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고인이 된 그가 가족을 위로하는 법

 

마왕 신해철. 그는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을 위해 마련된 콘서트에서 선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노래 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는 후배의 목소리를 빌어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하고 여전히 소리쳤고, 그의 아들 동원이는 화답하듯 난 아빠를 원해!”라고 외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는 떠났지만 가족들의 곁에 그는 여전히 자그마한 밥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또 집 한 구석에 놓여진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가족들은 밥을 먹을 때나 아니면 사진 앞을 지날 때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한 맛이라며 젤리를 아빠의 사진 앞에 놓고는 이제 마음껏 드시라는 딸 지우의 마음 속에, 또 그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따라 부르는 재즈카페슬픈 표정하지 말아요같은 노래 속에 살아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가족을 향한 걱정이자 위로이자 격려였다. 가족에게 그 노래는 다정다감했던 아빠의 목소리이고 그가 여전히 전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냄새로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아내는 그의 베개 솜을 꺼내 아이들과 자신의 베개에 넣었다. 사라져가는 냄새를 통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그를 붙잡고 싶었다.

 

아내는 둘이 같이 웃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어딜 갔던 일도, 특별히 함께 무언가를 했던 일도 아닌 함께 웃었던 일’.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 아내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신해철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9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해철의 그날 아내는 그가 좋아했던 문어와 갈비찜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문어를 아이들이 챙기며 하나씩 빼먹는다. 그 문어의 추억 속에서, 그걸 먹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다. 마지막을 떠나보내며 팬들이 부르는 민물장어의 꿈속에서도.

 

그의 가장 좋은 옷을 챙겨 태우며 아내는 가족들 몰래 눈물을 삼킨다. 그녀는 그의 평안함을 기원하다가 아이들 잘 챙길께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떠나는 그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빈 자리는 가족들이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가장이 되어 더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자신이 대신 버티겠다고 담배도 끊었다. 할아버지는 밤이면 그가 해왔던 문단속을 대신 한다. 그래도 동원이는 여전히 아이다. 누가가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아이를 이제 할머니가 맡는다. 그들은 서로가 조금씩 떠나간 그의 빈 자리를 채워간다. 위안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렇게 서로 똘똘 뭉쳐있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기록한 고 신해철의 다큐멘터리에 정작 신해철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예쁜 아내의 착한 마음 속에, 아빠를 진정으로 원하는 동원이의 마음 속에, 아빠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지우의 마음 속에, 아프게 가슴에 묻어두고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앞으로도.

 

<아빠를 부탁해>, 이토록 훈훈하고 뭉클한 순간이라니

 

그들은 함께 있을 때는 여전히 소년들 같다. 서로가 하는 말에 툭툭 장난을 걸기도 하고 누군가에 말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며 때로는 부러워하고 때로는 짠해지기도 한다. SBS <아빠를 부탁해>의 아빠들 얘기다. 그들은 각자 찍어온 관찰카메라를 함께 모여 보면서 서로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아니면 얼마나 비슷한지를 확인한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소년처럼 굴지만 화면 속에서는 영 서툰 아빠의 모습 그대로다.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하고, 딸의 친구들이 찾아오면 자리를 피해준다는 핑계로 그 서먹한 관계로부터 도망치기 일쑤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잘못한 일에 호된 꾸지람을 하고는 후회하고, 자신과는 영 다른 입맛을 가진 딸과의 외식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화면 속의 아빠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던 바로 그 보통의 아빠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지 않은가. 아빠들은 이경규처럼 딸 예림이와 친구들에게 정성들여 라면을 끓여줄 정도로 살가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겸상 하면 권위 떨어진다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맛있게 먹는 딸과 친구들을 흘낏흘낏 훔쳐보고 다 먹고 나면 설거지까지 해주려고 나선다.

 

아빠들은 조민기처럼 딸 윤경이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여권을 챙기지 않은 실수에 호통을 치지만,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영상통화로나마 혼자 지내는 네가 스스로 잘 챙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랬던 것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리고 수줍지만 퉁명스럽게 속내를 툭 던진다. “보고싶다.” 그 한 마디 속에는 그래서 참 많은 아빠의 속내가 담겨있다. 미안함과 대견함과 그리움 그리고 쓸쓸함까지.

 

아빠들은 강석우처럼 딸 다은이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에서 노래가 나온다. 피곤해 하는 다은이가 툴툴 대면서도 함께 옥상을 청소하는 그 시간이 아빠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쌈을 제대로 싸먹고, 설렁탕에는 깍두기 국물을 넣어 먹는 다은이는 그래서 아빠 강석우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존재다. 식성은 달라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아빠들은 조재현처럼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의 젊은 날 고생을 되돌아보며 자신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먹먹해지기도 한다. 가파른 길을 연탄을 가득 채운 리어카를 끌고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래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10년 후 또 사진 찍으러 오자는 손녀 혜정이에게 그 때는 할아버지 없다고 말하자 눈물을 흘리는 혜정이에게 “20년 후면 아빠도 위험하다는 조재현의 농담 속에는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그걸 아쉬워하는 딸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왜 우리는 일찍이 아빠들의 진짜 속내를 몰랐던 걸까. 나이 들어 그 아빠의 나이가 됐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그 서먹함과 무표정 속에 숨겨져 있던 아빠들의 쓸쓸함과 따뜻함이다. <아빠를 부탁해>가 뭉클해지는 순간은 바로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그 속내를 지금 바로 눈앞에서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 무표정이 사실은 눈물도 많고 그 서먹함이 실제로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

 

<동상이몽>, 균형감각 유지가 관건이다

 

SBS <동상이몽>은 어떤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한 욕쟁이 소녀의 이야기는 엄마의 관점으로 보면 심지어 집안에서도 쉴 새 없이 욕을 해대며 그것이 그냥 일상어라고 말하는 소녀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자 그녀가 중3 때 눈이 작다고 놀림을 받았으며 그것 때문에 욕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게다가 잘못한 남동생을 오히려 두둔하며 소녀가 욕하는 것만을 나무라는 엄마의 모습도 살짝 드러난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사실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동상이몽>은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편집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소녀의 행동을 먼저 부각시키고 나중에 그 이유를 편집된 부분을 보여줌으로 해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악마의 편집처럼 보이지만 결코 <동상이몽>은 그런 자극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당사자들이 가족인데다, 그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함께 자리해있기 때문이다.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보여주는 편향은 극적인 편집을 사용하긴 해도 그것이 거기 서 있는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틱한 구성은 그 자체로 극적인 효과를 낸다. 소녀가 욕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자 엄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묻어나고, 결국 숨겼던 속내를 털어내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녀는 눈물을 터트린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그 개구진 남동생 역시 눈물을 터트리고 사안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은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종의 소통 단절이 가져온 오해가 관찰카메라의 관찰을 통해 소통의 물꼬를 여는 것. 그것이 <동상이몽>이 갖고 있는 재미이자 의미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달라지고 있는 예능의 경향들을 기막히게 연결한 하이브리드의 성격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이 있지만 또한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게 보이는 스튜디오물이 존재한다. 토크쇼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토크는 마치 TV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주제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재석과 김구라 같은 톱 MC들이 자리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연을 갖고 무대로 올라오는 일반인들이다. 즉 최근의 예능이 갖고 있는 일반인 트렌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연예인 MC가 합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재석과 김구라의 조합도 특이하다. 김구라가 욕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과거의 욕 때문에 존경받지 못한다고 경험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역할이라면, 유재석은 이 서로의 입장이 첨예한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예능 프로그램이 웃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 사회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제공해준다는 사실이다. 욕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학교의 왕따 문제나 학생들의 언어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실 그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토론보다 이런 여러 입장을 드러내주고 거기에 대해 각자의 의견들을 더하는 형식이 더 효과적이다.

 

<동상이몽>은 이처럼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끌어안아 융합시킨 새로운 예능 형식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관찰카메라도 있지만 스튜디오의 안정감이 있고 일반인들의 놀라운 사연들이 있지만 연예인들의 재치 있는 입담도 곁들여진다. 재미와 의미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것은 <동상이몽>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지만 만만찮은 도전도 있다. 이 많은 요소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욕쟁이 소녀의 사연은 <동상이몽>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10주년에 <무도>는 왜 무인도를 택했을까

 

<무한도전>은 왜 10주년을 기념해 무인도로 들어갔을까. 물론 이 아이템은 팬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가장 다시 보고 싶은 특집으로 무인도 특집이 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주년을 기념해 무인도로 들어간 이번 특집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무한도전>의 의지를 되새기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팬들 역시 똑같은 걸 원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잘 차려입은 정장차림은 아마도 현재 <무한도전> 멤버들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무모한 도전> 시절 쫄쫄이를 입고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포크레인과 삽질 대결을 벌였던 그들은 그렇게 10년이 지나 이제 정장차림이 제법 잘 어울리는 성공한 예능인이 되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그다지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결국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란 가장 낮은 곳에서 평균 이하로 서 있을 때 훨씬 유리한 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며 프로그램 안과 밖을 연결해왔던 <무한도전>으로서는 따라서 인물의 성장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10주년을 맞아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로 되돌아간 건 그래서 한 편의 우화처럼 보인다. 깨끗했던 정장이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그것은 어쩌면 웃기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으로 점점 더럽혀지고 결국 섬을 빠져나오며 유재석의 바지가 다 찢어져 속옷이 드러나는 걸 발견하는 건 그래서 여전히 그 평균 이하를 지향하는 <무한도전>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10주년 기념 파티를 위한 케이크 컷팅이 아니라 드론으로 떨어뜨려주는 케이크를 서로 받아먹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누군가의 얼굴에 떨어진 케이크를 혓바닥으로 핥는 광경. 뷔폐 식당이 아니라 복불복으로 선택한 재료와 도구를 이용해 짜장 라면 한 그릇을 그토록 맛있게 나눠먹는 모습.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먹물 폭탄을 감수하면서 처절하게 코코넛을 따먹는 모습이 <무한도전>이 앞으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한 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라는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이 김태호 PD가 보고 싶던 것이었다. 그는 어둑해져가는 섬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출연자들을 탈출시키면서 여러분들의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사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무한도전>이었다. 많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도무지 할 수 없는 도전일 것 같았기 때문에 그들의 도전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팬들이나 김태호 PD, 그리고 출연자들 모두가 원하는 건 그들의 변치 않는 그 평균 이하의 모습이고,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정장 따위는 진흙에 더럽혀지고 심지어 찢어질지라도, 배가 고파 짜장라면 하나에도 그토록 감격해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이 앞으로도 계속 지향할 길이라는 걸 10주년 무인도 특집은 보여주었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무한도전>10주년이 그 어떤 10주년보다 빛난 건 그래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