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한밤의 TV는 과거로 흐른다. 월화는 고구려 건국 직전인 ‘주몽’의 시대로, 수목은 ‘황진이’의 조선시대로, 다시 주말이면 ‘연개소문’, ‘대조영’의 삼국시대로 돌아간다. 사극천하의 뒤안길에 서 있기 때문일까. 같은 시간대의 현대물들은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월화극 ‘눈꽃’의 이강애(김희애 분)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수목극 ‘90일 사랑할 시간’의 현지석(강지환 분) 역시 췌장암 말기로 90일 시한부인생 판정을 받았고, 주말극 ‘기적’의 장영철(장용 분)은 폐암 판정을 받았다.

현대물, 나 상태 안좋아
작년부터 있어온 트렌디 드라마의 퇴조는 좀체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트렌디 드라마’라는 지칭이 마치 구태의연함과 상투성의 상징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당한 평가도 받지 못한 새로운 현대물들에게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극들의 대약진은 그 명예회복을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몇몇 현대물들, 예를 들면 ‘연애시대’나 ‘여우야 뭐하니’그리고 ‘환상의 커플’ 같은 드라마는 과거에 비해 엄청난 성과를 거둔 드라마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극의 뒤안길에서 투병중인 현대물들은 좀더 강력한 드라마성을 얻기 위해 과거로 퇴행하는 것일까. 전통적인 소재인 ‘불치병’이 갖는 드라마코드는 실제로 구태의연하면서도 강력하다. 그것이 갖고 있는 한정된 시간이란 설정이 드라마의 갈등이나 감정을 더 첨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코드가 갖는 최루성 눈물의 이미지다.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눈물보다는 상큼 발랄 모드가 더 인기를 얻기 때문이다(이것은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불치병이라도 괜찮아
그렇다고 이들 드라마들은 모두 ‘불치병’드라마로 싸잡아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은 것 같다. 김수현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월화극의 ‘눈꽃’은 단순히 자극적인 최루성 드라마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지하다. 심지어 그 진지함이 지루함을 유발할 정도인데, 이 정도면 이 작품은 단지 불치병 소재의 드라마라기보다는 인간 삶에 대한 관조를 시한부 인생이라는 코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 작가 본인의 자전소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지 그 섬세한 감정선을 잘 살려낸 ‘눈꽃’은 김희애, 이재룡, 고아라의 호연 또한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4부작이지만 노희경이란 굵직한 작가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주말극 ‘기적’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 역시 소재보다는 그 접근방식이 중요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억울함을 많이 느낄 드라마는 ‘90일 사랑할 시간’이 아닐까. 이 드라마는 불치병의 코드에 근친상간, 게다가 불륜의 코드까지 뒤범벅되어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우리나라 드라마 속에서 문제가 된 코드의 종합선물세트로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가 그런 코드들을 모두 담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전혀 새로운 것이란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불륜이나, 불치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사극의 연속되는 펀치로 응급실에 실려간 현대물들, 그 작품들은 그러나 그곳에 있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다. 막연한 선입견으로 피해왔던 시청자라면 한번쯤 문병을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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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물이 많은 두 카리스마

사극전성시대. 금요일을 빼곤 일주일 내내 사극이 TV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그 중 ‘사극은 역시 KBS’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사극이 ‘황진이’와 ‘대조영’. 이 두 사극은 특히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어 흥미를 끈다. 주인공들은 무엇 때문인지 독기 어린 카리스마를 보이다가도 눈물을 펑펑 흘리는데 그것이 시청자들의 맘을 짠하게 만든다. 여자의 눈물과 남자의 눈물, 그 진가를 보여준 황진이와 대조영,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카리스마의 눈물은 더 짠하다
백무로 인해 정인을 잃은 황진이는 신분의 높은 벽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시대와 맞선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우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다 여겼던 백무를 능가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앙다문 입과 빛이 나갈 정도로 노려보는 눈빛, 입만 열면 가시가 뻗어나가는 독설을 보이던 그녀. 그러나 예판 김정한 앞에서 잠시 또르르 떨어뜨리는 눈물 한 방울은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여버린다. 그토록 몰아세우던 백무의 죽음 앞에 넋 나간 황진이의 눈물은 말할 것도 없다.

대조영 역시 마찬가지. 그는 유난히도 눈물이 많은 영웅이다. 같은 고구려 사극이지만 저 ‘주몽’과 ‘연개소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보지는 못했다 자식처럼 키웠으나 종으로 대하던 연개소문 앞에서 울었고, 생사의 기로에서 만난 어머니 앞에서 울었으며, 뒤늦게 만나게된 아버지 앞에서 울었고, 죽기 직전 아버지라 불러보라던 연개소문 앞에서 또 울었다. 그러나 대조영은 그렇게 유약한 인물이 아니다. 심지어 시청자들로부터 슈퍼맨이라 비판받을 정도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카리스마의 절정. 그의 눈물은 보통 인물의 눈물보다 더 짠할 수밖에 없다.

눈물의 원천은 태생적 한계
황진이의 눈물은 기녀라는 운명적 삶에서 비롯된다. 예인으로서 당대의 여느 여성들보다 몇 배의 자유로움을 구가하지만, 또한 어느 누구의 마음도 받을 수 없는 기녀라는 삶이 주는 기막힘은 황진이라는 한 인물이 왜 이다지도 매력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이면서, 그 위에서 모든 걸 해나가는 삶을 보여준다. 속으로는 멍투성이, 상처투성이지만 겉으로는 세상과 맞서는 그녀에게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가끔씩 피곤한 듯 눈물을 흘리는 그녀 앞에서는 아무리 굳은 갑옷을 마음에 걸친 자도 무장해제되게 마련이다.

대조영 역시 그 눈물의 원천은 태생의 문제이다. 제왕지운이라는 역모의 주홍글씨를 갖고 태어난 그는 개동이라 불리며 연개소문의 하인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천하를 태우고도 남을 야망이 숨겨져 있으니, 이렇게 추락한 인물이 하나하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눈물겨운 화해의 과정이 된다. 게다가 대조영의 눈물 속에는 가장 원초적인 부모자식간의 정이 숨겨져 있다. 특히 대중상과 카리스마의 눈빛을 나누며 스테레오로 울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남자의 눈물, 그 힘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재미있는 건, 이 사극들 속에서 이것은 비단 황진이와 대조영만의 눈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황진이’는, 황진이를 비롯하여 백무, 매향, 기방사람들 모두가 여자의 눈물을 보여주고, 드라마 ‘대조영’ 역시 대조영을 비롯해 연개소문, 양만춘, 대중상 같은 걸출한 장수들이 남자의 눈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의 눈물이든, 남자의 눈물이든 카리스마 넘치는 그들의 눈물 바다는 지금 사극폐인들의 눈을 즐겁게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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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짱. ‘타짜’를 패러디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전개그. 자칫 잘못하면 손목이 날아가는 영화 ‘타짜’에서 보여줬던 긴장감 넘치는 도박판에서, 긴장을 무색케 하는 포복절도의 몸 개그가 폭소유발자다. 독특한 가면개그로 타짱으로 등극한 양배추, 땅그지로 웃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임혁필, 뚱뚱한 몸과 돼지를 닮은 생김새가 가진 이점에도 불구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 변칙개그의 일인자 정형돈 그리고 여기에 매번 초대되는 새로운 타짱들로 터질 듯한 폭소의 긴박감이 이어진다. 그들은 폭소를 유발하기 위해 기꺼이 한 몸을 던지는 승부사로 몸 개그의 한계를 실험한다.

▶ 개그 레시피의 핵심 포인트
1. 테이블에 앉아 양 출전자들은 먼저 상대방의 얼굴에 뿌릴 밀가루, 김가루, 생크림 등을 배팅하고 경기에 들어간다. -> 배팅은 긴박감과 함께 그것이 터지는 순간의 폭소를 예감케 한다.
2. 카드로 먼저 선을 정한 후, 주심이 가운데 장막을 가리는 동안 공격자는 자신의 신체와 도구를 이용해 상대방을 웃길 준비를 한다. -> 준비과정이 상대방에게는 가려져 있지만 시청자에게는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방어자가 그걸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공격자의 호승심을 유발한다.
3. 주심이 장막을 치우고 방어자는 일정 시간 웃음을 참아야 한다. -> 웃음을 참는다는 요소가 오히려 웃음을 유발시킨다.
4. 상대방이 웃지 않으면 주심은 공격자의 머리를 쟁반으로 내려친다(그것밖에 못해!). -> 웃기지 않은 몸 개그의 썰렁함을 마무리해주는 센스!
5. 웃음을 참지 못하면 배팅했던 가루들과 크림들로 망가지고 게임에 지게된다. -> 카타르시스의 순간. 승리자에게는 축하를, 패배자에게는 굴욕을.

이 맛깔 나는 개그의 레시피는 출전자들이 전적으로 준비한다.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 또는 개인적 이미지를 활용하면 더 효과적이다. 개그맨 윤성호는 자신의 빡빡 민머리에 생등심을 던져 붙임으로써, 또한 황기순은 과거 자신의 도박 이미지를 역이용해 웃음을 유발시킨 바 있다. 라스트맨 스탠딩 방식은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챔피언과 마지막 대전을 벌여 이긴 자가 살아남는다. 이 대전개그의 독특한 긴장감과 출연진들의 얼토당토않은 몸 동작으로 인해 생겨나는 간극 사이에서 웃음은 터질 수밖에 없다. 장점은 무한히 새로운 출전자들을 연기자든 가수든 제한 없이 출연시킬 수 있다는 점. 타짱의 무한 선전이 예상되는 이유이다.

추억의 유사품 : 알까기
‘타짱’과 유사한 대전개그로 지목할 수 있는 건 단연 ‘알까기’. 타짱이 타짜를 패러디했듯이 알까기는 바둑을 패러디했다. 테이블에 앉아 차례로 공격방어를 한다는 점, 바둑이 가진 특유의 긴장감을 개그로 끌어들인 점도 같다. 양 출전자들은 초기에 개그맨에서 시작해서 차차 그 한계가 없어졌으며, 누구나 웃으며 할 수 있는 국민스포츠의 이미지까지 얻었다. 바둑알을 튀기기 전에 하는 거만한 행동과 튀길 때 하는 독특한 동작, 그리고 튀긴 후의 마무리 동작 등으로 웃음을 준다는 점에서 몸 개그를 닮아 있다. 또한 김준호가 ‘타짱’의 주심이자 해설자로서 특유의 색깔을 가지듯, ‘알까기’의 최양락 역시 해설과 함께 특유의 목소리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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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역사를 날 것 그대로 꺼내 보여준다면 재미있을까. 예상은 부정적이다. 그래서일까. 역사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퓨전사극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퓨전사극의 계보는 과거 ‘다모’, ‘대장금’, ‘해신’ 등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지만 최근 열풍의 진원지는 역시 ‘주몽’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주몽’이라는 강력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더 전개가 자유로워진 퓨전사극이라는 형식이 맞물린 결과다.

결과적으로 시청률면에서 승승장구한 주몽은, 최근 연장방영에 대한 논란들마저 연착륙시켰다. 이례적으로 MBC 신종인 부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그간 거듭돼온 방송사의 고무줄편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주몽 만큼은 끝까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가 나온 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신물 3종 세트’가 논란이 되면서 ‘주몽’은 “이러려고 연장했냐”는 누리꾼들의 비판에 직면해있다.

드라마 ‘주몽’은 시청률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미 스케일 문제나,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억지설정, 고구려 건국보다는 부여패망에 더 집중되어 있는 듯한 전개구성 등등 완성도에 있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이 문제로 인해 ‘주몽’은 완성도의 비판 위에 그 정체성까지 의심받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이 드라마를 더 이상 사극으로 봐야하는가의 문제다.

환타지 같은 전개와 환타지 그 자체는 다르다
‘주몽’이 시작과 함께 호평을 받은 것 중 하나는 그것의 전개가 게임이나 환타지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유사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주몽’은 그 배치된 인물과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거의 롤플레잉게임을 닮았다. 시작부터 완성된 영웅이 아닌 단계적으로 미션을 완수하면서 업그레이드되는 영웅, 점점 강한 아이템을 얻어 가는 과정,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갑옷들 등등 그런 것들은 실제 게임과 환타지를 즐기는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것이 과도했던 걸까.

최근 비금선 신녀의 갑작스런 출연과 그 출연과정에서 보여준, 사극이라 하기엔 과도한 환타지적인 요소, 게다가 그녀가 주몽에게 제시한 “다물활 이외의 남은 두 개의 신물” 발언은 지금까지 위태롭게 유지해왔던 사극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과거 ‘주몽’의 환타지적인 요소를 굳건히 사극의 틀로 붙잡아두고 있던 인물들은 여미을을 중심으로 한 신녀들이었다. 그것은 과거 신권과 왕권이 혼재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 속 실재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왕자들간의 경합에서 나온 다물활 에피소드는 여미을 신녀의 신탁만 있었을 뿐, 실제로 다물활의 어떤 환타지적인 능력을 보여준 바는 없다. 이것은 전부 여미을 신녀가 하는 말을 통해 그 상징적 의미가 전달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식이 일어나는 에피소드에서 역시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위에 여미을의 예언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여전히 환타지가 아닌 사극의 범주 안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미을이 죽고 사라져버린 예언의 힘 때문일까. 비금선 신녀의 갑작스런 등장(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빛과 연무에 휩싸인 화려한(?) 등장)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게다가 그 신녀의 목적은 새로운 신물을 찾으라는 퀘스트의 제시이다. 이로써 ‘주몽’은 환타지적인 전개와 환타지 사이에서 하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넘어버린 격이 됐다.

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과거에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숨는 지점은, ‘이 드라마는 퓨전사극’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를 두고 봐야 하는 것일까. 퓨전사극이 주목받는 시대라 마치 정통사극은 역사, 그 자체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물론 사극 역시 역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역사를 극화한 것이 사극이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왜곡이 아닌 이상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사극으로 수용되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퓨전사극으로 넘어가면 이건 좀더 복잡해진다. 그 한계를 어디까지 두어야 사극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상식뿐이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삼국지’를 창작물로 생각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역사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호지’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가상으로 설정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사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을 법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유기’는 다르다. 이것은 역사를 넘어서 완벽한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와 ‘수호지’가 역사소설에 가깝다면 ‘서유기’는 환타지에 가깝다. 이 역사소설과 환타지 사이가, ‘주몽’이 지금까지의 여타 사극들과 다르게 위치한 지점이다.

과거에도 ‘소금산 에피소드’에서 ‘주몽’은 이 서유기적인 면모를 보인 바가 있다. 드라마 인물들의 유기적인 전개가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 신탁에 의해 준비되어진 결과는 시청자들을 실망시킨다. ‘주몽’의 사극제작에 있어서‘사료가 없다’는 것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상식을 넘어서는 공상이나 환상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저 무협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때 처음엔 즐거웠으나, 차츰 ‘날아다니지 못하면 바보 되는 주인공들’에 식상해진 경험이 있다. 퓨전사극은 여전히 사극이며 환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극으로 기대하고 있던 드라마가 그 경계를 넘어버릴 때 시청자들은 사극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 붕 뜨게 된다. 퓨전사극처럼 그것이 땅이 아닌 허공에 매달린 줄이라고 해도, 떠오른 몸은 다시 줄로 내려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한 판 줄타기의 소재가 어느 시대나 한두 번쯤 나올 수 있는 그런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오던 그 신화적 인물, 주몽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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