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양념치킨, 토끼모자 개발자를 통해 보여준 건

 

만일 특허를 냈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이거 누가 만들었지?' 특집으로 출연한 분들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도로를 달리다 보면 노면에 그어진 색깔을 처음 만든 분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양념치킨을 처음 개발하신 분이나, 귀가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만든 분도 만일 특허를 냈다면 돈 방석에 앉아 있을 분들이었다.

 

모두 특허를 내지 않는 바람에 그런 기회를 놓쳤고 그래서 그게 못내 아까웠던 게 사실이지만 이 분들은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거기에는 단지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세상을 바꾼 이들의 대인배 다운 포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은 벌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만든 것으로 많은 분들이 혜택과 수혜를 입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도로에 색깔을 칠해 초보 운전자들도 쉽게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노면색깔 유도선을 만든 분은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었다. 그는 안산분기점에서 난 사고로 지사장님이 내린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오라는 지시에 그 노면색깔 유도선을 생각해냈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노는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로에 색깔을 칠하는 것 자체가 도로교통법에 의해 정해져 있어 편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결국 경찰청의 협조를 통해 이를 시행했고 그 결과 교통사고가 급격히 줄자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노면색깔 유도선을 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은 아예 내부 규정을 만들었지만 그는 포상을 받은 것도 또한 특허도 초반에는 편법으로 했기 때문에 낼 수 없어서 돈을 번 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고가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양념치킨을 처음 개발한 윤종계씨 사연은 더 드라마틱했다. 프라이드치킨을 그냥 놔두면 딱딱해지고 퍽퍽해지는 걸 막을 수 있는 걸 고민하다 양념치킨을 개발한 그는 당시 TV광고까지 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불도저로 돈을 미는 수준이었다는 것. 이로써 그 회사 직원이었던 공장장이나 과장 하다못해 운전기사도 치킨으로 프랜차이즈 그룹의 회장이나 중역이 되었지만 본인은 특허를 내지 않아 그걸 모두 수익으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만일 특허를 냈다면 현재 해외에서도 쏟아져 나오는 양념치킨의 로얄티를 모두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 아쉬움이 없지 않겠냐마는 그래도 윤종계씨는 자신이 개발한 양념치킨으로 많은 이들이 큰돈을 벌고 잘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해했다. 또한 당시 양계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을 낮게 보던 시선이 이로써 바뀐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귀가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개발한 권용태씨 역시 비수기인 겨울에 대비할 수 있는 이 모자를 개발하고 입소문으로 불티나게 팔렸지만, 특허를 내지 않아 자신의 수익은 5,6천만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한번은 미국의 대형마트 바이어들이 직접 전화해 100억 대의 물량을 제안 받은 적도 있지만 당시 5천만 원밖에 없어 이를 포기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놀랍게도 권용태씨는 이런 제안들은 공장에 직접 연결해줬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할 정도로 누구나 쓰고 먹고 즐기는 것들을 개발한 그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특허를 내지 않아 큰돈을 벌 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게 못내 가슴 아픈 일로 남겨질 법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웃는 건 자신들이 개발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이었다. 우리네 사회가 대부분 돈과 연관되어 굴러가다보니 세상 모든 일이 가격으로 환산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수백억 특허를 놓쳤어도 이런 숨은 개발자들이 있어 우리의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특집이 아닐 수 없었다.(사진:tvN)

 

'나의 판타집'이 드러낸 집에 대한 로망, 왜 의미 있을까

 

이른바 '집 소재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그래서 도심에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전세 사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집은 어떤 판타지를 갖게 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가격으로 매겨지는 매물이 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우리가 꿈꾸는 집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SBS가 파일럿으로 시도한 <나의 판타집>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 들어온다.

 

출연자들이 저마다 꿈꾸는 집에 대한 로망들을 얘기하고, 실제로 그 로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집을 찾아내 살아보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 우리에게는 자연인으로 더 친숙한 이승윤이 의외로 아이언맨이 살 것 같은 저택을 꿈꾸고, 실제로 그 거대한 집에서 살아보는 모습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설렘을 선사한다.

 

안방에서 아이 방을 오가는 데도 구름다리를 건너가야 할 정도로 집이 크고, 프라이빗 수영장을 갖춘 데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과 운동을 할 수 있는 방이 따로 따로 마련되어 있는 집. 아파트 살이를 하는 우리에게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집이지만 실제 살아보니 불편한 점들도 적지 않다. 너무 커서 집안에서만 걸어 다녀도 힘이 들 지경이고,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중국집 배달도 여의치 않을 정도다. 게다가 난방비가 많이 나올 때는 250만원이나 나온단다. 여력이 없다면 있어도 누릴 수 없는 집인 셈이다.

 

양동근과 그의 아내가 꿈꾸는 집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집이다. 집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가족 간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 가족의 '살아보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홀로 따로 떨어진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외롭게 느껴졌다는 양동근의 아내는 집 중앙에 있는 주방에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중앙에 있어 남편과 아이들과 소통할 수도 있고,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 위치가 가져온 변화다.

 

허영지는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 대한 로망을 그대로 가져와 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을 원했다. 조금 외딴 곳에 떨어져 있지만 조용하고 툇마루에 앉아 자연을 느끼며 식사를 하거나 차나 술을 마실 수 있는데다, 아늑한 다락방이 주는 포근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의 품 안에 폭 안겨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나의 판타집>은 애초 MBC <구해줘 홈즈>와 비슷한 집 소재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관전 포인트가 다르다. 그것은 물론 로망을 자극하는 집들도 등장하지만 현실적인 집 찾기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구해줘 홈즈>와 달리 <나의 판타집>은 말 그대로 누군가의 집에 대한 판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나의 판타집>이 보여주는 집에 대한 판타지 그 자체가 지금처럼 집에 대한 왜곡된 관점들(주로 가격이나 아파트)이 넘치는 현실에 그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재산으로서의 집이 아닌 작아도 자신이 꿈꾸는 집이 이 프로그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다. 우리는 왜 저마다 원하는 자신만의 집을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걸까. 어쩌다 모두가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만 집착하게 된 현실에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장르드라마들은 어째서 사법정의를 묻기 시작했을까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가 다룬 건 사법정의에 대한 질문이었다. 모범적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강도창(손현주) 형사가 억울하게 누명이 씌워진 채 사형수가 되어 생을 마감한 이대철(조재윤) 사건을 재수사하고, 결국 진짜 범인을 찾아내 진실을 밝히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강도창이라는 모범적인 인물을 내세운 건, 그 정반대에 서 있는 불량한 사법정의를 저격하기 위함이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잘 살아가는 오종태(오정세)와, 그에게 매수되어 그의 죄를 덮고 심지어 동료형사까지 살해하는 비리형사 남국현(양형민) 그리고 누나를 고문해 자살하게 만든 형사를 살해하고 그걸 덮기 위해 무고한 이대철을 사형수로 만든 정한일보 유정석(지승현) 부장과 그 죄를 덮으려 한 그의 형 유정렬(조승연) 법무부장관이 그들이다. 거기에는 재력과 권력의 카르텔이 존재하고 그 힘은 검경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사법정의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검사와 형사가 등장하는 장르드라마들이 사법정의를 묻는 건 이 작품만이 아니다. 최근 시즌2로 돌아온 <비밀의 숲2>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검경이 수사권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서민들만 피해를 입는다. 평생을 모은 전세금을 사기당한 피해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이, 경찰은 그 사기범을 검거하지만 알력 때문에 검찰이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아 그냥 놔줘야 될 처지에 놓인다.

 

검경이 수사권을 두고 협상을 하면서, 한 경찰지구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지만 그들은 사건의 진실이나 정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만 검찰은 그것이 경찰의 치부를 드러낼 사건이라는 점에서, 또 경찰은 그 치부를 어떻게든 덮어야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나마 이 협상 테이블에 함께 한 황시목(조승우) 검사와 한여진(배두나) 형사 같은 그런 권력다툼보다 사법정의를 수호하려는 인물이 주목되는 이유다.

 

사실 우리네 장르물에서 사법정의가 소재로 올라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추적자>, <신의 저울>, <수상한 파트너>, <펀치>, <열혈사제> 같은 작품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해치> 같은 사극에서도 사법정의의 문제들이 등장한다. 법을 집행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올바르게 사용되기 보다는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현실이 반영된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사법정의의 문제는 검찰개혁 같은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의 난관들로 대중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것이 쉽지 않은 건 저 마다의 욕망들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들 드라마 속 사법정의를 수행하는 이들은 욕망에서 비켜나 있거나 아예 그런 욕망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강도창은 욕망보다 양심의 무게를 더욱 느끼는 인물이고, 황시목은 그런 욕망을 거의 갖지 않는 냉정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 비범한 인물들은 현실에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사법정의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실현해 보여준다. 대중들이 이런 드라마들에 열광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법정의의 실현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서구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우리 식의 장르드라마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 역시.(사진:JTBC)

'모범형사', 그저 모범적인 손현주를 그토록 응원했다는 건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에서 결국 유정석(지승현)이 조성기와 장진수 두 사람을 모두 살해했다는 게 밝혀졌다. 누나를 고문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한 조성기를 유정석은 분노에 눈이 멀어 살해했고, 그 현장에 나타난 장진수 형사까지 살해하게 됐다. 하지만 그 죄는 무고한 이대철(조재윤)이 뒤집어썼고 결국 사형수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유정석이 진짜 살인범이라는 게 확실해진 건 경찰의 수사 때문이 아니었다. 강력2팀 강도창(손현주)과 오지혁(장승조)은 유정석을 압수수색했지만 증거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오지혁이 말하듯 결국 이들이 기댈 건 '유정석의 양심뿐'이었다. 유정석은 실제로 자신이 두 사람을 살해했다고 정한일보 사회부 팀에 얘기했고 스스로 서부경찰서를 찾아 자신이 다음 날 아침 신문기사에 자신의 이야길 쓰겠다고 했다. "인간으로서는 부끄러운 짓을 했어도, 기자로서는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남기고 싶지 않다"며.

 

유정석은 다음 날 자신이 살인자임을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백했고, 그의 지시로 진서경(이엘리야) 기자는 이대철이 무고하다는 기사를 써서 공표했다. 그리고 오종태(오정세)를 불러 그의 목을 조르다가 다리 아래로 뛰어내림으로서 마치 그가 유정석을 살해한 것처럼 꾸몄다. 결국 오종태는 현장에서 강력2팀 형사들에 의해 검거됐다.

 

그간 강도창과 오지혁이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토록 사건의 진범을 찾아 뛰어다녔던 걸 생각해보면 유정석의 자백과 자살로 밝혀진 사건의 진실은 다소 허무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강도창과 오지혁의 그 포기하지 않는 수사로 인한 압박이 유정석의 자백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모범형사>가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건 굉장한 슈퍼히어로 형사의 판타지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강도창 같은 지극히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형사가 주는 서민 판타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서민 판타지에서 강도창의 강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양심'이다. 처음에는 자신도 승진에 누락될까봐 이대철 사건을 외면하려 했었지만, 그는 끝내 그 양심의 가책을 이겨내지 못한다.

 

결국 이대철의 사형이 집행되고 이로 인해 홀로 남게 된 그의 딸 이은혜(이하은)를 가족처럼 집으로 들인 것도 바로 그 양심 때문이었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걸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지만 바로 그 모범적인 양심이야말로 이렇게 욕망 가득한 현실에서 그나마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걸 강도창은 보여준다. 그의 양심에 강력2팀이 합류하고, 문상범(손종학) 서장까지 개과천선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만을 해온 윤상미(신동미)나 진서경도 변화한다.

 

강도창의 '양심'이 만들어낸 이 변화과정을 염두에 두고 보면, 유정석이 끝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백을 함으로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그 설정이 납득되는 면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 그래도 진실이 묻히지 않는다는 이 드라마의 일관된 메시지가 거기서도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개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모범형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씁쓸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사법적 기능이 그 시스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양심에 의해서만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주고 있어서다. 대단한 어떤 것도 아닌 그저 '모범'이라도 지켜 달라 말하는 강도창을 우리가 그토록 응원했다는 건 얼마나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는 일인가.(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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