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소문', 악귀·슈퍼히어로에 학원물이 더해지니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에 빙의된 악귀들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OCN <경이로운 소문>의 언니네 국수집에서 국수를 파는 추매옥(염혜란), 가모탁(유준상) 그리고 도하나(김세정)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악귀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가게 문을 닫고 출동하는 악귀 잡는 카운터팀(악귀를 센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 나타난 3단계 악귀에게 철중(성지루)이 사망하자 그 몸에 있던 저승 파트너 위겐이 빠져나와 소문(조병규)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소문은 언니네 국수집의 숨은 슈퍼히어로들인 카운터팀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나 <퇴마록> 같은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이들을 담는 장르적 틀은 훨씬 일상 속의 고수가 등장하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가깝다.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의 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은 저마다 가진 탁월한 재능들이 조금씩 다르다. 추매옥은 치유의 능력을 가졌고, 가모탁은 괴력을 가졌으며, 도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과거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이들이 악귀를 잡는 액션은 무협영화의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아직까지 어떤 그만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이로운'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드러내는 소문은 위겐이 들어오기 전, 부모를 사고로 잃고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데다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바로 이 지점은 이 드라마가 '학원물'의 색깔을 더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부분이다.

 

상습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웅민(김은수)과 절친인 주연(이지원)의 친구로 역시 학교 일진들의 괴롭힘을 당하게 된 소문이 능력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이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은 이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현실감을 끌어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을 일삼는 일진인 혁우(정원창)는 중진시 시장 아들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 중 한 명 역시 국회의원 아들이다. 이들은 그런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학교나 경찰도 이들을 제지하지 못한다.

 

악귀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세워두면서, 그들이 현실 세계의 '악한 숙주'를 찾아들어간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에 현실적인 상황을 이어놓는다. "이미 살생 경험이 있거나 살인 충동과 욕망이 강한 자"가 바로 그 악한 숙주라는 것. 즉 드라마는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상습적인 가정 폭력을 일삼는 그런 이들에게 악귀가 달라붙는다는 설정을 더하고, 이를 막는 존재로서의 카운터들의 활약을 그려낸다. 그래서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들은 우리네 현실에 담겨진 범죄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오게 만든다.

 

<경이로운 소문>이 그저 어디선가 봐왔던 슈퍼히어로물의 퓨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저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거나,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약자들이 폭력에 더더욱 내몰리는 현실이 여기에는 투영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융의 책임자이자 소문의 저승 파트너인 위겐은, 소문에게 그 곳의 삶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다만 선한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차이 정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소문은 말한다. 그것이 "엄청난 차이"라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선한 사람이 보상받고 악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는 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현실인식이 들어있어 이 드라마의 실감이 달라지고 있다.(사진:OCN)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며느라기>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조리한 명절의 풍경을 정혜린의 목소리를 통해 팩폭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정혜린에게 작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명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온 노동을 며느리가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서 함께 그 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당연한 걸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괘씸할 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강요를 오래도록 당연한 듯 받아온 시어머니가 이제 저 스스로 나서서 그걸 며느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고부갈등이나 시월드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졌다. 하지만 극화되어 악역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에 대항해 당장의 사이다만을 보여주던 며느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기보다는 '저런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들로 치부하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월드를 드라마로 보는 어르신들은 줄곧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어.

 

이것은 너무나 극적으로 그려져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라는 걸 은폐하기도 하던 시월드 소재 드라마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무구영네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괴물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나름 예의도 차리고, 며느리 생각해 상냥한 말도 건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민사린을 이상하게도 힘겹게 만든다. 시어머니 생일상을 혼자 차려내고 시댁 식구들이 저들끼리 대화하고 후식을 먹을 때 혼자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민사린 역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며느리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다. 그래서 민사린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당함을 얘기함으로써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정혜린은 그 평온해 보이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팩트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발한다.

 

모두가 귀성길에 올라 도심에 차들이 많이 사라진 명절에 민사린은 무구영을 기다린다. 결혼 전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달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 장면으로 시작한 드라마가 그 날 무구영네 집에서 벌어진 정혜린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의 팩폭 풍경을 거친 후 엔딩으로 이어지자 달달함은 사라지고 대신 씁쓸함이 더해진다. '착한 며느리' 운운하는 무구영의 생각은 이제 민사린이 겪을 시월드의 '며느라기'로 이어질 거라는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20분 남짓의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 부당한 것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왜 그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나서서 강요하고 있을까. 엄마가 해온 평생의 독박노동과 그 고생을 절감하는 아들이라면, 착한 며느리를 들여 엄마를 도와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부당했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엄마가 했던 그 차별적인 대우와 노동을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대신 맡아 똑같이 하는 걸 당연시 할 게 아니라.(사진:카카오TV)

'놀면'이 유팡을 통해 전하고픈 마음 배송의 훈훈함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를 잇는 프로젝트는 '마음배송 서비스'다. 마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나 <호텔 델루나> 같은 드라마 속에 등장할 것 같은 바바리코트에 모자를 쓴 유재석은 '유팡'이라는 부캐를 입었다. 뒤편에 우편물들이 꽂혀져 있는 배경으로 앉아 유팡은 자신이 H&H주식회사의 대표라고 밝혔다. H&H는 Heart&Heart라는 뜻이다. 마음과 마음을 전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놀면 뭐하니?>가 마음배송 서비스를 가져온 건 여러모로 연말이면 훈훈한 미담을 전하던 <무한도전> 시절의 이벤트들을 떠올리게 한다. 추워지는 만큼 따뜻한 연말을 느끼게 하려는 기획이다. 그런데 '마음배송 서비스'라는 새로운 형식이 눈에 띈다. 어째서 '배송'을 가져온 것일까. 게다가 유재석의 부캐 ''유팡'에서 떠오르는 것 역시 배송업체의 이름이다.

 

즉 이 '마음배송 서비스'는 연말의 훈훈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현 코로나 시국의 분위기를 그 형식에 담았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누군가를 만나기보다는 떨어져 지내는 일이 더 많아진 요즘이다. 부쩍 늘어난 배송 서비스는 더더욱 대면 접촉의 기회를 차단하고, 배송을 하시는 분들의 노동 환경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마음배송'에는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마음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획의도를 담았다. 물건이 아닌 마음을 배송한다는 것.

 

첫 번째 미션으로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딸이 아기를 봐주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엄마에게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대신 전하게 된 유팡은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전달했다. 정년을 2년 앞두고 있지만 엄마가 퇴사한 것에 대해 못내 미안함을 느끼는 딸의 마음이 유팡이 대신 엄마에게 해주는 딸의 메시지를 통해 전해졌다. "내 복직과 엄마의 퇴직을 맞바꾼 것 같아 미안해. 내 엄마여서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사랑해" 그 메시지에 담긴 마음 때문이었을까. 유팡의 목소리는 자꾸만 메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하고 육아를 맡고 있는 남편이 일찍 복직해 일하는 아내에게 전하는 마음도 따뜻하고 유쾌했다. 퇴근하는 아내를 남편 대신 기다려 차에 태운 유팡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어느 정도 코로나 때문에 남편이 실직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했다는 부부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면서 아기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온통 모든 시간이 아기의 육아에 맞춰진 삶. 단둘이 데이트 하는 시간도 점점 사라져 아쉽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전하며 공감하던 유팡은 아내분에게 시간이 나면 가장 하고픈 게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답변이 너무나 소소했다. '미용실 가서 머리'를 하고 싶다는 것. 머리를 할 시간도 여유도 별로 없다는 아내는 그래도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민지룽룽. 갑작스러운 실직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너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었어. 민지야 너의 남편으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서진이 아빠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다음 달 시험도 열심히 준비할게. 맨날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나랑 같이 나누면서 살자. 이 세상 하나뿐인 민지룽룽.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유팡이 대신 전하는 남편의 진심에 아내는 자신이 힘든 티를 내서 미안하고 그래도 다 받아줘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놀면 뭐하니?>가 마련한 '마음배송 서비스'에는 감동적이고 훈훈한 사연 이외에 특별한 사연들도 많았다. 서비스를 신청한 사연 중에는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같이 갔던 음식점을 찾고 싶다는 사연도 있었고, 여행에서 미국인 쌍둥이 형제를 만나 사랑을 키워간 쌍둥이 자매의 마치 영화 같은 사연도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가 겹쳐 유난히 더욱 춥게 느껴지는 올 겨울이 '마음배송 서비스'를 통해 조금은 훈훈해지기를 제작지은 바랐을 게다. 그리고 어려워도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그 풍경을 통해서나마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희망 같은 걸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유팡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MBC)

'개천용'의 재심사건들, 범인이 나타나도 돌려보내는 사법이라니

 

"잘 나신 변호사님과 기자님은요, 할 말 다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데요, 저 같은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 못해요. 기자님. 말이란 것은요, 입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거예요. 세상 천지에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을 누가 들어주기나 합니까?"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오성시 트럭 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두식(지태양)은 재심을 해서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되지 않겠냐는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와 박삼수(배성우) 기자의 말에 그렇게 일갈했다. 과거 그는 형사에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그토록 항변했었다. 하지만 이미 그를 범인으로 특정해버린 형사들은 강압적인 수사로 그를 결국 범인으로 만들었다.

 

애초 살인사건의 목격자였던 김두식은 강압에 의해 몽타주를 그리게 하자 어쩔 수 없이 당시 그가 일하던 곳의 사장 얼굴을 그렸다. 잠시 경찰에서 풀려난 김두식이 경찰이 두려워 도주를 하면서 문제는 꼬여버렸다. 경찰은 아예 김두식을 범인으로 특정했고 그렇게 아니라는 항변에도 모두 귀를 닫아버렸던 것.

 

놀라운 건 그렇게 김두식이 옥살이를 하던 중 진범이 나타났지만 이를 경찰도 검찰도 묻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한상만(이원종)은 진범의 진술을 서장도 직접 듣게 했지만 서장은 자리 지키기에 더 전전했다. "야 한 반장 나도 괴롭다. 야 3년 전에 우리가 수사해서 잡아넣은 김두식이 아직 감옥에 있잖아. 우리 다 죽어. 검찰은 어쩔 거여? 법원은? 판사들은 무려 열 명이나 오판을 했어. 너 저 꼬맹이들 땜시 온 나라에서 곡소리 나는 거 듣고 싶어?"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으면 곡소리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한상만의 일갈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서장은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에게 이 일을 알렸고 검사는 청장에게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묻으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임관하자마자 미안한데 이거 묻어. 검사는 한 몸. 이제 와서 뒤집으면 그거 3년 전에 수사하고 공판하고 했던 선배 검사들 어떻게 되겠어?" 그 청장은 대석 로펌 고문이 되어 있었다.

 

<날아라 개천용>이 다루는 재심사건들은 놀랍게도 진범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오점을 가리기 위해 이를 묻어버리려는 사법권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물론 이것이 사법권 전체의 보편적인 이야기는 아닐 게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사법부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때론 기계적인 법률 해석만 해야 한다고 '공정함'을 빌미로 무정해지고, 때론 사법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거나, 특정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권력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 지금의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사법부의 모습이 아닌가. 억울해하고 힘겨워 하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그 귀에 닿을 리가 만무다.

 

<날아라 개천용>은 허구로 만들어진 드라마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했다. 주인공들이 바로 실제인물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다, 이들이 다루는 재심사건도 실제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 실제 모델 중 한 명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런 드라마의 소재가 될 수 있었던 재심사건들의 승소가 가능했던 건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연 변호사, 형사, 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한상만이니까.. 그냥 감방에 갇혀 있는 열일곱 살 김두식이가 내 아들처럼 느껴졌나봐. 그 어린 것이 누명을 쓰고 그 속에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까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게 다예요." 왜 김두식 사건에 그토록 집착했냐는 박태용 변호사의 질문에 한상만은 그렇게 답한다. 형사나 검사, 판사라는 직업이 아닌 개인의 양심으로 그나마 정의를 지켜나가려는 몸부림이 있는 사회는 과연 정상적일까. 이런 정의의 문제가 몇몇 영웅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에 의해 그나마 작은 희망을 전해준다는 건 우리네 사법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