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보다 동행, ‘세모방’이 주목한 버스와 종점의 감성 

이렇게 단순한 형식인데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와 재미에 훈훈함까지 주는 방송이 있다니 놀랍다. MBC <세모방>이 주목한 G BUS TV <어디까지 가세요?>라는 프로그램이 준 감흥이다. 62-1번 버스를 타고 동탄에서 수원으로 출발해 그 반환점을 돌아 다시 차고지로 돌아오는 그 과정에 출연자들이 투입되어 승객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동행해주면서 일종의 출연자들끼리의 대결이 펼쳐지는 형식. 

어디까지 가는 지 알 수 없는 승객에게 다가가 그 내리는 곳에 동행해야 한다는 룰 때문에 종점 가까이 가는 승객을 만나면 쉽게 미션이 끝나버리지만 짧은 거리를 가는 승객을 만나면 계속 내렸다 탔다는 반복해야 한다. 이경규는 운 좋게도 25정거장을 이동하게 만든 ‘대박 승객’을 만나 이 프로그램 최단 시간인 8시간 만에 1등으로 퇴근했지만, 차오루의 경우는 아예 레이스에는 관심이 없는 듯 사람들과 끝없는 소통을 하는 통에 막차를 타고 겨우 꼴찌로 차고지에 돌아오게 됐다. 

흥미로운 건 레이스가 주는 재미보다는 이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퇴근하는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과정이 훨씬 마음을 끌었다는 점이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는 목적지까지 가는 승객들과 자연스럽게 우산을 나눠 쓰는 훈훈함을 만들었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내놓는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소소하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따뜻함이 있었다. 

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서민적인 분위기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보통의 수수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쫄쫄 굶어 배가 고픈 주상욱이 버스에서 만난 승객에게 조심스럽게 같이 저녁을 할 것을 제안했다가 다이어트를 한다며 거부당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 승객이 술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에 선뜻 승낙을 하자 그 곳을 따라가 치킨을 사주겠다면서 자신이 더 많이 챙겨먹는 주상욱의 모습은 반전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웃음보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건 그 따뜻한 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고민이나 이야기들이 주는 공감대였다. 주상욱과 함께 치맥을 하던 젊은 남자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본래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다며 그렇지만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에 꿈만 좇는다는 것도 어렵다는 소회를 드러냈다. 주상욱은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서른이면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런 소통의 훈훈한 면면들을 가장 잘 드러낸 출연자는 의외로 차오루였다. 외국인이라 우리말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는 차오루는 지난 회에서는 한 어머니 승객에게 멸치 반찬을 받았던 데 이어 이번에는 배웅의 답례로 닭발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종점에 임박했지만 버스에서 만난 한 아저씨와 동행하게 됐고 그의 집까지 방문해 ‘사랑의 오작교’를 자청하기도 했다. 마침 7월7석이라며 아저씨와 그의 아내 사이에 사랑을 확인시켜줬던 것. 차오루는 나오며 “수원에서 새 가족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마음은 어쩌면 한결 같은 것이다. 조금은 피곤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돌아갈 집이 있고 자신을 기다려주는 가족들이 있다. <세모방>이 주목한 G BUS TV <어디까지 가세요?>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그 시간 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를 전해주었다. 버스와 종점이 주는 그 감성이 얼마나 서민들의 감성과 어우러지는 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사진:MBC)

무모한 도전이 살려낸 ‘무한도전’의 초심과 저력

과거 <무모한 도전>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영하의 날씨에 갑자기 뗏목을 타고 무동력으로 한강을 종주하겠다는 도전이라니. 잘 차려입고 나와 재밌게 방송 해주면 된다며 자신을 불렀다는 조세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차림에 왜 갑자기 뗏목에 타야하고 노를 저어야 하는 생고생을 해야 하는 지 의아해했다. “근데 왜 우리 이걸 해야 하는 거죠?” 

MBC 예능 <무한도전>은 파업을 끝내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시도한 첫 번째 도전으로 왜 하필 이 뗏목 한강 종주라는 생고생을 선택했던 걸까. 그건 어쩌면 돌아온 <무한도전>이 보여주려는 초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고 그래서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 도전을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

결국 절반 정도까지 가다 날도 저물고 추워진데다 더 이상의 체력도 바닥나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건 절반의 실패라기보다는 절반의 성공에 가까웠다. 적어도 <무한도전>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사실 뗏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웃음은 고사하고 방송 분량을 뽑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 위에 떠 있는 뗏목 위에서의 모습들이 다소 단조롭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 환경을 단조롭게 세워버리자 오히려 도드라진 건 그 위에 서 있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유재석은 역시 그 단조로울 수 있는 상황을 진두지휘해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감성적인 선장의 캐릭터가 되어 힘겹게 노를 젓는 동료들에게 주변 풍광을 보고 느껴보라는 말랑말랑한 멘트들을 늘어놓은 것. 그의 이런 이야기들은 동료들이 보이는 생고생과 대조를 이루며 웃음을 만들었다. 

박명수는 그 캐릭터 그대로 호통을 치고 짜증을 내다가 유재석의 면박을 듣는 상황으로 웃음의 합을 만들었고, 하하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집에서 뗏목이 보일 수 있다며 전화를 걸어 아내와 통화를 하고, 너무 힘들다며 주변에 사시는 분에게 “초콜릿 좀 갔다 달라”고 구걸을 해 웃음을 주었다. 양세형은 마치 VJ처럼 고생하는 동료들의 영상을 따는 모습을 보여줬고, 정준하는 뗏목의 균형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한 구석에 붙박여 노만 저으면서 “내가 노예냐”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뗏목 위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인 인물은 게스트로 왔지만 거의 반 고정이 되어버린 조세호였다. 양복 입고 노를 젓는 모습도 그랬지만, <무한도전>이니 그런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하면서도 너무 힘든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프로불참러’에서 보여줬던 그 억울한 표정만으로도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뭐든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대답 자판기’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파업으로 결방되는 그 시간을 통해 <무한도전>은 적지 않은 위기상황들을 맞이한 바 있다. 지난 회에 <무한도전>이 스스로 내보였던 것처럼 박명수와 정준하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고 결방하는 동안 시청률도 빠져버렸다. 뗏목 하나에 의지해 한강 종주에 나선 출연자들의 도전이 마치 지금의 <무한도전>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 무모해 보이는 도전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건 <무한도전>의 초심과 저력이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캐릭터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무엇보다 초심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들이 엿보였다. 물론 그 도전을 실패로 끝났지만 본래 <무한도전>은 항상 그 실패를 통해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들이 오히려 이 리얼리티 시대에 더 빛나 보이는 건 어쩌면 그런 무모한 도전일 수도.(사진:MBC)

‘기억의 밤’, 아픈 기억은 어째서 밤을 필요로 하는가

영화 <동주>에서 감옥에 수감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점점 파리해져가는 강하늘의 그 초점없는 눈빛이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관객이라면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영화 <기억의 밤>은 바로 그런 강하늘의 얼굴이 가진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게다. 밝고 맑은 청년 같은 얼굴로 시작하지만 저 뒤편으로 가면 ‘절실함’에 몸부림치다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그의 얼굴 속에 한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느낄 수 있을 테니.

<기억의 밤>은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동시에 공포물이 갖는 충격 요법이 적절히 배치된 작품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기 어렵고, 또 벌어진 일이 실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주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워낙 반전의 반전이 많은 작품이라 어떤 언급조차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기억의 밤>은 어느 날 낯설게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동생 진석(강하늘)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집으로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하면서 밤마다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추적해 가는 진석은 그가 본 것들이 실제인지 아니면 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자신의 환상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가림막이 주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그러나 영화가 중반 정도를 지나면서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공포물이 아닌 스릴러의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소름 돋는 반전이 관객의 예측을 깨버리면서 이야기는 과거 우리가 겪어냈던 시대의 아픔을 기억으로 소환해낸다. 진석의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던 영화가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어간다는 건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 장르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전하려는 주제의식이 분명하다는 걸 말해준다. 

밤에만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기억이 실제인지 아니면 환상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일들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기억의 밤>인가를 말해준다. 그것은 진짜 기억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밤이라는 영화의 실제 상황을 지시적으로 말해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아픈 기억이 어째서 망각이라는 밤이 필요한가를 얘기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최근 2,30년 동안 꽤 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어왔다. 다리가 붕괴되고 건물이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해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고 지하철 화재와 배의 침몰로 무고한 생명들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바 안전 불감증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건들이 가진 충격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그건 진짜 우리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너무나 고통스런 기억들이어서 마치 없는 일처럼 치부하고,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 여기려는 안간힘에서 생겨난 ‘증상’은 아니었을까. 기억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밤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밤>이라는 제목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이 증상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로 강하늘은 그 변화해가는 얼굴 속에 우리 사회가 겪은 그 상처의 면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기를 보인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반전의 쾌감이 주는 재미가 그저 장르적 재미로 휘발되지 않고 어떤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하늘의 얼굴에 담긴 시대의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얼굴 속에 우리네 현대사의 상처들이 어른거린다.(사진출처:영화<기억의 밤>)

‘알쓸신잡2’, 잡학이어서 가능한 지식의 융복합

제주도 2편으로 방영된 tvN <알쓸신잡2>에서 정방폭포를 갔다 온 장동선 박사는 그 곳의 지명이 왜 ‘서귀포’라 명명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저 ‘진시황의 불로초 원정대’를 이끌고 온 서복이 이 곳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서귀포’라 불렸다는 설. 그런데 이야기는 불로초가 상기시키는 ‘영생’에 대한 문제로 옮겨간다. 황교익과 유시민이 유한한 삶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영생’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 말한 반면, 장동선 박사와 유현준 교수는 그러한 욕망이 우리를 진보하게 만들어 준다는 다른 의견을 낸다. 

결국은 사멸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장동선 박사는 정방폭포의 그 추락과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 이야기를 덧붙인다. 우리의 몸이든 자연이든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그 변화를 보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생은 ‘제한과 선택이 없는 삶’으로서 ‘인간적’이지 않고 또 “지루해서 자살자가 많아질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유현준 교수는 인간이 영생의 욕망을 꿈꾸기 때문에 집을 지고 건축물을 남기려 한다고 말했고, 장동선 박사는 ‘제한과 선택이 없는 삶’이 주는 지루함을 뇌 과학의 입장에서 도파민의 생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사실 수다라는 것이 본래 그러하듯이 이야기는 본래 시작했던 곳에서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래서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알쓸신잡>의 이런 수다가 그리 큰 이물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이런 중구난방의 잡학처럼 흘러가는 이야기를 한 사람의 강연에서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어쩌면 하나의 체계가 없다는 식으로 질타를 받거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알 수 없어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다르다. 아예 대놓고 예능의 틀을 가져왔고,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수다로서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구 풀어놓는 걸 방법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가 오히려 재밌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가 제주도에 가서 보곤 했던 정방폭포의 이야기가 서복 원정대와 진시황, 불로초, 영생, 엔트로피 이야기를 거쳐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들이 흥미진진해진다. 앞과 뒤를 이어보면 정방폭포 이야기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 이야기까지 풀어낸 것이니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알쓸신잡>은 애초에 ‘잡학’이라고 프로그램의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잡학은 이런 저런 학문 분야들을 한데 쏟아놓는다는 의미일 게다. 그런데 바로 이런 규정 덕분에 <알쓸신잡>은 알게 모르게 지식의 ‘융복합’과 ‘퓨전’이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게 되었다.

이런 일은 여기 출연하는 출연자들의 변화를 통해서도 읽힌다. 유시민 작가는 본래 텍스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여행지에서 항상 글을 챙겨 읽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추사관을 다녀와 그 건물이 그 유명한 세한도의 풍경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새삼 건물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건축을 말하는 유현준 교수의 영향일 게다. 반면 유현준 교수 역시 다빈치 박물관에 가서는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설명하는 글들을 읽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 역시 유시민이 말하는 텍스트의 중요함을 그도 알게 됐기 때문일 게다. 

해부학자이자 과학자, 예술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역시 금석학의 대가인 과학자이자 문인이고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했던 융복합의 대가들이었다. 그 때는 몇몇 천재들이 홀로 그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겠지만, 지금은 보통의 범인들도 저마다의 분야를 가져와 대화를 통해 그 융복합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알쓸신잡>은 그 예능이 가진 열린 틀거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융복합이 얼마나 놀라운 지식의 확장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사진출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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