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2’, 가난해도 당당한 한인들, 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유

파친코

“근데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빤 그 큰 집은 그립지 않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립지. 진짜 부자는, 모자수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란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2’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아들 모자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이삭 역시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곳을 떠나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밀고해 감옥에 보낸 것이 바로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러 용서하려 한다. 목사는 이삭을 질투한 거였다. 부모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유일하게 유목사가 자신을 거둬주셨는데 이삭이 나타나면서 그 사랑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밀고했다는 것. 하지만 밀고한 후 그는 후회했다고 했다. “이게 변명이 안되는 거 압니다. 절대 용서 못하시겠지만...” 목사는 그렇게 용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이삭은 곧바로 말한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이삭의 아들 노아(김강훈)은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아버지를 밀고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 용서하냐고 절규하지만, 이삭은 말한다. “너희에게 물려줄 거라곤 이 망가진 몸뚱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기억했으면 한다. 후 목사와 우리들의 운명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인 거야. 노아야.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야. 자비는 인정하는 거야. 살려면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거.” 그는 후 목사의 잘못조차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 작품이 이삭 같은 당시 한인들의 의연함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걸 말함이었을 게다. 다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서 후목사 같은 이에게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한다. 

 

이삭이 자신을 밀고한 후목사를 용서하는 장면은, 땅 주인 한금자(박혜진)를 찾아가 그 땅에 군사시설이 있었고 거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것조차 이용해 아베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와 교차 편집된다. 솔로몬은 아베에게 그 땅을 판 후 이 소문을 내면 콜튼 호텔 측에서 개발을 포기할 거라며 당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복수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이용하려는 솔로몬에 한금자가 혀를 차자 솔로몬은 자책하는 말을 한다. 한금자도 또 선자도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볼려고 그렇게 살았나? 네? 다 쓸데 없었다 하시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한금자는 저 이삭이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후회없어 그렇게 산 거. 충분히 값진 인생이었어.” 한금자도 선자도 또 이삭도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삭이 죽기 직전 선자와 나누는 대사는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이삭은 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인 양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선자는 이삭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해준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죽으면서도 아이들 걱정하는 이삭에게 걱정말라며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는 선자의 눈빛은 강인하다. 그 죽음을 피하지도 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뿐이다. ‘파친코’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건 바로 이 인간의 숭고함이 주는 뭉클함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깊숙이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그 모습 앞에 누구나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애플TV+)

'청춘기록', 가난하다고 꿈도 사랑도 가난할까

 

"나 지금 하고 싶은 거 있는데 허락이 필요해." 사혜준(박보검)은 안정하(박소담)에게 그렇게 키스의 허락을 구한다. "허락할게." 안정하는 선선히 허락하고 두 사람은 키스를 한다. 그리고 안정하가 말한다. "생각해 봤는데 언제든 해도 돼. 나도 그래도 돼?" 그 말은 그가 얼마나 사혜준을 사랑하는가를 담아낸다. 그러자 화답이라도 하듯 사혜준 또한 자신의 사랑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넌 뭐든 돼."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사혜준과 안정하가 나누는 이 키스신은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설렘과 기쁨 속에는 어딘가 슬픔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그건 뭐랄까 뭐 하나 제 맘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서로에게만큼은 모든 걸 허락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다. 그들의 사랑은 거창한 프러포즈도 아니고 화려한 장소나 심지어 좋은 차 안에서도 아니다. 아버지가 일하러 다닐 때 끌고 다니던 승합차에서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키스를 나눈다. 마치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허락'뿐인 것처럼.

 

물론 <청춘기록>은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는 사혜준이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드라마가 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의학드라마 <게스트웨이>에 캐스팅된 사혜준은 그 드라마 속에서 선배 의사(서현진)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누나 사귈래요?" 사혜준이 선배에게 그렇게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 속 한 장면이다. 병원이고, 그는 의사다. 사혜준이 드라마 속에서 하는 사랑과 실제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만큼 다르다.

 

드라마 같은 허구 속 세계가 다르다는 건 사혜준과 진상 톱스타인 박도하(김건우)가 함께 영화를 찍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박도하가 톱스타이고 사혜준은 무명배우지만, 그 영화 속에서 사혜준은 재벌집 자제로 박도하를 잡아다 사정없이 폭력을 가하는 그런 인물이다. 현실에서야 태생의 수저에 따라 살아가는 수저가 달라지지만, 허구 속에서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한다.

 

<청춘기록>은 드라마 속에 드라마를 세움으로써 그 드라마는 현실이라고 강변한다. 즉 사혜준이 연기하는 드라마 속 세상과 그가 처한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는 것. 이 트릭을 통해 <청춘기록>이 보여주는 현실은 '착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그런 생각이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괴물이라고 말하고, 그래야 이 바닥에서 살 수 있다며 사혜준과 이민재(신동미)를 짓밟는 이태수(이창훈)는 그래서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골프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 김이영(신애라)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인과응보는 없다."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들이 성공하고, 나쁜 자들이 벌을 받는 그런 현실은 없다고 드라마는 김이영의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현실은 가난해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이들이 오히려 더 나쁜 상황에 처하는 일이 벌어진다. 잘난 척 해서 재수 없던 사경준(이재원)이 사기를 당한 후 하는 토로는 그래서 공감 가는 면이 있다. "야 남들 부러워하는 취직했어도 한 달 월급 부잣집 애들 명품가방 하나 값이야. 이 돈 모아 서울에 집을 살 수가 있냐? 부자가 될 수가 있겠냐.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겠지.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물론 <청춘기록>은 흙수저의 현실을 갖고 있는 사혜준이 저 드라마 <게스트웨이> 속 인물처럼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허구를 현실로 만드는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건 실제 현실에서는 좀체 벌어지지 않는 일이고, <청춘기록> 또한 하나의 드라마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결핍을 다룬다.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것을 드라마는 꿈꾸기 마련이다. <청춘기록>은 그래서 청춘들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꿈꾸고 그걸 실현해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런 판타지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글쎄. 물론 현실은 척박하지만 그래도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이 청춘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원하던 꿈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꿈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넌 뭐든 돼"라고 말한 사혜준처럼, 가난해도 사랑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으며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고 심지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처럼.(사진:tvN)

‘유퀴즈’, 유재석이 고덕동에서 만난 진짜 어른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덕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세탁소.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유재석과 조세호를 맞은 이태석(64세)씨는 그 곳에서만 35년 간 일을 해왔다고 했다. 아침 6시면 나와 밤 10시,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토요일도 학생들 교복을 맡기는 분들이 많아 일요일만 쉰다는 아저씨는 거의 주 90시간을 꼬박 세탁소에서 보내고 계셨다.

 

놀라운 건 세탁 일을 한 지가 무려 50년이 됐다는 사실이다. 64세의 나이라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반백년을 한 길을 걸어왔다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가 갓 백일이었다고 했다. 홀어머니에 동생 셋을 건사해야하는 상황에 놓인 장남 이태석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탁 일을 배웠다고 했다. 당시 겨우 열 네 살 소년이었다. 한 때 그래도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아저씨는 키가 작아 못했고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가 살았단다.

 

세탁 노하우를 묻는 유재석에게 툭 던지는 아저씨의 답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떤 분 하나라도 옷을 맡기면 나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고 ‘정성이 노하우’라는 것. 그 날의 공식질문이었던 “나에게 스스로 상을 준다면 어떤 상을 주겠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고 했다. 다만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상은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다는 것.

 

대신 아저씨는 배달을 하면서 기분 좋았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옷을 맡기셨는데 주머니가 터졌는데 그걸 내가 꿰매서 줬더니만 손님이 입어보고 주머니 빵구난 거 안 들어가니까. 그 손님이 그러더라구요. 존경한다고...” 아저씨에게는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기억에 남는 상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같이 수십 년을 똑같은 일을 반복한 그 성실함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 그 가게를 샀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아저씨는 서른 살까지 남의 집 살이를 했다고 했다. “제가 어릴 때 배를 많이 곯았어요.. 거의 한 5일을 굶어봤는데 길 가다가 대추를 하나 주웠는데 목에 안 넘어가더라고 밥을 안 먹어서 붙어서 그런가.”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통닭 한 마리를 못 사줘 다리하고 중간 갈비하고 있는 걸 사다준 게 지금도 미안하다는 아저씨. 아마도 가족들에게 그런 가난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당시 한 달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다는 아저씨. 그 가치가 얼마인지 알기 위해 조세호가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을 묻는데... 아저씨는 드라이 가격이 300원이었다고 말한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것보다 드라이 하나를 더 하는 것이 아저씨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나 보다.

 

딸은 결혼해 캐나다에서 살고 서른 살 아들은 경찰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는 아들 취업 걱정만 하셨다. 어려서는 동생들 걱정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 걱정하는 아저씨. 신께서 단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주저없이 “아들 취업”을 얘기하셨다.

 

왜 돈을 많이 갖게 하면 좋지 않냐는 조세호의 질문에 아저씨는 돈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적당하게 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빚 없고 그렇게 살면 딱 좋은 거예요. 글쎄 돈이 많으면 좋겠지요. 저는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어요. 살아갈 수 있는 만큼만 있으면 좋겠어요. 이거 해서 열심히 먹고 살면 딱 좋아요.” 아마도 많은 보통의 서민들의 꿈이 이럴 것이다. 굉장한 부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안히 살 수 있는 것.

 

마침 생일에 맞춰 귀국해 있던 딸은 아버지의 촬영소식을 듣고 동생과 함께 세탁소를 찾았다. 딸 이선아씨는 아빠가 어떤 아빠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밤에 늦게 오셨어요. 아빠 소원이 가게 하는 사람만나지 말고 회사 다니는 사람 만나야 졸업식도 휴가 내고 갈 수 있다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 정적 아들 딸 졸업식도 못갔던 게 못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들이 툭 던지는 말이 너무나 먹먹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너무 너무 부지런하셔가지고요. 그냥 맨날 새벽마다 나가시고 아빠는 항상 아침 6시면 일어나가지고 일 나가시고 그러셔가지고.. 이렇게 가장 존경하고... 그런 부지런함이랑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되게 닮고 싶더라구요. 그 전에는 몰랐는데 정말 정말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느껴져 가지구.. 그리고 여기 보시면은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여기 아빠가 맨날 서 있잖아요 이게 시멘트인데 바닥이 파져 있어요.”

 

딸은 아빠가 진짜 성실하시다며 매일 같이 아침 7시에 열고 밤 10시에 문 닫는 그 스케줄이 ‘누구나 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의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딸은 “누군가의 첫째 아들, 누군가의 가장,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이태석”이라고 말했다. “아빠 성함을 제일 처음 못 올리는 이유는 아빠 자서전인데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따랐던 부수적인 책임감들이 너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이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고덕동의 세탁소 장인에게서 우리 시대 진짜 어른의 모습이 그려졌다.(사진:tvN)

파양·학대·추방...‘휴먼다큐 사랑’이 신성혁 통해 전하려한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저는 언제나 엄마의 아들이에요.”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번의 입양과 파양 그리고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는 끔찍한 학대,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노숙자들이 있는 거리에 버려진 유일한 동양인.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은 치즈버거가 따뜻했었다고 말하는 아담 크랩서(우리 이름으로 신성혁)는 벌써 42세다. 하지만 그 성장한 아담에게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저 아이의 그것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첫 번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담과 그의 엄마였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아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고.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미국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아들과 화상통화로 첫 대면을 하는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무나 가난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다리가 불편해 운신도 자유롭지 않은 그녀는 결코 고생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입양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엄마와 아들. 하지만 그 긴 세월의 간극은 그들 사이에는 없어 보였다.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곤궁했던 삶에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었지만, 엄마와 아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여전히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이역만리에 떨어져 화상으로 만나는 얼굴이지만 그 얼굴에 새겨진 삶의 힘겨움을 읽어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헤어져 잘 살기를 바랐지만 차라리 같이 살며 고생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후회. 그들의 얼굴에는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입양 간 아담에게 미국은 이름그대로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첫 입양됐던 양부모의 집에서는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체벌을 당하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으면 같이 입양왔던 누나가 슬쩍 문을 열어놓고 가곤 했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 동생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 누나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결국 파양되면서 아담은 누나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입양된 집은 더 심각했다. 12명의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성적학대와 폭력은 일상이었고 노예처럼 자신들을 부렸다고 했다. 

양부모는 아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양부모는 결국 발각되어 감옥에 갔지만 금세 풀려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 집에서 살던 아이 중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재판 때 아담은 양부모의 편을 들어주었다. 유일한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자 그들은 아담을 길거리에 버리고 가버렸다. 16살에 아담은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인 노숙자가 되었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서 아담은 시민권조차 없었다. 식당, 건축일, 조경, 자동차 수리, 뭐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그는 꽤 일을 잘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왔던 물건을 찾기 위해 입양됐던 집을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무단침입죄로 감옥 생활을 했고,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된 아담은 점점 피폐되어갔다. 

결국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엄마는 아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했다. “미국에 계신 대통령님.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미국에 계신 시민 여러분. 우리 아담 크랩서 좀 도와주세요.” 서툰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통해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여전히 가난하고 몸도 성치 않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운 엄마. 그렇게라도 엄마는 어떻게든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구치소에서 피폐해져가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그 몸을 이끌고 기다시피 부석사 계단을 올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결국 열린 추방재판. 결과는 추방 결정이었다. 많은 증거들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울었다. “우리 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마흔이 넘어 아들이 쫓겨온다는 소식. 그 결정을 들은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다. “돈 많은 사람처럼 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100% 너를 사랑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처음 화상통화를 통해 했던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안아줄게.”

2016년 11월17일 아담은 그 37년 간의 타국 생활을 끝내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게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긴 세월, 그가 걸어왔던 건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고국도 낯선 땅이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은 37년 전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그가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은 어째서 이처럼 기구한 삶을 산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기에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힘겨워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가난함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37년 후 여전히 가난한 그들은 그래도 함께 하려 하고 있다. 적어도 서로의 힘겨움을 넉넉히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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