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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북핵과 양극화가 불가사리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탄생과정 속에 분명한 목적의식을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탄생이 미군부대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은 이 영화의 목적의식이 바로 미국과, 미국의 이런 행동을 방치하고 자기 이권만 밝히는 정부에 대한 비판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괴물은 에둘러 말하기 위한 장치인 셈인데, 괴물담의 파급력은 ‘에둘러 말한다’는 그 장점에서 비롯한다. 이런 괴물담 중에 우리네 민담으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 ‘불가사리’란 괴물 이야기다. 쇠를 먹고, 먹으면 먹을수록 몸집이 커지는 이 괴물이야기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온 ‘불가사리’란 이야..
연개소문 세트 논란, 극 집중도 저하가 원인 대하사극 연개소문의 세트 논란이 거세다. 이밀(최재성 분), 양현감(이진우 분), 이화(손태영 분) 등이 왕빈, 연개소문 일행과 함께 사냥을 떠나는 장면에 노출된 성문 배경이 조잡하게 만들어진 세트의 티가 너무 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이 나온 다음날 지적의 효과였는지 배경의 세트는 이화와 연개소문이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 장면에 너무도 명확하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 세트의 문제가 논란으로까지 비화된 것은 단지 세트를 너무 조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400억 짜리 드라마에 합판 배경이냐”는 질책 속에는 400억이나 들여서 그것밖에 못 만드냐는 비아냥이 섞여있다. 세트 논란은 이 드라마의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져 이제는 서서히 그 증상이 나오고 있다는 걸..
너무 착해서 개성이 잘 안보이는 arboleda merlot 요즘은 착한 것보다는 개성 넘치는 것, 차라리 욕을 먹을 지라도 무언가 특색이 있는 것이 더 추앙 받는 시대입니다. 이미 착하다는 것은 그 어떠한 가치도 상실한 그 마지막에 겨우 꺼낼 수 있는 카드 같은 것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보면 알 수 있죠. 관심을 끄는 캐릭터들은 ‘싸가지가 없거나(환상의 커플의 한예슬)’, ‘막말을 한다거나(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 심지어는 ‘매력 가득한 악마(타짜의 김혜수)’같은 그런 캐릭터들입니다.와인에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다지 특징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와인 말입니다. Arboleda 시리즈 중에서 멜로가 그렇습니다. 칠레 와인의 명문가인..
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위험한 우리 사회 정지영 아나운서의 퇴진까지 가져온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는 숫자 놀음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것은 출판계에서는 ‘판매부수’로 불리며, 영화에서는 ‘관객수’로, 그리고 TV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불린다. 그것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 역할은 비슷하다. 작품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숫자들이 맡은 역할이다. 숫자들의 권력은 점점 커져서 언제부턴가 우리네 문화계는 콘텐츠 자체의 질에 승부하기보다는 이 숫자를 얻기 위한 무한경쟁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스테디셀러보다는 베스트셀러를, 두고두고 꺼내보는 명작으로 남기보다는 최단기간에 최대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그리고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이..
최고의 쉬라즈를 꿈꾸는 ‘Two Hands Angel's Share’ 두 손이 받들 듯이 포도송이를 들고 있습니다. 그 느낌은 포도가 존귀하다는 것과 투박한 농부의 그것 같은 두 손이 성실하다는 것. ‘Two Hands Angel's Share’의 라벨은 이 와인의 맛과 뜻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합니다.프랑스 론 지방에서 쉬라라 불렸으나 호주로 넘어오면서 쉬라즈라는 이름을 얻은 이 품종은 호주와인의 현재를 말해주는 대표격입니다. 흔히 우리는 호주와인을 부를 때 앞에 오지(Aussie- 호주의 애칭)라는 수식을 하곤 하는데 오지 쉬라즈, 오지 샤르도네, 오지 까베르네 소비뇽 하는 식입니다. 왜 이럴까요? 그것은 같은 품종이라도 호주의 쉬라즈는 보다 깊고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호주만의 개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
‘마시멜로 이야기’사건으로 본 출판계의 문제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을 둘러싼 일련의 발표들을 보다 보면 마치 ‘범죄의 재구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거기에는 밀리언셀러라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속고 속이는 관계들이 난무한다. 출판사는 이중번역을 했다고 하고, 원 작가는 대리번역이라고 한다. 출판사는 정지영씨가 그 사실을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정지영씨는 정말 몰랐으나 그래도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런 대로 그림조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만일 출판사가 정지영씨 모르게 이중번역을 하고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건 정지영씨가 출판사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정작 정지영씨는 이 사태에 대해 출판사를 ..
주몽이 처한 딜레마요즘 시청률로 가장 성공한 TV 컨텐츠는 단연 MBC 월화 사극, ‘주몽’이다. ‘고구려사극 전성시대’라 할 만큼 연이어 경쟁작으로 등장한 ‘연개소문’, ‘대조영’에도 불구하고 시종 43%대에 이르는 독보적인 시청률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시청률은 드라마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잣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은 것과 드라마적인 성공은 다른 차원이다. 다시 말해 ‘주몽’의 시청률이 높은 것으로 드라마 ‘주몽’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거대한 고구려, 영웅, 사랑은 어디 갔나 모든 드라마에는 저마다의 목표 혹은 기획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이 기획의도는 의도일뿐, 실제적인 목표는 시청률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
‘라디오 스타’ 변방에서 중심을 치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들이 시대를 갖고 걸판지게 한 마당을 놀았다면, ‘라디오 스타’에서 이준익 감독은 이제 한물 간 스타를 매개로 이 시대의 주변인들을 끌어 모아 라디오라는 마당 위에 펼쳐놓는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이 저 왕궁이라는 본진으로 들어가 스스로 민중의 입이 되어주었다면, ‘라디오 스타’의 최곤(박중훈 분)은 영월이라는 변방으로 날아가 DJ의 마이크를 고단한 민중들에게 넘긴다. 한 예술인의 삶으로서 장생과 공길이 왕 앞에서도 거침없이 사설을 늘어놓았다면,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은 라디오 방송이라는 규범적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엮어낸다. 그리고 ‘왕의 남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라디오 스타’ 역시 변방의 민중들을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