의 기대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에서 <쓰리데이즈>의 인터넷 방영 판권이 사상 최고치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해 달라지고 있는 방영 패턴의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누가 새로운 콘텐츠를 먼저 시도하느냐는 문제는 그래서 향후의 방송사 콘텐츠 헤게모니 전쟁에도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시청률에 목매 과거에 기대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는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사고 후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까닭

 

과연 SBS 예능 프로그램 <>은 폐지되지 않고 계속 방영될 수 있을까. 프로그램 촬영 도중 사망한 <>의 출연자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견된 메모에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짝(사진출처:SBS)'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제작진과의 마찰설에 대해서 SBS측은 정확한 입장은 경찰 조사가 나와야 밝힐 수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면서도, “사망자와 출연진, 또 제작진과 어떤 마찰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아직 사고 경위와 공식적인 조사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누구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것이 어떤 이유로 생긴 일이든 분명한 사실 하나는 결국 프로그램을 찍는 도중에 출연자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라는 프로그램이 그 특성상 갖고 있는 일반인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 시점에 하필이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프로그램 자체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기수가 들어간 방송분은 모두 방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이야기다. 고인을 위해서도 또 거기 함께 출연했던 출연자들을 위해서도 방송은 불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이라는 프로그램이 계속 앞으로도 방송을 찍어 내보낼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그램에 남겨진 사고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기가 어렵다. 그것도 <>은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에 드리워진 어두움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색깔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칫 방송사 전체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도 사고 때문에 프로그램이 폐지된 사례는 꽤 많다. KBS에서 방영되었던 <일요일은 101%>라는 프로그램은 2004년도에 벌어진 성우 장정진씨가 프로그램 촬영도중 음식물을 먹다 기도가 막혀 의식불명이 되는 사태를 맞고는 결국 폐지되었다. KBS <도전 지구탐험대>는 유독 많은 사건 사고로 점철된 프로그램이었다. 탤런트 김성찬씨가 1999년 촬영 중 말라리아로 사망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제작진이 반군 점령지에서 납치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고 결국 끊임없는 폐지론이 일다가 2005년 개그우먼 정정아씨가 아나콘다에 물리는 사건을 계기로 결국 몇 개월을 끌다 폐지되기도 했다.

 

이런 사건 사고로 인해 불거진 안전불감증에 대한 논란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 MBC에서 방영되었던 <스플래시>는 해외에서 판권까지 사서 제작되었지만 결국 출연자들의 안전 문제가 논란으로 불거지면서 조기 폐지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도전 지구탐험대> 같은 경우에는 사망 사고가 일어나고도 무려 6년 가까이 프로그램이 존속되었지만 이것은 요즘처럼 인터넷 여론이 활발한 시대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1999년에 고 김성찬씨의 사망 사고를 겪으면서도 존속된 <도전 지구탐험대>2005년도에는 폐지 결정된 일은 그간에 대중들의 방송 참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말해주는 일일 것이다. 대중들의 방송 참여는 이제 <스플래시>의 경우처럼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의 안전 불감증 논란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폐지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자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이 계속 방송을 이어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과 함께 SBS 예능의 한 색깔을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라는 측면에서 폐지 결정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세결여>의 숨은 주인공, 한진희의 부성애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있을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오병식(한진희)은 뭐 딱히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그다지 없어 보이는 아버지다. 그는 한때 택시기사였었고 중소기업 사장의 운전수였다가 지금은 건물의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딸 은수(이지아)가 중견기업 오너의 며느리라는 사실은 얼핏 이 오병식이라는 아버지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늘 차분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 아버지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재혼한 은수의 딸, 슬기(김지영)를 챙겨주는 인물이거나 걱정이 태산인 아내 순심(오미연)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정도의 역할이랄까.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차츰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자식까지 전 남편에게 넘겨주고 재혼했지만 남편의 불륜 때문에 또 이혼을 준비하는 딸이 아버지에게 마뜩찮을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속이 상해도 그 흔한 술 한 번 마시고 주사라도 늘어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고 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것은 과년한 첫째 현수(엄지원)가 결혼식도 안올리고 심지어 광모(조한선)와 동거를 하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버지는 그저 한 걸음 물러서 알아서 하겠지.”하며 딸의 선택에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걸핏 하면 소리를 지르고 손부터 올라가는 준구(하석진)의 아버지 김회장(김용건)과는 사뭇 다르다. 김회장이 어딘지 과거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를 닮았다면 오병식은 달라진 현재의 서민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이런 아버지들은 가족 내에서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다. 가장으로서 서 있긴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자식들 앞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이들 아버지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가족들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었다.

 

오병식이라는 아버지는 그래서 이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가족들이 힘겨울 때마다 묵묵히 그 아픔을 들어주고 또 버텨내주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 남편의 불륜에 상심한 딸을 품어주는 것도 이 아버지고, 결혼 안 하고 살겠다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도 이 아버지다. 심지어 이혼해서 아버지를 따라간 딸의 자식까지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도 이 아버지의 몫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결혼을 몇 번을 하든, 아니면 아예 하지 않든 그들을 딸로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 달라진 결혼 풍속도가 야기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어쩌면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문제들을 자식을 보는 마음으로 품어주는 시선일 지도 모른다. 결국 결혼이란 자신들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 다만 부모로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오병식이라는 아버지는 이 드라마의 숨겨진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의 부성애는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이혼과 결혼, 동거, 불륜, 심지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계모의 이야기까지를 모두 보듬어 안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존재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 언제든 가슴 열어 안아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것이 제 아무리 세태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가치가 아닐까. 그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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