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가정폭력이 만든 비극, 그 비극을 넘어서는 법

tvN 수목드라마 <마더>는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똑같이 끔찍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진(이보영)은 엄마가 되는 선택을 했고, 설악(손석구)은 괴물이 되는 선택을 했다. 그 대물림은 어째서 이렇게 다른 선택으로 이 두 인물을 이끌었던 걸까.

그 다른 선택은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 후에 누군가에 의해 사랑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뉘어졌다. 수진은 영신(이혜영)을 만나 그로부터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수진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상이 그렇게 모질지만은 않다는 걸 영신을 통해 느꼈을 게다. 

하지만 설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자살해버린 엄마가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처를 그에게 납치된 어린 윤복(허율)은 단숨에 들여다봤다. “삼촌 그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죠?” 윤복이 설악의 상처를 들여다 본 건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악의 그 깊은 상처와 자책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은 그가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용서하지 못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 아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엄마들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의 범행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악독한 짓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괴물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마더>가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이 수진과 설악의 대결구도에서 나타난다. 애초에 작가는 이런 두 인물의 대결구도를 통해 가정폭력의 문제, 진정한 부모의 자격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상처를 겪었음에도 누군가는 엄마가 되고 누군가는 괴물이 된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남은 희망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다. 

수진은 어느새 윤복의 엄마가 되어있고, 윤복의 친모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수진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부모 자식으로 이어지는 혈연보다, 피는 달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가 더 진정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복에게 읽어줬던 동화책의 내용처럼 수진은 끝까지 어디든 아이를 찾아가 꼭 안아주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를 거둬 사랑으로 키워준 영신을 통해 알게 된 부모의 사랑법일 게다.

그리고 윤복의 구원은 또한 수진 자신의 구원이 되기도 한다. 이미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윤복의 상처를 수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그 아픔을 영신이 그래준 것처럼 보듬어 치유해주는 건 수진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신이라는 인물에게서 전해진 사랑은 그렇게 수진을 통해 윤복에게 대물림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래서 그 어떤 부모 자식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설악의 과거사까지 밝혀지면서 <마더>가 담으려는 이야기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가정폭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이 어떤 결과로 대물림되는가 하는 것이고 그 비극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수진은 설악으로부터 윤복을 구해내고 이 비극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아이를 유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수진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게다.(사진:tvN)

‘셰이프 오브 워터’, 괴생명체와의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이라니

“만일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하면, 우리도 사람이 아니예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여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남미 어딘가에서 잡혀온 미지의 존재가 해부될 위기에 처하자 이웃집 친구인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아마도 이 영화가 하려는 많은 메시지들을 함축하는 것일 게다. 

인간과 괴생명체와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미녀와 야수>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뛰어넘어 사랑에 이르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본 바 있다. 또 일찍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E.T.’를 통해 외계인과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담아냈었다. 그러니 <셰이프 오브 워터>가 가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의 사랑이야기는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이 작품만이 가진 물의 이미지를 통해 전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오히려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여타의 비슷한 구도를 가진 작품들과 이 작품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놓는다. 저마다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하나로 뭉쳐지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사랑의 본질’을 통찰하는 이미지를 그려낸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간과 그 곳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를 가진 엘라이자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대비되는 면이 있다. 그 곳은 거대한 우주선이 있는 곳이지만, 엘라이자와 그의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그 우주선 밑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세상은 그렇게 우주를 향할 정도로 변해가지만, 엘라이자는 어딘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곳으로 괴생명체와 함께 부임한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그래서 그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를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에게 남미에서 원주민들에게 신처럼 받들여져 온 괴생명체는 그래서 단지 실험대상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엘라이자는 다르다. 그는 이 괴생명체에게서 자신과 이어지는 어떤 공감대를 발견한다. 

해부될 위기에 처한 괴생명체를 구하기 위해 엘라이자가 자일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에서 그는 자신과 괴생명체가 다르지 않다는 걸 강변한다. 말을 못하지만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고 심지어 사랑을 느끼는 자신 또한 ‘괴물’이냐고 반문한다. 괴생명체에게 먹을 것을 내밀고 음악을 틀어주기보다는 전기 충격기를 내미는 스트릭랜드는 구분 짓고 차별하는 사회를 표징하는 인물이다. 그가 보이는 괴생명체에 대한 차별은 인종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국적으로도 또 성별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그 곳을 탈출해 시작되는 사랑의 이야기는 이러한 차별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렬하다. 물에서 사는 양서류의 괴생명체와 물속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공존하고 나아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저 괴생명체를 연구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스트릭랜드의 생각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고 한 기예르로 델 토로 감독의 말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괴생명체와 인간의 기괴하지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신비한 순간들을 담아냄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사랑의 정반대편은 무심함이 아니라 폭력의 양상을 띤다는 건 우리가 현실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니 이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접하고 있는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이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1960년대의 미국 볼티모어라는 구체적인 냉전시대의 배경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는 작품이지만, 워낙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울림은 우리네 관객에게도 적지 않다. 세대, 성별, 지역 등등 구분되어 갈등하는 양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리네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갈등의 차원을 뛰어넘는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마치 물방울처럼 가슴 먹먹하게 차오르며 남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사진:영화'셰이프 오브 워터')


‘키스먼저’ 야하기는커녕 먹먹한, 독특한 19금 드라마의 등장

“같이 잘래요?” 사실 19금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는 야한 뉘앙스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야하기는커녕 먹먹해진다. 그건 진짜 혼자이기 때문에 솔로의 중년이 겪는 불면의 고통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감우성)이 “자러 올래요?”라고 던진 질문에 1도 기다리지 않고 “네”라고 답하는 순진(김선아)의 모습에서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은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멜로의 지점들이다. 청춘의 멜로라면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결실로서 등장하지만, 이들 중년의 멜로는 키스보다 ‘하룻밤’보다 더 큰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말 한 마디가 된다. 그래서 19금의 상황들이 대담하게도 전개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놀라운 감성들이 포착된다.

‘오늘만 살자’는 문신을 새긴 후, 안 해본 짓을 하겠다며 진창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안 해봤던 ‘같이 자는 일’을 하기 위해 코스프레 무인 모텔을 찾은 그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감성들 역시 이 드라마만이 갖는 멜로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 시청 앞 지하철 콘셉트로 꾸며진 방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그 공간이 주는 독특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기보다는 지하철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 젖어든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르는 그 모텔 방의 정경 속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그들을 같은 시간대의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연인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 그렇게 한 공간에 서 있게 된 사람들에게서 새삼 느껴지는 기적 같은 느낌을 무한은 말한다. 그래서 그 곳은 지하철 콘셉트의 모텔이 주는 에로틱한 상상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공간 위에서 드디어 마주한 운명적인 만남을 더 떠올리게 한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씩 결혼을 했고 배우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처를 겪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딱지가 앉은 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먼저 두 사람은 단지 남녀의 욕망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고적한 한겨울의 동물원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무한이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진을 애써 구해낸 건 어쩌면 자신을 구해내는 일과 다른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욕망의 이끌림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그 상처가 내 것인 양 다독이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의 19금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지만, 야하기보다는 먹먹해진다. 19금 상황 속에서도 욕망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순간이 주는 따뜻한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스 하면 당신이 오늘도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무한은 순진에게 키스 하지 못한다. 

웬만한 일들에 그리 놀라지도 않고, 이제는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별로 없어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과정은 그래서 가슴 시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19금이지만 먹먹한 이상한 드라마의 등장이다.(사진:SBS)

‘키스 먼저 할까요?’ 감우성과 김선아의 멜로 웃긴데 슬프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만 살자’며 다짐하듯 손목에 그 글씨를 문신하고 안 마시던 술을 진탕 마셔버린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은 누가 더 절망적인가를 내기하듯 자신의 불행을 하나씩 내놓는다. 안순진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지만, 늘 미소 짓는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닌 가식이었다고 말한다. 

“전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어요.” 안순진이 내놓은 불행담에 손무한이 내놓은 불행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것이 무슨 불행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감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이제는 별 다른 희망 따위도 사라진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 당장 오늘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안하던 짓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과 안순진의 만남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설렘과는 전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불행 속에서 그 아픔을 공유하며 만났다. 6년 전 흔들리는 기체에서 승무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 서로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죽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던 그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손무한은 안순진에게 건네며 태워 버려달라고 했고, 안순진은 차마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안순진은 그 때 한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동물원을 찾아갔고, 손무한은 그가 준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안순진 때문인지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눈 내리는 동물원, 한 켠에서 오열하는 안순진에게 손무한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건 그의 아픔과 상처를 똑같이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진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줄곧 따라왔다는 손무한에게 안순진은 사진을 버렸다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영영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손무한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던 것. 

그 후로 6년이 지난 후 윗층 아래층 이웃으로 다시 안순진을 만나게 된 손무한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그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절망감에 죽음까지 결심했던 안순진을 애써 구해냈던 그 때의 기억을. 하지만 안순진은 그 때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 것. 하지만 손무한의 등장은 그에게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로부터 안순진과 손무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로 웃어본 일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울 정도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먼 길을 돌아온 두 사람은 그래서 ‘오늘만 살자’며 그간 안 해본 일들을 해보려 한다. ‘키스 먼저’ 하는 일도, ‘함께 자는 일’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남다른 일이 된다. 그건 각자 버텨내던 삶에서 이제 ‘함께 버텨내는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든 함께 할까요?” 기억을 되살려낸 안순진의 이 제안은 그래서 도발적이면서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준다. 너무 아픈 기억 속에서 살아와 메말라버린 것 같던 웃음과 눈물이 그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면 뭐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오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서로가 겪고 있는 그 무뎌짐을 공유하고 누구나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새로운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할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중년들에게 주는 공감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진짜 웃음과 눈물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중년들에게는 더더욱.(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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