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문제도 해법도 청중에게 있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는 가수의 무대일까, 청중의 무대일까.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제목을 보면 마치 이 무대가 가수가 주인공인 무대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가수다'는 철저히 청중과 대중이 주인공인 무대다. 이 무대가 특별한 것은 가수들보다는(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청중들 덕분이다. 아주 미세한 숨소리까지 긴장하며 들어주는 청중이 있기 때문에 가수들은 더 긴장하고 자신의 전력을 다하게 된다.

게다가 이 가수들은 지금껏 TV를 통해서는 '들어주는 귀'가 별로 없던 가수들이다. 그러니 이런 청중이 있는 무대가 주는 힘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가창력이 좋은 가수라고 해도 '들어주는 귀(이것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잘 부르지도 못할 것이다. 노래는 '공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라이브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부르는 노래가 더 깊은 감흥을 주는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청중들의 귀는 훈련받은 귀가 아니라 그저 감성과 자극에 솔직한 귀다. 그러니 자극이 강한 지르는 창법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부르는 노래보다 먼저 더 귀에 박히기 마련이다. 조규찬의 도전 첫 라운드에서의 탈락과, 특집으로 기획된 '나가수 출신 가수들'의 경연에서 이소라가 7위를 한 것에 대해 이른바 '막귀 논란'이 생긴 건 이러한 가수별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어 보이는 경연 시스템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전문가들에게 일정 부분 경연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장르적인 고려가 가능해져 좀 더 다양한 가수들이 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막귀 논란'에 대한 지적은 어딘지 논리적인 모순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이 막연히 '나는 가수다'의 청중이라고 지칭하는 그들은 어쩌면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청중평가단을 신청할 수 있고 평가단에 선정되면 투표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막귀'라는 지적하는 그들은 사실은 우리 자신이다. 김영희PD가 "지금 청중평가단도 달라지고 있다"고 얘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막귀 지적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 바로 그 달라지고 있는 청중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 말은 '나는 가수다'의 투표 시스템이 결국 청중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이미 그 해결책도 제시되는 셈이란 얘기다.

본래 투표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렇다. 누가 더 낫고 못하다는 것을 어떻게 절대적인 기준으로 따질 수 있을까. 다만 한 명을 뽑는 것이니(물론 '나가수'는 세 명을 투표하지만) 각자 청중들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 투표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투표하는 청중들도 여론을 인식하고 있다. 지르는 노래가 당장 귀에는 들어오지만 그것만 좋은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는 가수다'는 어느 순간에는 지르기만 하는 가수를 외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딘지 촌스러운 발악처럼 여겨질 지도.

'나는 가수다'에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이미 변화를 담보하고 있다. 그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애초부터 가수들의 무대가 아니라 청중들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청중들이 원하는 것을 가수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들여 부르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수들의 존재이유이도 하다. '나는 가수다'라는 가수들의 자기존재 증명은 홀로 자기감정에만 빠져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거기 앉아 있는 청중들과 호흡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의 진면목은 어쩌면 '나는 청중이다'인지도 모른다.

인순이, 무엇이 그녀를 '나는 가수다'라고 외치게 했나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는 누가 봐도 전설이다. 그녀가 지금껏 해온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희자매라는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걸 그룹으로 데뷔했고, 혼혈의 편견이 여전할 때 솔로로 홀로섰다. 오로지 실력으로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했고, 이제 잊혀지는가 싶을 정도로 10여년 간이나 활동을 접고 있다가 조PD와 함께 발표한 곡 '친구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또 '거위의 꿈'은 원더걸스의 '텔미'를 누르고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0년 발표한 '아버지'라는 곡은 당시 라디오 방송횟수에서 이효리나 비 같은 젊은 가수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섰다. 그녀가 이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나가수 자문위원회'에서는 심지어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전설은 전설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은 건 인순이의 '가수 선언'이었다. 자신은 늘 현역 가수로 남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나는 가수다'에 올랐다. 어쩌면 그 제목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전설은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여전히 긴장되고 여전히 설레는 무대 위에서 온몸을 던져 노래 부르는 그녀는 진정한 가수였다.

전설. 혹은 레전드. 정말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달콤함만큼 씁쓸함도 있는 말이다. 전설이라는 말 속에는 어딘지 과거형의 뉘앙스가 살아있다. 그래서 전설로 추대되면 그 남긴 공적에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형을 희생해야 한다. 전설은 누군가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존재이지, 지금 현재 자신의 힘으로 현재의 관객과 소통하는 존재는 되기가 어렵다. 인순이가 버린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했다.

이것은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행보 그대로다. 그녀는 늘 현재를 선택해왔다. 희자매가 꽤 인기를 끌었을 때도 자신의 가창력은 혼혈이라는 이질적인 외모에 가려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밤이면 밤마다'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는 갑자기 달라진 가요계 환경 속에서도 밤무대에 서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다시 복귀한 무대가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만이 아니라 '뮤직뱅크' 같은 현재형 무대였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지금 현재를 선택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현재형 무대를.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현재형 무대에 머물도록 만들었을까. 인순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을 고집하면서 그녀는 왜 그토록 과거로 매몰되거나 한때 '노래 잘하는 혼혈 가수가 있었다'는 기억 속에 머물기를 거부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의 증명을 위한 안간힘이었을 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거부되는 존재처럼 치부된 세상을 향해, 그녀는 "나는 인순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 어떤 설명을 들려주지 않아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라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심지어 댄스곡인 '난 괜찮아' 같은 노래마저도 특별하게 들리는 것은 그 노래를 다름 아닌 이미 전설이 되도 좋을 만큼 많은 삶의 질곡을 겪어온 현재형 가수 인순이가 부르기 때문이다.

전설이 되긴 쉬워도(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전설이라 부를 때 그것을 거부하고 "나는 가수다!"라고 선언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인순이는 그 어려운 일을 현재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다. 인순이 같은 거목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젊은 가수들이(상대적으로)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한 건, 오로지 박제된 상찬을 버리고 스스로 무대로 내려온 가수 인순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녀는 가수다.


가수, 무대, 음악의 조화가 불러온 진정성의 힘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임재범도 울고 동료가수도 울고 관객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이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의 힘이었을까, 임재범이라는 가수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여러분'이라는 노래의 힘이었을까. 아마도 이 세 요소 모두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가수들의 스토리를 담고 그들의 무대를 최고치로 끌어올려주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있었고, 그 무대라는 정글에 거친 삶을 그대로 노래에 녹여내며 부르는 가수 임재범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가사 하나하나가 힘겨운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여러분'이라는 곡이 있었다. 이 진정성 덩어리의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강심장이 있을까.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부른다는 그 사실 자체가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여러분'이라는 곡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윤복희가 불러 대상을 탄 이 곡은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었다. 윤복희의 절절한 가창력에 가요제가 갖는 라이브 무대의 감동, 게다가 '여러분'이라는 곡이 전하는 가수의 진정성이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라는 곡은 노래가 주는 기쁨과 가수라는 직업이 가진 소명을 담은 자기 고백이다. 괴로울 때 위로해 주는 존재이고 서러울 때 눈물이 되는 존재이며 두려울 때 등불이 되고 쓸쓸할 때 벗이 되어주는 존재. 그것이 가수의 소명이고 노래의 힘이다. 그래서 가수는 '여러분의 영원한 노래'가 되고픈 것이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해주는 건 그렇게 자신을 노래가 되게 해주는 '여러분'이라는 존재라는 것.

윤복희가 처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대중들이 감동한 것은 그 놀라운 가창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노래가 전하는 절절한 진정성이 그녀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란 곡은 무대에서 살며 성장해온 윤복희라는 가수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각오까지.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가창력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의 무대였다. 경연이 끝난 후 임재범이 이 거대한 노래에 대한 부담감을 전하면서 이 노래를 "너무 완벽해 편곡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곡"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 노래가 입으로 불러서는 대중들에게 온전한 감동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온 몸으로, 자신의 삶을 온통 다 담아서 부름으로써 윤복희가 보여줬던 그 진정성의 힘을 되살려냈다. 임재범의 재해석은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에 담겨지는 자신만의 진정성을 넣는 것이었던 것.

이 진정성이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서의 '여러분'이라는 곡은 여러 모로 우리에게 잊혀졌던 한 시대의 라이브 무대들을 떠올리게 한다. 해외에서 돌아와 첫 무대에서 대중들을 울렸던 조용필의 무대, 국제가요제에서 감동을 주었던 윤복희의 무대... 그 무대들은 음악이 리듬과 멜로디와 가사의 조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감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곤 했다. 언제부턴가 이 사라져버린 무대의 감동을 '나는 가수다'가 되살려 놓은 것이다. 임재범의 '여러분'은 바로 그 무대의 감동을 가장 최고점으로 끌어올려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수이고, 이것이 음악이며, 이것이 진정한 노래의 힘이다.


 

'강심장'(사진출처:SBS)

'강심장'의 박상혁 PD는 "차세대 예능을 진두지휘할 MC는 가수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직까지 강호동이나 유재석, 신동엽, 이경규 같은 개그맨들이 예능의 대표 MC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자리에 가수들이 서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현장에서 뛰면서 감각적으로 익힌 박상혁 PD만의 확실한 근거가 들어가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예능에 있어서 다양한 경험, 즉 연기나 노래, 예능까지를 해본 인물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모델로서 박상혁 PD가 보는 인물이 바로 이승기다. '찬란한 유산'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로 연기를 경험했고, '1박2일'을 통해 예능의 내공을 다졌으며, 가수로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경험은 토크쇼 등의 MC로서 더 많은 게스트들과 나누는 공감대가 그만큼 넓다는 걸 말해준다.

'강심장'에 출연한 장신영이 '나는 전설이다'의 마돈나 밴드로 실제 공연을 할 때 본래 앞쪽에 드럼을 세팅해주겠다던 약속이 깨진 사연을 얘기하자, 곧바로 이승기가 음의 조화를 위해 드럼은 뒤쪽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수였기에 가능한 얘기다. 또 연기자가 나와서 촬영이 끝난 후에도 몰입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면 거기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줄 수 있는 것도 이승기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강호동은 큰 리액션으로 호응을 해주긴 하지만 어떤 디테일한 접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승기의 다양한 경험이 MC로서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순발력이나 끼로 대변되는 이른바 예능감이다. 그 점에 있어서 이승기는 거의 전적으로 강호동을 보며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1박2일'에서 이승기의 변화는 괄목상대할 만하다. 초창기 거의 분위기에 적응 못했던 이 바른 청년은 놀랍게도 그 바른 이미지를 거의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확실히 예능에 적응했다. 강호동이라는 큰 형의 기에 눌려 있던 이승기는 이제 말 한 마디로 강호동의 의표를 찌르는 순발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강심장'에서 강호동과 2MC로 서는 이승기는 말 그대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강호동을 상정하고 기획된 토크쇼인데다, 워낙 강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자칫 병풍이 될 위험성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 바른 청년은 공부하듯이 예능을 익혀나갔다. 박상혁 PD에 의하면 이승기는 대본에 미리 할 얘기들을 빽빽이 적어서 준비하고, 거기에 틈날 때마다 해줄 우스운 이야기를 열 개씩 준비한다고 한다. 녹화가 끝나고 "오늘은 네 개밖에 못 했다"며 아쉬워하는 이승기를 볼 때마다 이 청년이 어떻게 이 예능의 거목 옆에서 버티고 있는 지를 실감한다고 했다.

'강심장'에서 강호동과 나란히 서 있기 때문에 강호동이 게스트쪽으로 몸을 돌리면 이승기는 말 그대로 병풍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승기는 이 지점에서 강호동의 등을 두드리며 딴지를 거는 인물이다. 따라서 어떨 때보면 만일 강호동 혼자 MC로 서 있었다면 가질 수 있었을 강호동의 독주를 적절히 유화시키고 막아서는 역할을 하는 이승기는 '강심장'에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승기는 강호동의 청출어람이자 현재 변화하고 있는 예능 트렌드 속에서 주목되는 차세대 MC 감이다. 그것은 이승기가 그동안 해왔던 다채로운 경험들과, 예능 프로그램을 하며 준비해온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자칫 최고의 위치에서 해이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승기의 모습은, 이런 장밋빛 예상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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