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목장', 제주도를 닮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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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목장'(사진출처:SBS)

'파라다이스 목장'이란 드라마의 멜로는 특이하다. 이미 한 번씩 결혼하고 이혼한 남녀들이 제주도 목장을 배경으로 다시 만난다. 이혼했던 이다지(이연희)와 한동주(최강창민)는 한 집에서 살지만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리조트 개발에 대한 지역주민의 동의서를 얻기 위해 한동주가 이다지의 집에 들어온 것. 그 뿐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지만 진짜 그뿐일까. 이 두 사람은 여전히 부부처럼 툭탁거리고 싸우면서도 자꾸 과거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서로를 도와주려 애쓴다.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지만 때론 부부 같고 때론 연인 같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서윤호(주상욱)라는 엄친아가 끼어든다. 성공한 리조트 투자자인 그는 이다지의 풋풋함에 빠져든다. 이다지 역시 서윤호를 좋아하게 되고, 한동주는 마음 한 구석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다지의 사랑을 도와주려 한다. 서윤호는 이다지와 한동주가 함께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 하고, 이다지가 이미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고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 서윤호 역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것이나 다름없는) 남자다. 그런 그를 이다지는 역시 사랑한다.

이런 사랑 방정식은 기존 멜로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것들이다. '파라다이스 목장'의 남녀들은 거의 모든 과거의 사실들을 다 알고 있지만, 그리고 그 과거가 여전히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사랑을 포기하거나 연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는다. 그저 늘 웃고 있고, 진심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사랑한다. 어찌 보면 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각자 혼자 남게 된 상황에서 그들 역시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멜로드라마가 사랑하는 남녀와 그들 사이에 놓여진 장벽을 구조로 세워진다면, '파라다이스 목장'은 그 장벽이 헐겁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역으로 서윤호의 아내가 잠깐 등장하지만 그것은 잠시간의 긴장감만을 만들 뿐 그 이상으로 진척되지 못한다. 이들 사이에 놓여진 탄탄한 신뢰감 앞에 감히 관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 셈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파라다이스 목장'은 대결구도 없이 흘러가는 달달하기 만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여진다. 이다지가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한동주와 서윤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 가지 차원의 멜로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겉면이다.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이다지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을 하고 있다. 과거에 했었던 사랑의 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사랑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사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이런 멜로는 자칫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라다이스 목장'에서는 이혼과 결혼, 사랑, 동거 이런 것들이 마구 드러난 상태에서도 여전히 풋풋함을 유지하는 멜로가 가능해진다. 어떻게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제주도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혼여행의 대표적인 공간이면서, 현실 공간이기도 한 제주도는 우리가 현실에서 구분하던 이 모든 경계들, 예를 들면 결혼과 연애, 사랑과 동거, 이혼과 새로운 만남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는 지점이 있다. '파라다이스 목장' 자체가 제주도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파라다이스 목장', 제주도를 그대로 빼닮아버린 드라마다.

오디션이 깨운 아날로그, 아날로그가 일으키는 인디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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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수수한 옷차림의 장재인이 '슈퍼스타K2' 오디션 현장에서 맨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기획사 가수들의 화려한 옷차림에 눈멀고, 기계음으로 잔뜩 포장된 사운드에 귀 먼 우리들의 감각을 깨운 그것은? 꾸미지 않은 장재인의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난해 보여도 모든 음악적 감성을 한껏 품고 있는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힘이었을까. 그 순간 우리가 느낀 건 디지털로 무장된 세상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아날로그의 힘이 아니었을까.

바야흐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다. '슈퍼스타K2'의 성공 이후 이 형식은 이른바 '되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슈퍼스타K2'의 따라 하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위대한 탄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형식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경쟁 시스템이 있고, 그 위에 '공정함'이나 '멘토링' 같은 판타지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악이다. 실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토록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경쟁자들은 무반주로, 혹은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 오로지 노래로 승부한다. 물론 춤을 추는 경쟁자들도 있지만 그들에게 심사위원들이 결국 주문하는 건 "노래를 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심사위원들은 발성의 문제나 스타일, 음색 등을 조목조목 잡아내며 경쟁자들이 갖고 있는 노래를 친절하게 분석해준다. 그러니 음악에 대한 감성을 깨우는 프로그램으로 오디션 프로그램만한 게 있을까. 우리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어떤 훈련을 받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획사 가수들의 화려한 춤과 사운드에 묻혀 있던 가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 훈련이 우리가 잊고 있던 감성을 깨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날로그 감성이다. 물론 이 아날로그 감성은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를 부를 때 우리의 가슴을 탁 치고 들어왔던 것. 각종 라이브 무대 혹은 그런 무대를 방송화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늘 그것을 봐왔다. 하지만 최근처럼 이 아날로그 감성의 음악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된 건, 분명 저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작년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 대중들의 가슴에 쏟아 부은 것도 다름 아닌 이 아날로그 감성이다. 처음 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어색하게 목소리를 맞춰가고(그것도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알 수 없는 뭉클함을 준 건 그 과정과 음악이 주는 아날로그의 힘 덕분이다. 그 대회에 나가는 과정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거의 형식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노래와 하모니에 대한 일종의 학습을 받았다. 그래서 하모니를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시봉'은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라는 음악적 거장들을 세워두고 창조적인 음악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었다. 윤형주가 즉석에서 만난 여자들을 위해 '라라라'의 가사를 단 40분 만에 담아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 놀라운 시적 가사들과 어우러지면서 진짜 음악의 단면을 끄집어냈다. 음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힘으로 창조되는 것이라는 걸 그 이야기는 들려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악기를 퉁 퉁기며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하모니를 맞춰 가며 부르는 노래는 아날로그적인 감동을 안겨주었다. 악동 이하늘이 눈물을 흘린 건 바로 그 알 수 없는(사실은 잊고 있던) 감성을 거기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재인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인디 레이블에 대중들이 눈을 돌리는 것이 이런 아날로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제2의 장기하'라는 얘기를 들으며 주목받고 있는 인디밴드 10cm의 성공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디지털 음원 사이트 100위권 내에 앨범 전곡이 랭크되고, 음반도 초도물량 1만장이 이미 다 팔려나가 추가 생산에 들어간 10cm의 성공에는 현재 국내 대중문화계에 쓰나미처럼 불어 닥친 아날로그 감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 때의 유행이 아니다. 이미 깨워놓은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욕망은 복제된 가짜 디지털 정서가 채워주기 힘든 면이 있다. 이미 진짜 향기 나는 꽃을 보게 된 대중들이 조화에 눈을 돌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홈레코딩 기술에 있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내부적으로 실력을 쌓아온 인디씬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건 바로 이 대중들에게 깨어난 아날로그 감성 덕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인디씬들의 음악이 유튜브 같은 지극히 디지털적인 매체를 타고 대중들에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올려진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라는 곡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보면 우리가 각종 쇼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통해 발견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노래를 하다가 악기를 떨어뜨리자 잠시 멈췄다 악기를 집어 다시 연주하는 그런 실수조차 하나의 감성으로 전해지는 상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부터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이 아날로그 감성은 어쩌면 대중가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맹아로 자라나고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원작만큼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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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

이미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본 관객이라면 아마도 첫 장면에서부터 어떤 깊은 울림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김만석(이순재)이 할머니 송씨(윤소정)를 골목길 언덕빼기에서 작은 사고(?)로 처음 만나고, 거의 습관이 된 듯 죽어 들어가는 소리로 "괜찮다"고 말하는 송씨에게 다짜고짜 만석이 "큰 소리로 말해!"하고 소리칠 때부터 마음은 뭉클해진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그런 영화다. 원작이 있어 이미 스토리를 다 알고 있어도(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 그리고 이게 가능한 건, 거기 원작을 뛰어넘는 관록의 배우, 이순재가 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육두문자를 풀풀 쏟아내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따뜻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만석이란 캐릭터를 그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야동 앞에서는 소년처럼 귀엽다가(야동순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앞에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가 늘그막에 만난 사랑 앞에 수줍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연기가 보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한다. 한참을 웃다가 어느 순간에는 먹먹해지게 만드는 마력은 현빈 못지않다. 도대체 그 검버섯에 주름지고 바짝 마른 얼굴에서 순식간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감정 연기 앞에서는 도무지 눈물을 참아낼 재간이 없어진다.

물론 이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이순재 원 톱을 세웠지만, 그를 둘러싼 나머지 세 배우, 즉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의 연기 호흡을 빼놓고 얘기할 순 없다. 젊어서 부모를 떠나 상경해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까지 잃고는 그 죄 때문에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심지어 이름조차 없어 송씨라 불리는 할머니. 윤소정은 그 할머니의 사정을 만석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그 늘 "괜찮다"를 달고 산 듯한 얼굴로 표현한다. 반듯한 신사에 푸근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송재호의 그 웃음 뒤의 깊은 침묵은 또 어떻고. 물론 누구나 꺼려할만한 치매연기로 보는 이를 웃기기도 하고 애잔하게도 만드는 김수미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관록의 연기자들이 든든히 버텨주자,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그 원작이 갖고 있던 감동 그 이상을 전해준다.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글도 모르고, 이름도 없는 데다가 심지어 행복한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송씨가 송이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고 친구를 사귀게 되고 글도 배우게 되고 그래서 결국 행복도 갖게 되어 한참을 잊고 있었던 소녀 같은 웃음을 웃을 때, 관객들도 똑같은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식들이 다 떠나고 서로 둘만 남아 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잠을 자면서, "우린 부부다. 한때는 가족이었는데"라고 장군봉(송재호)이 읖조리는 말이 우리의 원죄의식을 건드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모든 걸 자식들에게 주었지만 소외되어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욕쟁이 할아버지 만석이 젊은이들에게 욕을 해대는 장면이 오히려 든든하게 여겨진 것도 그래서였을 게다. 강풀이 그려낸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그렇게 우리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어르신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끌어낸다. "나이 들어 죽었다고 다 호상이냐"는 호통처럼, 나이 들었다고 감정까지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세상의 시선에 눈물과 감동으로써 깊은 질책을 해댄다.

지금껏 강풀 원작의 영화들이 흥행에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던 건, 그 원작 스토리가 갖는 힘이 워낙 강한데다, 그 스토리들이 작가에 의해 웹툰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는 강풀의 웹툰 원작의 부담감을 이겨내고 있다. 물론 그 힘의 중심에는 이순재를 비롯한 관록의 배우들의 연기가 자리해 있다.

'마프'의 공주 이야기, 현대인과 공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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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프린세스'(사진출처:MBC)

이 시대에 공주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물론 여전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왕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왕자님에 의해 구원받는 그런 공주는 어딘지 공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다. 현대여성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봐도, '라푼젤'이나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이제 전통적인 공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에 공주를 달고 나온 '마이 프린세스'는 어떨까. 초반부까지만 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낼 공주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장차 공주가 될 이설(김태희)이란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모습이 그랬다. 게다가 공주병까지 있는 공주라니. 얼마나 절묘한 캐릭터인가. 이 공주님 앞에 선 왕자님인 박해영(송승헌)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초기에 이 왕자님은 어딘지 허당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태희의 망가지는 모습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이고, 김태희의 연기자로서의 기대감도 높였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무너진 건, 이설이 공주임이 밝혀지고 궁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궁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즉 공주 되기의 어려움, 공주가 되는 걸 방해하는 오윤주(박예진), 이설을 보호해주려는 남정우(류수영) 교수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해영과의 로미오와 줄리엣 식 로맨스. 이런 스토리는 전형적인 공주 스토리로 드라마를 회귀시켰다.

이설도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오윤주의 방해와 모략에 늘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이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박해영이나 남정우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씩씩했던 캐릭터가 그저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는 캐릭터로 변하자, 박해영도 왕자 캐릭터로 회귀했다. 발랄함과 풋풋함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과거 전형적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드라마는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원받는 존재로서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늘 당당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신데렐라. 길라임(하지원)은 늘 도도함과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김주원(현빈)과 늘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길라임이나 김주원 모두 확실한 자기 직업, 즉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자기 세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설은 공주이고, 박해영은 외교관이지만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전문직 드라마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가진 일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하다. 당당함과 능동성 그리고 자존감이 그 일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이 사라진 멜로드라마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사랑타령으로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이 프린세스'가 초반부의 기대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기 세계를 빨리 되찾았어야 했다. 이설은 조금은 엉뚱해도 보다 적극적인 공주로서의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고, 박해영 역시 이설 바라기로서만의 캐릭터에서 벗어났어야 한다. 그리고 본래 그리려 했던 이설의 성장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 사랑을 그리지만, 요즘처럼 자기 성장에 주목하는 시대에는 사랑에만 목매는 드라마는 매력이 없다. 자기 성장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사랑이 더 주목되는 시대다. '마이 프린세스'는 왜 처음의 기대감처럼 좀 다른 공주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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