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의 게임 예능 한계 극복기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에서 '스파이 콘셉트'는 게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 전까지 '런닝맨'은 어떤 미션을 두고 개인전 혹은 팀 대결을 벌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파이 콘셉트'가 들어가면서 미션은 이중구조를 갖게 됐다. 겉으로 주어진 미션이 있지만, 그 안에 스파이가 들어가 있는 또 다른 미션이 숨겨져 있는 방식이다.

유재석이 스파이가 되어 다른 런닝맨들의 이름표에 물총을 쏘았던 미션은 그래서 '런닝맨'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물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런닝맨들은 미션을 주는 제작진은 물론이고 동료 런닝맨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두뇌싸움이 치열해졌고 그만큼 게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다해가 게스트로 출연한 '런닝맨'은 이 스파이 콘셉트의 게임 방식을 한 번 더 뒤집었다. 통상 한 명 혹은 두 명에게 주던 스파이 카드를 이다해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었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다해는 바로 그 점을 역이용해 '스파이 런닝맨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여기에는 이다해의 전작인 '미스 리플리'의 캐릭터가 활용되었다. 즉 목적을 위해 특유의 미모와 거짓말로 타인을 이용하는 캐릭터다.

이다해가 출연했던 '스파이 런닝맨' 게임을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런닝맨의 게임 방식(즉 이름표를 뜯거나 어떤 지령에 따른 미션을 수행하는 식)은 기본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스파이 콘셉트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게스트의 정보나 이미지 콘셉트를 미리 꿰고 있다면 게임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물론 '런닝맨' 특유의 공간에 대한 지식도 즐거움을 부가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전 정보들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다해가 출연한 '스파이 런닝맨'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다지 큰 감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은 '런닝맨'이라는 게임 예능이 지금껏 달려온 길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대단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어느새 초기 '런닝맨'의 그 단순했던 게임 형식에서 한참 멀리 달려온 지금의 진화된 '런닝맨'을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주 조금씩 '런닝맨'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세계가 가야할 길들의 법칙들을 일러주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유람선에서 벌어진 셜록 홈즈 콘셉트의 '런닝맨'은 예능적으로 보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런닝맨들이 한 명씩 아웃되는 의문의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그러다 결국 숨겨진 루팡 캐릭터가 등장하는 반전은 게임 형식에 미스테리와 스릴러 액션까지 덧붙인 놀라운 결과물로 탄생했다. 즉 '런닝맨'은 이제 다양한 외부 콘텐츠들(혹은 캐릭터)이 갖고 있는 스토리들을 게임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민수를 출연시켜 '런닝맨 헌트'를 하고, 이다해를 출연시켜 미스 리플리 캐릭터를 부여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즈음에서 '런닝맨' 이전의 예능에서 우리가 봐왔던 게임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거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게임들이었다. 특정 공간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쿵쿵따를 하거나 닭싸움을 하거나 레이싱을 하는 식의 그런 게임들. 이것은 지금도 대부분의 리얼 예능들이 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하지만 '런닝맨'이 보여주고 있는 게임들은 이보다는 몇 단계 앞에 서 있는 것들이다.

게임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워도 시청자가 적응할 수 없고 또 너무 쉬워도 시시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균형과 적절한 진화 속도를 유지해온 '런닝맨'의 끈기와 근성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효진 PD는 그래서 여전히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그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초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복잡해진 현재의 '런닝맨'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런 제작진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런닝맨'의 성공적인 진화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놀랍기만 하다.


'무신'이 정통사극을 고집하는 이유

'무신'(사진출처:MBC)

'무신'은 기묘한 조합의 사극이다. 이환경 작가는 '용의 눈물', '태조 왕건' 같은 정통사극의 정점을 찍은 작가로 KBS 사극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MBC에서 사극을 한다. 알다시피 MBC 사극 브랜드는 정통사극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이병훈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대장금', '허준' 같은 일련의 퓨전사극이 새로운 브랜드가 되었다. 이런 퓨전화되고 허구화된 MBC 사극의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해를 품은 달'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무신'은 MBC가 회귀한 정통사극일까. 아니면 정통사극을 쓰던 이환경 작가의 퓨전화일까. 정통사극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면 후자에 가깝다. 물론 '무신'은 고려시대 역사 속 실존인물인 김준(김주혁)을 다루고 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최씨 무인정권의 마지막 계승자인 최의를 타도하고 왕권을 회복한 뒤 10년 간 권력을 장악했던 실제 인물이다. 하지만 김준, 최충헌, 최우, 최향 등등의 역사 속 실존인물들을 빼놓고 보면 그 스토리의 힘은 역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서사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 서사의 전범들은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또 그 고전이 되는 '벤허'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팔타커스'와도 닿아 있다. 공역장에 끌려간 김준이 쓰러진 동료 노예를 감싸주며 감시관과 대적하는 장면은 '스팔타커스'의 도입부분에 들어있는 장면과 똑같다. 알다시피, 격구장은 콜로세움과 같고, 경기에 광분하는 관람자들이나, 경기 도중 목이 잘려나가는 극한 장면들 역시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물론 이것은 장면 연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오마주가 가능하다. 실제로 김진민 PD는 "영화 '글레디에이터'와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떨까. 흥미로운 일이지만, 스토리 역시 비슷하다. '스파르타쿠스'나 '무신'이나 모두 경기장 밖에서의 정치적인 상황들이 등장하고, 그렇게 엮어진 갈등들이 경기장 안에서 폭발하는 이원적인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의 사투를 통한 김준이라는 인물의 성장스토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월아(홍아름)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스파르타쿠스'와 '무신'. 역사는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서사는 같을까. 그것은 이 서사가 그만큼 근원적인 영웅서사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추락과 대결, 성장과 복수의 서사는 그만큼 고전적이다. 그래서 이 서사는 우리네 역사적 영웅을 다루는 사극에서도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같은 작품은 그 인물의 서사구조가 '글레디에이터'나 '스파르타쿠스'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 사극들과 비교해 '무신'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무신'이 훨씬 더 '스파르타쿠스'의 서사와 연출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사인 만큼 그 파괴력도 막강하다. '무신'은 그래서 일단 그 서사의 힘으로 한 번 빠져보기 시작하면 꽤 깊은 몰입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고문 장면, 격구장에서의 사투 장면이 주는 폭력성과 여자 노예들을 물건 다루듯 다루는 장면들은 그것이 '리얼리티'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반복된 서사가 가진 약점을 시각적인 자극으로 극복하기 위한 의도다. 이것은 과거 고전 영화였던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스팔타커스'보다 다시 돌아온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가 훨씬 더 수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누가 봐도 역사라기보다는 서사에 훨씬 가까운(물론 실존인물이 있다고 해도) '무신'이 굳이 왜 정통사극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이처럼 철저히 서사의 힘에 의존하는 '무신'을 정통사극이라 부를 수는 있을까. 정통사극이라면 역사적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 역사적 사실 자체가 현재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신'은 그런 점들을 충족시키고 있을까.

여러 모로 퓨전사극이라는 타이틀이 걸맞아 보이는 '무신'은 왜 정통사극이라 고집할까. 이환경이라는 작가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무신'이라는 작품에서 역사를 떼어버리고 나면 어떤 결과로 보일 것인가를 떠올려보는 것이 훨씬 그 질문에 맞는 답일 것 같다. '무신'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서사를 너무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역사가 빠져버린다면 '무신'만의 차별점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최대 성과는 이 유사하면서도 본원적이고 강력한 서사구조가 가능한 김준이라는 인물을 우리네 역사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범수와 안재욱, 그 카리스마의 정체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샐러리맨 초한지'에는 유방(이범수)이 세운 팽성실업이란 회사가 등장한다. 팽성실업의 '팽성(烹成)'은 '팽 당한 사람들이 성공을 이룬다'는 뜻이다. 천하그룹의 해고 노동자들을 모아 세운 이 회사의 출범식에서 유방은 두 가지를 약속한다. "딱 두 가지만 여러분께 약속드리겠어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가지고 수익이 많이 발생하면요. 그만큼 여러분들하고 수익을 많이 나눠가질 거여요. 그리고 또 하나 형사법에 저촉되는 짓만 안하시면요 여러분들이 절대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일 없을 거예요."

아무리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대사라고는 해도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건, 정반대의 현실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게다. "저도 대기업에 다녀봤지만 우리나라에 이윤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회사가 몇이나 돼요. 거의 없어요. 하지만 우리 팽성실업은요.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예요. 진짜예요.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재산이 뭔지 아세요? 뭐 같아요? 기술요? 아녜요. 기술 개발하면 돼요. 제품요? 아녜요. 제품 만들면 되는 거예요. 바로 여러분들이에요. 여러분들이 존재하니까 기술도 개발하고 제품도 만드는 거예요.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여러분들예요."

사장이 이러니 직원들도 다르다. 회사가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봉급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투자 유치에 성공한 유방은 그 고마운 마음만 받지만, 이런 노사 간의 관계는 이제 심지어 판타지로 여겨지는 현실이다.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대중 정서의 가장 큰 밑바닥을 구성한다.

시대극으로서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진 것 같지만,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에서도 이런 대중 정서의 단면들이 묻어난다. 빛나라 쇼단의 단원들에게 가장 첨예한 문제는 스타가 되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당장 설 무대, 즉 생계가 보장된다면 뭐든 할 정도로 이들에게 일자리는 중요하다. 강기태(안재욱)가 빛나라 쇼단의 새로운 단장이 되어 이들에게 보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일자리다. 그는 단원들의 무대를 확보하기 위해 심지어 캬바레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샐러리맨 초한지'의 유방과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가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일자리' 덕분이다. 강기태는 어떤 식으로든 단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뭐든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유방은 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일자리를 보전해주는 샐러리맨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의 판타지와 인물들의 카리스마를 보면서도 동시에 생기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 속 노동자들의 요구가 가진 소소함 때문이다. 도대체 이들이 뭘 그렇게 대단한 걸 요구했단 말인가. 그저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아닌가. 물론 드라마지만 이 지극히 기본적이고 또 당연한 것들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만큼 작금의 현실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는지. 왜 우리네 현실은 기초적인 것까지 판타지로 만드는 것일까.


반전 없는 '위탄2', 반전의 '보코'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위대한 탄생2'의 생방송무대는 꽤 기대를 갖게 만드는 멘티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밋밋한 느낌이 있다. 마치 출연자들이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것만 같은 인상이다. 구자명에 이어 골든 티켓을 거머쥔 배수정의 무대는 공연 그 자체로는 괜찮았지만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다. 이런 당연한 수순을 그것도 아주 급하게 쫓아가는 듯한 무대 진행은 결과적으로 최고조의 긴장을 주어야할 최종 탈락자 발표마저 그저 해야 할 것을 한 듯한 무대로 만들었다. 도대체 이 긴장 없는 오디션의 이유는 뭘까.

오디션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그런 반전 요소는 오디션의 핵심이다. 잘 하건 잘 못하건 멘토들은 거의 도돌이표의 심사평을 반복하고, 긴장과 이완을 통해 쇼의 묘미를 살려야할 진행자는 그저 순서 진행에 급급하며, 전문평가단들의 점수 역시 참가자들의 인기와 거의 비례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드는 뜻밖의 이야기는 발견되기 어렵다.

이것은 또한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패턴을 읽어버린 대중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대한 탄생2'가 시즌1보다 확연히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은 점점 새로운 걸 기대하는데, 정작 프로그램은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상 상승구조의 시청률 흐름을 갖기 마련인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에서 '위대한 탄생2'가 거꾸로 갈수록 시청률 하락을 경험하게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면 '위대한 탄생2'의 부진과 상반되게 주목을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엠넷에서 방영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이 프로그램은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오디션의 핵심인 '반전 요소' 덕분이다.

'보이스 코리아'는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풍경 따위가 없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보이스 코리아'의 반전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깨는데서 나온다. 오디션은 뻔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뒤집은 게 첫 번째 반전이고, 또 해외 포맷이 있기 때문에 그 포맷에서 본 대로 일 것이다 했는데 거기에 플러스 알파 요소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게 두 번째 반전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스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던 것 같다. 즉 단적으로 말해 가창력은 좋지만 외모가 떨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사실 외모와 목소리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훈남도 등장하고 개성있는 인물도 등장했다는 게 또 하나의 반전요소로 작용했다.

'위대한 탄생2'의 부진은 이제 기존 오디션 형식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반전 포인트를 주지 못하는데서 생겨난다. 반면 '보이스 코리아'에 대한 열광은 지금껏 오디션 하면 떠올렸던 일련의 흐름을 모두 뒤집는 반전에서 나온다. 이 상반된 결과는 오디션 형식이 왜 끊임없이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형식인가를 말해준다. 진화를 통해 반전을 주지 못하는 오디션은 대중들에게 더 이상 감흥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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