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성패를 가르는 진정성의 힘

 

한때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치부되던 소재들이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낚시, 골프, 게임, 밀리터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찐팬’들의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들 소재 예능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도시어부3

<도시어부>, 낚시에 미친 자들의 세계

한 때 예능에서 낚시는 금기시되는 소재였다. 이유는 잠깐 잡히는 그 순간에 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들이는 노동에 비해 나오는 방송분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KBS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에서 낚시를 소재로 잡았을 때, 낚시 자체보다는 복불복이나 토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시즌3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는 이런 금기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종편 채널로서 시즌1에 5.3%(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냈고 지금껏 3%에서 4%대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시청률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강점은 화제성이다. 낚시에 진심인 이른바 ‘찐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분이다. 

 

이렇게 된 건 <도시어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덕화, 이경규 같은 진짜 ‘낚시에 미친 자들’이 출연하고 있어서다. 다른 방송이었다면 한 자리에 앉아 40시간 동안 촬영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 ‘낚시에 미친 자들’은 40시간을 꼬박 잠도 안자고 낚시를 하고도 더 하면 안 되냐는 말로 제작진들의 귀갓길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낚시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이러니 ‘찐팬’들은 오죽할까. 가끔 게스트가 출연해 여느 예능에서 하듯 주저리주저리 토크를 늘어놓으면 찐팬들의 “낚시나 하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수근은 처음 늘상 하던 대로 토크를 하다 욕 많이 얻어먹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낚시에 미친 자들과 거기에 빠져든 시청자들의 끈끈한 관계가 <도시어부>라는 ‘노동 강도 최강’의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이유다. 

 

마니아들의 세계가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

한때 예능의 금기였던 낚시 같은 마니아들의 세계는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예능은 단적인 사례다. TV조선 <골프왕>을 시작으로 JTBC <회원모집 세리머니 클럽>, SBS <골프 혈전 편 먹고 072>, tvN D <스타골프빅리그>, 티빙 <골신강림>, MBN <그랜파> 등 골프 예능은 갑자기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한때는 부자들의 스포츠처럼 여겨져 서민들의 예능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였었지만, 최근 들어 골프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골프 클럽이 그만큼 늘어났고, 가격도 적당해졌다. 특히 골프는 이 종목에 미쳐 준프로급 수준의 기량을 가진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 역시 골프에 진심이다. 그래서 이들이 필드에 나가 벌이는 대결과 성장의 이야기는 특별한 예능적 조미료를 치지 않고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채널A <강철부대>는 물론 ‘밀리터리 예능’이 스테디셀러의 소재였지만, 보다 마니아적인 접근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슈팅게임 마니아들까지 팬층으로 끌어들이면서 프로그램은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파일럿으로 방영되어 괜찮은 반응을 얻은 후 정규로 돌아와 더 주목받고 있는 <골 때리는 그녀들>도 지금껏 잘 다뤄지지 않았던 여자 축구를 소재로 했다. 중요한 건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예능이 아닌 축구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파일럿에서의 전패 굴욕에 절치부심해 자발적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다시 경기를 치른 모델팀이 보여준 투혼 같은 걸 보다보면 그것이 단지 예능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발톱이 빠져도 승부욕을 드러내고, 모델 다리에 여기저기 멍든 자국들이라니. 이러니 찐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자 축구’라는 소재 때문에 ‘여자’라는 지점을 너무 강조하거나, 혹은 ‘○○의 아내, ○○의 며느리’식으로 불렀던 파일럿에서의 문제점들을 모두 수용해 변화를 보여줬고, 남녀라는 성별과 상관없이 ‘축구’ 자체에 집중한 면이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은 이유가 됐다. 

 

시청률이 성공의 지표? 이제는 팬덤이 생겨야

과거 금기시되던 마니아 소재들이 예능에서 새로운 성공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고, 예능의 성공방정식이 ‘진심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이 변화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건 ‘취향’이 점점 중요해진 시대에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어도 열성적인 찐팬(마니아)의 힘이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 성공의 지표가 시청률이 아닌 ‘팬덤’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즉 시청률이 높다고 해도 찐팬들이 모여 팬덤이 형성되지 않으면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시청률이 낮아도 팬덤이 형성되면 나름 성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2>의 성패를 들 수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미스터트롯>과 달리 <미스트롯2>는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일컬어지지 않는다. 그 차이는 팬덤에서 비롯된다. <미스터트롯>은 여기서 배출된 톱7이 모두 강력한 팬덤을 만들었지만 <미스트롯2>는 누가 우승을 차지했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찐팬은 이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는 단적인 사례다. 유튜브를 통해 모여든 찐팬들이 각국에서는 적어도 글로벌하게 연결되면서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힘들이 모여 방탄소년단의 현재를 만들었다. 이 성공사례는 그래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가 참여했던 Mnet <I-LAND>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고시청률이 겨우 0.7%에 불과했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확보했다. 이 팬덤의 힘은 여기서 배출된 아이돌그룹 엔 하이픈이 반년만에 빌보드 앨범차트에 18위로 입성하는 결과로 드러났다. 어째서 팬덤 확보가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취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로 묶여진 취향에 진심인 이들은 더 이상 마니아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만일 글로벌로 묶인다면 글로벌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이 취향에 진심인 자들을 매료시키는 건 ‘진심으로 미친 자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이야말로 예능의 성패로 자리하게 된 이유다.(글:시사저널, 사진:채널A)

‘악마판사’의 통쾌함과 불편함은 어디서 오나

악마판사

또 다른 다크히어로의 탄생이다.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는 대놓고 주인공에 ‘악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모범택시>, <빈센조>에 이어 <악마판사>까지. 도대체 다크히어로들은 어쩌다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 걸까.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판사 작품 맞아?

사실 <미스 함무라비>를 쓴 문유석 작가는 우리에게는 ‘판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건 그가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 전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통해 전 부장판사였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바 있고, 무엇보다 <미스 함무라비>가 바로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새로 쓴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 역시 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적어도 <악마판사>를 기점으로 문유석은 ‘판사’보다는 ‘작가’라는 직함이 더 어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법정의 현실을 담은 <미스 함무라비>와는 사뭇 다른,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판사로서의 현실 경험보다는 작가로서의 상상이 더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악마판사>다. 

 

본래 작품의 판타지는 현실의 결핍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가상의 설정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는 현실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라이브 법정 쇼’에 처음 서게 된 JU케미컬 회장 주일도(정재성)는 독성폐수를 무단 방출해 한 마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이런 유사한 사건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모티브가 됐던 91년에 있었던 낙동강 페놀 방류사건이나, 여전히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야기한 가해 책임자들은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악마판사>에서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강요한(지성) 재판장은 주일도 회장에게 금고 235년이라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놓는다. 또 두 번째로 열린 라이브 법정쇼에서 엄마가 법무부장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안하무인 갑질을 일삼아온 피고는 ‘태형(때리는 형벌)’ 30대를 선고하고 그 과정을 생중계한다.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을 가상의 국가와 라이브 법정쇼 같은 설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잠시간의 ‘사이다’를 안기는 것. 

 

이런 이야기 구조는 SBS <모범택시>와도 유사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이기도 했던 박준우 연출자는 그 프로그램이 다뤘던 실제 사건을 허구의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그 가해자들에게 ‘사적 복수’를 가하는 무지개 운수팀의 사이다 액션을 그린 바 있다. 여러모로 문유석 작가는 이제 현실의 문제를 좀 더 가상을 빌어 풀어보려는 작가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인다. <악마판사>는 바로 그런 욕망의 소산이다. 

 

이 라이브 법정쇼가 겨냥하고 있는 것

<악마판사>는 그러나 라이브 법정쇼라는 ‘사이다 법 정의’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강요한(지성)이라는 주인공을 ‘악마판사’라 세우고 있는 데는 그가 과거 어떤 불행을 겪었고 그래서 절치부심 복수극을 펼쳐가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버려진 아이로 대부호의 집에 입양되어 살아온 강요한을 그의 배다른 형인 강이삭(진영)이 살뜰히 챙겨줬지만, 10년 전 그 막대한 유산을 사회적 책임재단에 전액 기부하려던 중 발생한 의문의 성당 화재로 인해 형 부부가 모두 사망하게 된 것. 강요한은 형의 딸 엘리야(전채은)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그 기부를 전면 취소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그래서 마치 강요한이 그 화재를 일으키고 그 재산을 모두 강탈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 날 성당에 있던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아이인 엘리야를 밟으면서까지 탈출한 그런 비정한 인물들이었다. 그들 사회적 책임재단 인사들은 지금도 이 가상의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이 되어 있었다. 대통령 허중세(백현진), 법무부장관 차경희(장영남), 사회적 책임재단 이사장 서정학(정인겸), 민보그룹 회장, 사람미디어그룹 회장 등등.

 

결국 <악마판사>가 보여주고 있는 구도는 사회적 책임재단으로 불리며 마치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적 이익에만 혈안인 이들에 대한 강요한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아직 그 실상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당시 성당의 화재와 형인 강이삭의 전 재산 기부 같은 사안의 이면에는 아마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책임재단의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요한이 하는 ‘라이브 법정 쇼’는 그래서 전 국민이 보고 참여하는 라이브 쇼라는 방식을 통해 실제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비극을 겪은 가족을 위한 복수극이 펼쳐지는 곳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악마가 판을 치는 다크히어로 전성시대

<악마판사>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선한 주인공이 아닌 다크히어로를 그리고 있다.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집이지만 텅 비어 있어 어딘지 음습하고 쓸쓸한 대저택은 거기 살고 있는 강요한이라는 다크히어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마치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을 닮았다. 고풍스런 대저택에서 살지만 고독하고, 어딘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는 어두운 인물. 그래서 드라마는 초반에 라이브 법정 쇼로 전 국민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강요한이라는 인물이 그 모습과는 다른 ‘악마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그의 등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십자가 모양의 커다란 화상의 흔적은 ‘요한’이라는 그의 이름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십자가를 진 채 저들 악마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 다크히어로의 아우라를 만든다. 결국 그가 악마가 되기로 한 건, 그래야만 저 악마보다 더 한 사회적 책임재단의 가면을 쓴 어둠의 카르텔과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악마판사>에서 단박에 <모범택시>가 떠오르고, 그 어두운 인물의 면면에서 tvN <빈센조>가 떠오르는 건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다크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는 부모가 모두 살해당하는 일을 겪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미온적인 사법 처리 과정을 겪으며 ‘사적 복수 대행’이라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빈센조>는 이탈리아에서 온 마피아 변호사로서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고 말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다. 어쩌다 지금 정의를 메시지로 담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선이 아닌 악을 선택하게 된 걸까. 그건 이 정도의 강력한 대응이 아니면 저들끼리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한’ 악을 대적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된 일이다. 다크히어로는 그래서 어설픈 착함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악함으로 저들과 싸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러한 다크히어로 전성시대의 밑그림에 어른거리는 대중들의 정서는 사법행정에 대한 불신이다.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범법자들이 돈과 권력의 힘으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법 위에서 오히려 법을 이용하는 행태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지 않은가. 그래서 서민들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외침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 속에서 다크히어로는 탄생한다. 그들이 주는 사법 정의가 물론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할 뿐일지라도 잠시간의 사이다일 뿐일 지라도 그 시원함을 맛보고 싶어진다. 물론 그 통쾌함 뒤에 남는 건 이런 식의 가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현실이 주는 불편함이지만.(글:매일신문 사진:tvN)

‘전원일기2021’이 보여준 연기와 삶의 이중주

전원일기

오랜 세월 한 역할의 연기는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 4부작이 막을 내렸다. 4부작의 분량으로 무려 22년간 방영됐던 <전원일기>가 남긴 발자취와 소회를 모두 담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게다. 하지만 이 짧은(?) 다큐를 통해 연기와 삶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건, 짧아도 충분한 가치를 증명했다 평가할 만하다.

 

이 가치증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전원일기>의 김회장, 최불암이다.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현재로 소환해낸 이 다큐의 시작을 열었고 마무리를 장식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라는 무거운 초상을 짊어진 채 김회장이라는 인물을 삼십대 후반의 나이부터 맡아 22년을 살아왔고, 그 후로도 그는 그 김회장으로 산 22년의 삶의 영향과 동력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 다큐를 통해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가 어느 날 갑자기 KBS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여전히 그의 가슴 한 켠에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도시화가 이뤄지고, 모두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오고 있는 그 와중에 김회장은 마치 마음의 부채라도 있는 듯 여전히 농촌의 삶을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시골의 아주머니들과 어르신들은 반갑게 그를 김회장으로 맞아주곤 했다. 

 

몇 차례의 고사 끝에 인터뷰를 하게 된 김혜자는 여전히 최불암을 ‘선생’이라고 지칭했다. “저는 최불암씨가 선생님 같았어요.... 나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라서 공부를 안했다고요. 그니까 그 연기 공부한 거를 말해주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그래서 둘이 있을 때는 참 많이 ‘또 해줘 봐’ 그러면 인제 얘기해줘요.” 

 

지금껏 그저 최불암 하면 당연히 ‘국민 아버지’나 혹은 ‘최불암 시리즈’ 그리고 간간이 개그맨들이 “파-”하는 웃음으로 흉내 내곤 했던 그런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원일기 2021>은 최불암이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된 연기자였는가를 잘 보여줬다. 예를 들어 “파-”하는 그 웃음도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크게 하하 웃는 것보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웃는 게 김회장이라는 인물에 어울린다는 판단에서 나온 연기였다. 그 연기는 놀랍게도 습관이 되어 최불암의 웃음이 되어갔지만.

 

4회에서 금동이 역할을 했던 임호나 영남이 역할을 했던 남성진은 모두 <전원일기>의 연기가 당시의 분위기와는 달랐다고 증언했다. 즉 당시만 해도 다소 과장된, 신파적인 연기가 많았다는 것. 하지만 <전원일기>는 그런 과장을 뺀 자연스러운 ‘메소드 연기’를 배우들이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최불암이 있었다. 남성진은 처음 녹화를 할 때 최불암이 세트에서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그건 세트 촬영이라도 모두 화면을 향해 있는 게 너무 ‘연극적’이라는 판단에 최불암이 보인 자연스러운 연기였다는 것이었다. 

 

당시를 술회하며 최불암은 <전원일기> 녹화하러 방송국을 찾았을 때 경비실에서 그를 보고는 “오늘 <전원일기> 녹화시네요?”라고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멀리서 봐도 김회장이 오는 것 같아서 경비하시는 분이 딱 알아봤다고 했다는 것. 그만큼 그 인물에 대해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노력은 <전원일기>를 함께 했던 배우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김혜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전혀 다른 엄마의 모습을 연기해낸 바 있다. 그런데 그 엄마의 또 다른 얼굴 또한 <전원일기> 안에 이미 있었던 걸 다시 꺼내 쓰는 것이 아니냐는 제작진의 말에 동의했다. 최불암이 도움을 주기도 했고, 또 그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주변 배우들에게는 귀감이 되었을 터였다. 그 영향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게다. 

 

<전원일기>는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인물을 오래도록 연기하면서 그 인물의 모습과 습관과 생각 같은 것들이 삶으로 전이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김혜정이나 이계인 같은 배우는 그래서 지금도 전원으로 내려가 그 삶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 작품에서 티격태격 연인으로 만난 김지영과 남성진은 실제 부부가 되었다. 김수미는 이 작품을 통해 갖게 된 그 일용네 이미지가 지금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예능 프로그램으로 그 맥을 이어가게 됐다. 물론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다. 우리에게 ‘응삼’이라는 인물로 더 기억된 박윤배는 실제로도 일찍 이혼해 혼자 사는 삶을 살다가 병으로 먼저 떠났다. 

 

흔히들 연기는 삶과 동떨어진 어떤 ‘역할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인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 속에서 끄집어내 보여주는 게 연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연기는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20년이 넘는 세월을 했다면 더더욱 그럴 게다. 최불암은 김회장이 금동이를 입양하는 그 연기를 한 후 시청자들이 상찬하는 바람에 진짜 ‘어린이 재단’ 후원 일을 앞장서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연기란 그런 것이다. “파-”하고 웃던 웃음이 진짜 자신의 웃음이 되기도 하는.

 

되돌려 말하면,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각자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연기할 것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그 연기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그래서 그 선택이 그의 삶이 되기도 한다. <전원일기2021>은 놀랍게도 이러한 ‘연기의 실체’를 끄집어내 보여줬다. 20년 넘게 연기해온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의외의 결과다. <전원일기>를 재조명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삶을 통해 연기가 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에둘러 보여주게 된 것. 이것은 배우가 아닌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나는 어떤 연기를 선택했고 그걸 연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사진:MBC)

‘전원일기’ 신드롬에 담긴 대중들의 다양한 갈증들

 

때 아닌 <전원일기> 열풍이다.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금 <전원일기>를 방영하고 있고, OTT에서는 인기드라마 순위 톱10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에 종영한 <전원일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대중들의 어떤 갈증들을 담고 있는 걸까. 

전원일기

<전원일기>를 소환시킨 매체 환경 변화

최근 MBC <다큐플렉스>는 MBC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 2021’ 4부작을 내놨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 간 방영됐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이 드라마를 재조명한 ‘전원일기 2021’은 19년 전 종영하며 각자의 길로 돌아간 <전원일기> 가족들이 다시 하나둘 얼굴을 보이며 만남을 갖는 시간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중심축이었던 최불암, 김혜자를 위시해 고두심, 박순천, 김용건, 유인촌, 김수미, 김혜정, 박은수 같은 반가운 인물들이 당시의 <전원일기>를 회고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MBC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를 현재로 소환해낸 걸까. 이것은 최근 이 19년 전 종영한 드라마에 대한 의외의 관심과 반응들이 일종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어서다. <전원일기>는 MBC ON, 엣지티비, 채널 유, KTV 등 7개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는 인기 드라마이고,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와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는 인기드라마 톱10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건 최근의 달라진 방송 시청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다. 즉 과거 ‘TV 시대’의 시청이란 방영시간대에 맞춰 ‘본방’을 보는 방식이었지만, ‘OTT 시대’의 시청은 원하는 방송을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 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본방 시간대에 올라가는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만이 아니라, 과거에 방영됐던 명작 드라마들을 ‘취향별’로 골라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은 <전원일기> 같은 향수와 추억이 묻어나는 드라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OTT를 통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우리네 드라마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장르물들은 과거의 드라마들처럼, ‘콩나물 다듬으며’ 편안하게 보기에는 쉽지 않다. 더 큰 몰입을 요구하는 이들 장르물들은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데다, 드라마의 이야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들 시청자들은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지나간 옛 드라마들을 보기 시작했다. <전원일기>만이 아니라 <야인시대>, <태조 왕건> 같은 드라마들을 연달아 방영해주는 케이블 채널의 소비층으로 부상한 것. 여기에 OTT처럼 아무 때나 다양한 옛 드라마들을 선택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시청은 더 편리해졌다. <전원일기>가 2021년에 다시 현재로 소환된 배경에는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시청 패턴이 깔려 있다. 

 

<전원일기>, 젊은 세대들까지 끌어들인 마력

그런데 놀라운 건 <전원일기>에 대한 열광이 기성세대만이 아닌 젊은 세대들에게도 생겨났다는 점이다. ‘부모와 함께 보다가 빠져 들었다’는 이들 젊은 세대들은 <전원일기>의 무엇에 매료된 걸까. 여기서 주목되는 건 <전원일기>가 가진 ‘뉴트로적 매력’이다. 

 

레트로는 기성세대들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에 대한 추억이나 회고지만, 뉴트로는 그 과거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세대들이 그 옛 경험을 ‘힙하게(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즉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전원일기>의 다소 거칠고 때론 희미하게까지 보이는 영상들은 ‘빈티지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얹어진 것으로 재해석되는 것.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전원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인 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은 없는 ‘농촌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유니크함이 있고, 그 안에 담겨진 김회장(최불암)댁 가족들이나 일용이네 가족들이 겪는 서사의 특별함이 있어서다. 이미 농촌조차 ‘전원도시’가 되고 있고, 많은 이들이 도시로 떠나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농촌의 이야기’는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자체가 새롭고 특별할 수 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전원일기>의 굉장하지는 않아도 소박하면서 훈훈한 이야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힐링을 느낀다고 말한다. 마치 ‘불멍’, ‘물멍’ 같은 편안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23년 간 방영된 이야기는 그 세월만큼 거기 등장한 가족들에 대한 유대감을 만들어주기 마련이다. 물론 <전원일기>를 보며 자라온 세대라면 그 드라마 속 가족들이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그 과정까지 공유함으로써 더 큰 세대적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따뜻한 가족애가 주는 편안함은 요즘처럼 핵가족화되고 나아가 나홀로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는 세태에 오히려 더욱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대중들이 농촌, 자연에 갈증을 느낀다는 증거

<전원일기>가 2002년 종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바뀌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이들이 급증했고, 농촌조차 전원도시로 변모했다. 당연히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도시의 세련된 삶이 대중들이 보고픈 것들이었고, 그래서 당대에 드라마들은 이런 삶을 담은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이 때 등장했던 트렌디 드라마들은 지금의 한류 드라마가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가치관도 바뀌기 시작했다. 가부장적 사고관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전원일기>의 가족 이야기들은, 물론 당대의 농촌의 삶을 리얼하게 담았던 것뿐이지만, 점점 개인이 중요해지는 도시적 삶의 방식 앞에 어딘지 구시대적인 느낌을 만들었다. 물론 <전원일기>도 이런 변해가는 세태를 반영해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농촌 가옥의 세트는 전원도시의 개량된 가옥으로 바뀌었고,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전원일기> 특유의 정서를 계속 이어가게 해주지는 못했다. 너무 오래도록 출연했던 배우들마저 이제는 하차를 원하게 되자 결국 <전원일기>는 종영했다. 

 

그렇다면 종영 후 19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그런 시대의 변화 때문에 종영을 선택했지만 지금 다시 <전원일기>가 주목받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최근 몇 년 간 고도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과,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오히려 거꾸로 자연과 농촌에 대한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현 대중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전원일기> 종영 이후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그 명맥을 이었지만 이마저 종영된 후 농촌드라마(전원드라마에 가까웠다)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드라마가 농촌을 떠나버린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농촌과 자연을 찾아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박2일>부터 시작해 <삼시세끼> 같은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이 시골과 자연을 찾아 떠났고,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은 종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도시화될수록 대중들의 농촌과 자연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이다. 

 

<전원일기>가 지금 대중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 건, 갈증은 커졌지만 이를 채워줄 농촌드라마가 부재한 현실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서 그 갈증이 채워질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이미 달라진 농촌의 현실이 더 이상 저 <전원일기> 속 농촌 풍경이 주던 편안함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원일기>는 그렇게 더 이상 우리가 볼 수 없는 ‘사라진 농촌’을 담은 작품으로서 더더욱 아우라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됐다. 

 

자극적인 19금 콘텐츠의 시대, <전원일기>의 가치

“딴 드라마들은 그 갈등의 잔해들이 있잖아. 욕하고 막 미워하고 이런 걸 아주 자세히 보여줘요. 그럼 사람들이 재밌어가지고 어머나 이렇게 욕하면서 봐요. 근데 이 드라마는요, 엄마, 아버지 그 다음에 또 험한 말하는 일용엄마까지요. 그 (갈등의) 잔해들을 주워요.” ‘전원일기 2021’에 출연한 김혜자는 인터뷰에서 <전원일기>가 왜 다른 드라마들과는 다른가를 ‘갈등의 잔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그가 <전원일기>를 ‘농촌드라마’가 아닌 ‘휴먼드라마’라고 강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애써 화해하는 모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이런 ‘휴머니즘’은 심지어 배우들의 삶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전원일기 2021’에서 최불암은 드라마 속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김회장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그 후로 지금껏 어린이재단을 후원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즉 그건 드라마 속 김회장의 이야기였을 뿐이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시청자들 때문에 실제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이 시청자들을 움직였고, 그 시청자들의 반응이 배우들을 움직여 현실의 온도를 조금은 높여주는 선순환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전원일기>는 그래서 현재 점점 자극적으로 치닫고 있는 드라마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OTT가 열리면서 해외의 자극적인 19금 드라마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우리네 드라마도 이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중이다. 물론 19금 드라마가 그 자극의 수위로 문제가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주제의식과 상관없이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닫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은 <전원일기>와는 확실한 비교점을 만든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예사로 일어나는 이들 막장드라마들 속에서, ‘갈등의 잔해를 줍는’ <전원일기>가 가진 가치가 새롭게 드러난다. 자극의 끝단을 담는 드라마들 속에서 <전원일기>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농촌마저 도시화를 꿈꾸는 요즘, 우리에게 원형적인 따뜻함으로 기억되어 있던 ‘고향’의 풍경들은 갈수록 소외되고 사라져간다. 그래서 그 사라져가는 정경에 대한 갈증이 커지듯이 <전원일기>는 2021년에 새로운 가치로 우리에게 재조명되고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그 삶의 방식 또한 변해가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건(않아야 한다 여기는 건) 바로 우리네 인간이다. 그래서 <전원일기>를 통해 우리가 애써 찾고 있는 건 ‘인간의 온기’가 아닐까 싶다. (글:시사저널,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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