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코리아>, 진정성은 꾸준함에서 생겨나는 법

 

tvN <SNL코리아>는 간만에 시국을 담은 풍자를 내놨다. ‘예능청문회는 타이틀 그대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를 패러디했다. 물론 청문회에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김경진 의원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이완영 의원처럼 수준 이하의 질문으로 청문회를 맹탕이라 질타받게 만든 인물들도 많았다. ‘예능청문회는 그런 점들을 예능식으로 끄집어내 풍자했다.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에게 제가 미우시겠어요?”라고 질문했던 장면도 고스란히 패러디됐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이번 <SNL코리아>가 보여준 시국 풍자에서 주목받을 만한 코너는 겨울왕국이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 여왕이 되는 엘사를 박근혜 대통령에 그리고 그녀의 연설문 쓰는 걸 도와주는 동생 안나를 최순실로 그려냈다. 세상과의 소통을 닫고 얼음성에 들어가 머리를 다듬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과, 비아그라를 배달하다 들키자 키가 작아서 책상에만 올라가도 고산병이 걸린다고 둘러대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피날레는 백성들이 들고 온 촛불에 얼음성이 녹아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마치 다음편이 계속 이어질 것처럼 끝난 이 코너는 과거 신랄한 정치풍자를 하다 사라진 여의도 텔레토비시리즈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간만에 시국 풍자로 돌아왔지만 <SNL코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 받지 못했다. 거기에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불거진 논란들이 남긴 불편함이 여전히 이 프로그램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B1A4의 성추행 논란에 이어 정이랑의 엄앵란 성대모사를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유방암 환우 비하 논란은 <SNL코리아>가 가진 적어도 웃음을 추구한다는 그 진정성을 무너뜨려버렸다.

 

다소 거칠고 다소 선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들도 <SNL코리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그나마 웃음이 코미디의 본분이라는 걸 수행해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논란은 그 웃음이 다름 아닌 웃기기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될 것까지 하는 무개념으로 드러나게 했다. 물론 그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실수일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무의도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아예 성 의식이나 어떤 문제의식 같은 것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시국 풍자 코너들 역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 그건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때 패러디를 선보였던 <SNL코리아>가 그 후로는 아예 시국 관련 코너를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가 이런 논란에 휩싸이면서 다시 풍자 코너를 넣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침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 시국 풍자를 다시 넣은 것처럼 보이게 된 건 프로그램이 너무 기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낳았다.

 

<SNL코리아>는 오는 24일 가수 황치열을 마지막 호스트로 시즌8을 마무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제작진측은 시청자분들의 날카로운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응원과 격려를 거름삼아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서는 시즌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돌아오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다만 시청자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모습에서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그 꾸준함은 다름 아닌 진정성에서 나온다. 일시적으로 시류에 맞춰 어떤 모습을 꾸미기보다는 웃음을 주더라도 진지한 자세를 계속 이어가는 것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도깨비>, 희비극을 공유한 매력적인 캐릭터들

 

정말 제목처럼 도깨비 같은시청률이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의 시청률이 무려 12.471%(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았다. 첫 회 6.322%에서 단 3회만에 두 배로 치솟은 이 시청률은 아마도 케이블 사상 기록적인 수치일 게다. 이 수치는 <도깨비>에 대한 입소문과 열광적인 반응이 폭발적인 수준이라는 걸 말해준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어찌 보면 황당한 판타지다. 고려시대에 전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전장에서 전공을 쌓았던 무장이 왕의 질투를 사 가슴에 칼이 박히고, 들판에 버려지지만 그를 따르는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 부활하지만 그건 축복이자 저주. 영원히 죽지 못하고 그 아픈 기억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이 도깨비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을 빼내줄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 이 영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의 간절한 기도 앞에 그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기도 하는 도깨비는 죽어야할 운명이었던 지은탁(김고은)을 살게 해주고 그 과정에서 그를 거둬가야 할 저승사자(이동욱)와도 인연이 얽힌다. 도깨비의 집에 저승사자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고, 도깨비는 도깨비신부라 여겨지는 지은탁과 얽히고, 저승사자는 삼신할매의 주선으로 써니(유인나)와 얽힌다. 도깨비와 저승사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멜로와 브로맨스라니.

 

그런데 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에 볼수록 빠져든다.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가 진중한 느낌마저 준다. 그건 이 판타지의 비현실이 현실의 아픔과 슬픔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캐릭터를 보라. 그는 불사의 존재지만 가슴에 자신의 검이 박혀져 있다. 즉 불사라는 능력은 어쩌면 그 가슴에 검이 박혀 있다는 고통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건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 그를 사랑하는 도깨비신부가 나타나 가슴의 검을 뽑아 주어야 그 저주가 끝나지만, 그건 또한 그의 영원한 죽음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희비극이 이처럼 캐릭터 하나에 온전히 얹어져 있기 때문에 이 캐릭터는 비현실적 판타지라고 해도 현실감을 준다. 즉 아픔이나 고통, 상처 같은 인간적 감각들이 신적 캐릭터에게서도 비춰지는 것.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희비극을 공유한 캐릭터들이다.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떤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저승사자의 면면을 보라. 이 캐릭터는 써니를 마주하는 순간 느닷없이 눈물을 흘린다. 저승사자의 눈물이라니. 그리고 써니가 손을 내밀고 다가오려 하자 그 손을 피한다. 혹여나 그녀에게 죽음의 기운이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내미는 손을 피해야 하는 존재. 저승사자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과는 상반되는 비극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스스로를 도깨비신부라 부르는 지은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들을 보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건 능력이 아니라 그녀를 특이한 사람으로 만들어 왕따 시키는 저주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저주는 아무 것도 아닌 더 큰 고통을 신탁으로 받고 있다. 그것은 점점 사랑하게 되는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검을 스스로 뽑아내야 하는 고통이다. 그것이 그의 저주를 풀어주는 것이지만 자신은 사랑을 잃게 되는 일.

 

이 희비극을 공유한 캐릭터들은 그래서 그 운명으로만 보면 엄청난 비극의 무게감을 갖지만 <도깨비>는 그 비극 속에서도 희극적 상황들을 연출한다. 부모가 죽고 이모집에 얹혀살며 신데렐라처럼 구박받는 삶을 살아가는 지은탁은 도깨비의 보호를 받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와 촛불로 도깨비를 부른다는 설정이 오징어를 굽다 불이 붙어 그걸 끄자 나타나는 도깨비의 에피소드로 그려질 때 그 기도와 촛불의 절절함은 슬쩍 희극 속에 감춰진다.

 

무슨 과거의 인연인지 알 수 없으나 삼신할매가 내놓은 반지를 집으려는 순간 나타난 써니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저승사자의 그 장면은 어떤 슬픔이 깃들지만, 그 순간 써니가 던지는 반지 하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냐는 말 한 마디는 그 슬픔을 희극으로 감춰준다. 마법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며 진중하게 말하는 도깨비에게 지은탁은 그런데 왜 말투가 사극 톤이에요?”라고 묻는 것처럼 드라마는 판타지를 현실과 버무린다. 드라마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런 희극적인 순간순간의 반짝임들이 있어 <도깨비>는 결코 그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는다.

 

좋은 캐릭터들은 배우들의 좋은 면들을 끄집어낸다. <부산행>에 이어 <밀정>으로 조금씩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공유는 <도깨비>로 과거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 제대로 된 캐릭터를 만난 느낌이다. 비극적인 신의 모습이면서도 때론 너무나 지질한 모습까지 담겨진 인간적인 캐릭터는 공유라는 배우의 조각 같은 면과 털털한 면을 모두 포착해낸다. 이동욱의 차가우면서도 쓸쓸한 이미지는 저승사자란 캐릭터와 만나 독특한 매력으로 피어나고, 유인나는 그 당찬 이미지 그대로 멋진 언니캐릭터로 거듭난다. 평범해 보이지만 소녀 감성이 묻어나는 김고은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건 이 희비극을 담은 캐릭터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캐릭터 속에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삶이란 희비극이다. 살아가는 건 즐거운 일일 수 있지만 또한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죽음은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또한 영겁의 고통스런 삶을 상정해보면 오히려 행복일 수 있다. 결국 그래서 의미는 그 순간에 남는다. 삶의 희비극 속에서도 마법처럼 다가오는 어느 짧은 순간이 주는 의미. 그래서 쓸쓸하고도 찬란할 수밖에 없는.

말의 시대, <말하는대로>가 그리는 세상

 

“5%면 내려와!” JTBC <말하는대로>에서 유병재는 그렇게 외쳤다. 그건 등산을 하던 매니저에게 휴대폰 배터리가 5%밖에 안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했다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모두가 안다. 유병재가 이 이야기를 통해 에둘러 하려던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또 유병재는 조카가 보고 있다는 <명탐정 코난> 이야기를 하면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대역을 써 추리를하고 누가 조종을하며, “또 의사인지 박사인지가 물건을 공짜로 준다고 코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어린애가 아닌데 약인지 주사를 맞고 어려졌다며 조카보고 너 이거 보면 안 되겠다고 얘기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 이야기도 그가 현 시국을 담아내서 던지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유병재에 이어서 버스킹 무대에 오른 조승연은 그리스의 파라곤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기는 것만 아니라 멋진 패배가 중요하다는 것. 싸움의 진짜 목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견주어보고 견제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쩌다 경쟁사회이고 승자만이 독식하는 사회를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또 조승연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주나라의 여라는 왕이 무당을 고용해 반대자들을 잡아 사형시키자 충직한 신하였던 호라는 사람이 진짜 뛰어난 임금은 오히려 자기를 비판하는 풍자가들의 말을 모으러 다닌다고 했다는 고사를 인용했다. “귀를 막고 나라를 운영한다면 결국 그건 임금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모로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고언이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이 이처럼 시국 버스킹을 애초부터 기획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길거리 버스킹과 강연을 엮어서 시민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려던 것이 이 프로그램의 애초 기획이었던 것. 하지만 <말하는대로>는 최근 시국 버스킹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이 날 <말하는대로>에 나온 전직형사 김복준은 버스킹을 마치고 내려온 유병재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병재씨가 하는 그 내용들이요. 위험하다고 느끼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은 거에요.” 그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면서 만약 문제가 된다면 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방어막 쳐드리겠습니다.”라고도 했다.

 

유병재는 지난 번 시국 버스킹의 사이다 발언으로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것에 대해 묻는 시민에게 요즘 같은 시국이 자신에게는 모든 게 좋은 (코미디의) 소재라며, 그렇지만 이런 주제로 안 하는 세상이 오는 게 제일 좋다고 밝혔다. <말하는대로>가 시국을 버스킹에 담아내며 주목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지향점은 좋은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말의 시대. 그동안 억눌려져 밖으로 드러나지 않던 말들이 터져 나오고 있고 그 많은 말들은 어찌 보면 혼돈처럼도 느껴지지만 조승연이 그리스 역사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듯 이기려는 말싸움이 아니라 견제의 의미로서 말들이 풍성해지는 건 좋은 사회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적어도 할 말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 또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말하는대로>가 꿈꾸고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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