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정려원과 위하준의 설렘 가득 사제 관계 졸업 연인 관계 시작 

졸업

“선생님.. 이라고 불러 보세요. 선생님이라고 불러 보시라고요. 꽤 기분 좋을 것 같은데.” 8등급 꼴통이었지만 기적의 1등급으로 만들어 스타강사 서혜진(정려원)의 스마트폰에는 ‘나의 자랑’으로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는 이준호(위하준)가 불쑥 그렇게 말한다.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러보라는 건 마치 그가 그렇게 불리고 싶어 서혜진이 일하는 대치동 학원의 선생님이 되려는 것처럼 들린다. 왜? 동등한 입장이고 싶고, 그래야 다가갈 수 있으니까.

 

tvN 토일드라마 ‘졸업’의 이 장면은 앞으로 이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그 치열한 일터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동시에 서혜진과 이준호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나갈 거라는 걸 예감하게 한다. 서혜진에게 배워 명문대에 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사표를 던지고 갑자기 그녀가 일하는 학원에 지원한 이준호. 그는 남들보다 더 빨리 돈을 벌고 싶고 또 자신의 능력을 100% 펼칠 수 있는 길로서 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마음 한 켠에는 서혜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담겨있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큰 이유일 지도. 

 

물론 ‘졸업’은 첫 회부터 대치동 학원가 선생님들이 겪는 현실적인 사건들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문을 열었다. 다른 것도 답이 될 수 있는 오류를 드러낸 국어 시험 문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된 학생을 위해 그 문제를 낸 표상섭(김송일)선생님까지 찾아간 서혜진은 조목조목 그 문제가 가진 다른 답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설명하지만, 표상섭은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공교육을 내세워 사교육을 폄하하고 “기생충 같은 것들” 같은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오류가 인정되어 재시험 결정이 나고, 서혜진은 그 일로 대치동 학원가 엄마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다. 그렇게 서혜진을 통해 대치동 학원가 사람들의 일의 세계가 펼쳐지는 반면, 이준호를 통해서는 강남에서 살며 명문대에 좋은 회사에도 들어갔지만 제 능력을 100% 쓰며 더 성공하고 싶고 강남에서 밀려나지 않고 버텨내고픈 사회 초년생들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나라면 안면몰수하고 대치동 절대 안 떠나. 대한민국이 다 무너져도 저 욕망이 남아있는 이 동넨 절대 안 무너질 거거든.” 

 

그 욕망이란 다름 아닌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다. 교육만이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줄 걸 믿는 우리들은 “진짜 전쟁통에서도 입시 전쟁”을 치렀던 나라가 아니던가. 대치동 학원가라는 소재는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남다른 교육열에 대한 이야기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치열함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 현실들은 ‘졸업’은 미화도 폄하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펼쳐 놓는다. 

 

대치동 학원가라는 소재가 주는 흥미로움이 일단 시선을 끌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학부모들과 학생들,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가 사람들이 부딪치는 이야기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펼쳐진다. 첫 회부터 서혜진과 표상섭이 펼치는 설전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대결구도를 느끼게 해줬을 게다. 

 

하지만 이러한 치열함을 뚫고 들어오는 서혜진과 이준호의 달달하고 설레는 멜로가 진짜 ‘졸업’이 가진 매력이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이제 선생님과 선생님의 사이로 바뀌고 그것이 연인 관계로 발전해가는 그 과정이 펼쳐질 참이다. 한 관계가 ‘졸업’하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 주는 설렘이란 우리의 마음을 잡아끌기 마련이 아닌가. 

 

무엇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로맨틱한 감성들을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안판석 감독의 저력이 여실없이 보여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빗 속을 빨간 우산을 들고 두 사람이 함께 마주볼 때 OST로 흐르는 더 레스트리스 에이지(The Restless Age)의 빈티지가 느껴지는 노래는, 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역시 사랑받았던 레이첼 야마가타가 떠오를 정도로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일의 긴장과 사랑의 설렘을 오가는 안판석 감독의 로맨틱한 연출의 마법이 또다시 시작됐다. (사진:tvN)

‘삼식이 삼촌’, 먹고사니즘에만 몰두했던 시대의 느와르

삼식이 삼촌

“피자 아세요? 드셔 보신 분? 의원님, 드셔 보셨습니까? 제가 유학시절에 피자집 다락방에서 살았습니다. 하루 한 끼 제대로 못 먹던 유학시절에 매일 피자 굽는 냄새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여러분 총칼이 아니라 경제입니다. 누구도 끼니 걱정하지 않는 나라.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 제가 유학시절에 가장 부러웠던 건 전투기도 항공모함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피자였습니다. 전 국민이 굶으면서 전쟁에 이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개혁당 주인태(오광록)를 지지하는 연설에서 김산(변요한)이 하는 피자 이야기에 박두칠(송강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 역시 대한민국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청우회 사람들 앞에서 한바탕 피자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어서다. 박두칠은 그 자리에서 김산이 앞으로 자신과 함께 같은 꿈을 펼쳐나갈 거라는 예감을 한다. 그건 김산이 연설에서 했던 말처럼,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은 1950년대말부터 60년대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박두칠과 김산이 각자의 욕망과 꿈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다시피 당시는 이승만 정권 말기로 3.15 부정선거가 치러지고 5.16 군사 쿠데타가 벌어져 군부 독재가 시작되던 시기다. 전후 피폐했던 삶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하루 세끼를 굶지 않고 먹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욕망들이 꿈틀대던 시대다. 

 

‘삼식이 삼촌’이라는 캐릭터가 독보적일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 먹고사니즘이 극단화된 시대를 이만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삼식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김산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 다 먹였다고. 자기 식구 친구 친척 그 누구도 굶기지 않는다고.” 이 인물에게 먹고사니즘은 자신의 삶의 목표이자 방식이다. 그 역시 단팥빵 하나 먹기 힘들었던 시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그 가게를 자기 소유로 하고 언제든 빵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있어서도 바로 이 “먹여주는” 방법을 쓴다. 총칼이 아닌 경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지만 혁신당 총수 주인태의 딸 주여진(진기주)과 헤어질 수 없어 박두칠이 제안하는 청우회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하지 못하는 김산을 회유하는 방식도 바로 그 먹여주는 방식이다. 그는 김산의 집에 쌀을 갖다 주고 비싼 과자를 사주기도 한다. 물론 먹여주는 건 음식만이 아니다. 뇌물도 먹이고 때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도 제안한다. 

 

그 모든 것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걸려 있다. 주인태 같은 정치인들은 개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데 그것도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이고,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청우회 사람들도 공단을 만들려 하는데 그 명분 또한 먹고 사는 문제다. 물론 그 실상은 그들이 독식하는 돈과 권력의 문제이지만. 삼식이 박두칠은 이렇게 배고픈 욕망들이 널려 있는 사회 곳곳의 사람들을 이용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들을 부추겨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게 만든다. 

 

‘삼식이 삼촌’은 훗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 이른바 압축성장을 해내는 이 나라의 밑그림 속에 바로 그 삼식이 같은 인물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욕망이 자리해 있다는 걸 그려내면서 동시에 거기 깔려 있는 시대의 비극들 또한 포착해간다. 즉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는 식의 절실함이 포기했던 무수한 인권들과 생명들과 대의들 같은 것들을 그려낸다. 그건 어쩌면 이제 먹고 살만해진 현재의 우리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 같은 그 압축성장의 후유증이 생겨난 원인들이기도 할 게다.

 

여러 욕망들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삼식이 삼촌 박두칠은 모든 그 욕망들과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한 시대의 흐름이 박두칠이라는 인물과 끈으로 연결된 무수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래서 박두칠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서있다. 모든 욕망이 발현되고 촉발되며 그로 인해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인물이 납득되어야 ‘삼식이 삼촌’이라는 작품이 공감될 수 있는 구조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송강호는 역시 이러한 무게감을 든든히 떠받칠 수 있을만큼 어찌 보면 다소 판타지적인 이 인물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한다. 때론 몰아붙이다가도 때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목적을 위해서는 싸늘한 배신도 서슴지 않는 다양한 얼굴들을 삼식이 삼촌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단단히 붙잡아 놓는다. 

 

또한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삼식이 삼촌’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많은 이야기의 갈래들의 송강호가 연기하는 박두칠이라는 인물로 수렴되고 거기서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변주된다. 과연 송강호가 아니라면 감당이 가능할까 싶은 인물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첫 드라마 출연이라고 겸양을 내보이고 있지만,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삼식이 삼촌’이라는 당대를 대변하는 독보적 캐릭터를 창조해낸 신연식 감독의 지분이 분명하다. 세 끼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이 꿈이었던 시대를 이토록 명쾌하게 보여주는 캐릭터가 있을까. 이제 5회가 공개되었지만 향후 박두칠과 김산이라는 현실과 이상을 대변하는 두 인물이 어떻게 격동기를 헤쳐나가며 그들이 꿈꾸던 경제를 실현시켜 나가는지 남은 회차들이 못내 궁금해진다. (사진:디즈니+)

“유인원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을까?” 웨스 볼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동물도 그렇지만 소통은 원래부터 안 되는 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 ‘숙론’이라는 책을 낸 동물학자이자 생태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한 말이다. 대화를 통해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가기보다는 당파로 나뉘어 정쟁을 일삼는 현 정치행태를 비판한 그는, 그래서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나가려는 ‘숙론(熟論)’을 그 대안으로 내놨다. 

 

아마도 최재천 교수가 7년만에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온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를 봤다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을까. 시저가 사망한 후 수백 년이 흐른 뒤 진화한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유인원들의 새로운 구원자로 성장해가는 노아(오웬 티그)의 모험담을 담은 작품이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제국을 건설하려는 프록시무스에 의해 부족이 노예로 끌려가자, 노아는 이들을 해방시키려 나서고 그 과정에서 인간 소녀 노바(프레이아 런)를 만난다. 유인원인 노아와 인간인 노바는 공공의 적 앞에서 협력하지만, 서로 다른 종으로서의 팽팽한 긴장감을 지우지 못한다. “유인원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 이들은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 공존의 삶을 배워 온 노아가 노바에게 협력의 손을 내미는 반면, 노바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인간의 지위를 회복하고픈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무너진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그토록 탈출하려 했던 혹성이 지구였다는 걸 알게 되는 충격적인 엔딩을 우리는 이미 1968년에 나온 ‘혹성탈출’의 첫 작품으로 본 바 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흘렀지만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저 노아와 노바처럼 여전히 공존과 소통이 어려운 현실 앞에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숙론은 요원한 일일까. (글:동아일보, 사진:영화'혹성탈출:새로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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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로 연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 김혜윤

선재 업고 튀어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하는 이 대사는 스타가 빛날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스스로 빛나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 존재로서 매니저 박민수를 말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최애인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 같은 열성 팬들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선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임솔이 선재를 되살리고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1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과거를 바꿔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를 장치로 활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에 ‘팬심’이라는 강력한 동인을 소재로 끌어왔다. 최애와 팬의 사이가 그것이다. 팬이라면 최애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든 못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이처럼 타임리프라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장르로 끌어왔지만, 그 비현실이 만드는 황당함 같은 것들을, 그걸 훌쩍 뛰어넘는 팬심으로 채우는 드라마다. 팬들이라면 심지어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진짜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두 가지다. 임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선재에게 진심인가 하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가 임솔이 그렇게 최애할 정도로 멋지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걸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걸 성공시킴으로써 최근 시청률 급상승과 더불어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드라마로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이 방영 내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드라마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 1위의 드라마로 등극한 것. 또 주인공 역할인 변우석과 김혜윤에 대한 화제성도 급상승해 각각 출연자 화제성 1,2위를 차지했다. 

 

변우석이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로 떠오른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변우석은 2017년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얼굴을 보였지만 두드러졌던 건 2020년 ‘청춘기록’을 통해서였다. 그 후로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악역을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재 업고 튀어’로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신인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변우석이 이러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 데는 물론 그가 가진 매력과 노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지만 김혜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김혜윤은 임솔 역할로 변우석이 맡은 선재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만 있어도 멋진 배우이긴 하지만 끝없이 애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김혜윤의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입덕하게 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처음 팬심을 공감시키는 김혜윤의 연기에 빠져들고, 그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변우석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선재 역시 임솔을 처음부터 사랑해온 첫사랑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선재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건 고스란히 변우석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김혜윤은 지금껏 해온 작품들 속에서,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명확한 딕션에 의한 대사 전달력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시각각 감정 변화가 많은 연기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곤 했다. 때론 소녀처럼 수줍어했다가 때론 명랑하고 때론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혜윤의 첫 주연작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하루’는 이러한 그의 역량이 온전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만화 속 단역인 은단오와 자아를 가진 은단오 그리고 작가의 전작만화 속 은단오라는 1인3역을 연기했는데, 만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는 판타지의 난점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김혜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때도 김혜윤은 특유의 다양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중 상대역할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로운, 이재욱 같은 배우들이 그 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혜윤은 이제 27세의 나이지만 2012년부터 다양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길을 넓혀왔다. 공식 데뷔작은 2013년 SBS에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로 그 후로 ‘야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상한 가정부’, ‘왕가네 식구들’, ‘나쁜 녀석들’, ‘오만과 편견’, ‘펀치’, ‘닥터스’, ‘푸른바다의 전설’, ‘쓸쓸하고 찬란하시니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거쳤다. 꽤 유명한 성공작들이지만 대부분 단역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김혜윤은 2018년 ‘SKY 캐슬’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김혜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설득시킨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드디어 주연으로서의 김혜윤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고,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협회상, 대종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나오는 학생 역할에 어울릴 정도로 동안인데다 20대의 나이지만 연기 폭은 꽤 넓다. ‘SKY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그리고 ‘불도저를 탄 소녀’의 캐릭터가 모두 상이한데다 그 연기 색깔도 다르다는 점은 이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혜윤의 페르소나가 특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라디오스타’의 대사처럼 연기도 삶도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떠오른 건, 그 역시 함께 연기해온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타인을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 또한 빛날 수 있다는 앙상블의 힘을 김혜윤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도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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