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치’, 넷플릭스 ‘인간수업’ 작가가 펼쳐놓은 또 하나의 상상력

글리치

과연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본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부정하기도 애매한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외계인이니 UFO니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과연 그런 존재가 있는가를 먼저 질문한다. 하지만 실제로 보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접근은 그것이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존재를 믿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닐까. 마치 우리게 종교에 있어 신의 존재를 그렇게 대하듯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는 바로 그 UFO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지효(전여빈)가 학창시절 겪은 사건이 그것이다. 어느 들판에서 마주하게 된 거대한 빛. 전부터 UFO와 외계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자신도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저 미지의 세계에 신호를 보내곤 했던 지효였다. 우연히 만나 친하게 된 보라를 들판 한 편에 있는 버려진 봉고차에 꾸며진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가 UFO와 외계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지효는 그러나 그 빛을 마주한 후 들판에 버려진 채 발견되고,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믿는 보라와 결별한다. 

 

성장한 지효는 적당한 직장에 다니며 무감정한 섹스를 나누는 남자친구가 동거를 제안하고 부모들도 함께 살아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까지 듣는 어찌 보면 평이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현대 유니콘스 모자를 쓴 외계인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점점 거대해져 거인처럼 지효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남자친구마저 실종되어 버리자 그는 이것이 외계인의 소행이라 의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신이 이상하다 생각해 상담을 받으면서도 UFO를 추적하는 모임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에 결별했던 친구 보라(나나)를 만난다. 

 

외계인을 보지만 그것이 자신의 환상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지효와, 과거 지효가 알려준 내용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으며 이를 추적하는 보라. 이들은 실종된 남자친구를 찾아 나서고 동시에 이 실종과 하늘빛드림교회라는 종교집단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하늘빛드림교회는 다름 아닌 외계인(하늘빛)의 도래를 믿는 사이비 단체다. 지효와 보라는 이 휴거를 꿈꾸는 사이비 종교 단체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그 빛을 봤다고 여기는 지효는 저들에게 호산나(구원자)로 지목되어 받들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효의 선택에 의해 그를 호산나로 믿는 신도들이 모두 구원이라고 믿는 집단자살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지효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사이비 종교단체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외계인과 UFO를 봤다는 그 믿음조차 자신의 환상일 뿐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미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리치>는 과연 지효가 본 게 진짜 UFO와 외계인이 맞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엔딩은 속 시원히 그 결론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질문을 갖고 그 끝까지 함께 달려가며 지효와 보라가 겪는 일련의 과정들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변화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앞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실존일 때, 믿음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누가 그걸 공유하고 공감해주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 자신 혼자만 보는 세계를 애써 타인에게 숨겨가며 살아왔던 지효가, 그걸 직접 보진 않았지만(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믿어주는 보라와 함께 그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그래서 단순한 ‘워맨스’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이 미지의 세계에 저마다 홀로 외롭게 던져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믿음의 공유’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리치>를 쓴 진한새 작가는 전작이자 첫 작품이었던 <인간수업>에서처럼 이번에도 자신의 상상을 어떤 정제된 틀에 가두기보다는 하나하나 끄집어내 끝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가 처음에는 UFO로 시작해 외계인으로 이어지고 실종사건과 사이비 종교단체로까지 펼쳐져 나가더니 급기야는 믿음과 인간 실존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글리치>는 깔끔하게 정제되어있는 작품이라 보긴 어렵다. 하지만 다소 거칠게 밀어붙이는 상상력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말끔한 기성작가의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칠지만 일단 어디로든 달려 나감으로써 거기서 어떤 의외의 결과를 만나기도 하는 그런 패기가 이 작품에는 있다. 진한새 작가의 이런 작품의 경향은 마치 <글리치>의 주인공들인 지효와 보라를 닮았다. 어떤 하나의 궁금증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어 길을 나서고 그 과정에서 별의 별 사건들을 만나면서 끝내 무엇 때문에 그 길을 나섰는가를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여정 같은.(사진:넷플릭스)

‘작은 아씨들’, 주인공도, 최종 빌런도 여성으로 채운 느와르의 탄생

작은 아씨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종영했다. 12부작으로 쉴 틈 없이 폭풍 전개된 <작은 아씨들>은 한 편의 판타지 느와르에 가까웠다. 엄청난 모험을 겪은 세 자매는 결국 빌런들을 모두 해치우고 해피엔딩을 맞았다. 첫째 오인주(김고은)는 그토록 원하던 자신과 자매들이 지낼 보금자리인 아파트를 얻었고, 둘째 오인경(남지현)은 기자직 제안을 거절하고 하고픈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사랑하게 된 하종호(강훈)와 함께였다. 또 셋째 오인혜(박지후)는 친구 박효린(전채은)과 함께 해외에서 최도일(위하준)의 도움으로 빼돌렸던 비자금 7백억을 찾아 자매들과 골고루 나눴다. 그저 흔한 가족 판타지나 돈보다 중요한 가치 같은 걸 내세우기보다는 느와르가 그리기 마련인 보다 욕망에 충실한 세속적인(?) 엔딩을 담았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작은 아씨들>은 일찌감치 흔한 가족 서사를 저 뒤편으로 밀어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 자매의 엄마가 막내의 수학여행을 위해 언니들이 마련한 돈을 들고 해외로 튀는 이야기가 먼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부모가 부재한 세상에 덜렁 남은 세 자매의 분투기가 펼쳐졌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지지고 볶는 가족 서사를 일단 치워버린 드라마는 인주, 인경, 인혜 세 자매가 각각 원상아(엄지원), 박재상(엄기준) 부부의 집안과 얽히며 벌어지는 사건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즉 이 작품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느와르지만 세 자매라는 여성 주인공들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나간다는 확실히 다른 설정으로 시작했다. 세 자매는 각각 저마다의 다른 방식으로 원상아와 박재상으로 상징되는 자본화된 시스템이 가진 폭력과 맞선다. 폭력과 맞서는 세 자매의 방식은 그들의 직업과 연결되어 있다. 오인주는 경리로서 비자금과 관련된 사건 속에 휘말리고 그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오인경은 기자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오인혜는 놀라운 미술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 그 예술적 능력이 저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작은 아씨들>은 이들 여성 주인공들이 대적하는 최종 빌런 역시 여성으로 세웠다. 처음에는 박재상이 최종 빌런처럼 여겨졌지만, 사실상 원상아가 그를 가스라이팅하며 수족처럼 부린 인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원상아는 그의 대저택 지하에 숨겨진 아버지 나무에 의지해 살아가는 푸른 난초처럼 매혹적이지만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인물로 형상화됐다. 아버지의 폭력을 폭로하려던 엄마가 ‘닫힌 방’에 갇혀 살게 되고, 결국 그런 엄마를 회유하려다 실수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엄마가 딸을 위해 저 스스로 장롱 옷걸이에 목을 매 죽게 되면서 이 최종 빌런이 탄생했다. 

 

<작은 아씨들>은 물론 아버지 나무나 베트남전쟁, 정난회 같은 상징들로 그려진 남성성의 폭력적인 세계와 맞서는 여성들의 서사를 그리긴 했지만, 그러한 성 대결보다 이 작품이 보다 추구하려 한 건 주인공도 악역도 또 주변인물들까지 여성 캐릭터로 채워 넣어 만들어낸 여성 느와르였다. 원상아 같은 최종 빌런도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는 보디가드이자 비서실장도 고수임(박보경) 같은 여성캐릭터이고, 부패한 언론을 상징하는 인물도 장마리(공민정) 같은 여성 캐릭터로 그려진다. 또 유산을 상속해주는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이나 느와르의 시작이자 끝을 만든 진화영(추자현) 같은 인물들은 흔한 키다리 아저씨의 여성 버전들처럼 보인다. 

 

이 모험담에 빠지지 않은 멜로 서사 역시 남녀 관계는 역전되어 그려진다. 오인주에 대해 최도일은 호감을 갖고 있지만 오인주는 그럼에도 늘 거리를 유지하고, 오인경과 하종호의 멜로에서도 주도권은 오인경이 끌고 간다. 같이 유학을 가자고 한 하종호의 제안을 오인경은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인다. 이 작품에서 멜로는 이어지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관계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어떤 선택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해 보인다. 심지어 원상아와 박재상 같은 빌런 부부의 관계 역시 박재상이 순애보를 보이지만 원상아는 제 목적을 위해 그를 이용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작은 아씨들>이 그린 판타지 여성 느와르는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세 남매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부모가 해외에서 여행하듯 살고 있는 상황이나, 부모가 모두 인주와 인경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 딸인 효린이 인혜와 함께 손을 잡고 떠나는 광경이 그렇다. 하지만 이건 리얼리티가 아니라 어떤 욕망을 투영시킨 느와르 판타지이고 그 욕망이 그리는 건 여성들의 연대다. 인주, 인경, 인혜의 자매애와, 인주와 화영, 인혜와 효린의 워맨스로 그려낸 여성 느와르의 완성. 그것만으로도 남성 중심으로 그려지곤 했던 서사들의 세계 속에서 <작은 아씨들>이 이뤄낸 성취는 충분하다. 그것도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느와르를 여성들의 이야기로 숨 막히게 풀어낸 것이니. (사진:tvN)

최근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스토브리그

“백씨가 한 둘이에요? 백종원. 백지영. 백윤식... 백승수.”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법무법인 백을 찾은 천지훈(남궁민)이 그 법인명이 하필 ‘백’이라는 걸 들어 백마리(김지은) 변호사가 그 곳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백마리는 백씨가 한 둘이냐며 그렇게 대꾸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등장한 ‘백승수’라는 이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말하는 것. 남궁민이 연기한 인물이지만 그는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며 말한다. “아 백승수가 있었구나? <스토브리그> 봤어요? 아 그거 되게 재밌었는데 왜 시즌2 안 나오나 몰라.”

 

아마도 <스토브리그>를 봤던 팬이라면, 그래서 그 드라마 때문에 남궁민과 박은빈의 팬이 됐던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슬쩍 유머를 넣어 던지는 이 대사에 반색했을 게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드디어 배우로서의 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박은빈에, <오늘의 웹툰>으로 주춤했던 SBS 금토드라마를 등판과 함께 반등시켜버린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이 함께 했던 드라마. 이쯤 되면 시즌2를 안하는 게 이상해져버린 <스토브리그2>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박은빈과 남궁민 모두 최근작 배역이 변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그 변호사가 어딘가 ‘이상한 변호사’라는 것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약자인 서민들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짜 공통점은 이 두 배우가 그려가고 있는 연기 스펙트럼의 무한 확장이다. 

 

남궁민은 <김과장>의 김과장 같은 코믹한 캐릭터는 물론이고,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낮과 밤>의 도정우, <검은 태양>의 한지혁 같은 누아르에 가까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스토브리그> 같은 이지적인 캐릭터까지 그 연기의 영역을 한껏 넓혀온 배우다. 마찬가지로 박은빈도 최근 <청춘시대>의 송지원 같은 보이시한 청춘은 물론이고,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같은 당찬 오피스우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같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청춘, <연모>의 이휘 같은 사극 속 남장여자를 거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연기까지 소화했다. 이러니 이들의 연기 성장은 K드라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토브리그> 시즌2는 시즌1이 워낙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 쉽지는 않다고 여겨진다. 이신화 작가의 입봉작이지만 이 작가는 이 작품을 꽤 오래도록 준비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야구 마니아인지라 깊숙이 그 세계를 취재하고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시즌1에 충분히 채워넣은 것. 그러니 시즌2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부담감도 커지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팬들도 그렇고 작가 스스로도 시즌2의 가능성을 얘기한 바 있어 <스토브리그2>는 여전히 기대할만한 여지가 남아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들이다. 대부분 시즌2가 어려워지는 건 시즌1의 배우들이 스케줄이나 출연료 문제로 계속 시즌2로 작품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궁민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의 목소리를 빌어 <스토브리그2>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한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주인공 역할의 남궁민은 이 작품에 호의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은빈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물론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고 전제하면서도 <스토브리그2>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 대부분의 염원이라고도 밝혔다. 일단 적어도 시즌2 제작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배우들의 의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최근 들어 시즌제가 점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져가고, 그래서 시즌2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박은빈이 미국비평가협회가 선정한 라이징스타상을 받는 등 K콘텐츠의 성공이 글로벌로 바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박은빈과 남궁민이 다시 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스토브리그2>의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최근 이 두 사람이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이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이쯤 되면 안하는 게 이제 이상한 상황이 됐다. (사진:SBS)

빙고게임으로 사건 해결? ‘천원짜리 변호사’가 풍자하는 것

천원짜리 변호사

엉뚱하고 다소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하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가진 이상한 관전 포인트다. 단 돈 천 원에 변호를 맡아주는 이상한 변호사가 등장하고 뭔가 대단한 법 조항을 들어 반전의 승소를 이끌어내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지만 이 변호사가 풀어내는 의뢰인 변호는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천영배(김형묵)의 갑질사건이 결국은 천지훈(남궁민)이 제안한 빙고게임으로 해결된다는 에피소드는 단적인 사례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개인 운전기사, 회사 내 직원들에게 툭하면 폭행, 폭언 같은 갑질을 해온 천영배. 천지훈은 경비아저씨가 차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생떼를 쓰는 천영배의 차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수레로 밀어버리고, 소송을 걸겠다는 천영배의 으름장에 백마리(김지은)를 자신의 변호인으로 내세운다. 천지훈 밑에서 시보를 하려는 백마리에게 일종의 숙제를 준 것. 

 

하지만 사건을 오히려 키워버린 천지훈의 행동에 백마리는 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돈을 들여 차를 고쳐주거나 돈이 없으면 구치소에 들어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던 것. 여기에 백마리가 무료법률상담을 해줬던 김태곤(손인용) 역시 바로 그 천영배의 상습적인 폭행, 폭언으로 갑질을 당했던 운전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백마리는 심지어 천영배와의 학연까지 이용해 어떻게든 의뢰인들에게 도움을 줘볼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천지훈이 원하는 해결책이 아니었고, 백마리 역시 끝내 천영배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마리씨. 일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말이죠.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사과를 해서 일을 무마시키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헌데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니잖아요. 도움이 필요해서 온 거지. 변호사니까 무조건 법으로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봐요.”

 

고민하는 백마리에게 천지훈이 건네는 이 말은 <천원짜리 변호사>가 그리는 법정물이 여타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이든 법이 아니든 천지훈이 꿈꾸고 있는 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법정 안에서의 해결만을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것. 

 

결국 백마리는 언론에 천영배가 자신의 차량을 파손한 경비원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짓 미담을 터트리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천영배의 심리를 이용해 차량 분쟁을 해소하면서도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천영배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천지훈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지훈은 천영배가 모시는 모회장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준 후, 그를 등에 업고 천영배에게 거꾸로 갑이 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갑질에는 갑질로 대응해준 것. 

 

또 천지훈은 모회장이 구치소에 갇혀 자리를 비운 사이 천영배에게 갑질을 당해온 직원들의 집단 소송 대리인이 되어 그 사실들을 폭로하고, 기상천외하게도 모회장에게 빙고게임을 제안하며 자신이 지면 고소를 취하할 것이고 자신이 이기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천영배를 사직시켜달라고 한다. 그간 구치소에 모회장을 면회하며 빙고게임을 계속 이겨온 천지훈이 그 승부욕을 건드려 게임에 응하게 한 것이다. 

 

결국 빙고게임은 숫자를 불러줄 파트너로 백마리가 지목되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나버렸다. 둘 만이 아는 법 조항들을 암호처럼 주고 받으며 천지훈이 원하는 숫자를 백마리가 추리해 불러주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던 것. 물론 법정에서 벌어지는 법의 대결이 아니라, 빙고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황당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게 느껴지는 면 또한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혹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안들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천지훈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이러한 부조리한 법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오히려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법망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법을 활용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그런 인물. 그래서 이러한 돈키호테 같은 판타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가며 실제로 존재했으면 싶은 인물로 형상화해내는 것에 있어 남궁민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의 역할과 아우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든든한 연기력이 있어 <천원짜리 변호사>의 유치함이 가벼움으로 치부되지 않고 세태를 꼬집는 속 시원한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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