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VIP' 반응, 불륜을 통해 담아내는 사회적 의미

 

SBS 월화드라마 <VIP>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청률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단지 불륜만은 아니라는 징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상황도 그렇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불륜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색다른 사회문제나 의미를 가진 드라마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VIP>는 분명 초반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정선(장나라)에게 온 문자 하나가 그 시작점이었다.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 그 후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을 의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또 그 ‘여자’가 누구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된 박성준은 나정선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하고, 고통스럽지만 나정선 역시 용서하려 노력해보겠다 말한다.

 

이런 전면에 드러난 스토리만을 두고 보면 <VIP>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만을 자극적으로 펼쳐놓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나정선과 박성준을 부부이면서 한 팀의 팀장과 차장으로 구성해놓고 있는 점이나, 또 그 팀이 다름 아닌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부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VIP 전담팀이라는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를 가져왔고 그 팀에 부부가 팀장과 차장으로 있는 설정을 해놓은 걸까.

 

그건 우리네 관계가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정선과 박성준이 어느 VIP 고객과 자연스런 인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사적인 부부의 저녁을 가장해 앉아 있을 때, 그 고객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한 부부의 시선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적인 일은 VIP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사적인 불륜 같은 것들조차 숨기고 감춰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일로서는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불륜일 뿐이다. 이미 박성준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나정선은 그래서 그 VIP의 불륜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저들의 불륜은 넘어가면서 내게 닥친 불륜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얽혀져 있어 불륜마저 그 힘에 의해 덮여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 구조가 들어가 있다.

 

이런 일들은 이 VIP 전담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모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온유리(표예진)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가난을 넘어서려 하는 인물이다. 공적인 위치를 사적인 관계를 통해 넘어서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이현아(이청아)는 정선과 입사동기이고 친구였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역시 무언가 회사 내 위계구조 안에서 일을 겪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정선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바꿔놓고 있는 것.

 

송미나(곽선영)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워킹맘으로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위치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사에서 승진해 정당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하지만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면서 승진이 누락되어 6년째 사원이다. 훨씬 더 절실해진 그는 그래서 공적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겠다 선언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한 건, 이런 돈과 지위로 결정되는 위계가 심지어 윤리적인 부분까지 넘어서는 걸 가장 잘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VIP라는 이유로 저들은 군림하고 뭐든 하대하며 누리려 한다. 저들은 선을 넘는 일조차 당연하듯 행하고 거기에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전담팀은 다르다. 그들은 VIP를 응대하는 일이 자신의 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저들을 목격한 이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VIP>는 그래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건 우리가 그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다. 돈 있는 이들이 결국 VIP로 불리고 군림하는 사회. 하지만 VIP의 의미 그대로 진정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런 부분들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돈키호테’ 통해 본 몸으로 웃기는 예능의 부활 가능성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돈키호테>에는 ‘미치거나 용감하거나’라는 표현이 붙었다. 여러모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인물. 보는 관점에 따라 그건 미쳤거나 혹은 용감한 행위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프로그램 소개에서도 소설 <돈키호테>의 대사 중 하나를 가져온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그럴 듯한 설정이다. 하지만 막상 <돈키호테>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어떻게든 과거 우리가 봐왔던 몸으로 웃기는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애써 강변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첫 회만 슬쩍 보고도 이건 MBC <무한도전>의 시작점이었던 <무모한 도전>을 떠올린다. 삽질로 포크레인과 대결을 벌이고, 버스와 달리기를 하며,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통해 큰 웃음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 처음엔 무모했던 도전들이지만 그것이 성공하진 못해도 최소한 웃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박수 받으며, 나아가 그 땀들이 모여 도전의 가치를 세워줬던 프로그램.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의 밑거름이 된 예능.

 

실제로 <무모한 도전>과 비슷하다는 반응들에 대해 손창우 PD는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김태호 PD와 5년 간 함께 <무한도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감성’이 비슷하게 전달된 것일 수 있다고 했고, 특히 “어떠한 종목에 도전한다는 형식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절대 똑같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무모한 도전>과 살짝 다른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꿈잣돈’처럼 이들이 도전에 성공할 때마다 모아 꿈을 위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준다는 장치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장치 하나로 이 유사함이 다르다고 말하긴 어렵다. 육상 꿈나무들과 계주 대결을 벌이고 자동화 로봇과 즉석밥 포장 대결을 벌이는 그 형식은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연장선이다.

 

멤버 구성은 <무한도전>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딘지 <1박2일>의 구성을 닮았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적인 팀 캐릭터 구성이 아닌가 싶다. 김준호가 맏형으로 들어갔고 조세호와 이진호가 웃음 담당 개그맨으로서 참여했으며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배우 송진우와 이 프로그램의 얼굴담당이자 젊은 피인 이진혁이 포진했다. 맏형을 세워 찧고 까부는 설정 개그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분량 욕심을 내보이는 조세호와 이진호가 별 노력 안해도 존재감을 보이는 막내 이진혁과 묘하게 세워지는 대결구도가 있으며, 여기에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는 송진우가 조커처럼 포진했다. 도전은 이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과정은 이들의 성장담을 그려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보면 <돈키호테>는 대놓고 예전 몸으로 웃기고 부딪치는 예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쇼 즉 관찰카메라의 시대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캐릭터쇼가 한 물 간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어째서 <돈키호테>는 과거로 회귀한 것일까. 이건 퇴행일까 아니면 빠른 변화에서 오히려 과거가 그리워지는 복고 현상일까.

 

어찌 보면 관찰카메라 시대로 들어오면서 웃음의 강도는 상당 부분 약화된 게 사실이다. 즉 웃기기보다는 좀 더 진지해진 부분에 무게를 두는 예능의 시대랄까. 예능도 그런 진지함을 담아낼 수 있다는 외연의 확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줄어든 것이 별 생각 없이 한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다. 재미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지면서 상대적으로 웃음의 영역은 축소되었다는 것.

 

퇴행이든 복고든 <돈키호테>가 지금 기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결핍이다. 그게 무엇이든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예능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 <무한도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1박2일>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빈자리다. 웃음을 주겠다는 그 진정성이 통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여겼을 법 한 상황이다.

 

다만 그토록 오래도록 해왔던 <무한도전>의 많은 스토리텔링들과의 비교를 <돈키호테>가 어떤 새로움으로 넘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무언가 새로운 포인트나 소재들이 등장한다면 시선을 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고가 복제가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진정성은 알겠지만, 그걸 얼마만큼 신선하게 끌어갈 것인가는 이 프로그램의 중대한 숙제로 남았다.(사진:tvN)

‘놀면 뭐하니?’ 뽕포유, 이 분들 콩트 짠 거 아니죠?

 

박토벤과 정차르트. 어느새 MBC 예능 <놀면 뭐하니?> 뽕포유에 등장했던 작곡가 박현우와 편곡자 정경천에게는 닉네임이 더 익숙해졌다. 15분이면 노래 한 곡을 뚝딱 만들어내고, 그 곡을 즉석에서 연주하며 부르는 박토벤은 그 천재적 능력이 놀랍지만, 그런 음악적 능력과는 너무나 달라 보이는 허술한 면들이 겹쳐지며 독특한 예능의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했다.

 

감정을 깊이 집어넣어 연주하며 노래할 때 제작진이 그려 넣은 눈물 CG가 박토벤의 독특한 캐릭터의 시작이었다면, 이 인물을 중심으로 트로트업계에서 이른바 레전드로 자칭 타칭하는 분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그 제작과정은 놀라운 창작의 발견이면서 웬만한 콩트 코미디를 훌쩍 넘어서는 웃음의 현장이 됐다. 박토벤에 의해 이어진 작사가 이건우는 유재석과 뚝딱 ‘합정역 5번 출구’의 재치 있는 가사를 만들어냈고, 편곡자 정차르트는 단순해 보이던 연주를 화려하게 변신시켰다.

 

그런데 박토벤과 이건우 그리고 정차르트가 함께 모였을 때 거의 만담에 가깝고 콩트에 가까운 치고받는 이야기는 유재석마저 계속 웃게 만들었다. “이거 짜갖고 나오시는 거 아니죠?”고 물을 정도. 도입부에 ‘빰빰-’하며 기적소리를 꼭 넣어야 한다는 박토벤과 그게 너무 흔하다며 각을 세우는 정차르트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겨나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자기만의 음악적 고집을 추구하는 장인들의 진지함이 묻어나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기적소리 같은 작은 부분이라는 점은 이 상황이 콩트처럼 보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각을 한참 세우다가도 금세 꼬리를 내렸다가 또 그러면서도 은근히 박토벤을 툭툭 건드리는 정차르트는 편곡자답게 콩트를 적당한 긴장과 이완으로 편곡해낸다. 정차르트라는 이름이 어딘지 박토벤에 비해 입에 잘 붙지 않는다고 하고 그래서 유재석이 하이든을 붙여 ‘정이든’이 어떠냐고 하자 좋다는 정경천. 하지만 이름 공짜로 받으면 안된다고 박토벤이 돈을 주라 말하며 은근히 정경천을 건드리자 그는 돈 5만원을 내밀며 이건 내게 큰 돈이라고 말해 유재석이 기어이 돈을 돌려주게 만든다.

 

또 갑자기 저작권협회 회장 선거에 나갔다 정경천과 이건우가 모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유재석에게 정회원이냐 아니냐를 묻는 박토벤이 적어도 저작권료가 5천만 원은 넘어야 정회원이 된다고 하자, 정경천이 우리 때는 가입하면 다 정회원이었다고 진실을 폭로하는 것으로 웃음을 준다. 유머와 진심이 넘나드는 박현우와 정경천의 긴장감 넘치는 얘기 속에서 중간에 끼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이건우까지 <놀면 뭐하니?>는 뽕포유를 통해 의외의 예능 캐릭터들을 발굴해냈다.

 

갑자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빗대 수십 년 간 연주의 합을 맞춰온 레전드라 불려도 충분한 세션 대가들의 연주가 트로트 특유의 정감 속에 예술적 향기를 더해준다면, 도시 한 가운데 지어진 폭포 밑에서 득음을 가르치겠다며 유재석을 불러 발성 연습을 시키는 진성과 미리 다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곳을 찾은 김도일 작곡가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또 한 편의 콩트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어쩌다 트로트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놀라운 건 이 레전드로 불려도 될 법한 아티스트들이 가진 유머 감각이다. 박현우와 정경천은 물론이고 진성과 김도일, 게다가 갑자기 안무를 보러 왔다가 의외의 수줍은 모습으로 웃음을 준 박상철 등등 트로트 레전드들은 웬만한 예능인들보다 더 빵빵 터트린다. 그런데 이 분들의 무엇이 이렇게 시청자들을 웃게 만드는 걸까.

 

그건 아마도 트로트라는 음악적 장르가 가진 독특한 지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삶의 애환이 깊게 담겨진 음악이지만 트로트는 이를 경쾌하게도 또 무겁게도 풀어내는 장르다. 그러니 이 분들이 하는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진지함은 예술혼이면서 동시에 그 과함 때문에 웃음을 준다. 게다가 이 분들은 그 삶의 힘겨움을 살짝 틀어내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트로트가 가진 음악적 힘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콩트적인 상황에서의 밀고 당기는 토크를 듣다보면 마치 트로트의 밀당을 듣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이 트로트 레전드들이 콩트 코미디의 대가들처럼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사진:MBC)

 

아놀드 슈와제네거, 제임스 카메룬 그리고 린다 해밀턴

 

1984년 처음 등장했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터미네이터>는 이 레전드가 될 영화의 신호탄이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온 인간과 터미네이터의 대결이라는 이 흥미진진한 설정에 확실한 아우라를 부여한 건 터미네이터로 등장했던 아놀드 슈와제네거였다. 그 정도로 부서지고 깨지면 끝날 법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해서 공격하는 터미네이터라는 캐릭터는 당대의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제대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된 건 1991년 제작된 <터미네이터2>였다. 레전드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놀라운 스케일의 액션이 CG와 더해져 풍부해졌고, 스토리도 탄탄해졌다. 무엇보다 1탄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던 터미네이터가 이제는 유일한 미래의 희망으로 남은 존 코너를 지키는 수호천사로 미래로부터 날아온다. 더 강력한 액체 금속형 로봇 T-1000(로버트 패트릭)이 쉽게 파괴되지 않는 적으로 등장하고, 그와 무심한 듯 온몸을 던져 대적하는 T-101(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압도적인 대결이 그려진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히어로가 합류하는데 그가 바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다. 훗날 인류 저항군의 사령관이 될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사라 코너와 T-101의 T-1000을 물리치려는 사투가 벌어진다. 사라 코너는 이 미래를 두고 벌이는 사투 속에서 또 한 명의 여전사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그 후 <터미네이터>는 몇 편의 후속작을 내놨지만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했고 작품으로서의 호평도 받지 못했다. <터미네이터3>,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그 불운의 작품들이다. 거기에는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출연했다는 걸 빼놓고 <터미네이터> 1,2편이 보여줬던 그 독특한 세계의 압도적 긴장감과 페이소스 같은 걸 느끼기가 어려웠다. 제임스 카메룬과 린다 해밀턴의 부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 작품들이다.

 

이 일련의 흐름을 봐왔던 <터미네이터>의 원조 팬이라면 이번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에 이 세 사람이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렐 수밖에 없을 게다. 물론 감독은 팀 밀러가 맡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이 제작했고 스스로 “2편에서 이어지는 속편”이라며 원조의 계보라는 걸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사라 코너로 린다 해밀턴이 합류함으로써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 골수팬들을 흥분시켰다.

 

이제 나이가 지긋하고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살이 가득한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이지만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는 놀랍게도 이들의 액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젊은 피로 미래에서 온 슈퍼솔져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가 합류하고 그가 지키려는 대니(나탈리아 레이즈)가 더해졌지만 영화의 아우라를 장악하고 있는 건 역시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이다.

 

미래에서 온 새로운 터미네이터 ReV-9(가브리엘 루나)은 터미네이터 1탄과 2탄의 로봇이 결합한 듯한 형태다. 금속으로 이뤄진 터미네이터의 골격에 액체 형태로 형상이 마음대로 변환하는 T-1000이 분리됐다 결합했다 하며 대니를 제거하겠다는 목표하나로 앞뒤 재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이 압도적인 액션으로 그려진다. 강력해진 적만큼 그와 대결하는 사라 코너와 T-800(아놀드 슈와제네거) 그리고 그레이스, 대니의 공조가 더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지금 시대에 걸맞는 젠더적 관점을 투영시켰다는 점이다. 린다 해밀턴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 크러시를 여지없이 멋지게 보여주고, 미래에서 온 그레이스의 놀라운 액션과 대니와의 워맨스가 보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미래의 희망이 되는 자를 죽이려는 터미네이터와 그를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 그리고 이를 돕는 로봇 T-800의 구도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액션에 더 큰 몰입감을 주는 요소다.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쳐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는 원조의 맥을 잇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멋진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원조 팬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다. 그 액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그 모습들이 중첩되어 불러일으키는 추억 게다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이는 이들의 멋진 모습이 주는 기분 좋은 몰입감까지 느낄 수 있으니.(사진:영화'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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