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두 시간이 쫄깃한 남북 공조 소말리아 탈출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모가디슈>는 먼저 그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1991년 그 곳에서 벌어진 내전을 소재로 했다. 한국영화가 한국도 아닌 해외 배경으로, 그것도 아프리카라는 공간을 소재로 가져온 것만으로도 색다른 그림과 스토리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작부터 부감으로 보여지는 모가디슈의 이국적인 풍광은 그 곳에서 벌어질 대혼전을 예고하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 배경 위에 남북한의 외교 총력전이라는 대결구도를 세워두니, 영화는 더욱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벌어지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그것이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발을 디딘 한국이 UN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으려 하고, 이미 이전부터 그 곳에서 입지를 마련하고 있던 북한 대사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이 남북 대결 구도는 내전이 벌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협력’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남북 간의 분단을 넘은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모가디슈>에서 한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외교전 속에서 티격태격하지만 생존상황을 맞이하면서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물론 각자 자국을 대표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는 그들은 쉽사리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을 나눠 먹고, 탈출하기 위해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 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려는 인간애를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구도로 보면 <모가디슈>는 자칫 섣부른 신파적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신파적 장면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함께 협력하며 탈출해야 하는 남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과잉된 정을 담는 식의 설정 또한 피한다. 

 

대신 <모가디슈>는 마지막까지 어쩔 수 없이 협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 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게 가능해진 건 한신성 대사를 돕는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의 림용수 대사를 돕는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북한 대사관이 약탈당하고 갈 곳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의탁하게 되는 그 상황 속에서 이 두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의중으로 대결한다. 즉 강대진은 이들을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고, 태준기는 아예 한국대사관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 이 팽팽한 대결구도가 있어 한신성과 림용수 사이에 만들어지는 화해적 분위기와 균형을 이루면서 지나친 ‘신파 구도’의 위험성을 벗어나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이 내전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영화로 재현해낸다. 모로코에서 100%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실감을 준다. 긴장감 가득한 내전의 풍경 속에서 가장 섬뜩한 건 아이들마저 마치 장난감총이나 되는 듯 소총을 들고 위협하고 총을 허공에 쏘아대는 장면이다. 내전이라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폐허가 된 도시 풍광이나 그 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잘 표현해낸다. 

 

또한 흥미로운 건 <모가디슈>를 통해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색다른 액션이다. <모가디슈>는 결국 탈출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공격하는 액션이 아니라 방어하고 도망치는 액션에 집중되어 있다. 추격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을 피해 도주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 속에서 빠져나가는 그 과정들이 마치 실제 관객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실감으로 전해진다. 

 

김윤석, 허준호 그리고 조인성의 연기는 이러한 실감을 몇 배로 몰입하게 해주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발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구교환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은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데는 구교환의 날 선 연기가 한 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밖에도 정만식,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같은 현실감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이 있어 <모가디슈>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 마디로 <모가디슈>는 ‘선수들이 만든 작품’이다. 현지 로케를 통한 당시 상황의 완벽한 재현과 류승완 감독의 균형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이 제공하는 몰입감으로 두 시간이 순삭되는 액션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지만, 영화관에서 보길 권한다. 그래야 그 실감이 200% 느껴질 작품이니까.(사진:영화'모가디슈')

‘킹덤: 아신전’, 북녀 전지현을 세우자 생겨난 대서사의 서막

킹덤 아신전

92분짜리 한 편의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시즌2를 잇는 시즌3의 서사도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아신전>은 참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에피소드다. 그래서 시즌1,2의 열광에 전 시즌을 보지 않고 이번 <킹덤: 아신전>만을 본 시청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아신(전지현)의 탄생기를 다소 단순하지만 묵직하게 그려낸 에피소드가 이번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1,2를 챙겨 봤고, 시즌3를 기다리는 그 과정에 ‘스페셜 에피소드’로서 <킹덤: 아신전>을 보는 분들이라면 왜 곧바로 시즌3로 가지 않고 이러한 스페셜 에피소드를 먼저 채워 넣었는가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세움으로써 향후 <킹덤> 시리즈가 더 거대한 대서사의 서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발을 딛지 않은 분들이라면 <킹덤: 아신전>을 보기 전 시즌1,2부터 챙겨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작은 피스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확장을 실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킹덤> 시즌1,2는 한반도 남쪽의 서사다. 죽은 왕을 살려낸 의원과 함께 갔던 소년이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의원이 동래 지휼현으로 그 시신을 데려오면서 창궐하기 시작하는 ‘좀비 역병’의 서사.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이 역병을 막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남쪽의 영웅으로 세워졌다. 그는 배고픔에 굶주린 민초들의 역병(좀비)을 막고 한편으로는 권력에 눈 멀고 굶주린 세도가들의 역병과 마주한다. 

 

그리고 시즌2의 엔딩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신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좀비떼로 변한 이들을 가둬두고 마치 조종하는 듯한 인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 아신은 시즌3의 서사가 이 인물에 의해 색다른 국면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시즌2까지 남쪽에서 궁을 거쳐 위로 달려오며 좀비떼들과 사투를 벌인 이야기에 이어서 곧바로 아신이 등장하게 되면 서사는 다소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창을 주인공으로 보며 달려온 시청자들에게 아신은 또 다른 적 정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덤: 아신전>은 한반도 북쪽의 서사로서 아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좀비들을 창궐시키고 피의 복수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오롯이 아신을 주인공으로 그 탄생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다크 히어로’의 복수극에 공감하게 된다. 철저히 조선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몰살당한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우뚝 선 안티 히어로. 그가 모두를 죽이고 자신도 그 끝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한 후, 남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그래서 향후 이창과의 대결을 단순한 권선징악의 차원을 넘어서게 만든다. 

 

아신이라는 인물을 여성으로 세우고, 그가 북방의 성저야인이라 불리며 조선을 위해 야인들의 침입을 막아주던 변방인 타합(김뢰하)의 딸이라는 사실은 이 안티 히어로가 ‘약자’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게 해준다. 여성, 이민족, 변방인 같은 코드들이 아신이라는 인물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결국 철저히 권력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다 살해된 약자들을 생사초를 통해 되살려내고 피의 복수를 하는 아신은 그래서 저들과 맞서는 민초들의 왕이나 다름없다. 

킹덤 아신전

<킹덤>이 처음 시작했을 때 이 좀비 장르가 여타의 작품들과 비교해 좀비들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고 느꼈던 건, 이들에게서 ‘배고픔’ 같은 한의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력에 굶주린 궁궐의 좀비들이 존재했지만, 민초들이 변한 춥고 배고픈 좀비에게서 연민이 느껴진 건 그래서였다. <킹덤: 아신전>은 그 연민과 한의 정서가 어떻게 좀비들에게 투영되었는가를 아신이라는 인물의 탄생을 통해 담아낸다. 

 

남남 이창을 중심으로 창궐하는 역병과 맞서는 이들이 한 세력을 구성한다면, <킹덤: 아신전>은 북녀 아신이 이끄는 역병(좀비)들이 조선을 집어 삼키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팽팽해지고 단순한 선악구도로 볼 수 없는 대결구도는 <킹덤>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공간적으로도 남에서 북까지 확장시키고, 단순한 이창의 서사에서 아신의 서사가 다른 한 축으로 세워진다. 단 한 편의 스페셜 에피소드이고, 어찌 보면 단순한 구도로 그려진 아신의 탄생기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 <킹덤>이라는 시리즈에 만들어내는 힘은 이처럼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킹덤: 아신전> 이후, <킹덤>의 시즌들은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 이창과 아신의 대결이 볼만해졌고, 권력자들(민초의 편이라지만 이창 역시 왕세자라는 권력자다)의 통치나 지배 같은 다소 보수적인 세계관과, 온전한 약자이자 민초의 혁명 같은 진보적인 세계관이 맞붙게 됐다. 또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남북 간 대결구도를 끄집어내고, 남남북녀로 대비되는 성 대결까지도 담아낸다. 

 

<킹덤: 아신전>이라는 스페셜 에피소드는 그래서 그 단 한 편으로만 보면 너무 단순하고 뭔가 하려다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시즌들이 달려온 길을 따라온 시청자들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재정비하면서 향후 이야기를 한껏 더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로 다가온다. <킹덤> 시즌1,2가 어딘가 ‘색다른 좀비 장르’ 정도의 이야기로 다가왔다면 <킹덤: 아신전>은 이미 글로벌한 관심을 갖게 된 이 작품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야심이 느껴진다. 작은 피스 한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들어감으로써 거대한 대서사로 확장될 전체 퍼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사진:넷플릭스)

웹 예능의 특별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제는 웹 예능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카카오TV 그리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점점 주력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고, 다양한 웹 예능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나영석 PD의 도전, 이젠 OTT 전략이 됐다

2015년 첫 시즌을 방영한 나영석 PD와 신효정 PD가 공동 연출한 <신서유기>는 네이버TV를 통해 방영된 웹 예능이었다. 1인 미디어들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웹으로 옮겨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나영석 PD의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이 웹 예능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신서유기> 특유의 게임, 여행이 접목된 웃음은 웹의 성격에도 잘 어우러졌다. 지상파나 케이블 예능들이 어떤 공적인 요소들(재미만이 아닌 의미 같은)을 요구하던 것과 달리 웹에서는 그저 순전히 포복절도의 재미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걸 간파한 것이 <신서유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신서유기>는 시즌2에 웹에서 보여준 후 방송에 편성되었고 시즌3부터는 tvN에서 정규편성되어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잦은 편성 변경은 초창기 이 웹 예능의 시도가 화제는 됐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결과 때문이었다. 다행히 정규편성된 시즌3가 성공을 거뒀고 그 후 <강식당>, <아이슬란드 간 세끼>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도 시도되었다. 나영석 사단은 네이버TV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채널 십오야를 세웠다. 처음에는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정규 방송들의 예고나 미방영분 혹은 편집판을 내보내는 플랫폼처럼 시작했지만 구독자수가 급증하면서 ‘달나라 공약’ 해프닝 같은 일들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정해진 기간 안에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이수근과 은지원을 달나라로 보내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가 실제 100만 구독자가 넘자 나영석 PD가 구독자들에게 ‘구독 취소’를 애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웹 예능이 점점 화제가 되면서 tvN 플랫폼을 오히려 웹 예능의 홍보창구처럼 활용하는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즉 <신서유기> 멤버들을 통해 런칭한 스핀오프 프로그램들인 <삼시네세끼>, <나홀로 이식당>, <라끼남>,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마포 멋쟁이>, <출장 십오야> 같은 웹 예능들은 tvN 정규방송에 짧게 편집되어 소개됐는데, 이건 일종의 웹 예능 홍보영상처럼 활용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웹 예능의 위상은 정규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높아졌다. 게다가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새로운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OTT들의 오리지널 예능 경쟁도 치열해졌다. 티빙에서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신서유기 스프링캠프>는 그간 나영석 사단이 시도해온 일련 웹 예능들이 이제는 OTT의 전략적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준다. 

 

지상파의 한계를 뛰어넘은 웹 예능의 저력

<신서유기>가 처음 네이버TV에서 방영됐을 때 웹 예능이 기성 플랫폼의 콘텐츠와 확연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걸 가장 잘 드러내준 건, 상품명을 나열하는 게임이었다. 기성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어 지워지거나 삐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품명들이 ‘속 시원하게’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게임은 웹이어서 가능한 표현이나 소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유튜브로 채널 십오야를 열고나서는 시청률이 아닌 ‘구독’ 관점의 예능들은 팬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다. 그래서 간간히 소식도 알리고, 때론 ‘얼토당토한 공약’으로 해프닝도 만들어내면서 구독자가 늘어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라는 새로운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웹 예능은 웹의 특성상 짧은 분량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그 특성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놀라운 건 ‘구독’ 개념으로 묶여진 구독자들의 막강한 팬심이다. 스스로 채널을 선택한 찐팬들은, 기성 플랫폼 시청자들보다 더 유대감이 높았다. 

 

이런 특성들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피식대학’이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웃찾사>의 개그맨 3인이 결성해 유튜브에 만든 이 채널은 ‘한사랑 산악회’, ‘B대면 데이트’, ‘05학번이즈백’ 같은 상황극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지상파에서 하던 무대개그처럼 캐릭터가 강조된 개그코드를 갖고 있지만, 이들 콘텐츠들은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여주는 즉석 상황극이라는 점이 달랐다. 특히 지상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표현이나 소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식대학은 구독자들이라는 찐팬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특정 콘텐츠들의 상황극과 캐릭터는 그래서 무대 개그와는 달리 하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가상의 캐릭터 놀이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은 실제 현실로 걸어 나와 소비되는 확장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B대면 데이트’에서 이호창이라는 재벌3세가 ‘시가총액 500조원의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실본부장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성경식품과 협업해 내놓은 ‘김갑생할머니김’이 3시간만에 완판되는 일이 벌어진 것. 이른바 ‘믹스버스(Mixverse : Universe+Mix)’ 굿즈는 이제 웹 예능이 만들어내는 세계관들과 협업하며 구독자들의 또 다른 즐거운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웹 예능,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이유

<개그콘서트>의 폐지와 상반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승승장구는 지금 현재 웹 예능이 기성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더 이상 지상파에 설 무대가 없어진 개그맨들은 저마다 유튜브 채널을 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등장하고 있는 카메라 어플을 적용해 탄생한 월클돌 매드몬스터(탄, 제이호)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곽범, 이창호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탄생한 매드몬스터는 실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네이버TV처럼 출시됐던 카카오TV는 작년 9월 자체 제작 드라마, 예능 등을 공격적으로 쏟아내며 종합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웹 예능들은 기성 플랫폼에서는 본 적 없는 색다른 시도들이 화제가 됐다. 마치 누군가의 일상을 모바일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 <페이스 아이디>나 도시의 밤길 산책을 따라가는 <밤을 걷는 밤> 같은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식을 소재로 한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같은 웹 예능은 지상파가 하지 못하는 표현 수위로 실질적인 정보에 관심을 가진 구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즉 실제 주식종목명을 거론하고 실제투자하며 그 결과를 보는 ‘진짜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것. 비슷한 주식 소재 예능을 시도했던 MBC <개미의 꿈> 파일럿이 정규가 되지 못했던 건, 실제 투자 종목을 거론할 때 묵음 처리되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예능은 보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훨씬 더 리얼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진 예능을 보고 싶어 한다. 기성 레거시 미디어들이 그 위상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표현과 소재를 제한하고 있을 때, 웹 예능들은 저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 그건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시대에 대중들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으로 계속 가게 된다면, 웹 예능이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게다. 만일 기성 플랫폼의 예능들이 위기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일으키지 않는다면.(글:LH사보, 사진:샌드박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여성 스포츠예능의 색다른 진화

 

최근 들어 <골 때리는 그녀들>이 화제다.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여자 축구에 도전한다는 소재 자체도 흥미롭지만, 특히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건 여기 출연하는 이들이 보이는 진심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골 때리는 그녀들

<골 때리는 그녀들>, 파일럿의 문제들을 단박에 날린 건

지난 설 연휴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던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최고 시청률 10.2%(닐슨 코리아)를 기록할 정도로 독보적인 성공을 그려낸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정규행을 일찌감치 예고한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심각한 논란의 요소들이 등장했고, 무엇보다 10%가 넘는 시청률에는 명절이라는 특수한 시점과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스포츠예능이라는 소재가 맞아 떨어진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난 6월 정규로 돌아온 <골 때리는 그녀들>은 평균 6%대로 낮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높지도 않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건 시청률보다는 논란의 요소들을 어떻게 지워내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논란의 요소는 엉뚱하게도 ‘여성 예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여성출연자들을 소외시키는 프로그램의 감수성 부족한 상황들에서 비롯됐다. 축구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데, 이들을 중계하는 이들의 말들에는 ‘성차별적’ 요소들이 담겨 있었다. 칭찬처럼 한 것이지만 “남자축구 못지않다” 같은 부적절한 멘트들이 해설에 들어갔고, 무엇보다 전직 국가대표나 국가대표 가족으로 구성된 ‘국대패밀리팀’은 ○○○의 며느리, ○○○의 아내로 소개됐다. 심지어 운동복에도 그런 식의 표기가 들어가면서 출연자 자신으로 오롯이 소개하지 않은 방송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전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여성 출연자 성비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여성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벌이는 여자축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정작 ‘질적인’ 면모를 보이지 못하면서 생긴 한계였다. 

 

하지만 이러한 파일럿의 문제를 단박에 날린 건 다름 아닌 출연자들이었다. 파일럿에서 그저 새로운 체험 정도로 참여했던 출연자들은 당시 경기를 하면서 점차 축구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고,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패스를 주고받으며 결국 골을 이뤄내는 그 과정은 이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파일럿에서 발톱이 빠진 한혜진은 곧바로 “저희 정규 언제 할 건데요?”라고 물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정규방송이 정해지자 파일럿에서 1승도 못하고 전패를 기록했던 모델팀 FC구척장신은 절치부심해 누가 시키지도 않은 훈련에 매진했다. 파일럿에서 승승장구하며 절대강자로 떠올랐던 FC불나방(<불타는 청춘> 멤버들로 구성)에 결승에서 일방적으로 진 FC개벤져스는 복수전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웠다. 이런 열정들이 모여 진심을 만들었다.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골 때리는 그녀들>은 그래서 예능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진심이 담긴 축구 한 판의 묘미를 제대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게 뭐라고... 목숨 걸고 뛰는 출연자들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집중!”을 서로 외치고, 날아오는 축구공을 머리로 받고, 가슴으로 트래핑하며 패스하고 슈팅을 날리는 그 모습들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FC개벤져스, FC불나방, FC국대패밀리, FC월드클라쓰, FC구척장신, FC액셔니스타의 감독을 각각 맡은 황선홍, 이천수, 김병지, 최진철, 최용수, 이영표 역시 자세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예능을 한다 생각했지만, 차츰 감독들 간에도 승부욕이 피어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팀원들이 너무나 승리를 갈망하는 모습이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패배한 후 그 아쉬움에 쏟아내는 팀원들의 눈물은 감독들의 각오로 이어졌고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축구를 가르쳐주면서 진짜 팀으로서의 끈끈함과 공동의 목표 같은 게 세워졌다. 

 

물론 축구 자체가 낯설었던 이들이 이런 단기간의 훈련으로 엄청난 기량을 보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기량과 상관없이 보이는 이들의 승부욕과 골이 들어갔을 때의 환희와 골을 먹었을 때의 아쉬움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게다가 절대강자인 FC불나방과 이 팀을 이끄는 ‘절대자’ 박선영의 존재는, 다른 팀들과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경기를 더욱 쫀쫀하게 해줬다. 또한 파일럿 당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FC구척장신의 절치부심 1승을 향한 혼신의 경기나, FC개벤져스의 FC불나방에 대한 리벤지 매치 역시 특별한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매 회 경기 중심으로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채워줬지만, 그것만으로도 몰입감이 생긴 이유였다. 

 

스포츠 예능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실 스포츠 예능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건 스포츠 자체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부르는 스포츠는 그 경기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그 결말을 알 수 없는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변수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점에서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제 아무리 스포츠를 예능으로 가져와 재밌게 구성하려 해도 그 ‘각본 없는 드라마’의 극성을 이겨내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포츠 예능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먼저 예능보다는 스포츠에 더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KBS <씨름의 희열>은 물론 씨름 경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그 목적은 예능적 재미가 아니라 씨름의 묘미를 좀 더 깊이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선수들의 장기를 먼저 알고 경기를 보고, 거기 들어간 기술을 여러 차례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며 설명을 더해주자 씨름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시청자들에게 희열을 주는 스포츠로 다가왔다. JTBC <뭉쳐야 찬다>는 처음에는 전직 스포츠 레전드들이 모여 하는 조기축구라는 예능적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경기 하나를 통째로 중계해 보여주는 스포츠 자체를 보여줬다. <골 때리는 그녀들>도 마찬가지다. 파일럿에서는 여자축구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의 예능적인 상황들을 보여줬지만 정규방송에서는 오롯이 축구 자체의 묘미와 여기에 진심인 출연자들에만 집중했다. 이러니 스포츠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예능이어서 가능한 다양한 편집들을 통해 훨씬 강화된 힘을 발휘하게 됐다. 전후반 각각 10분씩 뛰는 경기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의 축구가 박진감 있게 느껴지는 건 이런 예능적인 편집들을 통해 가능해졌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축구를 잘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고, 그걸 보다보면 축구의 진짜 묘미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으로도 자리했다. 혼신을 불사른 경기에서 지고는 쓰러져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찾아와 감독이 “이게 바로 축구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만든다. 심지어 경기 룰조차 잘 몰라도 지는 건 싫고 이기고픈 욕망이 큰 선수들이 그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스포츠 중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스포츠의 진짜 맛이 아니던가. 

 

물론 여전히 부지불식간에 습관적으로 나오는 성차별적 멘트들이 눈에 거슬리는 면이 있지만, 이것 역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생기는 실수들일 게다. 그런 실수들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여성과 스포츠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장 또한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진심인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변화의 파괴력은 그래서 결코 작다 말할 수 없다. (글:매일신문,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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