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웃는 모습이 더 섬뜩한 엄기준과 엄지원의 정체

작은 아씨들

과연 인주(김고은)와 인경(남지현)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동생 인혜(박지후)를 구해낼 수 있을까.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인혜는 점점 저 괴물의 아가리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 괴물은 박재상(엄기준)과 원상아(엄지원)로 대변되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인혜는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자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그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고 그 그림으로 상을 받게 해준다. 또 그 대가로 외국 유학을 효린과 함께 보내준다는 원상아의 달콤한 제안도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언니들은 엄청난 당혹감과 불안감에 빠진다. 그래서 인경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상을 받은 효린을 축하해주는 파티장에 찾아가 고래고래 동생을 부르는 것으로 난리를 친다. 언니가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걸 모른 채 그저 치욕스럽게만 느끼며 바라보는 인경에게 원상아는 짐짓 부드럽게 웃고 있지만 악마처럼 속삭인다. “들어갈까? 우리 인혜는 좋은 것만 보자.” 결국 보다 못한 인혜는 술에 취한 언니를 데리고 돌아가지만, 그런 언니와 인혜는 더 멀어진다. 

 

갑자기 효린과 유학을 떠나게 됐다는 인혜의 말에 인주 역시 버럭 화를 내며 “네가 효린이 하녀냐”고 묻지만, 인혜는 더 충격적인 말을 한다. “난 이 집에서 언니들처럼 사는 것보다 효린이네서 하녀로 살고 싶어.” 인혜는 가난에 지쳤다. 가난하게 자신이 사는 것도 지쳤지만, 자신 때문에 언니들이 ‘어두운 숲속에 처절하게 널브러져 있는’ 그런 희생하는 삶을 사는 걸 보는 것에 더 지쳤다. 그래서 스스로 그걸 벗어나려 한다. 그건 자기를 위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니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이 인혜를 통해 보여주는 건 천민 자본주의의 끔찍한 세상이다. 인혜는 그 괴물의 아가리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박재상과 원상아는 그 괴물의 분신이다. 그들이 사는 그 대저택에서 박재상은 운전기사의 아들이었고, 그 대저택은 원상아의 아버지인 원기선 장군의 것이었다. 그 장군의 아들이었던 원상우(이민우)와 박재상은 마치 지금의 효린과 인혜 같은 관계였던 것. 

 

그 집에서 예쁘장한 모형 집을 발견하고 그 방 중 하나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인형을 슬쩍 훔치다 인혜는 박재상에게 들킨다. 그런데 박재상은 인혜에게 이를 다그치기보다는 왜 자신의 딸 효린 대신 그림을 그려줬냐고 묻는다. 그러자 인혜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효린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그걸 그릴 때 저는 효린이었어요. 가장 효린이 같은 표정으로 효린이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질감으로 그렸어요. 그 그림은 완벽해요.” 

 

인혜는 진짜 효린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건 과거 박재상이 원상우를 보며 가진 욕망과 유사하다. 박재상은 그걸 간파하고 인혜에게 악마의 혀를 놀린다. “장군님은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아셨어. 그래서 상우가 아니라 날 이 집의 상속자로 점찍으신 거야. 그러기 위해선 큰 희생을 해야 했지만. 난 결국 이겨냈어. 그 인형 갖고 싶니? 그러면 너도 할 수 있겠어? 지구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겠어?” 

 

이 대사를 통해 보면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원상우를 그렇게 만든 건 박재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건 배신이었을 테고. 인혜는 그것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유혹에 끌린다. 저들의 삶이 너무나 유복해보이고 행복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번지르르한 그들의 삶이 진짜 행복일까. 그건 가짜다. 웃고 있지만 진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자못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뿐이다. 

 

언니들은 이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생을 보게 된 셈이다. 맏언니인 인주는 자신에게 뚝 떨어진 20억을 다 써서라도 동생들을 그 힘겨운 삶에서 꺼내려 하지만, 둘째인 인경은 다르다. 그건 도둑질이라며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고모할머니인 오혜석(김미숙)의 집에서 지낼 때 저지르지도 않았던 도둑질 누명을 그토록 많이 쓰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있다. 그건 동생 인혜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려서 자기들 말고 더 어린 동생이자 간난 아기가 있었고 그 아기가 가난해서 죽게 됐던 경험을 했던 그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인혜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인주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죽지 않는다는 절박함으로 살았지만 그건 결국 동생들을 챙기기 위함이었고, 인경이 힘겨운 이들을 리포팅하면서 감정이입이 과해 기자라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알코올 중독이 됐던 이유도 바로 그 간난 아기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긴 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었다. 

 

자본이라는 괴물이 삼키려는 동생과 이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언니들. 그건 빈부의 시스템 속에서 생겨나는 처절한 대결구도지만, 그 이야기가 자매들의 끈끈한 애정으로 얽혀 있다는 점에서 <작은 아씨들>은 더 큰 몰입감을 준다. 과연 언니들은 이 위기를 넘기고 돈이면 영혼도 팔게 만드는 이 세상 속에서 끝내 소중히 지켜야 하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사진:tvN)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 여성 서사의 정점 보여줄까

작은 아씨들

드라마 <마더>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 <왕이 된 남자>,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 그리고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세 여성 배우들이 중심 롤을 맡은 작품.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대본, 연출, 연기 모두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그 제작진의 면면만 봐도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근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헤어질 결심>을 쓴 정서경 작가에, <빈센조>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을 보여줬던 김희원 감독의 만남이 그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로 박찬욱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온 정서경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드라마업계에서도 그가 쓴 <마더>는 일본 원작의 아우라를 지울 만큼 탁월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니 <작은 아씨들>이라는 다소 여성 서사의 고전을 제목으로 가져와 새롭게 우리 식으로 해석한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진다. 이미 <아가씨>나 <헤어질 결심>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진 것처럼 그가 가진 남다른 여성 서사에 대한 매력이 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 감독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주목받고 있는 김희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기대감은 더 커졌다. <돈꽃> 같은 어찌 보면 막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을 유려한 연출로 그 색깔을 바꿔 놓았던 김희원 감독은 그 후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여성 감독 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사극의 흐름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감독, <붉은 단심>의 유영은 감독으로 이어졌다. 또 김희원 감독은 <빈센조>를 통해 액션 느와르에도 탁월한 연출 능력을 증명했다. 이번 <작은 아씨들>에서도 자매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 담겨지는 액션 느와르적인 색깔은 다분히 김희원 감독의 이러한 폭넓은 연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 작가가 쓰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타이틀 롤을 맡은 세 자매 역할의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여성 배우들이 포진했으니, 이 작품에 ‘본격 여성서사’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실제로 <작은 아씨들>은 첫 2회 분량에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대결하게 되는 부조리한 세상에 박재상(엄기준) 같은 절대 빌런을 세워 두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자연스럽게 이 세 자매의 자매애를 통한 여성들의 연대를 드러내면서 저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비뚤어진 남성 중심의 권력화되고 부패한 시스템과의 파열음을 예고한다. 정서경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큰 그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은 아씨들> 무슨 이야기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모티브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따왔다. 물론 20세기 들어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재조명되었지만 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한동안 가부장적인 문학의 전통 속에서 무시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여성들의 성장소설에 담겨진 새로운 여성상이나 그들 간의 연대는 지금껏 세대를 뛰어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2년 한국드라마로 재해석된 <작은 아씨들>은 여기에 현재적 의미와 한국적 현실이 담겨졌다. 

 

오키드 건설에서 경리로 일하는 오인주는 회사에서 같은 왕따 취급을 받는 언니 화영(추자현)이 자신에게 20억 현금을 남기고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자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런데 오인주는 화영이 15년간이나 신현민 이사(오정세)와 함께 회사의 불법 비자금을 운용해왔고, 죽기 직전 700억의 불법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영 이전에 비자금을 운용하는 일을 했던 여직원이 화영처럼 똑같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오인주는 신현민 이사가 화영을 죽였다고 의심하지만 그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서 비자금을 둘러싼 배후가 존재한다는 게 드러난다. 한편 오인주의 동생으로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은 정치인을 꿈꾸며 청년들을 위한 재단까지 만든 박재상(엄기준)이 과거 보배저축은행 사건의 배후라 의심하며 과거사를 파고 들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제보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는다. 화영과 신현민 이사 그리고 제보자까지 이들의 죽음 옆에는 모두 동일한 꽃이 놓여있다. 그들의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암시다. 여기에 오인경은 막내 동생으로 예고에 다니는 오인혜(박지후)가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을 대신 그려줘 상을 받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작은 아씨들>의 서사는 세 자매가 모두 저마다 박재상이라는 인물과 대결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오인주는 화영과 신현민 이사의 죽음 앞에서 비자금을 둘러싼 거대한 비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오인경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박재상의 실체를 기자로서 파헤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인혜 역시 돈을 받고 효린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는 사실이 언니들이 마주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저들과 대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과거사로부터 이어진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검은 자본의 흐름에 휘말리게 된 세 자매가 이를 헤쳐 나가며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그려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서경 작가가 자본화된 세상과 맞서는 방식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왔던 작가라서 그런지 정서경 작가가 쓴 <작은 아씨들>의 전개 속도는 거침이 없다. 그 흔한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질질 끄는 느낌이 없다. 1회 만에 화영의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열린 세계에 2회 만에 신현민 이사의 죽음이 만든 반전이 더해지며 향후 벌어질 대결구도를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자본화된 세상과 대결하는 정서경 작가의 방식이다. 그건 오인경이나 오인주라는 인물을 통해 담아내는 남다른 ‘감수성’이다. 이들은 자본화된 세상이 굴러가는 그 익숙한 방식들을 그저 익숙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즉 오인주는 죽은 화영이 말하듯, “경리는 (의사가 환자 몸을 보는 것처럼) 돈을 숫자로만 봐야 된다”는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돈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20억이 갑자기 생긴 일에 결코 초연해하지 못한다. 그가 그저 20억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건의 진실이나 내막을 궁금해 하는 이유다. 오인경은 기자로서 무감하게 사건을 리포트해야 하지만 결코 아픈 비극을 겪은 이들을 리포트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고 알코올 중독 판정까지 받지만, 그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런 알코올 중독이 되어야 비로소 감정을 숨길만큼 독하디 독한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감하게 자본화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인경과 오인주 같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그걸 바라보는 이들은 그걸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서경 작가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이다. <작은 아씨들>이 가진 여성 서사가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부조리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그걸 달리 볼 수 있는 눈이란 그 세상이 배제한 이들의 시선일 수 있어서다. 자매들은 그래서 더 확장되어 세상이 배제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여성서사를 그려나갈 작정이다.(글:매일신문, 사진:tvN)

‘텐트 밖은 유럽’, 명품 배우들의 소박한 여행이 주는 매력

텐트 밖은 유럽

이 프로그램 어딘가 언발란스하다. 눈은 호강이라고 할 정도로 호사스러운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 곳에서 하는 여행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호사스러움과 소박함.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가 섞여있는데 그게 너무나 마음을 잡아 끈다. 도대체 tvN <텐트 밖은 유럽>이 보여주는 이 언발란스한 매력의 정체는 뭘까. 

 

“이태리에서 자전거 탄다잉-” 스위스에서 이태리로 넘어와 캠핑장에 자리한 유해진과 진선규 그리고 윤균상은 인근 가르다 호수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사실 풍광으로 보면 호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바다 같은 가르다 호수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다. 시쳇말로 ‘눈호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하고 싶어 하는 건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자동차가 아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전거.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 속도와 눈높이 때문에 자동차를 탔다면 놓쳤을 아름다운 풍광들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처럼 아기자기한 거리와 집들이 그렇고, 길가 가득 심어진 올리브 나무들이 그렇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유해진처럼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가며 마주하는 나무에 피어난 꽃들을 괜스레 손으로 만져본다. 

 

길을 잃기고 하고, 그래서 현지 주민에게 어색한 영어로 호수 가는 길을 묻지만, 역시 영어가 어색한 주민이 마구 쏟아내는 이태리 말 앞에 당황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화려한 영어가 아니라도 소박한 보디랭귀지로 다 통하고, 길은 달리다 보면 결국 원하던 호숫가로 그들을 인도해주니 말이다. 마치 보상처럼 호수가 내주는 파도소리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이들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갖는다. 

 

유럽을 여행한다는 건 우리에게는 어쩐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어떤 걸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이런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의 호사스러운 음식들, 유창한 영어와 잘 꾸며진 리조트 수영장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건 진짜 유럽이 아니라고 말한다. 

 

호텔 대신 캠핑장을 선택한 것부터가 신의 한 수고, 그 콘셉트의 여행에 딱 맞는 유해진을 위시해 소박하고 진솔한 매력이 넘치는 진선규와 멍뭉미에 착하디 착한 윤균상 그리고 뒤늦게 합류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가득한 박지환이 섭외된 것 역시 이 신의 한 수에 또 한 수를 더한 선택이 됐다. 이들은 캠핑장에 앉아 마트에서 산 아라비아따 소스를 넣은 파스타에 오징어 숙회를 즉석에서 만든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그걸 ‘이탈리식 가정식 만찬’이라고 표현한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열면 눈앞에 쏟아지는 스위스와 이태리의 풍광을 마주하는 호사가 있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소박한 하루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다 꼭 여기 현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도 하고 싶었다며 가르다 호수에 뛰어든다. 아침으로 사과 한 개를 먹고 누룽지에 달걀찜을 먹는다. 

 

냉장고에 넣어둬야 할 반찬을 냉동고에 넣어 둬 꽁꽁 언 반찬을 마주하면서도 그 당혹스러움을 농담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여름엔 “얼장아찌(언 장아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또 이탈리아 커피인 줄 알고 샀던 게 설탕이라는 걸 알고는 베트남 인스턴트커피를 마시지만 오페라 음악까지 틀어놓고 이탈리아 기분을 낸다. 대단할 것 없는 여정을 보여주지만 그 곳이 이태리고 그 곳의 자연과 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이들은 진심으로 드러낸다. 

 

피렌체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충남 당진이나 남양주랑 비슷하다고 하는 박지환이나 유럽의 도로를 달리며 경부선 같다고 말하는 이들의 소박한 말들이 유럽이라는 공간과 부조화를 이루는 지점에 <텐트 밖은 유럽>이 주는 매력이 존재한다. 이들이 만끽하다는 건 유럽이라는 공간에서도 누리는 소박한 하루다. 그런데 그것은 시청자들에게도 진짜 유럽의 공기를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고 보니 유럽이라는 눈호강 풍광 속에 펼쳐진 텐트라는 소박함은 이들 배우들의 면면과도 똑 닮았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명품배우들이지만 인간미가 넘쳐나는. (사진:tvN)

‘환혼’이 훌쩍 뛰어넘은 무협, 멜로 그 이상의 성취

환혼

“넘치는 힘이란 건 네가 기쁜 만큼만 쓰고 말 수는 없어. 비를 바라면 홍수를 피할 수 없고 바람을 원하면 태풍을 맞아야 하듯이 감당해봐.”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무덕이(정소민)는 얼음돌 한 가운데서 환각처럼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술력을 쌓아 더 강한 자가 되고픈 이 드라마가 그려내던 그 욕망들을 무화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무덕이는 “이 힘을 두고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어린 시절의 무덕이가 말한다.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쓰지 않는 겁니다.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얼음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뿐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여기서 <환혼>의 이야기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이 수련을 통해 수기를 모으고 그것으로 술력을 키워 자기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건 사실은 수기라는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활용하는 것일 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유해 그 힘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국. <환혼>이 그리려한 세계가 그저 술력 키우는 무협에 적당히 달달한 멜로를 섞어 낸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음돌은 그래서 이러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드러내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 같은 장치다. 얼음돌을 통해 환혼술을 소환해 제 몸을 장강(주상욱)과 바꿔 그의 아내를 탐한 선왕의 욕망이 그렇고, 뱃속에서 13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아이를 구해내려 금기를 어겨가며 얼음돌을 꺼내와 장강을 통해 아이를 살려낸 진요원의 원장 진호경(박은혜)이 그렇다. 얼음돌의 힘을 통해 권력을 쥐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천부관 부관주 진무(조재윤)도, 그 얼음돌로 환혼해 왕비 행세를 하는 당골네도 모두 그 비뚤어진 욕망 앞에 무너진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다. 

 

만장회에 모인 모든 이들이 얼음돌의 힘을 궁금해하고 그래서 그 욕망에 눈 멀어 무덕이를 죽이고 되살리는 시연을 하는 걸 막지 않는 것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다. 결국 그 선택은 이들 앞에 거대한 자연의 환란으로 돌아온다. 정진각 주변을 거대해진 얼음돌의 힘이 결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장욱, 무덕이는 물론이고 서율(황민현), 고원(신승호) 같은 청춘들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바깥에서 아이들의 운명은 깜빡 잊은 채 얼음돌의 힘에만 눈이 멀었던 만장회 어른들의 모습은 극명히 대비된다. 

 

이건 마치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제 것으로 가지려는 어른들의 욕망이 후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청춘들)에게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그려내는 은유 같다. 과학의 힘을 과신해 환경을 훼손해가며 마구 에너지를 끌어온 그 대가가 현재 후대들 앞에 어떤 암울한 미래를 펼쳐놓고 있는가를 떠올려 보라. <환혼>이 무협의 세계를 통해 그려놓은 얼음돌이라는 하늘의 기운을 가진 힘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징과 은유로 다가오는가 새삼 느껴질 게다. 

 

“인간의 기운인 수기도 내 몸 속에서 돌리지 못하면 내 것이 되지 못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돌려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있겠어?” 하지만 장욱의 이 말처럼 <환혼>은 저 어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청춘들을 통해 희망을 담는다. 장욱은 그 하늘의 기운을 가질 수 없다면 다 내어주면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내 기운을 다 하늘의 기운에 내어준다면 내 기운이 다 하늘의 기운이 되는 거잖아.” 

 

술력을 쓰면 기력을 모두 빨아들이는 얼음돌의 결계 속에서 장욱은 탄수법을 써서 그 결계를 깨기 위해 자신의 기력을 다 내어주고 대신 물 한 방울을 만들려 한다. 그 물 한 방울이 결계를 깨고 수 천 수 만 개의 빗방울이 될 거라 믿는다. 그간 벼랑 끝에 제자를 세워 술력을 키우게 해온 사부 무덕은 장욱의 그런 선택을 반대한다. 하지만 결계를 깨지 않으면 다친 서율이 죽을 수도 있다며 던진 장욱의 한 마디는 무덕을 수긍하게 만든다. “무덕아 네가 포기한 건 지키기 위해서지? 나도 지키려는 거야. 그리고 유리도 그동안 널 지켜왔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갖기 보다는 다 내어주는 것. 이 청춘들은 술력을 갖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이 부분에서 <환혼>의 멜로는 달달한 청춘들의 사랑 그 이상의 함의로 확장된다. 스승 무덕은 장욱 앞에서 힘을 되찾을 기회를 버리고, 제자 장욱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간 어렵게 쌓아온 기력을 버린다. 그렇게 대호국에 나타난 거대한 환란은 이들의 희생에 의해 사라진다. 

 

“스승님, 제자 오늘로 파문하겠습니다. 그간 못난 제자를 벼랑 끝에 세워두고 떠밀며 여기까지 이끌어주셔 감사했습니다. 비록 스승께선 힘을 찾을 기회를 버리시고 제자 또한 그동안 쌓아온 기력을 버렸지만 그로인해 평생 곁에 둘 소중한 이를 얻었습니다. 쓰이고 버려지지 않고 지키고 간직하고자 하니 파문을 허락해주십시오.” 장욱이 무덕에게 파문을 요구하고 그러자 무덕은 이를 허락한다. 사제지간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 

 

대신 장욱과 무덕의 연인 관계가 남는다. “아 그럼 이제 도련님한테 시집와라. 무덕아.” 술력 대신 사랑의 선택. 그건 사적 욕망 대신 공존을 선택한 것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어진다. 이 쿨내 진동하는 장욱과 무덕이 그려낸 <환혼>의 서사가 그저 가벼운 무협과 멜로 그 이상의 성취를 갖게 된 이유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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