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디스토피아에 담아낸 것

지옥

인간은 왜 지옥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물론 이런 질문은 논쟁적이다. 지옥의 실재를 믿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의심이 그 질문 안에 담겨 있어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논쟁적이다. 미리 말해두면 이 드라마에 흔히 불길이 치솟는 아비규환으로 그려지곤 하는 그런 진짜 지옥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지옥의 사자’라 불리는 괴 존재들이 등장한다. 갑자기 유령처럼 어떤 차원을 뛰어넘어 나타난 이들은 사전에 ‘지옥행’을 ‘고지’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다짜고짜 폭력을 가해 피와 살점이 튀는 처참한 광경을 마치 보여주려 작정한 것처럼 ‘시연’한 후, 손을 모아 만들어내는 빛 속에서 순식간에 뼈의 형상 정도만 남겨놓는 재로 만들어버린다. 그건 물론 괴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끔찍한 광경이지만,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면 일종의 ‘재난’에 가까운 일이다. 즉 어느 날 길을 가다 갑자기 날아온 벼락에 맞아 온몸이 타버리며 죽는 그런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재난이 지옥이 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하나는 그런 일이 벌어질 걸 사전에 고지 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한 시간 후에 어떤 이들은 일주일 후 혹은 10년 후에 지옥행을 고지 받는다. 자신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것도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다는 건 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도 그렇지만, 자신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은 그의 삶조차 치욕스럽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재난이 더더욱 견디지 못할 지옥이 되는 건,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았을 때다. 재난 자체가 무슨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을까. 갑자기 난데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지워버린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고 맥락도 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지옥을 창조한다. 그가 죽은 건 그냥 벌어진 일이 아니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생전 나쁜 짓을 저지르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정반대로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는 서사도 만들어진다. 결국 지옥이란 불가항력의 운명이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는 인간이 살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수 있다. 

 

<지옥>에서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를 만들어낸 정진수(유아인)는 그 자신도 10년 전 지옥행 고지를 받은 자로서 이런 일들이 ‘죄’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재난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지옥행을 ‘신의 의지’라 설파하면서 사람들을 새진리회로 끌어들인다. “신이 왜 그런 기괴한 일을 벌이는 걸까요? 저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 알 수가 없었어요. 이런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으면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 엄청난 폭동과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올 거예요. 이유가 있어야 돼요. 이런 기괴한 일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벌어지고 있다...” 정진수는 그렇게 신과 종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종교는 과연 인간을 구원했을까. 지옥행이 벌어지는 그 끔찍한 장면들은 ‘시연’이라는 이름으로 생중계되고, 이런 공포를 이용해 새진리회는 세력을 키워간다. 지옥행을 당한 이들은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고 그 가족들의 신상마저 공개되어 새진리회 광신도 단체인 화살촉 단원들의 테러를 당한다. 하지만 거짓의 증거들이 곳곳에서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자(죄가 없는데도 지옥행 고지를 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 진실을 가리기 위해 새진리회는 유지사제(류경수) 같은 행동대장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다. 마치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종교전쟁이나, 종교를 내세운 폭력의 공포로 세력을 키워가는 급진 무장단체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진짜 지옥은 저 갑자기 나타나 무작위로 사람들을 죽이는(이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은유하는 것일 게다) 그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할 수 없어 만들어낸 거짓으로부터 탄생한다는 걸 <지옥>은 보여준다. 물론 종교는 삶의 또 다른 선택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내세워 인간을 미혹하는 사이비들이 판치는 세상이야말로 진짜 지옥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종교만이 아닌 정치나 경제에서도 똑같이 해당하는 이야기일 게다.(글:PD저널, 사진:넷플릭스)

술꾼도시여자들

 

“니가 씨부린 말이 책으로 나오면 내가 그 책으로 평생 똥을 닦을 것이다!” 음흉하기 이를 데 없고 말도 안되는 신화처럼 자신의 삶을 포장해 자서전을 내려는 박회장(박영규)에게 안소희(이선빈)는 마치 랩이라도 하듯 속사포로 욕을 쏘아댄다. 술에 잔뜩 취해 기관총처럼 쏴대는 욕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속 시원할 수가 있을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의 이 장면은 이 독특한 드라마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준다. 애초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소재와 내용 그리고 표현수위를 가진 드라마다. 이 사실은 첫 회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술을 마셔대는지 보는 사람이 취할 정도다. 

 

그래서 이거 너무 ‘술 권하는’ 드라마 아닌가 하며 드라마가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대사들이나 수위도 거침이 없다. 욕은 일상어처럼 튀어나오고 술에 취해 원나잇을 하는 것도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등장한다. 그런데 술과 욕과 성적 분방함이 어쩐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이다. 도대체 이 색깔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그건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술을 마시는 안소희, 한지연(한선화), 강지구(정은지)라는 인물들이 그렇게 하게 되는 이유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때는 출판사 직원이었던 안소희와 대기업 영양사였던 한지연 그리고 학교 교사였던 강지구가 모두 일을 그만두게 된 사연은 모두 박회장이라는 한 명의 빌런과 연관되어 시트콤처럼 그려졌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그 상황들이 너무나 실감나게 이해된다. 

 

기업 회장이랍시고 자서전을 빙자해 더러운 욕망을 드러내는 박회장은 안소희와 한지연을 모두 분노하게 만들고, 성소수자인 그의 딸을 괴물 취급해 자살하게 만듬으로써 강지구를 절망하게 만든다. 물론 이 부분은 극화된 것이지만, 아마도 시청자들은 술 마시며 세상에 독설을 쏘아대는 이 세 친구들을 보면서 저마다 겪은 부조리하고 무례한 세상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에서 술은 그래서 그걸 잊기 위한 것이면서 그래도 버텨나가게 하는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는 묘약 같은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거지같아도 이런 친구들 몇 명만 있으면 살만해질 것 같은 그런 광경들을 <술꾼도시여자들>은 보여준다. 물론 그 개개인이 가진 개성들과 매력은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다. 세상 쿨하고 시크한 강지구는 무심한 척 하지만 친구가 위험에 빠지거나 어려워할 때면 가장 먼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달려오는 친구고, 세상 낙천적이며 생각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상처도 많고 생각도 깊은 한지연은 축 처진 친구들을 기분 좋게 업시키는 친구다. 평범하게 조직에 순응하며 살아가면서 남다른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진 안소희는 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꾹꾹 눌러뒀던 억압된 말들을 시원스런 욕설로 풀어주는 친구다. 이런 매력적인 인물들이 서로 등 두드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이들의 일상이 자꾸만 보고픈 이유가 된다. 

 

<술꾼도시여자들>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서 그 플랫폼에 걸맞는 소재와 표현수위 그리고 형식까지 잘 갖춰진 드라마다. 1시간을 기준으로 분량을 억지로 채우는 것도 없고, 적당한 길이에 군더더기 없이 압축도 높은 스토리를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술이 등장하고 거침없는 대사들과 자유로운 이야기가 OTT라는 플랫폼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또 세 명의 인물을 매력적으로 세워놓고 시트콤적인 상황들을 부여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어, 향후 시즌제 드라마로서도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기성 드라마들이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던 술과 욕을 이토록 속 시원하게 잘 풀어낸 드라마가 있을까 싶다. 특히 개성이 톡톡 튀는 세 여성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까지 일종의 유대감을 갖게 만들 정도로 마음을 잡아 끈다. OTT 시대에 접어들어 토종 OTT들이 어떤 이들만의 전략을 담는 콘텐츠를 내놔야 하는 시국에 <술꾼도시여자들>은 어떤 틈새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좀 더 긴 호흡의 시즌제가 기대될 정도로.(사진:티빙)

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연모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내놓는 이들의 커밍아웃에는, 그만큼 그들 앞에 놓여진 어떠한 난관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그 진심이 묻어남으로써 보는 이들은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의 그 마음을 읽는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연모하는 지를. 그래서 눈빛이 흔들린다. 세자로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그 조차 뛰어넘어 마음을 전하는 이의 그 절실함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모>는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현대가 아닌 조선시대이고, 정지운이 커밍아웃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왕세자다. 그러니 커밍아웃이 야기할 난관은 더욱 커진다. <연모>의 고백이 훨씬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조선시대에 세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거나, 그로 인해 진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휘 또한 정지운에 대한 연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이 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로운)을 찾아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비를 피한 자리에서 이휘는 자신이 하고픈 삶과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며 살고 싶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정지운에게 지금의 사서직에서 다른 직으로 옮기라고 권한다. 자신은 세자빈 간택을 받아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 말을 전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이휘에게 이현(남윤수)이 다가와 우선을 씌워준다. 그는 이휘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옆에서 연심을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인물이다. 그는 이휘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라고 말하며 자신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 말한다. 엇갈린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연모>의 이런 장면들이나 상황, 대사들은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자에게 신하가 임금으로서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모한다 말하고, 세자 역시 그런 신하와 즐거운 하루를 추억으로 남긴 채 헤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술기운을 빌어 신하가 세자에게 볼 뽀뽀를 하고, 세자는 술에 취해 잠든 신하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런 게 어찌 가능한 이야기겠나.

 

하지만 이런 불가능도 가능한 일처럼 만들어내고 심지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해 똑같이 울컥하는 마음까지 먹게 만든다는 건,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믿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더 강력한 판타지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이다. <연모>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을 홀리는 드라마다. 유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의 매력과 무엇보다 박은빈과 로운의 매력이 더해져 어느새 시청자들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뜨리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저런 게 말이 돼 하면서도 자꾸만 채널을 고정해 놓고 빨려 들어간다. 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 속으로.(사진:KBS)

‘해피니스’가 묻는 행복,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해피니스

“그래. 가까운 데 있었어. 이현아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있어? 너 코 고니? 이 갈아? 우리 결혼할까?” tvN 금토드라마 <해피니스> 첫 회 엔딩에서 윤새봄(한효주)은 정이현(박형식)에게 대뜸 결혼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정이현은 윤새봄에게 “우리 사귈래?”하고 물었을 정도로 그에게 설렘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윤새봄에게 거부당했던 정이현은 그의 갑작스런 결혼 제안이 너무 친해 던지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윤새봄은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하며 진지한 얼굴로 정이현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사실 <해피니스>가 첫 회에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전조들과는 사뭇 대비된다. 윤새봄과 정이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군 당국이 새로이 창궐한 감염병으로 좀비처럼 변해 목을 물어뜯는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임시로 수용해놓은 폐 대학교다. 좀비처럼 변해 공격해온 경찰특공대 교육생 이종태(남상우)와 사투를 벌이다 손에 상처를 입게 되면서 윤새봄은 중대본 위기대응센터 소속 한태석(조우진) 중령의 명령에 의해 그곳으로 수용됐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윤새봄은 그러나 감금된 방 벽에서 의문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수용된 건물 전체에서 들려오는 괴성들을 듣는다. 건물 방 곳곳에 감염된 자들이 수용되어 짐승 같은 괴성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 평범한 사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세상 가득 좀비들로 채워져 종말론적 위기에 들어설 암울한 세상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윤새봄과 정이현은 엄청난 충격에 빠지기보다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윤새봄이 정이현에게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결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해피니스>는 알 수 없는 감염의 원인으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종말론적 팬데믹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둡지가 않다. 아니 어둡기는커녕 윤새봄과 정이현 사이의 설렘 같은 멜로 감정까지 느껴진다. 물론 갑작스레 좀비로 변한 인물들과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그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감염자가 먹었다는 약을 추적하고 그 약이 심한 부작용으로 퇴출됐던 약 ‘넥스트’라는 걸 알아내는 과정은 액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해피니스>의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그 이유는 암울할 수 있는 팬데믹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의외로 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 때문이다. 윤새봄은 한태석이 찾아 본 인사기록카드에 적혀 있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도로 침착’한 인물이고. ‘머리가 좋고 생존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호기심이 강한 것이 문제’인 인물이다. 그는 조사를 받기 위해 폐 대학교에 감금되어서도 아침에 출근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팬데믹의 암울함과 대비되는 낙천적인 인물들의 모습. 아마도 이것은 <해피니스>가 갖고 있는 여타의 좀비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일 게다. <해피니스>는 위기 상황을 그리긴 하지만 그걸 절망적으로 담지는 않는다. 이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이고 왜 작가는 이런 설정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걸까. 

 

코로나19가 종식된 근미래 설정은 여기에 대한 답을 해준다. 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새삼 절감한 바 있다. 그저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를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깨닫게 됐다. 게다가 이런 위기 상황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적응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란 그런 위기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내는 그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해피니스>는 바로 이런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드라마다. 윤새봄과 정이현은 그래서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고 좀비 세상이 도래하는 그 위기 속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고 자잘한 행복들과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꺼내놓는다. 결국 <해피니스>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그런 진정한 행복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나, 손길에 의해 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대놓고 꺼내놓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설렘 가득한 멜로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좀비 장르는 어둡다? 바로 이 지점은 좀비 장르가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한 중요한 이유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전 세계에 분포된 좀비 장르 마니아들을 가진 플랫폼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우리네 지상파, 케이블 등에서 이러한 마니아적 성격을 가진 좀비 장르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색다른 행복에 대한 인식 기반을 통해 어둡지 않고 설렘까지 담아놓은 <해피니스>의 이야기는 좀비 장르를 보다 폭넓은 시청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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