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끔 다락방에서 꺼내온 아코디언을 연주하셨다. 아코디언하면 어딘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에 나오는 음악 같은 걸 떠올리겠지만, 아버지가 연주하는 곡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트로트, 이른바 뽕짝이었다. 쿵짝 쿵짜작 하며 이어지는 아코디언의 반주는 기막히게 뽕짝에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그 연주에 맞춰 '목포의 눈물'이나 '동백아가씨' 같은 곡을 잘도 부르셨다. 아버지가 연주할 때 어머니는 다소곳이 앉아 그 노래를 감상하시곤 했다. 마치 팬이라도 되는 듯이.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왠지 '동백아가씨'를 떠올리곤 한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일로 지새우시던 어머니는 어쩌면 아버지의 노래 한 자락에 피로를 푸셨을 지도.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끼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아버지의 아코디언 연주 때문인지, 나도 중학교 시절부터 통기타를 끼고 살았다. 누나가 가끔 집에서 하는 음악 동아리 모임을 귀동냥으로 들어가며 노래를 배웠고, 그 음악동아리에서 일일찻집을 할 때는 누나와 무대에도 올랐다. 목청이 꽤 좋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내 노래에 박수를 쳐주고 앵콜을 불러 주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공감의 기억은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호주에 1년 정도 유학을 갔을 때 외로웠던 나는 무작정 통기타를 하나 구입해 노래를 불렀다. 외국친구들이 생겼고, 우리는 다 같이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부르며 하나가 되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또 통기타를 들고 다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음악이란 본래 그렇게 누군가 부르고 누군가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다. 1등이 되기 위해 지나치게 경쟁적인 모습을 볼 때면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는 시골에 찾아온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자랑처럼 얘기하시는 걸 보면 그 경험이 못내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음악이 진짜 감동을 주는 건 잘 불러서가 아니라, 그 속에 마음이 담겨서이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을 때 그 먼 곳을 찾아오신 어머니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정말 인가가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을 차를 몰고 달려가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세트테이프의 노래를 따라하시다가 나중에는 카스테레오를 꺼버리고 무반주로 트로트를 부르셨다. 그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깔깔 웃으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동백아가씨'를 부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지셨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아마도 그 노래가 주는 정조가 한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자신이 아들과 함께 이 이역만리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기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홍수처럼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하루에서 수십 곡의 노래를 듣지만, 그 때 어머니가 불렀던 '동백아가씨'만한 감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여배우, 그 비결

'여인의 향기'(사진출처:SBS)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나. 여배우들은 여성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예쁜 척 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비호감이 되기 일쑤고, 그렇다고 공감 없는 캐릭터에 마구 망가지기만 하다보면 이미지만 망치기도 한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처럼 여배우의 상대역으로 멋진 남자가 등장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것은 훨씬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아랑곳없이 꾸준히 여성들에게도 사랑받는 여배우들이 있다. 공효진, 최강희, 김선아 같은 여배우가 그들이다. 도대체 이들의 비결은 뭘까.

먼저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작품 선정이 좋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도 드라마는 캐릭터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캐릭터가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여배우들의 필수다. 공효진은 '파스타'의 서유경에 이어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 같은 당차고 귀여우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최강희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나, '째째한 로맨스'의 다림 역할은 물론이고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에 이르기까지 어딘지 엉뚱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부터 보여준 털털한 캐릭터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여인의 향기'의 연재 역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이들의 작품 선정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이들이 갖고 있는 연기자로서의 결이 이렇게 여성들에게도 사랑받는 캐릭터의 캐스팅으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이 정도 연기자들의 색깔이라면 아예 작품을 구상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염두에 두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진 어떤 점들이 여성들도 사랑할만한 캐릭터를 연기할 연기자로 이들을 선택하게 하는 것일까.

그 첫 번째는 외모가 아니라 매력이다. 엄밀하게 말해 공효진, 최강희, 김선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여신급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공효진의 매력은 '공블리'로 불리는 것처럼 보면 볼수록 자꾸만 빠져드는 그 사랑스러움에 있다. 최강희는 '4차원'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 엉뚱함에 매력이 있고, 김선아는 절대 예쁜 척과는 거리가 먼 리얼함과 솔직함에 그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 매력이 작품 속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탄탄히 받쳐주는 연기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효진은 그 누구보다 몰입이 좋은 배우로서 그녀를 바라보는 여성들도 빠져들게 만들고, 최강희는 어떠한 캐릭터도 자신의 중성적인 매력 속으로 끌어안는 장점을 가진 배우다. 한편 김선아는 망가짐이 자연스러운(?) 배우로 그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웃음 뒤에 찡한 페이소스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들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가 여타의 작품들보다 주목받는 것은 그들이 가진 이러한 매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거기 만나는 남과 여가 핵심일 수밖에 없는 장르이고, 그 중에서도 여성 캐릭터는 그 작품의 주제와 거의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효진과 최강희, 김선아는 망가지는 것을 피하지 않는 연기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 장르에 걸맞는 충분한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그 현실감을 잊지 않는 연기력으로 진지함을 유지하는 여배우들이다. 결국 여성들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배우들이란, 단순히 여성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매력을 이들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강호동 후폭풍, 예견된 결과인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강호동이 '1박2일'을 하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금 갑자기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강호동은 제작진에게 하차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이승기가 일본 진출을 앞두고 프로그램 하차설이 나오면서 유야무야되어버렸지만 강호동의 '1박2일' 하차 의지는 이미 뚜렷했다고 보여진다.

후폭풍은 너무나 크다. KBS 예능국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그럴만한 것이 KBS 예능의 핵심인 주말 예능에서 그것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해피선데이'의 맏형 프로그램인 '1박2일'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강호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빠져나간다면 이것은 '1박2일'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서 나아가 주말 예능, 아니 KBS 예능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강호동 하차의사가 가져온 후폭풍은 현재의 방송사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몇몇 스타급 MC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사실 한 명의 MC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방송사 전체가 비상이 걸리는 상황은, 과거 방송사가 소속 연예인들을 데리고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 예능계의 강호동이나 유재석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해도 이렇게 몇몇 유명 MC들에게 의존하는 형태는 방송은 물론이고 당사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강호동이 하차 이유로 밝힌 것은 '정상에 있을 때 떠나고 싶다'는 것이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무려 5년여 간을 계속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복불복에 미션 수행을 해온 그 역시 아무리 천하장사 출신이라도 체력적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은 '1박2일' 이외에도 '무릎팍도사', '스타킹', '강심장' 등 각 방송사의 대표급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좋은 방송을 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항간에는 종편행 이야기가 나온다.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이미 상당히 많은 예능 고수 PD들이 종편행을 결정했고, 초반 경쟁력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종편이나 CJ 같은 곳에서는 좀 더 획기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런칭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오래도록 고정된 포맷에 머물러 있는 것(게다가 지금 예능은 또 변화의 시기에 서 있지 않은가)은 늘 프론티어를 고집하는 강호동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상파 3사에만 계속 머무르는 것은 이미 종편으로 달라지고 있는 방송 생태계에서 강호동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

즉 강호동의 의견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갑자기 돌발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 이미 누차 의사를 전달해왔기 때문에 절차적으로도 잘못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강호동의 하차 의사 하나가 방송사 전체를 비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이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그램 포맷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강호동, 유재석 같은 MC 의존도가 지나친 방송사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들 이외의 개그맨이나 예능인들의 발굴이 되지 않는 불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강호동, 유재석이 빠지면 앞으로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할 것인가. 이것은 강호동, 유재석 같은 유명 MC들 당사자들에게도 부담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강호동의 하차의사 전달이 가져온 후폭풍은 이미 방송사들이 그들에게 집착할 때부터 예견됐던 것들이다. 몇몇 스타 MC들에 집중되는 현재와 같은 방송 환경은 어쩌면 승자독식구조가 가져오는 폐해를 그대로 방송계에 반복할 수 있다. 스타 MC들은 모든 걸 가져가지만 바로 그 과중함 때문에 오히려 제 가치를 떨어뜨리고, 그 그림자에 가려진 예능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기회를 잃게 되며, 방송 프로그램은 이들 몇몇 스타 MC들의 성향에 따라 비슷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상황.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강호동 후폭풍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고질적으로 스며있는 방송가의 시스템일 것이다.


'1박2일' 위력 실감한 엉또폭포 인기

엉또폭포가 이렇게 유명한 폭포였나. 아마도 제주도를 찾는 이들은 누구나 천지연폭포나 정방폭포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폭포의 이름 속에 엉또폭포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1박2일'의 영향이다. 지난 주에 이어 2주간에 걸쳐 방영된 폭포특집에서 그 첫 번째 목적지로 보여준 엉또폭포. 이승기가 은지원과 엄태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일 먼저 깃발을 뽑았던 그 곳. 하지만 비가 내려야만 볼 수 있기에, 조금은 이승기를 쓸쓸하게 만들었던 그 폭포. 그런데 그 폭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박2일'의 위력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엉또폭포로 몰려든 이유는 세 가지다. 그 하나는 이 폭포가 비가 온 연후에나 그 '귀한(?)' 모습을 보여주는 폭포라는 점이고, 둘째는 그 사실이 '1박2일'이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방영되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바로 전날까지 태풍 무이파가 제주도 서귀포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밤새 제주도를 뒤흔든 태풍 무이파의 공포는 여전히 길가에 흩어진 나뭇가지들과 간간히 통째로 쓰러져버린 야자나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아마도 방안에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관광객들에게는 지금이 '1박2일'이 보여준 엉또폭포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던 모양이다.

엉또폭포는 그렇게 규모가 큰 폭포가 아니다. 그저 자그마한 오솔길을 지나다 보면 거기 그다지 크지 않은 절벽이 놓여져 있고 거기서 비가 올 때를 맞춰 폭포가 쏟아진다. 이번 무이파 같은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제법 많은 폭포수가 내려서 그 밑이 계곡처럼 바뀌기도 한다. 올레길과도 연결되어 있는 이 엉또폭포를 찾는 관광객들은 운이 좋으면 폭포도 보고 갑자기 생겨난 계곡물에 발도 담글 수 있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것은 분명 '1박2일'의 영향이다. 폭포를 오르는 이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한 번씩은 '1박2일'이 언급된다. 엉또폭포는 아마도 이로써 또 하나의 제주의 명물로 자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박2일'이 실제 여행지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엔딩 때마다 외치는 "○○로 놀러오세요!"라는 말은 거의 마법과 같다. 오지마저 사람들의 발길을 닿게 만드는 그 힘은 '1박2일'이 지나기 전과 후의 풍경으로 그 장소를 바꾸어놓는다. 제주도의 올레길은 여행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곳이고, 그 고적하게 걷는 길의 운치를 뽐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1박2일'이 올레길을 소개한 후 지금은 줄줄이 걸어가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올레길 주변으로 식당과 쉼터 같은 상권도 형성되고 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이만한 효과도 없는 셈이다.

이것은 지리산 둘레길도 마찬가지다. '1박2일'이 둘레길을 소개한 후 그 곳 역시 연일 몰려드는 인파로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태풍 속에서도 엉또폭포를 기억해내고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니 방송이 실제 관광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역경제를 위해서 '1박2일'의 공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나, 이것으로 인해 오히려 여행지에서 그 풍광을 즐기기보다는 몰려드는 인파에 몸살을 앓게 되는 건 아이러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숨겨진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그 지역의 아름다움을 좀 더 오래 보존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관광지에서 우연히 태풍을 만나 고립되어 있다가 그 속에서 발견한 엉또폭포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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