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퀴', 가희 논란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서

초심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제작진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세바퀴'의 가희 논란에서 정작 가희의 잘못은 없다. 잘못은 초심을 잃은 제작진에게 있다. '세바퀴'라 불리지만 이 프로그램은 '세상을 바꾸는 퀴즈'가 본래 이름이다. 뭐가 그리 대단한 퀴즈길래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일까. 중요한 건 퀴즈 자체가 아니라, 퀴즈에 참여하는 신구 세대들과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그 과정이다. 그 과정은 실로 세상을 바꿀만했다. 퀴즈를 풀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신세대들과 중장년층이 서로 어우러지는 그 광경.

선배들은 신세대들의 문화를 잘 몰라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신세대들 또한 선배들 시대의 문화를 리바이벌해주는 존경의 태도를 유지했다. '일밤'의 한 파트로 있을 때는 이 신구세대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다. 아마도 그 시간대는 신구세대 모두를 배려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밤'에서 빠져나와 몇 차례 편성표의 자리를 옮겨 다니다 작금의 밤 시간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바퀴'는 조금씩 변한 게 사실이다.

내적인 이야기보다는 외모에 치중하는 경향도 생겼다. 젊은 남자 아이돌에게 복근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보여주면 일제히 환호하는 아줌마들의 모습, 그리고 때로는 과감하게 복근을 만지거나 껴안는 장면들은 물론 호감의 표시이거나 웃음을 주기 위한 과장일 테지만, 이런 장면이 연출될 때 유의해야할 점은 거기 세워지는 젊은 남성 혹은 여성이 이 당혹스런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조권 같은 이미 예능감이 충만한 아이돌이라면 오히려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이럴 경우, 성희롱 같은 느낌은 상쇄된다. 물론 이런 연출이 잘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어떤 균형이 유지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균형이 깨졌을 때가 문제다.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젊은 아이돌들을 세워놓고 춤을 추게 하고 복근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데, 그 행동이 어떤 강요 같은 느낌을 줄 때, 게다가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이런 느낌으로만 흐를 때, 그건 당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까지 불편하게 된다. 문제가 생겼던 가희가 출연했던 '세바퀴'에서는 특히 그런 불균형이 심했다. 이날 출연한 줄리엔 강을 놓고 벌어지는 아줌마들의 토크와 행동들이 특히 그랬다. 박미선이 계속 줄리엔 강이 "잘생겼다"고 연발하자, 이경실은 그래서 미리 "침을 발랐다"고 표현했으며(이때 줄리엔 강은 그 말뜻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뜻이 '뽀뽀'를 뜻하는 거냐는 줄리엔 강의 질문에 이경실은 "뽀뽀 원해?"하고 다시 물었다. 결국 줄리엔 강은 "허그를 잘 한다"는 이휘재의 말에 따라, 아줌마들의 애정 공세에 일렬로 죽 늘어선 그녀들을 하나하나 껴안아줘야 했다.

가희가 나왔을 때는 조형기가 자신의 과도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것은 지금껏 조형기가 가진 캐릭터에 비춰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외모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조형기의 애정 역시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급기야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흘러나왔고, '자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싫다"는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그리고 역시 외모에 대한 비교가 이어졌다. 그 이상형에 맞는 사람은 줄리엔 강밖에 없다며, 그와 그녀를 나란히 세우는 것. 그 후에 예정된 대로, 가희가 섹시한 춤을 추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김구라가 넋이 나간 모습을 연출했다.

'세바퀴'의 외모에 대한 치중은 결국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신구 세대 간의 균형있는 접근이 아니라, 아저씨 아줌마들이 젊은 세대들을 세워놓고 그 성적인 뉘앙스(외모로 표현되는)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상황이 만들어내는 문제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 희롱 같은 불편한 장면들이 연출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표상되는 세대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아저씨 아줌마들은 다 그래)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으로 넘어가면 애초에 '세바퀴'가 의도했던 세대 간의 소통은 요원해진다. 결국 구세대들의 젊은 세대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세바퀴'의 가희 논란이 불거진 것은 바로 그 키 얘기 자체가 민감해서라기보다는, '세바퀴'가 계속 의도적으로 연출해낸 이런 자극적인 구도 탓이 더 크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상형을 물어보는데, 외모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세바퀴'의 문제는 '가희 논란'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초심과는 멀리 와 버린 작금의 프로그램 전반의 문제다. 아무리 자정에 가까운 성인들의 시간대라고는 하지만, 너무 노골적인 외모나 성적인 접근은 오히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땅의 모든 중년들이 젊은 외모 앞에 노골적인 것처럼 그려지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신구세대가 균형 잡혀 있던 그 때의 초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청춘불패', 제2의 써니가 필요하다

"나도 여기 싸고 싶다." 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빅토리아가 서툰 한국말로 말하자, "싸고 싶다가 아니고 살고 싶다!", 하고 써니가 고쳐준다. 사실 고쳐준 것이 아니라 빅토리아의 서툰 말투를 가지고 말장난을 한 것. 그러자 빅토리아가 다시 고쳐 말하는데, 이번에는 써니가 이 말을 '쌀국수'로 몰아간다. "쌀국수도 아니고..." 우연히 지나치면서 나왔을 이 짧은 대화는 그러나 써니가 가진 특유의 예능 순발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써니가 '청춘불패'에서는 딱 그 주인공이었다. 써니와 유리가 '청춘불패'에서 빠지고 나서 이 프로그램은 분명 구심점이 흔들렸다. 거의 대부분을 김신영이 이끌어나가고 있지만(물론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녀를 받쳐줄만한 아이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 '청춘불패'는 뭐니뭐니해도 걸그룹 아이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김신영이 아무리 진행을 해나간다고 해도 그녀에게 전적으로 기대서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써니의 빈자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써니가 특별게스트로 참여한 일본특집 편에서 김신영의 진행은 써니의 닭살 애교로 살아났다. 버스 안에서 김신영은 써니에게 '일본식 애교 3종세트'를 요청했고, 써니는 특유의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를 선보였다. 그러자 김신영은 거기에 맞춰 “오랜만에 주먹을 부른다”며 “토쏠리노 노오데쓰(토하시면 안됩니다), 비닐봉다리 후루룩데쓰요(토는 비닐봉지에 하세요)"라고 개그를 던졌다. 개그맨인 김신영과 아이돌인 써니의 조화가 빛나는 장면이었다.

게스트로 참여했기 때문에 써니는 그다지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써니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청춘불패'는 어떤 활기가 느껴졌다. 특히 써니와 또 다른 콤비를 이루던 효민은 잠자는 써니를 두고 이른바 병풍 개그를 환기시켰다. 늘 써니의 병풍을 자처했던 효민이 이번에는 카메라 앞에 서서 써니가 뒤에 있다고 말하며 그 상황을 뒤집어버린 것. 이것은 효민이 가진 병풍이라는 캐릭터에 써니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다지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써니지만, '청춘불패'에서 그녀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일 잘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해냈다. 중요한 건 자신 혼자 개인기를 통해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과의 관계(콤비)를 통해 '청춘불패' 전체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써니가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청춘불패' 일본 특집편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무엇을 통해 빛나는 지를 잘 말해준 사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써니와 유리가 빠지고 빅토리아와 주연, 김소리가 새롭게 합류하여 과도기에 처해있는 '청춘불패'가 고민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써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전체 팀원들의 캐릭터를 살려낼 차세대 아이돌 분위기메이커는 누가 될 것인가. '청춘불패' 본연의 자세인 시골에서의 일에도 열심이면서, 또 예능으로서의 웃음 또한 놓치지 않는 제2의 써니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가 보여주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른바 '꽈당 엔딩'은 드라마에 어떤 역할을 할까. 제작진이 밝힌 대로 이 특별한 엔딩은 일단 재미있다. 이번엔 누가 넘어질 것인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엔딩 장면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이른바 드라마들이 늘 엔딩에 보여주곤 하는 '낚시 장면'이 없다는 것이 신선하다. 즉 뭔가 벌어질 것처럼 해놓고 다음 회를 낚는 방식이 아니라, 드라마의 스토리 자체가 보여주는 매력으로 다음 회를 보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이 엔딩에는 이런 재미나 자신감 그 이상의 의미도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인생은 이 엔딩처럼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로 넘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기 마련이라는 것. 혹은 그렇게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일으키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병태(김영철)네 가족의 상황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평생을 밖으로만 떠돌며 딴집 살림을 하다가 늘그막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와 앉은 할아버지(최정훈), 어느 날 갑자기 커밍아웃을 해버린 맏아들 태섭(송창의)은 이 평탄하지 않은 가족에서 불거져 나온 몇 가지 사건에 불과하다. 그 밑을 들여다보면 재혼 가족으로서 겪었을 민재(김해숙)의 쉽지 않은 시집살림이 보이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병준(김상중)과 병걸(윤다훈)이 보인다. 이 밑바닥 상황을 보면 왜 민재의 딸인 지혜(우희진)가 그토록 완벽한 결혼을 꿈꾸는지(엄마의 이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왜 병준과 병걸이 쉽게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는지(이것도 아마 아버지의 평생 외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집안은 바람 잘 날 없이 늘 시끄럽다. 소소해 보이는 일들이(결코 소소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터지고 거기에 대해 가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낸다. 수다 떠는 남자로 밉상 역할을 톡톡히 하는 병걸은 이 가족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에 시시콜콜 참견을 해댄다. 제 아무리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태섭을 마치 괴물 보듯 대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꾸고 끌고 가는 인물은 민재다.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맨 앞에 나서 그를 적극적으로 안아준 인물도 민재다. 병준 역시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지혜는 그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스타일이고, 호섭(이상윤)이나 초롱(남규리)이도 신세대답게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가족들 속에서 유일하게 침묵하며 늘 빙그레 웃는 인물이 있다. 바로 병태다. 그는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가족들의 상황을 거의 받아들이는 편이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억지로 웃는 그의 얼굴은 그래서 이 가족이 실질적으로는 누구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묵묵히 바라봐주고 제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이 아버지의 부성애는 바람 잘 날 없는 이 가족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소소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 아버지의 자애로운 눈은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런 얘기를 건네는 듯하다. 살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늘 옆에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래서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은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는 거라고. 울고 싶은 인생이라도 웃어야 웃을 수 있다고.

'제빵왕 김탁구'와 생활의 달인

"제가요. 5년 전쯤에 반죽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밀가루 반죽이 바로 제 담당이었는데요, 거기서 일하는 2년 내내 주구장창 반죽만 해대서 말입니다. 이제 반죽에 손만 대면 반죽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된 거죠."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가 팔봉선생(장항선) 앞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프로그램 하나.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아버지에게 배웠던 우아한 빵 동작(?)으로 손가락 끝에 닿는 공기 중의 습기를 체크한다거나, 허공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실내가 건조해서요. 이러면 반죽이 금방 마르거든요."하는 김탁구에게서는 저 '생활의 달인'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달인들의 기가 느껴진다.

김탁구의 달인 포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밀가루 덩어리를 대충 떼어낸 후 "제가 잘라놓은 부위가 대충 500g 정도 되니까 100g씩 5등분을 해보겠습니다."하고 호언장담한다. 어찌 그 무게를 그리 정확히 아느냐는 팔봉선생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요. 또 한 일 년 넘게 일한 곳이 있었는데요. 거기서는 근수를 정확히 재는 게 생명이거든요. 자르고 재고 자르고 재고 그렇게 일 년 내내 자르고 재다 보니까 저울에 달지 않고도 대충 손으로도 무게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생활의 달인'에 등장했던 달인들이 그러하듯이 김탁구의 기예에 가까운 기술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생활에서 비롯된다. 거의 손버릇처럼 만들고 또 만들고 하면서 이제는 척 만져보기만 해도 반죽의 습도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되고, 또 대충 잘라도 정확한 양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탁구에서 성인 탁구로 넘어오면서 지나가버린 12년의 세월이 단지 탁구가 엄마를 찾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속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빵과 관련된 일을. 딱 한 번 본 것뿐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그 빵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절망적인 시간을 이겨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제 2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1라운드가 김탁구가 살아왔던 평탄치 못한 70년대 막가는 세월을 그려냈다면, 2라운드는 그 세월을 뚫고 성장해온 김탁구가 본격적으로 제빵왕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재미있는 것은 김탁구와 구마준(주원)의 빵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다. 구마준이 전 세계를 떠돌며 아버지가 좋아했던 빵들을 교육을 통해 배워왔다면, 김탁구는 그것을 생계와 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 대결구도는 단순해보이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물론 극적으로 변형되어 상당히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개발시대에 소외된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술에 놀라다가 어느 순간 찡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들을 달인으로 만든 그 시대의 고단함이 거기서 비춰지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생활하다보니 달인이 된 그들에게서 우리는 성공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건강함을 발견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어떤 시대극으로서 당대를 살아온 분들에 대한 헌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탁구라는 캐릭터 자체가 온몸으로 정직하게 그 시대를 뚫고 성장해온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그러니 어쩌면 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생활의 달인'이 된 김탁구는, 당대를 건강하게 살아내면서 보잘 것 없는 교육과 위치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한 분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표상으로서 김탁구라는 인물의 비범함은 단지 타고난 후각과 기술습득 능력이 아니다. 빵을 만들면서 맛을 경쟁하기보다는 그 빵을 먹을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그를 비범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개발시대를 온몸으로 넘어선 이 땅의 모든 생활의 달인들이 비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지금 그 시대와의 한판 유쾌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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