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 미드의 정서적 한계를 넘게 해준 실감나는 현실

KBS 수목드라마 <슈츠>는 어딘가 우리 정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건 아무래도 유명 미드 원작의 리메이크라는 데서 오는 한계일 게다. 사건들이 한 회에도 두세 개씩 등장해 중첩되고, 이를 동시에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진리’ 같은 걸 끄집어내는 <슈츠>는 확실히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서적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우리네 변호사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미국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이질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최강석(장동건)이다. 그의 대사를 들어보면 일상어투라기보다는 명언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말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그것이 뭐든 자신이 최고라고만 여기는 이 캐릭터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미드 원작이 갖는 정서적 한계점이 분명하지만, 최근 <슈츠>는 검찰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그 이질감이 저절로 극복되는 신기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최강석의 검사 시절, 사수였던 오병욱(전노민)의 비리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다. 그가 결정적인 증거들을 빼돌려 판결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최강석이 알게 된 것. 최강석은 그럼에도 감찰에 들어간 오병욱의 비리를 증언하지 않으려 했지만, 홍다함(채정안)은 당시 자신이 모아온 비리증거들을 내놓음으로써 오병욱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 전체가 최강석을 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아무리 비리를 저질렀지만 자신의 사수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강석 변호사와 사건으로 맞붙게 되는 검사들이 사력을 다해 그를 이기려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병욱이 과거 빼돌린 증거 때문에 감옥에서 이미 10년 넘게 복역한 이의 재심을 최강석이 맡게 되면서 검찰과의 갈등은 더 증폭되었다. 재심은 마치 검찰이 한 잘못을 인정하는 일처럼 여겨졌고, 그걸 당시는 검사였지만 지금은 변호사가 된 최강석이 맡았다는 것에 더 반발하게 된 것. 

의도적으로 선별된 에피소드이겠지만, ‘검찰과 맞서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최고의 몰입을 만들어낸 건 그 사안이 우리네 현실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지목되기 때문일 게다. 저 검찰 비리의 문제와 그 적폐 청산이라는 소재로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tvN <비밀의 숲>을 떠올려 보면 지금 <슈츠>가 담고 있는 이 에피소드가 어째서 미드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현재로부터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슈츠> 9회에 달린 소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해졌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검찰과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최강석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과연 이 팽팽해진 대결의 끝에서 최강석은 ‘새로운 결말’에 이를 수 있을까. <슈츠>가 미드 원작의 한계를 벗고 우리네 정서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사진:KBS)

‘미스 함무라비’, 우리가 보던 흔한 법정물과 다른 지점

억울한 피해자와 공분을 일으키는 가해자. 증거를 찾아 가해자를 검거하려는 검사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변호사. 혹은 공명정대한 사이다 판결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아니면 권력과 결탁해 약한 자들을 짓밟는 판사. 대체로 우리가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던 캐릭터들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부터 대놓고 법정물을 기대하게 하는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그 장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스 함무라비>는 이들 법정물들이 그려내는 그런 장르적 이야기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것이 그런 법정 사건들 자체가 가진 이야기성에만 기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이 드라마가 더 주목하는 건 그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미스 함무라비> 2회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다양한 사건들이 왜 더 자세히 등장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졌을 수 있다. 박차오름(고아라)이라는 열정적이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진 신입 판사가, 바로 그 개인의 열정 때문에 조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을 꽤 오래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차오름의 이런 순수한 열정과 전면적으로 부딪치는 인물은 바로 부장판사인 한세상(성동일)이다. 재판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차오름에게 지청구를 날리는 한세상. 결국 박차오름은 바로 이런 남다른 동정심과 공감능력으로 인해 사고를 친다. 채무자 할머니의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 박차오름은 판사라는 직업의 본분을 망각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것.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박차오름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방을 협박하는 일을 벌인다.

한세상은 그런 열정과 지나친 공감능력이 판사로서의 직업적 본분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차오름은 그 소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손님 사이에 벌어진 법정 소송에 있어서 감동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저 대충 합의로 끝내라는 한세상의 명을 어기고 제대로 잘잘못을 판결하겠다고 나선 그 법정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인 그 손님의 마음을 들여다 본 박차오름으로 인해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사과를 하고 손님도 소송을 취하하게 되는 결과를 얻어낸 것.

결국 판사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판단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내막을 깊이 들어주고 그 사연에 공감해줌으로써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라마는 박차오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판사라 표정을 보여서는 안되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 

작가가 현업에 있는 문유석 판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현실적인 고민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할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스 함무라비>에는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법정물이라고 하면 끔찍한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런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우리네 일상에 다가와 있는 느낌을 준다. 판사가 특이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법정물이라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멜로보다 사건, ‘검법남녀’로 채널 돌아간 까닭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는 사실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별 기대감이 없는 드라마였다. 워낙 MBC드라마들이 그간의 방송사 파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연전연패를 해오고 있던 터라, 이번 작품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나 캐스팅만을 두고 봐도 <검법남녀>는 그리 눈에 띄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동시간대 방영되는 KBS <우리가 만난 기적>과 SBS에 새로 포진한 <기름진 멜로>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만큼 화려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품위 있는 그녀>와 <힘쎈여자 도봉순>을 쓴 백미경 작가의 작품인데다, 믿고 보는 배우라 불리는 김명민에 김현주까지 캐스팅된 작품이다. 또 <기름진 멜로>는 <파스타>부터 <질투의 화신>까지 역시 스타 작가로 자리한 서숙향 작가의 작품으로, 장혁, 이준호, 정려원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여러모로 <검법남녀>를 쓴 신인작가 민지은, 원영실이나 정재영, 정유미 같은 배우들과 비교해보면 그들 작품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검법남녀>는 그 액면으로만 보면 채널에서부터 작가, 캐스팅까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가진 힘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검법남녀>는 시청률 6%대를 넘어서며 동시간대 2위 시청률을 기록하던 <기름진 멜로>를 앞질러 버렸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이미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굳건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같이 시작한 <기름진 멜로>와의 경쟁에서 <검법남녀>가 순위를 뒤집는 이변을 만든 것.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가장 큰 건 <기름진 멜로>의 부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애초 중국집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음식이 가진 그 비주얼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유입할 수 있을 거라 여겨졌지만, 어딘지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듯한 지지부진함 속에서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가진 자들이 모든 걸 가져가버리는 현실을 가져와 중국집과 사랑이야기로 엮어낸 그 틀은 나쁘지 않다 여겨졌지만, 그 사회적 복수극의 틀이 지나치게 홍콩 영화풍 코미디(사실 그리 웃긴 지는 잘 모르겠지만)로 풀어내지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시청자들은 짜장면을 원하는데, 작가는 중국 본토 음식이 진짜라며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그 음식을 먹어주는 건 우리 시청자들인데.

차라리 복수극의 틀을 잘 활용해 시원한 사이다를 제 때 넣어줬다면 더 좋은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기름진 멜로>는 ‘웃픈’ 상황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듯한 흐름이다. 슬프지만 웃음을 던질 수 있는 드라마가 되어야 하는데, 웃으면서도 고구마를 사이다 없이 먹는 듯한 퍽퍽함이 더 느껴지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것. 또 지나치게 멜로의 구도에만 갇혀 있는 것도 한계로 여겨진다.

반면 <검법남녀>는 멜로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검사와 법의관의 케미가 흥미진진한 반전을 이루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고인의 냉동정자를 통해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유산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사건은, 무덤에서 꺼낸 사체를 부검하면서 몇 단계의 반전 이야기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사체가 타살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때 병원에 있었던 간호사가 의심되었지만 역시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간호사를 발견하고는 그를 죽인 범인이 바로 그 유산을 주장했던 여인으로 밝혀지는 과정은 법의학이 가진 증거들을 통해 소름 돋는 반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사체가 뒤바뀐 사실과 아이가 본래부터 고인의 친자라 가만히 있어도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검법남녀>는 결국 그 과학수사라는 틀에 냉정함을 유지하는 법의관과 열정적인 검사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엮어 두 케미가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수사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안정감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내고 있다. 결국 <기름진 멜로>라는 기대작을 <검법남녀>가 밀어낸 저력은 멜로 같은 공식이 아니라 매회 시선을 잡아끄는 사건들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기름진 멜로>로서는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박차를 가해야하는 이유다.(사진:MBC)

‘함무라비’ 김명수와 고아라, 그 냉정과 온정 사이

판사라면 어떠해야 할까. 모든 사건들을 냉정하게 다루고, 오로지 법의 틀 안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아니면 그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야 할까. JT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첫 회는 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판사 임바른(김명수)과 박차오름(고아라)이 한 사무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임바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판사로서의 바른 길을 고집하는 인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암울하다.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에게 사람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판사라는 직업이 좋은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세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는 월급을 기다리는 샐러리맨과 판사라는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된 건 해직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아마도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살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지만, 그렇게 기자로서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아버지는 해직되어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무능력자처럼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임바른은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렇게 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같은 사무실로 박차오름이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쩍벌남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주머니를 그냥 넘기지 않고 일침을 가하고, 성추행범에게는 일격을 가하는 박차오름의 모습은 여러모로 임바른과는 다르다.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첫 날부터 한세상(성동일) 부장판사에게 끌려가 말도 안되는 “여자가 조신해야지” 같은 성차별적 소리까지 들었지만 박차오름은 다음 날 더 튀는 옷을 입고와 부장판사와 맞섰다.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에 히잡으로 갈아입고 나선 박차오름은 어느 것이 낫냐고 물어 부장판사의 뒷목을 잡게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지내지만 “인간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임바른과 그 인간들을 공감하는 박차오름은 너무나 달랐다. 인간의 죄를 담아낸다며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임바른에게 아예 대놓고 보라는 듯 다음날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붙이고,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책상 앞에 놓아둔 임바른과 달리, 천수대비의 상을 책상 앞에 두는 박차오름이다. 임바른이 판사로서 냉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면, 박차오름은 세상의 많은 약자들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온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딪침은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할머니를 두고 벌어졌다. 증거가 없어 억울한 판결을 받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시위를 할 게 아니라 항소를 하시라고 권하는 임바른과 달리, 박차오름은 그 할머니의 사연을 눈물을 흘리며 들어주고 있었다. 판사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상과 비정상을 이야기하는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정상이고 비정상인가를 되물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그가 판사로서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딜레마를 첫 회부터 잘 담아내고 있다. 박차오름이 이상을 보여준다면 임바른은 현실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멜로는 단순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게 해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멜로의 구도 속에 법 정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캐릭터를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것. 냉정한 임바른과 온정 가득한 박차오름의 케미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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