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어게인3’와 ‘놀면 뭐하니?’가 끄집어낸 가수 적재

 

물론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름이었을 게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가수 적재는 이미 김동률이나 정재형, 아이유, 태연 등 쟁쟁한 가수들의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높였던 인물이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박보검이 부른 ‘별 보러 가자’의 원곡자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아이유는 적재의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기도 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 인증을 한 바도 있고, ‘꽃갈피’에는 편곡으로 적재가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적재라는 이름이 방송을 통해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음악 관련 프로그램들이라면 유독 적재의 출연이 잦아지고 있는 것.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JTBC <비긴어게인3>다. 독일 베를린으로 떠난 <비긴어게인3>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가수는 역시 소녀시대 태연이지만 낯선 이름으로 다가와 확고한 자기만의 음악적 세계를 대중들에게 넓힌 장본인은 바로 적재가 아닐까 싶다.

 

이번 <비긴어게인3> 베를린편이 이렇게 적재라는 이름을 주목되게 한 건, 이번 버스킹에 꾸려진 팀의 색깔 자체가 싱어 송 라이터들의 개성 강한 가수들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솔로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태연은 물론이고, 명불허전 이적에 고막남친으로 불리는 폴킴 그리고 딕펑스의 만능 재주꾼 김현우가 적재와 함께 했다. 그 음악적 색깔이 잔잔하면서도 저마다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가수들이라는 점에서 노래는 물론이고 가수들이 찾는 기타리스트로서 적재의 존재감은 빛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차 한 잔을 마시며 폴킴과 함께 기타 연주와 노래를 맞춰보는 모습은 <비긴어게인>의 버스킹 무대 말고도 잔잔한 아침의 분위기와 함께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절제된 핑거링이 주는 편안함을 더한 적재의 기타 연주는 폴킴 특유의 음색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이번 <비긴어게인3>에서 폴킴과 적재가 함께 부른 케렌 앤의 ‘Not Going Anywhere’는 특히 기타 베이스가 주는 편안함이 극대화된 곡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비긴어게인3> 특유의 버스킹 무대에서 적재는 본래 일렉트릭기타를 해왔다는 걸 블루스 베이스에 즉석 연주를 더해 분명히 드러내주었다. 절정에 달할 때 자유롭게 덧붙이는 애드립은 관객들을 환호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기타만큼 만국공통어가 없다는 사실 또한 그는 확인시켜 주었다.

 

적재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도전한 ‘유플래쉬’에도 참여해 놀라운 기타 실력을 선보인 바 있다. 이상순에게 전해진 유재석의 단순한 비트는 다시 적재에게 넘어가면서 일렉트릭기타의 매력이 더해졌다. 이상순은 즉석에서 적재의 연주로 만들어진 곡을 들으며 놀라워 하기도 했다.

 

<비긴어게인3>에서 이적은 폴킴과 적재에 대해 말하며 이들의 음악세계가 팝과 가요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적재의 곡을 들으면 가요 같은 편안함과 더해 팝의 세련됨이 얹어진 느낌을 준다. 아주 대중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듣다보면 점점 빠져드는 세계. 점점 짙어져 가는 가을에 더더욱 어울리는 가수, 바로 적재다.(사진:JTBC)

남장여자에서 여장남자로, ‘녹두전’의 파격 역할 바꾸기

 

한때 드라마에서 남장여자는 하나의 인기 코드로서 등장한 바 있다. MBC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그렇고, SBS <바람의 화원>이 그랬으며, KBS <성균관 스캔들> 그리고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그랬다. 남장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모두 멜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성 역할 바꾸기가 여러 가지 상징들을 담게 만들었다. 동성애 코드도 들어가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 간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새로 시작한 KBS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은 남장여자가 아닌 여장남자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것은 성 역할 바꾸기의 관전 포인트를 바꿔 놓기 때문이다. 즉 남장여자는 (주로 사극에서는)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들을 뛰어넘기 위해 여성이 남자행세를 하는 것이지만, 여장남자는 그런 방향성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대신 여장남자는 여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억압과 핍박을 경험하고 공유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녹두전>에서 전녹두(장동윤)가 여장남자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습격한 괴한들의 뒤를 추격하게 되면서다. 전녹두는 그 괴한이 복면을 한 여성들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과부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여장을 한 채 과부촌에 잠입해 들어간다는 설정이다.

 

주목되는 건 이 과부촌과 거기 붙어 있는 기방이라는 공간이 가진 당대 여성들의 삶이다. 과부가 되어 따라죽으라는 가문의 강권을 물리치고 그 곳에 모여 서로 의지해 살다보니 하나의 촌락을 이뤘다는 과부촌이 그렇고 양반들에게 술과 웃음을 파는 기방이 그렇다. 이들은 당대 여성들이 가진 차별적 세상에서 밀려나 있지만 그 곳에서 함께 모여 그 세상과 맞서 살아가는 중이다.

 

여기서 여장남자로 과부촌에 들어와 지내게 된 전녹두와 기방에 살고 있는 동동주(김소현)가 한 방에서 동거하게 되는, 어찌 보면 남장여자 코드의 ‘조선로코’에 빠지지 않는 상황이 재현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그랬지만,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 설정에 성 역할을 숨기고 들어와 한 방에서 같이 지내는 상황은 이른바 ‘조선로코’의 중요한 드라마 코드 중 하나다.

 

예비 기생 중 최고령자로 있는 동동주는 까칠하고 괄괄한 성격으로 기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고, 오히려 여장을 한 전녹두는 조신한 면모를 연기한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 보여지는 성 역할을 뒤집는 모습들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성 역할 바꾸기는 두 사람이 결국은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성 역할이 남녀 관계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조선로코’가 그러하듯이.

 

그런데 이 ‘조선로코’는 광해라는 실존 역사의 인물까지 등장하고 있고, 과부촌의 비밀무사단체인 무월단이나 자경단에 해당하는 열녀단 같은 예사롭지 않은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로코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녹두전>의 여장남자 콘셉트는 여성들이 겪는 억압을 남성의 시선으로 체감한다는 차원에서 그 자체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작은 사랑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 같은 욕망들이 병치된다는 점은 이 로코가 가진 사회적 함의를 훨씬 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장남자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너무나 잘 연기해내고 있는 장동윤이라는 배우의 공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땐뽀걸즈>에서 순박한 청년 권승찬 역할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녹두전>을 통해 여자라고 해도 믿을 법한 ‘고운 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이 드라마의 근간이랄 수 있는 여장남자 캐릭터를 수용하게 만든 그의 연기 지분이 절대적이라는 걸 말해준다.(사진:KBS)

연기만 잘 하면 이제 대중들도 연기돌을 받아들이는데

 

이제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 이른바 ‘연기돌’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연기돌로 등장한 이들이 과거와 달리 상당한 준비를 하고 연기에 임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시완의 경우가 그렇다.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였지만 임시완은 tvN 드라마 <미생>이나 영화 <변호인>, <불한당> 등을 통해 확고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도 살인마들이 드글거리는 고시원에서 불편함과 함께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간간히 드러내는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아이유도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tvN <나의 아저씨>에서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 아이유는 최근 종영한 <호텔 델루나>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며 가수만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물론 연기가 대단하다 말하긴 어려워도 어느 정도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함으로써 호평을 받는 연기돌들도 있다.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 이어 MBC <신입사관 구해령>으로 ‘얼굴 천재’로 불리는 차은우가 그렇고, 최근 방영됐던 <열여덟의 순간>에서 첫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몰입을 보여준 옹성우가 그렇다.

 

반면 한 때 인정받기도 했지만 또다시 연기력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연기돌들도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배가본드>의 배수지와 tvN <청일전자 미쓰리>의 이혜리가 그렇다. 배수지의 경우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국민첫사랑의 반열에 올랐고, <도리화가>에서도 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드라마에서는 생각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최근작이었던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렇고 지금 방영되고 있는 <배가본드>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이혜리의 경우, <응답하라1988>에서 덕선 역할로 호평을 받았지만 그 후에는 이렇다할 반응들이 별로 없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의 경우, 연기가 나쁘다고 보긴 어렵지만 과거 <응답하라1988> 덕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연기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들이 나오고 있다.

 

즉 배수지나 이혜리는 이들이 연기돌이기 때문에 더 엄정한 비판의 시각을 갖게 된다기보다는 이미 한 번 연기로 주목받았던 이들이기 때문에 더 높은 잣대로 받는 비판이 더 크다. 워낙 처음 주목을 받았던 작품에서의 캐릭터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그 잔상이 강하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 작품의 캐릭터와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몰입에 방해를 줄 수 있다. 시청자들로서는 비판적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생각해볼 건 배수지나 이혜리가 이번에 각각의 작품에서 연기하는 역할이 과연 과거 그들이 했던 인물들과 결이 같은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 역할이나 인물의 성격이 비슷하다면야 그런 겹치는 이미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이 문제가 되지만, 이들이 현재 선택한 작품들은 과거 그들이 보여준 역할의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게 사실이다.

 

<배가본드>에서 배수지는 국정원 요원을 연기하고,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이혜리는 말단 경리직원을 연기한다. 사뭇 다른 인물이고 직업군이라면 거기에 맞는 연기 고민이 따로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배수지와 이혜리에게 나오고 있는 연기력 논란은 단지 연기돌이라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다. 각자 맡은 작품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전략적인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은 데서 나온 결과다.(사진:SBS)

'유퀴즈'·'일로 만난 사이'에 담긴 유재석 토크의 변화

 

사실 MBC <무한도전>을 전면에서 이끌면서 특히 몸 쓰는 일(몸 개그부터 리얼 성장드라마까지)을 많이 해왔지만 유재석의 주력은 애초부터 토크에 있었다. 아주 오래 전 <토크박스>에 출연해 에피소드를 털어놓던 때부터 조금씩 진화해온 유재석의 토크는 <해피투게더>나 <놀러와>로 오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리얼 토크쇼’라는 트렌드 속에서 <무릎팍도사>나 <강심장>처럼 독한 토크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유재석은 ‘햇볕 토크(바람보다는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 배려하는 토크)’로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놀러와>의 골방토크나 <해피투게더>의 목욕탕토크는 그 공간이 갖는 편안함에 유재석의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햇볕 토크’가 더해져 빛을 보았다.

 

하지만 <놀러와>는 이미 오래전 종영했고, <해피투게더>도 시즌4를 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화제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건 그간 해왔던 토크쇼의 틀이 이제 한물 지나간 트렌드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토크쇼들을 보면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과 정확히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카메라가 전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나가는 와중에 밀폐된 스튜디오에 머물고 있고, 일반인들이 스타가 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여전히 연예인이라는 직군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파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런 상황이니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 유재석의 행보는 토크보다는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무한도전>식의 몸 쓰는 일에 집중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재석의 행보를 보면 놀랍게도 그가 가진 장기인 토크를 지금의 트렌드에 맞게 진화시키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길거리로 나가 그 곳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과 토크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그간 토크쇼들이 해왔던 틀의 한계를 모두 깨고 있다. 즉 스튜디오를 벗어나 우리네 일상의 공간에 카메라를 드리우고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만나 진솔한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여기서 유재석은 그간 연예인들을 무장해제 시켰던 그 토크 능력을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난 분들의 짧지만 인생 전체가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발휘한다.

 

무명의 연예인들을 특유의 토크 능력으로 캐릭터까지 척척 잡아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기도 했던 유재석의 언변은 이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삶의 현장에서의 보통 사람들에게 햇살처럼 뿌려진다. 그렇게 끄집어내진 그 분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한편의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스펙터클하다는 걸 알게 된다. 시청자들은 누구나의 삶이 그렇게 저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걸 경청해주는 ‘유느님’ 유재석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tvN <일로 만난 사이>는 유재석 토크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라면, <일로 만난 사이>는 그 서민들이 하는 노동 속으로 깊게 들어가 그 분들의 삶을 체험을 통해 전해주는 토크를 구사한다. 이효리, 이상순과 함께 제주의 녹차밭에서 일하며 끊임없이 투덜대고 힘겨워 하는 유재석의 토크는, 우리가 편안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시는 녹차 한 잔에 담긴 저분들의 노고를 체감하게 해준다. 차승원과 함께 무안에서 생고생을 하며 고구마를 캐며 나누는 이야기나, 쌈디, 그레이, 코드쿤스트와 함께 KTX 청소를 하며 나눴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유재석의 토크는 진화하고 있다. 토크쇼는 이미 한물 간 형식이지만, 유재석의 진화된 토크는 그래서 흥미롭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연예인들만이 아닌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토크의 방향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토크라는 것이 말 자체가 아니라 마음부터 열려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먼저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대상을 만나러 찾아가는 길. 유재석은 그 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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