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1박2일'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진심의 힘

링 바깥에서 극도의 긴장감에 연실 토하면서도 링 위에서 애써 건재함을 보이려한 정형돈. 통증으로 경기 1시간 전에 응급실에 누워 있었지만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링 위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 정준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했던 기술을 고통스럽지만 한 번 더 하라고 말하는 하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완벽한 악역을 소화해내는 길. 부족한 기술이지만 특유의 쇼맨십으로 장내를 장악해버린 박명수와 노홍철. 리더로서 팀원들을 독려하고 걱정하며 늘 솔선수범하는 유재석과 손스타. 이들이 살과 살의 부딪침으로 연출해낸 '무한도전 WM7'은 그저 '리얼'이라는 수식어로는 담아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정형돈이 괴로워할 때, 저 링 위에서 싸이가 부르던 '연예인'이라는 노래의 가사,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줄게요"가 오버랩될 때 느껴지던 그 진심.

바로 이 진심은 '남자의 자격'에서 각양각색의 합창단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박칼린의 눈빛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자애로운 눈빛으로 단원들을 독려하고 때론 엄하게 꾸짖으며 단원 한 명 한 명을 마치 악기 조율하듯 섬세하게 매만지는 그녀의 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모니'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다. '남자의 자격-남자와 하모니'편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합창이라는 소재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합창단에 합류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 하나의 음악 속에서 완벽한 하나가 되는 그 기적 같은 경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농담 속에서도 늘 진지함을 잃지 않는 박칼린과, 그녀의 지휘에 따라 합창단 전체의 마음이 노래 속에서 하나가 되는 그 과정을 어찌 '리얼'이라는 단어로 다 말할 수 있을까.

'1박2일'의 멤버들이 다섯 코스로 나뉘어 둘레길을 따라 걷는 그 여정에서도 우리는 곳곳에 묻어나는 진심을 읽을 수 있다. 강호동과 은지원이 길 위에서 만난 혼자 길을 걷는 청년에게서도, 그들이 민박집에서 만난 가족들에게서도, 또 늦은 시간에도 한상 떡 차려 내어주시는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에게서도 그 따뜻한 진심이 묻어난다. 이승기가 한 정자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은 물론이고, MC몽에게 참치캔을 내어주던 청년들, '1박2일' 팬이라며 이수근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주시던 이장님까지, 이 조미료 쏙 뺀 다큐 예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길 위에서 팀원들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모습은 '1박2일'이 본연의 여행이라는 취지의 버라이어티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어두운 밤길에 여전히 자신을 알아볼까 저어하는 김종민에게 지나치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행인들의 그 마음은, '다큐'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것처럼 리얼 그 이상의 따뜻함을 담아낸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그래서 이 진심까지 잡아내고 그 마음을 전해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 되었다. 버라이어티쇼는 이제 재미는 기본이고 교감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어떤 말보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것으로 정직하게 그 마음을 전하는 '무한도전'이나, 합창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이 하나로 묶여지는 기적 같은 경험을 전해주는 '남자의 자격', 그리고 길 위에서 그 길을 걷지 않았던들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중한 만남의 따뜻함을 전하는 '1박2일'이 모두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때 인위적인 웃음이었던 예능은 '리얼'로의 변신을 통해 마치 다큐 같은 실제상황을 끌어들였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 그 날것이 전해주는 신산한 진심까지 담아내고 있다. 웃음을 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경험은 이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해피투게더'와 '런닝맨' 논란이 말해주는 것

결국은 게임이 문제다. '해피투게더'는 지금껏 게스트 배려가 가장 돋보이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른바 '커플 게임' 하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게임은 전형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가져온 것들로 처음에는 이구동성 퀴즈 같은 소소한 것으로 시작하더니, 차츰 막대과자를 남녀가 양쪽에서 먹어 가장 적게 남기는 게임, 신문지를 점점 접어가면서 두 사람이 그 위에 서는 게임으로 강도를 높이더니 마지막에는 눈을 가린 사람이 자장면을 먹여주는 조금은 과도한 게임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이 게임의 주인공은 게스트가 아니라 게임에 참여한 박명수-박미선이었다. 지금껏 이런 균형을 잃은 과도함이 없었던 '해피투게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었다.

게스트를 위해 기꺼이 병풍이 되어줌으로써 게스트들의 자연스러운 토크를 유도하던 '해피투게더' 본연의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왜 이런 과도함으로 점철되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까. 이것은 때론 프로그램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게임이 가진 또다른 얼굴이다. 게임은 잘 활용되면 캐릭터도 만들어주고, 프로그램을 팽팽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너무 과도해지면 거기에 참가하는 이는 물론이고 보는 이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웃음은 게임의 강도가 적절했을 때 유발되지만, 어떤 선을 넘기면 고통으로 변질된다. 만일 넘어진 개그맨이 진짜 다리가 부러진다면 웃을 수 있을까. 웃자고 한 일이 과도해 '왜 이걸 하고 있지'하고 반문하게 된다면 과연 웃을 수 있을까.

게임이 문제인 것은 '런닝맨'에서도 불거져 나온 바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찾아가 아무도 없는 밤에 지형지물을 이용한 각종 게임을 수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지나치게 가학적인 게임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얼굴에 빨래집게를 집고 양측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게임은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생생히 느껴졌고,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 넣고 부러뜨리기 게임 역시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구호로 얼룩졌다. 주사위 수만큼 계란을 잔뜩 넣은 뜨거운 쌍화차를 누가 빨리 마시는가 하는 게임에서 유재석은 "용암을 마시는 것 같다"고 심정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게임 버라이어티를 추구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쏟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이 갖는 비중은 상당하다. '무한도전'이 어떤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차츰 진화해온 도전과제와 그 과정 중에 보여준 다양한 스토리들 때문이지만, 그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 있던 게임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1박2일'에서도 마찬가지다.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주제로 하지만, 재미 요소를 확실하게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복불복이었기 때문이다. 야외 취침이나 저녁 식사를 놓고 벌이는 복불복은 차츰 진화해서 팀원들과 제작진이 게임을 벌이는 복불복의 스펙터클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은 또한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1박2일'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가장 큰 이유는 본래 취지인 여행이 점점 드러나지 않고 지나치게 복불복에만 치중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1박2일'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복불복 게임을 잠시 접어두고 다섯 구간으로 나누어 지리산 둘레길을 각자 걷는 모습을 통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가 비판 받았던 점도 바로 게임이었다. 어떤 변화없이 밥 해먹고 게임하고 밥 해먹고 게임하는 그 매너리즘이 문제로 지적되었던 것.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은 맥락 없는 게임의 연속만으로는 대중들의 달라진 기호를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게임은 일종의 자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극만으로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점점 버라이어티쇼화 되어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제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추구해야 이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프로그램들이 내세운 취지에 맞는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 계속 도전을 하고, '1박2일'이 계속 여행의 설렘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해피투게더'가 비판받았던 것은 게임에 몰두하면서 그 본래 취지인 '함께 행복(해피투게더)'한 모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런닝맨'이 비판받는 것은 아무리 게임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그 안에 어떤 맥락 있는 이야기 구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구잡이식의 게임에 치중하기보다는 '다이하드'식의 액션 스토리를 부가하고 유르스 윌리스 같은 캐릭터를 끄집어내면서 차츰 스토리를 축적시키는 것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시작하는 순간, 본래 프로그램의 스토리는 그만큼 휘발되기 쉽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위기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다.

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 김탁구(윤시윤)는 천재적인 후각을 갖고 있다. 너무나 미세해 구분이 어려운 냄새도 구별해내고, 뭐든 한 번 맡은 빵 냄새는 잊지 않아 그 빵을 다시 재현내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 탁구가 맛보았던 팔봉 선생의 봉빵을 재현해내는 에피소드는 바로 이 김탁구의 남다른 후각에 기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감각도 아닌 후각일까. 그것은 음식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이 후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이 드라마에 미치는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오븐에서 빵을 꺼내면 제일 먼저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빵이다. 그리고 탁구가 거의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 빵의 냄새를 맡는 것. 그 냄새 맡는 얼굴이 흐뭇해지면 그 빵이 잘 되었다는 뜻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빵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은 언뜻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은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 장면은 단지 시각적인 자극에 머무는 드라마의 감각을 후각의 차원으로 넓혀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실제로 우리 자신이 경험했던 저마다의 달콤한 빵의 냄새를 기억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탁구의 어린 시절, 빵집 창문 너머로 입맛을 다시며 빵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아버지 구일중이 별채에서 만든 빵을 맛보며 즐거워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이들로부터 도망치던 탁구가 팔봉선생의 빵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은 그래서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장면들이 우리의 뇌리 속에 남긴 후각의 기억은 훗날 성장한 탁구가 팔봉빵집에서 일련의 과제를 통과해나가면서 만들어낸 빵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후각의 연결고리는 그 어떤 개연성보다 더 강력하게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탁구가 가진 천재적인 후각은 그것이 '김탁구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에도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 김탁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별다른 학업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능력은 특유의 선한 마음과 성실함이지만, 그것만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후각은 이 상황을 모두 바꾸어 놓는다. 해외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워온 마준(주원)과 탁구가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탁월한 후각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회사 경영에 뛰어든 탁구가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경영이 갖는 수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 수치의 실체인 빵을 직접 대하는 방식이다. 김탁구는 이사회에서 서류가 아닌 빵을 준비함으로써 그 실체가 지닌 진심으로 이사들의 신임을 얻는다.

드라마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여기에 후각을 부가시키는 이른바 음식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힘을 발휘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장금'은 물론이고, '식객' 같은 드라마의 성공 이면에는 음식이라는 보편적인 소재가 가진 힘과 더불어 그 음식이 환기시키는 감각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가 얽히고설킨 관계의 파토스를 그려내면서도 그토록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배경이자 아우라를 만들어낸 막걸리 도가가 풍겨내는 독특한 후각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제 빵 냄새를 맡으면 이 드라마가 떠올려지듯이, 드라마에서 감각이 갖는 힘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류로서의 우리네 음식이 어떻게 드라마와 맞닿을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김탁구가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건 그것이 환기하는 감각이 드라마에 특별한 힘을 부가시키기 때문이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중견들이 보여주는 존재감

"에라 이거나 먹어라!" 장난스럽게 대웅(이승기)의 행동을 따라하는 구미호(신민아)의 발길질에 금이 가버린 담벼락 저편으로 척 봐도 존재감 100%의 사내가 걸어온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바바리차림에 입에 문 성냥개비 그리고 한 밤중에 뜬금없는 선글라스를 낀 반두홍, 성동일이다. 잔뜩 폼을 잡고 걸어오는 것과는 상반되게 그는 지금 노상방뇨할 곳을 찾는 중. 금이 간 담벼락에 대고 방뇨를 하는데, 갑자기 무너지는 담벼락과 거기에 깜짝 놀라는 치킨집 아줌마, 그래도 멈추지 않는 오줌발을 멈추지 못하며 천연덕스럽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성동일에서 빵 터진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성동일은 반두홍이라는 액션스쿨을 운영하는 무술감독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반두홍이라는 이름은 국내 최고의 무술감독이자 연기자인 정두홍 감독에서 따온 것이다. 즉 '반만 정두홍'이라는 이 이름에 걸맞게 성동일은 '영웅본색' 주윤발에 빠져 있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많은 무술감독의 역할을 연기한다. 성이 반씨라서 뭐든 지칭에 있어서 '반만'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지는 반 감독 반두홍. 전형적인 드라마의 감초 역할이지만 '추노'에서 천지호라는 캐릭터를 최고의 '미친 존재감'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반두홍의 존재감 역시 만만찮은 힘을 보이고 있다.

반두홍의 역할이 중년의 로맨스라는 점에서 그 상대역인 차민숙을 연기하는 윤유선과의 궁합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차민숙이 방귀를 뀐 것을 대신 뒤집어 써주는 반두홍의 이야기가 전개된 엘리베이터에서의 첫 만남과, 얼음을 통째로 꿀꺽 삼켜 숨을 쉴 수 없는 차민숙을 반두홍이 거꾸로 들쳐 업고 얼음을 뱉게 한두 번째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만남이 예고한대로 이 커플의 로맨스는 웬만한 코미디를 능가하는 웃음을 전해준다. 영화가 나오면 소개를 해주겠다며 "시와 음과 사랑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하고 말하는 윤유선에게 성동일이 "쉬와 응가의 사랑이라.."하고 말하는 식이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어머니 역할로 능숙한 중견 연기자로서의 정극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 윤유선이 이처럼 한껏 망가지고 과장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에서는 성동일에 못지않은 윤유선의 미친 존재감이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이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이들 중견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미친 존재감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이것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신세대의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 속에서 또 다른 한 축으로서의 중년의 로맨스라는 자리를 만들어낸다. 때론 포복절도의 웃음을 주고 때론 어딘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그들의 사랑은 젊은 세대들마저 '미친 존재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중년의 사랑에 대한 상투를 지워버린다. 중견 연기자들이 드라마의 진지함을 맡지 않고 가벼움을 돋궈준다는 역발상도 참신하다. 무엇보다 자칫 젊은 층에게만 소구될 수 있는 드라마의 흐름에 중년층이 흡수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준 것은 간과하지 못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조연으로서 이런 커다란 존재감이 가능한 것은 모두 이 놀라운 중견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연기공력 때문이다. 한없이 가볍게 망가지면서도 어떤 무게감을 잃지 않는 성동일과 윤유선의 연기는 그래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구미호와 대웅이 만들어가는 젊은 세대의 사랑과 방황만큼, 이 시대 중년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병풍이 아닌 존재감을 여전히 과시하는 성동일과 윤유선에게서 어쩌면 중년들은 어떤 작은 위안을 느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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