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유재석과 트로트의 만남 빵빵 터진 이유

 

시청률도 빵 터졌고 웃음도 흥도 빵빵 터졌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는 새로 시작한 ‘뽕포유’로 6.6%(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주 3.7% 시청률에서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웃음의 강도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유재석과 트로트의 만남이라는 그 시도 자체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재석이 동묘에 위치한 알 수 없는 녹음실을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한 때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을 했고 무수한 영화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 박현우의 녹음실이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유재석의 표정은 이제 <놀면 뭐하니?>에서는 익숙한 웃음의 포인트가 됐다. ‘유플래쉬’에서도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체리필터 손스타에게 드럼을 배워 두드렸고, 그것이 가요계 선후배들을 끌어모아 ‘릴레이 음악’을 하게 만든 시발점이 됐었다.

 

이번 ‘뽕포유’는 그 ‘유플래쉬’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유플래쉬’에서 자신의 드럼 비트가 트로트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던 유재석이었다. 또 평소 트로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그였기에 이제 트로트계 선후배들이 모여 유재석을 장차 용이 될 ‘트로트계의 이무기’로 키우는 프로젝트가 시도되게 됐던 것.

 

물론 이건 유재석의 아무런 의도나 의지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웃음을 줬다. 갑자기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부르게 된 유재석은 심지어 ‘트로트 영재’라고까지 치켜세우는 박현우의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특이한 건 노래방 기계 반주를 이용해 녹음을 했던 것.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녹음한 노래를 트로트계의 거성들인 태진아, 김연자, 진성에게 직접 들려주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게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라며 혹독한 평가를 이어가던 세 사람은 그러나 유재석이 직접 나타나 자신이 불렀다고 하자 갑자기 호평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줬다.

 

결국 유재석이 쏘아올린 작은 비트 하나가 가요계 선후배들을 한 자리에 모아 노래를 만들게 했듯이, 이번 ‘뽕포유’는 트로트계 선후배들을 모아 유재석 트로트 가수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했다. 흥미로웠던 건 ‘트로트 신동’ 유재석의 행보만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방송에 얼굴을 내민 트로트 가수들의 면면 또한 놀라울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

 

처음 유재석을 맞았던 박현우는 물론이고, 남다른 트로트의 흥을 끌어내준 태진아, 김연자에 이어 진성과 함께 만나게 된 가수 윤수현 작곡가 김도일 또한 남다른 예능감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특히 과한 리액션을 쉬지 않고 해주는 윤수현은 그 자체로 유재석을 웃게 만들었고 그 ‘우쭈쭈’로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유재석의 예명을 짓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작곡가 김도일이 ‘이무기’라고 하면 어떠냐는 의견에 진성이 그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라며 설전을 벌이고, 메뚜기, 사마귀, 유뽕, 유태풍, 유이슬을 거쳐 갑자기 튀어나온 유산슬이 그의 닉네임이 되었다. 또 첫 무대를 위해 의상을 선뜻 빌려주겠다고 나선 태진아를 찾아가 핑크색 반짝이 코트와 노란 중절모 심지어 팬티까지 지원받는 과정도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가 된 유산슬의 첫 무대.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유재석은 그간 선배들에게 배운 포인트들을 살려 진성의 ‘안동역에서’를 불렀고, 관객들의 호응에 유재석은 한껏 들뜬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가면을 벗은 유재석에게 놀란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트로트 신동의 탄생에 관객들도 진성도 기뻐했다.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는 트로트 버전의 릴레이 카메라가 되었다. 유재석이 트로트를 한다는 것 때문에 시선을 끌게 되었지만, 사실 프로그램의 주역들은 거기 출연한 트로트 가수들이었다. 구수한 트로트 가락에 걸 맞는 저마다의 남다른 예능감을 보여준 이들은 우리에게 트로트의 맛을 새삼 알려주었다. 아마추어인 유재석이 비교점이 되어 똑같은 가사의 노래지만 어디에 어떻게 포인트를 살리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보여줬고, 무엇보다 그들의 구수한 흥은 그들 캐릭터에 녹아 있듯이 삶 자체에 닿아있다는 걸 드러내줬다.

 

결국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는 트로트가 얼마나 친근하고 흥과 한이 넘치는 음악인가를 그 예사롭지 않은 출연자들을 통해 보여줬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첫 회가 끝나고 나서 진성의 ‘안동역에서’가 마치 입시금지송처럼 입에 착 달라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지도. ‘트로트 신동’ 유재석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반가웠던 건 예능의 새얼굴이 되어도 충분할 트로트 가수들의 면면이었다.(사진:MBC)

‘천리마마트’, 처음엔 낯설어도 익숙해지다 빵빵 터지는

 

이거 도대체 뭐지? 아마도 원작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며 당혹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가져온 ‘털이 나는 광택제’를 내놓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할 법 하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권영구 전무(박호산)에 모든 이사들이 찬성할 때, 반대의사를 들고 나온 정복동(김병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해보기 위한 일이었다며 충언을 할 줄 아는 정복동을 추켜세우지만, 갑자기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얼토당토 않은 일로 대마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되게 된다.

 

그런데 황당함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천리마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겠다 나선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과 은행에서 명퇴 당한 대리기사,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힘겹게 대마그룹의 천리마마트에 점장으로 취직한 문석구(이동휘)는 정복동이 온 후로 놀라운 마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하는 빠야족들이 마트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게 된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는 조선시대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고 왕좌에 앉아 불만을 갖고 온 손님을 발밑에 무릎 꿇리며 그 불만사항을 들어준다. 심지어 “오늘은 꽃이 되자”는 정복동은 스스로 해바라기 분장을 하고 직원들은 꽃 분장을 한 채 손님들을 맞는다.

 

이 정도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드라마의 리얼리티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대마그룹 같은 대기업이 어디 있고, 천리마마트나 정복동 같은 사장이 어디 있으며, 그런 곳에 오인배 같은 전직 깡패나 심지어 빠야족 사람들까지 정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일이 어찌 벌어질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라는 드라마의 정체를 이제 받아들이게 된다. 병맛으로 가득한 웹툰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라마로 들어와 있는 것. 그러니 현실성이나 리얼리티를 따질 필요는 없어진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던 현실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천리마마트의 기상천외한 풍경들을 보며 웃을 준비만 하면 되는 것.

 

그래서 처음엔 기존 드라마들이 갖던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로 약간의 낯설음과 당혹감을 느끼다가 조금씩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빠져드는 기이한 병맛의 세계를 시청자들은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리얼리티의 정반대를 그려내는 마트의 풍경이 의외로 우리네 현실에 대한 은근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병맛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 같은 묘미도 감지하게 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린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 때 잘못된 길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진 현실, 심지어 외국인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대접을 받는 일이 요원한 우리네 현실을 투영해보면, 천리마마트의 병맛 풍경은 의외로 짜릿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직원이 왕’이라는 이 마트의 상상초월 성장기가 자못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배가본드', 이승기의 액션만으로도 꽉 찬 한 시간

 

이미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됐던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는 그 기대감만큼 불안감도 컸던 게 사실이다. 여러 차례 국내 드라마들이 이른바 ‘액션 블록버스터’를 시도했지만 대부분이 실패했던 전적들이 있어서다. <로비스트(2007)>, <태양을 삼켜라(2009)>,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 <도망자PLAN B(2010)>, <아이리스2(2013)>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THE K2(2016)>까지. 이들 이른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를 내세웠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은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그만한 결과를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니 250억이 투입된 액션 블록버스터 <배가본드>에 대한 우려가 생길 밖에.

 

하지만 첫 회만 보면 <배가본드>는 꽤 성공적인 액션 블록버스터가 될 거라는 예감이다. 일단 먼저 눈에 띄는 게 주인공 차달건 역할을 연기하는 이승기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다. 액션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이승기는 모로코 현지에서 테러범과 마주해 보여준 격투신과 추격 신을 통해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도망치는 테러범을 뒤쫓는 파쿠르 액션은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건물 꼭대기에서 달리는 차 위로 뛰어내리는 장면이나, 그 차에 매달려 가다 차 안으로 들어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결코 쉬운 액션이 아니었다. 유인식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배우들이 특히 고생했다”며 “안전한 장면에선 직접 연기를 했는데,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신, 차에 매달려 가는 신에선 이승기가 직접 연기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배가본드>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명쾌하다. 유도, 주짓수, 검도, 복싱 등등 종합무술 18단의 유단자로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무술감독을 꿈꾸던 차달건이 조카가 탄 여객기 추락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 여기에 국정원 요원인 고해리(배수지)가 함께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국방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단순명쾌한 구도지만, 그렇기 때문에 몰입이 쉽다. 유일한 가족 조카의 죽음이 만들어내는 차달건의 확실한 동기가 있고, 비행기 사고로 위장된 무기업자들의 테러가 조금씩 드러난다는 점에서 고해리 같은 요원의 동기까지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그래서 이 단순명쾌한 이야기를 어떻게 실감나게 보여줄 것인가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돈의 화신>까지 장영철, 정경순 작가와 합을 맞춰왔고 <미세스캅>과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작품으로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유인식 감독은 <배가본드>의 실감나는 액션 연출로 확실한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차달건의 캐릭터를 짧게 보여주는 갖가지 스턴트 액션으로 이 작품이 가진 볼거리의 예열을 했다면, 비행기 추락 신에서부터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장면들이 촘촘히 채워졌다.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대에 복잡한 스토리보다는 시원한 액션과 볼거리로 채워지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건 이미 이 시간대에 처음 편성되어 20%가 넘는 시청률을 냈던 <열혈사제>가 입증한 바 있다. 만일 첫 회 같은 밀도의 볼거리들을 꽉꽉 채워 보여줄 수 있다면 <배가본드>는 어쩌면 <열혈사제>의 성공을 재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배가본드>는 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승기의 액션만으로도 한 시간을 꽉 채워준 <배가본드>가 만일 성공사례로 만들어진다면 우리에게도 이제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더 이상 실패의 늪이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게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갖게 된 볼거리에 대한 욕망 또한 영화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사진:SBS)

‘동백꽃 필 무렵’, 중간들에게 던지는 강하늘의 돈키호테식 위로

 

“엄마는 오락기가 원래 없는 게 좋을 것 같아? 쓰다 뺐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쓰다 뺐기면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아. 잠도 안 올 거 같아. 근데 원래 없다고 치면 마음이... 중간이야. 충재네집은 이혼해갖고 걔네 아빠 서울 갔대. 나는 충재보다 내가 나은 것 같기도 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빠 없이 큰 아들에게 아빠가 궁금하지 않냐고 묻는 동백에게 하는 필구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그 말에 위로를 얻는 동백은 말한다. “그래 우리 중간이야 그치? 중간.”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있는, 아니 어쩌면 중간이라고 애써 우기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드라마다. 미혼모에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네 여인들이 동백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론 괴롭히는 이유다. 그건 동백의 아들 필구도 마찬가지다. 필구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과, 엄마가 술집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마저 마구 이야기하는 사실이 괴롭다.

 

그런 동백과 필구 앞에 편견이나 선입견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 것 같은 순백의 영혼을 가진 황용식(강하늘)이 나타난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들이 있으면 몸부터 뛰어드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경찰들보다 더 범인은 많이 잡아 순경이 된다. 그런 돈키호테 앞에 돌시네아처럼 동백이 나타난다.

 

엄마를 함부로 말하는 친구들과 한판 붙는 걸 도와주고 함께 오락실에 간 동백은 필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네가 ‘나 아빠 없어요’ 했을 때 너를 짠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아주 촌스런 사람들이여. 그런 사람들은 그냥 네가 짠하게 봐주면 되야.”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서 있다 우기는 이들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다. 황용식의 말처럼 그건 아주 촌스런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동정이나 연민은커녕 낮춰보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천지다. 남편이 동백이네 술집에 자주 간다는 이유로 동백이나 그 집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를 술집 작부나 마담 취급하는 이들이 그렇다.

 

“술집 작부나 마담이나 엎어지나 메치나지. 야 똑같이 하루 세 끼 먹는다고 똑같은 사람인지 아니? 오죽하면 이러고 살까. 인생이 불쌍해가지고 사람취급 해줬더니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아?” 그렇게 따지고 드는 시장 아주머니에게 그러나 동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무슨 은혜요? 제가 뭘 그렇게 신세를 졌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나 아무 짓도 안했어요. 저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 근데 다 왜 맨날 다 제 탓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좀 살 게 놔두세요. 저 좀 놔주세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라는 동백의 말이 아프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인데, 함부로 무시하고 죄인 취급하는 세상의 편견 앞에 중간 정도의 위치라고 우기며 사는 이들은 얼마나 힘겨울까. 그 때 마침 동백의 아들 필구가 나타나 엄마를 괴롭히는 준기엄마들에게 마구 대들며 엄포를 놓는다.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면요, 나 준기 맨날 맨날 때릴 거예요. 주먹으로 코 깨고요 발로 막 찰 거예요. 내가 하나 못하나 봐봐요.”

 

그날 밤 어른들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며 그래서 네가 ‘쌈닭’이라 불리는 거라고 하는 동백의 말에 필구가 하는 말이 또 한 번 가슴에 와 박힌다. “내가 왜 쌈닭이 됐는지 알기나 알아? 엄마, 엄마 땜에. 내가 왜 엄마를 지켜야 돼? 엄마가 나를 지켜줘야지. 나는 일학년인데 일학년이 왜 엄마를 지켜? 나도 귀찮아. 근데 내가 엄마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싫어하니까. 세상에서 엄마 좋아하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나 다 알아. 사람들이 다 엄마 싫어하고 괴롭히잖아. 그니까 내가 야구도 못하고 계속 계속 지켜줘야 된다고. 어떨 때는 나도 막 피곤해. 막 화가 나.”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와 황용식은 그렇게 동백을 지키는 돈키호테로 등장한다. 사실은 힘겨워도 중간 정도라 스스로 치부하며 애써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필구와 황용식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먹먹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게다. 가만 놔두면 “울까 봐” 자꾸 뒤를 따라가게 된다는 황용식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생판 남이 우는 데 내가 막 승질이 납디다.”

 

에너지 보충을 하겠다며 역전으로 간 동백은 꿈이 뭐냐는 황용식의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 그 곳에 있는 ‘분실물 센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 곳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것.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사랑한다는 얘기하고,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는 고맙다고는 안 해요. 아무도 나한테는 그 말을 안 해요. 저 분실물 센터에서는 저분이 최고 천사고 최고 은인이에요.”

 

돌아오는 길 황용식은 조심스럽게 동백에게 묻는다. “우리 쩌어그 해요... 쩌어그 친구요. 우리 친구 좀 해봐요.” 그러자 동백이 말한다. “나한테 친구하자는 사람은 또 처음인 거 같은데.” 그리고 황용식이 하는 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친구해요. 친구하면은 나 동백씨랑 필구편 대놓고 들어도 되죠? 작정하고 편파적으로 해도 되는 거죠?”

 

아직 피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는 스스로를 ‘필 무렵’이라 치부하며 살아가는 그 중간의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황용식과 필구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닿는 순간은 기분좋은 뭉클함과 먹먹함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뭉클함과 먹먹함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참으로 오랜 만에 볼만한 괜찮은 드라마가 나타났다.(사진:K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