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세대 갈등? 세대는 달라도 미안함이 묻어나는 마음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엉뚱하지만 공감 가는 '명언(?)'을 남긴 수영이와 승주. 2018년 당시에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어 돌아온 그들은 여전히 Z세대다운 재기발랄한 말들로 큰 웃음을 주었다. "중2병이 뭐냐"는 질문에 "중2병은 중2가 되면 오는 거 아니에요?"라는 답변으로 중2가 되면 오지만 지나면 낫는다는 '우문현답'을 던지는 이들은 자신의 사춘기 걱정에 엄마도 갱년기가 오시는 것 같다며 걱정하기도 하는 생각이 깊은 친구들이었다.

 

빵빵 터지면서도 공감 가는 대목은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되는 게 아닐까요?"라고 답변한 수영양은,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는 방법'을 묻는 다른 세대의 질문에 대해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라는 간단하지만 명료한 답변을 내놨다. 물론 그 답변의 의미는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나 세대 간에는 차이가 있으니 인정해야 오히려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지만 그 솔직함은 의외로 통쾌한 면마저 있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이렇게 Z세대들을 초대해 포문을 열며 특집으로 다룬 건 '세대'였다. 세대를 이야기하면 먼저 그 많은 세대론들과, 세대갈등 문제가 먼저 등장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래서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을 초대해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그들의 어떤 문화와 특징들을 갖게 했는가를 확인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Y세대로 출연한 이들은 <날아라 슛돌이>에 어린 나이에 출연했던 진현우와 오지우였다. 이제 대학생이 된 이들은 Y세대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2G폰에서 스마트폰까지 겪어 디지털에 특화된 세대라는 답변과 욜로족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만큼 디지털에 익숙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 세대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당시를 겪은 사건 중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X세대를 대표해 출연한 이욱진씨는 등장부터가 그 세대가 가진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남다른 끼를 보여주는 이 인물은 파티용품 쇼핑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이욱진씨는 세계여행도 다녀오고 일도 즐기며 그러면서도 가정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풍요의 시대를 겪었던 세대가 갖고 있는 자유분방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당대에는 2002 월드컵 같은 잊지 못할 축제의 기억과 더불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안타까운 재난과 IMF의 기억도 겹쳐져 있었다.

 

386세대로 등장한 영화 <1987>의 김태리 실제인물인 이정희 YMCA 사무총장은 당시 젊은 나이에 쓰러진 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주워 주었던 인물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 세대들을 대변해 이정희씨는 두려움 속에서도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는 이한열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며 그의 죽음이 많은 삶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날의 '세대 특집'이 특별했던 건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다른 세대들에게 묻는 대목에서였다. Y세대가 던진 고민 많은 20대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에 이정희씨는 자신의 20대에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긴 했지만 그래도 취업 같은 문제들이 별로 없었다며 지금의 세대가 겪을 막막함을 공감했다. 그러면서 그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민석기씨는 산업화 세대를 대변하는 분이었다. 1950년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심지어 고아원에 들어가 해외입양을 꿈꾸기까지 했던 민석기씨는 열두 살부터 일을 시작해 파독광부로 가서 지냈던 삶의 역정을 풀어놨다. 그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 건 평생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만을 해온 것이 그 별것 아닌 것처럼 하는 말 속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가족에게 부치기 위해 힘든 일을 자청하며 고국에 오고 싶은 것도 참아 다른 일까지 해가며 돈을 벌었던 그였다. 하지만 10년 정도를 돈 한 푼 안 써가며 그렇게 일하고 들어온 그는 형님의 사업 실패로 남은 게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의 고생으로 다른 가족들은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그의 얼굴에는 안도와 아쉬움 같은 게 묻어났다. 그가 인터뷰 중 독일에서 개사해 불렀다며 부르는 송대관의 '해뜰날'의 가사가 뭉클하게 느껴졌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 날 고국 간단다. 쨍하고 해뜰 날 한국 간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마련한 세대 특집을 통해 산업화 세대부터 386세대를 거쳐 X세대, Y세대 그리고 Z세대까지를 한 자리에서 보면서 느끼게 된 건, 도대체 누가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시대에 따른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들이었지만 서로 다른 세대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시선에 의해 세대로 재단되어 때론 갈등이 부각되기도 했던 세대지만, 그 세대들은 전 세대와 뒷 세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특집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사진:tvN)

'악의 꽃', 악조건 속 이준기를 피워낸 문채원의 사랑

 

사랑은 얼마나 위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은 그런 질문을 던져보려 했던 것 같다. 사랑해 결혼했고 아이까지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차지원(문채원)은 남편 백희성(이준기)이 사실은 연쇄살인범 도민석(최병모)의 아들 도현수라는 걸 알게 된다. 혼수상태로 15년간을 지내온 진짜 백희성(김지훈)으로 신분세탁을 한 후 그 집 아들 행세를 해온 것.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드라마는 멜로에서 스릴러로 바뀌기 마련이다. 믿었던 남편의 모든 것이 거짓으로 다가오고 심지어 연쇄살인범과의 공범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드리워져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그의 누나 도해수(장희진)가 저지른 살인 누명까지 스스로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도대체 이런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준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하지만 그 기적 같은 일을 차지원(문채원)이 한다. 형사로서 과거 연주시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는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점점 그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거라는 걸 믿지 못한다. 그간 자신에게 해왔던 일련의 배려와 살뜰한 행동들이 그걸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차지원은 남편이 그간 자신을 속이고 살아왔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이것은 도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그런 악조건 속에서의 삶을 자신이 원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었고, 그래서 자신 또한 같은 부류로 의심받아왔으며 그런 자신을 위해 나섰다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누나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신분세탁도 진짜 백희성이 낸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백희성의 아버지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혼수상태가 된 백희성 대신 도현수를 아들행세를 하게 한 것이었다.

 

도현수가 차지원에게 모든 걸 숨기고 거짓 행세를 한 건, 다시는 그 과거의 악조건 속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백희성이어야 했고, 그래야 차지원과 가정을 꾸린 채 단란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그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도현수는 차지원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멍해지다가 오열하기 시작한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차지원이 해왔던 그 행동들을 그는 믿지 못한다. 그래서 차지원에게 말한다. "도대체 왜 다 알면서 다 알면서 왜 날 버리지 않아? 난 이해가 안가." 그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그에게 차지원은 되묻는다. "정말 몰라? 니 정체 다 알면서 너 하나 지키겠다고 내가 왜 그랬는지 너 정말 몰라?" 그제서야 도현수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걸. 그래서 "미안하다"며 오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를 아프게 했고 상처를 준 것을 미안하다며.

도망치라고 했던 차지원의 말과는 달리, 도현수는 집으로 가고 싶다 한다. 그것은 이제 이 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드디어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차지원의 사랑으로 그의 황무지 같은 마음 속에서 도저히 피어나지 못할 것 같던 꽃이 피어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재차 차지원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고, 자신이 해왔던 그 일련의 말과 행동들이 사실은 차지원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악의 꽃>은 멜로와 스릴러가 절묘하게 균형을 맞춘 드라마다. 처음에는 훈훈한 멜로로 시작하지만 도현수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살벌한 스릴러로 바뀌었다가, 그 모든 정체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 꽃을 피워내는 그 과정을 통해 다시금 멜로가 그려진다. 그런데 뒤에 등장하는 멜로는 처음에 봤던 그 멜로와는 밀도와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앞의 멜로가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사랑한다 말하는 표피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면, 뒤의 멜로는 무엇이 진짜 위대한 사랑인가를 알게 된 후의 무게감을 갖게 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래서 <악의 꽃>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저 달달한 것이 사랑인가. 도무지 겹쳐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우리는 과연 하고 있는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며 그건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방문객'이라는 시를 통해 정현종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과연 진짜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이 드라마는 멜로와 스릴러를 겹쳐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사진:tvN)

 

'브람스', 삼각멜로를 넘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제목에 이미 삼각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그 유명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가 전사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슈만에 의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브람스는 그의 아내인 클라라를 평생 옆에서 바라보며 사랑하다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이 모두 그 브람스의 위치에 서 있다. 채송아는 친구이자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던 윤동윤(이유진)을 좋아하지만 그의 베프인 강민성(배다빈)이 그와 사귀었고 또 여전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박준영은 자신의 절친인 한현호(김성철)가 자신이 좋아하는 이정경(박지현)과 연인이 되어 나타나자 마음을 접었지만 뉴욕 공연장을 찾아온 이정경이 갑자기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면서 그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채송아도 박준영도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어딘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마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유사해서였을까. 박준영, 한현호, 이정경의 피아노 트리오 커뮤니케이션을 맡게 된 채송아는 이정경을 향한 박준영의 남다른 느낌을 알아차린다. 노래 신청을 하라는 말에 채송아가 아무 생각 없이 신청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통해서였다. 그 곡은 이정경을 생각하는 박준영의 마음이 담긴 곡이었고, 순간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박준영의 상황을 채송아는 알아채게 됐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순한 멜로의 맛을 보여준다. 삼각멜로에서 밀려나 있는 채송아와 박준영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그래서 그것이 사랑으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다소 뻔한 삼각멜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그런 생각을 지워내게 하는 특별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들의 사랑이나 아픔, 슬픔 같은 감정들이 그저 대사나 행동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라 브람스, 슈만 그리고 클라라의 이야기와 거기 얽힌 클래식 음악들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이다. 실로 이 드라마에서 클래식 음악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의 스토리 전개나 극중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 때문에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여겨지는 브람스를 연주하기 싫어하는 박준영의 상황은 멜로와 더불어 한 예술가의 성장담을 그 안에 담아 넣는다. 그의 연주를 들은 마에스트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모든 사람들 마음에 들게 연주하려고 애쓰지마. 콩쿨 심사위원 전원에게서 8점 받으면 물론 1등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한두 명에게 10점 그리고 나머지에게 6,7점을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한두 명에겐 평생 잊지 못할 연주가 될 수 있으니까. 아무 것도 겁내지 말고 너의 마음을 따라가 봐."

 

박준영은 피아노 연주를 이미 잘 하는 피아니스트지만 거기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담기보다는 듣는 이들을 먼저 신경 쓰게 됐다. 그건 가난해 포기하려 했던 자신을 후원해준 정경은 재단에 대한 마땅한 보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못해 옆에서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그의 심경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고 함께 길거리에 남게 된 채송아에게 박준영은 그 날의 연주가 어땠냐고 묻는다. 그러자 좋았다고 말하며 채송아는 거꾸로 되묻는다. "다른 사람 말고 준영씨 마음엔 드셨어요?" 라고. 채송아는 리허설룸에서 그가 쳤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채송아의 그 이야기는 마에스트로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박준영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드라마가 순한 멜로이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건 그 안에 클래식 음악을 통해 담아내는 예술가 혹은 인간의 성장담이라는 휴먼드라마적 요소들이 더해져 있어서다. 채송아는 경영학과를 다니다 4수 끝에 음대에 들어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게 된 것. 반면 박준영은 이미 인정받는 피아니스트지만 자기 스스로 좋아해 연주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 또 도와준 분들을 위해서 인정받으려 연주해왔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연주하지 못했던 것.

 

이 즈음에서 다시 이 드라마의 제목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물론 이 드라마가 삼각멜로를 소재로 담고 있다는 걸 드러내지만, 그것을 넘어서 박준영이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고 진짜 좋아하는 마음으로 브람스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채송아와 박준영은 서로의 엇나간 관계에 의해 갖게 된 상처들을 보듬어주고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이 순한 멜로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사진:SBS)

'테넷', 영화의 많은 영상문법들을 깬 흥미로운 시각체험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난해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보다 보면 빨려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무려 2시간 반 동안의 적지 않은 런닝타임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이 있다. 물론 이 영화를 기존 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쓴다면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저런 상황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고 그것은 오히려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만들 테니 말이다.

 

영화 <테넷>에는 '인버전'이라는 색다른 기술이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설정이다. 미래에서 현재로 던져진 이 기술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것이란다. 그래서 인버전 된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날아간 총알이 다시 총으로 돌아온다. <테넷>의 포스터를 보면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과 저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동시에 겹쳐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영화 속 장면 속에 점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다.

 

<테넷>이 한번 보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건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시간의 예술인 영화의 문법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과관계의 산물이다. 과거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미래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테넷>은 이 인과관계가 마구 꼬이고 뒤틀어져 있다. '인버전'이라는 설정으로 시간의 역순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일어난 결과를 되돌려 원인을 바꾸려는 인물들의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은 앞으로도 흐르지만 의지에 의해 과거로 흘러가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버전 기계를 통해 가운데 유리막을 두고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서로의 행동들을 보는 장면은 <테넷>이 깨고 있는 영화문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는 시간의 축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축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심지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로 격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뒤로 갈수록 영상문법의 파괴는 더 과감해지고 심지어 블록버스터의 성격을 띤다. 세상의 종말을 오게 할 수 있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를 막기 위해 그가 처음 이 인버전의 알고리즘을 갖게 됐던 과거 시간대로 옮겨가 벌어지는 전쟁에 가까운 장면은 우리가 봐왔던 영화 속 전쟁장면과 너무나 다른 영상을 연출해낸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요원들이 있는 반면 뒤로 가는 요원들도 존재하고, 이들의 공격으로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과 이미 폭발로 인해 거대한 구멍이 난 곳이 거꾸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겹쳐진다. 시간의 순방향과 역방향이 하나로 겹쳐진 곳에서의 전쟁 장면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지만, 그 시각체험은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주인공이 보호하려 애쓰는 사토르에게 거의 인질이 되다시피 붙잡혀 살아가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에 일조하면서도 '자유'를 향해 나가는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저 여자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던 미래의 캣이 나중에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대목은 시간의 역순이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뒤집어놓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자신이 가진 어떤 욕망(원인)이 과거의 자신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테넷>은 난해하고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역순이라는 '인버전'이라는 설정을 가져와 영화가 늘상 틀에 박혀 있던 '시간과 인과관계'라는 그 구조를 깨고 있는데서 생겨나는 난해함과 불편함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캐치 프레이즈처럼 달아놓은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문구가 와 닿는 면이 있다. 어쩌면 그 시각체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으니.(사진:영화'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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