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같은 '신데렐라 언니'의 사랑법

"옛날에 나 이집 떠날 때. 기차역에 왜 안 나왔어? 편지 못 받았어? 기차역으로 나와 달란 편지. 효선이한테 전하랬는데. 효선이가 혹시 안 전했었니? 응?" '신데렐라 언니'의 이 대사는 전형적이다. 이 부분만 들어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훈(천정명)의 질문에 대해 은조(문근영)가 "받았어"하고 말하는 장면은 그 전형성을 벗어난다. 사실 받지 못했고, 당시 그 편지 한 장이 은조에게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 은조의 독한 말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읽고 나서 찢어버렸는지 태워버렸는지도 생각 안나는 데, 내가 그걸 여태까지 기억해야 돼? 거지 같이 굴지 마. 누구한테 뭘 구걸하고 있는 거야. 나한테 옛날 일을 얻어가겠다고? 줄 거 없어. 나한테 옛날 일 같은 거 묻지 마. 그딴 거 없어. 없다고 했잖아." 이 말투는 그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말투다.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는 왜 이다지도 독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받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 걸까.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남자가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새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이다. 엄마가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그 남자. 그래서 엄마의 부채감까지 혼자 짊어진 은조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성도가의 일에만 몰두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심지어 그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 효선(서우)까지 돌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이 효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봐주려고 한다.

"편지 안 전했다는 거 그게 유치하다는 거지? 그럼 그 유치함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라는 게 그건 뭔데?" 효선의 추궁에 은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처음으로..."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떨군다. 이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편지 시퀀스는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은조가 "유치하고 끔찍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은 유치할 정도로 전형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섬뜩할 정도로 끔찍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있는 편지는 그깟 편지 한 장이 아니다. 늘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그 일이,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하며 살아온 은조에게는 끔찍한 결과였을 테니까. 유치함이 끔찍함이 되는 상황.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신데렐라 언니'가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조의 그 독함에서조차 마음이 끌리게 된다. 드라마가 그 독함 이면에 숨겨진 그녀의 가녀림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을 독하게 밀어내고,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기훈이 떠나자 다시 마음을 닫아 버린 은조.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깊은 부채감으로서 일의 세계에 몰두해온 은조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래서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그녀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준 이들은 모두 떠나버리게 된 것이니까.

유치함마저 끔찍함으로 바라보는 그 섬세한 시선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독한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그 독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 깊이 있는 시선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말투, 말 그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드라마가 인간에 대한 어떤 깊은 이해와 공감을 추구한다면, '신데렐라 언니'는 거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드라마일 것이다. 다가갈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세워진 은조의 가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른다.

예능 장기 결방이 남긴 후유증들

천안함 사태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한 달째 결방되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파업 중인 MBC를 제외하고 KBS나 SBS는 이번 주말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방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우리네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애도하는 마음을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과 연결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존재한다.

먼저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이 애도하는 마음 자체를 해칠 만큼 무의미하고 몰가치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 예능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웃음은 그 자체로 공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억압을 웃음이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 들어가는 풍자정신이나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은 갑갑한 세상에 작은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게다가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까지도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저마다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지로 내려가 태안 살리기에 동참하는 내용을 방영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은 국내의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고, 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오지를 조명해준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개그 콘서트'는 개그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풍자정신으로 사회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나 불경기에 힘겨워하는 서민들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저버리지 않고 있고, 때론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아예 공익을 내걸고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단비'는 국내외를 넘나드는 기부 프로그램이고, '우리 아버지'는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조명해주는 착한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이런 '의미 있는' 웃음을 전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이라는 그 잣대 하나로 모조로 결방시키는 것은, 웃음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를 너무 낮게 바라본 처사라고 볼 수 있다. 혹자들은 이런 비극적인 사태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웬 말이냐고 말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이 TV의 애도 분위기를 해치는 일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적인 애도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다. 웃음도 눈물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 문제다. 단적으로 말해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이 거의 5주째 결방된 반면, '승승장구'나 '강심장' 같은 토크쇼나 '우리 결혼했어요2'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에 대한 형평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예능은 안 된다고 하면서 코미디 영화로 대체한다거나, 로맨틱 코미디를 담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상황도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그 콘서트'는 안 되고 '7급 공무원'은 되는 상황, '동이'에서 심지어 왕이 깨방정을 떨며 웃음을 주고, '개인의 취향'에서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가 말 그대로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드라마나 (예능을 닮아있는) 교양프로그램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상황은 그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형평성 문제를 낳는다. 특히 '개그 콘서트' 같은 경우 몇 주 동안 결방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의 힘겨움은 현실 그 자체다. 또한 가수들 역시 음악 프로그램 자체가 방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활동할 무대가 사라져버렸다.

오랜 결방은 또한 프로그램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예능으로 분류되어 있는 시트콤의 경우, 매일 방영되던 것이 몇 주 동안 계속 결방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버렸다. 이것은 점점 더 스토리텔링화 되어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단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연속적인 스토리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박2일'은 봄을 맞아 전국투어를 시작했지만, 잦은 결방으로 그 시의성을 놓쳐가고 있다. 몇 주 결방된 후 방영된 '우리 결혼했어요2'에서는 2월에 찍은 영상이 방영되었다.

이런 기준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은 심지어 다양한 음모론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유독 오랫동안 결방되어 온 '개그 콘서트'의 경우, 그간 해왔던 풍자개그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심지어 MBC의 파업으로 인한 방송 프로그램의 결방을, 타 방송사들의 천안함 사태로 인한 결방으로 덮어버리려는 의도라고도 말한다. 나아가 장차 있을 선거에 맞춰 남북 관계의 긴장관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그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추측들을 양산한 것 역시 바로 그 형평성 없는 기준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런 국민적인 애도가 필요한 시점에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국민적인 여론과 그 여론을 읽는 제작자에 달려있다. 이 말은 해외의 사례들, 예를 들어 미국의 911 테러사건이 벌어졌을 때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방되었는가, 하는 그런 예시들은 우리의 상황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적으로 우리네 정서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을 제작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만일 이렇게 제작자들이 여론을 읽은 결과로서 예능이 결방을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예능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그다지도 의미 없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인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면 안되는 것인가.

드라마 속 캐릭터들,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다

'대장금'의 장금이(이영애)는 남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수많은 모함과 함정을 벗어나면서 최고의 수라간 상궁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그 모습은 당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동이'의 동이(한효주)가 장금이를 닮았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 많아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동이가 장금이처럼 최고 상궁이 되기 위한 강력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천비 출신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을 긍정하며 밝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보다는 현재의 행복 또 앞으로의 행복을 꿈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캐릭터들의 욕망은 과거 시대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랑과 야망'이 대표적이고, 가깝게는 '에덴의 동쪽'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과거 욕망의 시대의 '사랑과 야망'은 성공적이었지만 다시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에덴의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이른바 남성드라마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작품들.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캐릭터들을 내세운 이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가 가고,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탓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현재 방영되는 수목드라마들 속의 캐릭터들은 모두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문근영)는 물론 능력이 있고 대성도가를 크게 키우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성공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행복이다. 늘 욕망에 휘둘리며 속물근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그늘 아래서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성공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엄마와 대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성공이라는 과거적 가치에 포획되어 있는 엄마의 삶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김소연)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미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녀는 공주로 남아 있고 싶어 하지만, 그런 삶은 그녀의 사회적인 삶과 부딪친다. 검사로서의 삶은 공주로서는 해보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으로서의 여성적인 행복을 쥐고 있으면서도, 검사라는 사회적 직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검사 프린세스'는 모든 걸 다 가져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는 드라마고, 그 행복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개인의 취향'은 아예 이 성공이라는 가치 기준을 살짝 옆으로 밀어놓고 시작한다. 동성애로 오인된 전진호(이민호)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박개인(손예진)이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드라마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취향의 문제다. 동성애자라는 오인에도 불구하고 그 취향을 인정하고 나자, 박개인은 전진호가 가장 편안한 남자친구로 다가온다. 전진호는 남자로서 박개인에게 연애비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결국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는 이 이야기 역시 그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가족드라마들이 늘 다루기 마련인 혼사장애 속 신데렐라 이야기는 빠져있다. 이 집의 막내인 양초롱(남규리)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돈 자랑을 해대는 남자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같이 있어주는 것"조차 싫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동성애도 그 연장선으로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분상승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현실 속에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넘쳐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성공을 향한 욕망의 질주에 좀 지친 듯하다. 혹 어쩌면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에는 성공이 따르기도 하지만, 성공이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생은 아름다워’, 왜 제주도 펜션일까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공간은 제주도의 펜션이다. 물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매력적이지만, 제작을 염두에 두고 보면 제주도라는 공간은 난점이 더 많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촬영을 위해 제주도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모여서 촬영을 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바람이 많이 불고 기상도 수시로 변해 촬영이 지연되기 일쑤다. 혹 뜻밖의 상황을 맞이해 비행기라도 뜨지 않게 되면 편집이 늦어져 방송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제주도의 펜션일까.

물론 추정이지만, 아마도 제주도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은 가족 간의 갈등을 담아내고 있지만, 제목처럼 그 갈등조차 ‘아름답게’ 바라보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제주도라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배경으로서 중요할 수 있다. 그 속에 어떤 갈등이 있어도 결국 아름답게 안아주는 자연(제주도)은, 힘겨워도 아름답게 보이는 삶을, 미워도 사랑하는 일원으로 품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제주도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펜션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펜션이라는 공간을 가장 극적으로 그려내는 장소로 제주도만한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제 펜션으로 바뀐다. 왜 하필 펜션일까. 펜션이라는 공간은 김수현 드라마로서는 집의 변형이다. 집이 펜션으로 진화한 데는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집은 회사를 상정하면서,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분리시킨다. 가족들은 낮에 회사로 나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의 불란지 펜션은 다르다. 이 펜션은 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집이기도 하다. 사적 공간과 공적공간은 겹쳐진다.

일과 가정사가 겹쳐지는 이 공간에서 살림은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과거 집과 회사가 분리되었던 시절에, 살림은 엄마의 몫이었지만, 이 펜션이란 공간에서 살림은 그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아버지, 양병태(김영철)는 펜션 구석구석의 허드렛일을 처리하고, 아들 호섭(이상윤)은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스쿠버다이빙 같은 여행의 가이드 역할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 김민재(김해숙)의 식사를 돕거나 식후 설거지를 한다. 삼촌 양병걸(윤다훈)은 양병태를 도와 집안일에 참견하는데, 농장일이 주업이다. 한편 김민재는 부엌에서 가족들의 밥을 짓지만, 또한 자신의 일인 요리방송을 준비하기도 한다. 따라서 김민재의 부엌은 살림의 공간이면서 사회적인 일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펜션이라는 공간을 중심에 두고 그 안으로 들어와 있는 아버지와, 그 펜션의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밖으로 확장되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만큼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권위와 사회적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속에는 담겨있다. 집안 모든 대소사에 끼어들어 말참견을 하는 삼촌 양병걸은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다. 집안에 들어와 있는 남자들이 많아서인지, 한참 드라마를 보다보면 '남자들의 수다'가 도드라져 있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만큼 이 드라마의 심정은 어머니인 김민재보다는 아버지인 양병태에 더 집중되어 있다. '엄마가 뿔났다'의 아버지 버전 같은 느낌. 그 아버지가 뿔을 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할머니(김용림)의 공간이 펜션 한 편에 따로 지어져 있는 것 역시 독특하다. 게다가 이 할머니는 독립된 텃밭을 일구며 혼자 식사를 챙겨먹는다. 물론 감기라도 걸리면 온 집안 식구들이 총출동될 정도로 가족들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만, 아마도 할머니는 저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원하시는 것 같다. 이것이 따로 떨어져 옛 전통가옥으로 지어진 할머니의 공간으로 표징되어 있다. 할아버지(최정훈)는 집 없이(?) 밖으로 떠돌다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 오려한다. 할머니의 방에서 가구들이 밖으로 내어지고 그 방 가운데 차양막이 쳐진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동거가 시작되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그 방이라는 공간은 할머니의 조금씩 열려지는 마음(애정이라기보다는 인간애로서)을 그려낸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는 늘 그렇지만 부엌이란 공간은 이 드라마에서도 가족 간의 소통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김민재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위해 요리를 하고(반드시 가족들을 거둬 먹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 그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제주도, 그 제주도의 아름다운 펜션, 그리고 그 펜션의 열려진 공간으로서의 부엌. 그 곳에 아직 함께 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함께 하지만 불청객 소리를 듣는 딸 양지혜(우희진)의 가족, 자신의 비밀(동성애) 때문에 그 자리가 껄끄러운 양태섭(송창의), 밖에선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그 나이에 가족이 없는 양병준(김상중), 그 곳에서 늘 구박떼기처럼 당하면서도 특유의 재재거림으로 집안 대소사의 끈끈한 아교풀 역할을 하는 양병걸이 왁자한 삶을 그려간다.

가까이 다가가면 비극적인 면모도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제주도 펜션(펜션 같은 집은 누구나의 로망이 아닌가!) 속에서 그 삶은 진정 아름답게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원경에서 잡혀진 불란지 펜션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출발해, 그 속의 근경 속에 잡혀진 왁자하고 때론 비극적인 삶들을 그려내다가, 다시 그 아름다운 펜션의 원경으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면 이 공간은 어쩌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직접 그려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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