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혼’의 멜로가 특별한 건 사제, 주종 케미를 가장해서다

환혼

“제가 무덕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지가 도련님을 진짜로 좋아해유.”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장욱(이재욱)과 무덕이(정소민)는 그렇게 각각 송림의 총수 박진(유준상)에게 말한다. 둘 사이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각각 물어보며 만일 답변이 틀릴 시 무덕이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박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갖고 있던 음양옥을 꺼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박진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환혼>이 장욱과 무덕이의 멜로를 그리는 특별한 방식이 들어있다. <환혼>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절묘한 위기 상황과 엮어 드러낸다. 환혼인을 추적하며 장욱과 무덕이의 비밀을 캐묻는 박진 앞에서 두 사람은 피해나갈 묘수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그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죽도록 좋아한다는 말을 죽지 못해 자백”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무덕이 역시 장욱을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차례 들킨 바 있어서다. 

 

무덕이 얼버무리며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하자 장욱은 진지하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스승님 죽어도 좋으면 버리지 않고 하던 거 계속 해도 됩니까? 제자가 죽을 결심을 할 땐 스승님도 함께 해야 된다고 했지? 난 죽어도 계속 할 거야. 그러니 우리 무덕이도 어렵게 자백한대로 계속해서 도련님을 죽도록 좋아해봐.” 그런데 그 말투가 존대와 하대를 넘나든다. 스승에게 하던 말투에서 하인에게 하는 말투로 넘어가는 것. 그건 사제 관계이기도 하고 주종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그것이 그저 가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상은 연인 관계라는 것. 

 

<환혼>에는 이처럼 장욱과 무덕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간 사제이자 주종을 가장했던 관계를 뚫고 드러나는 실제 연인 관계의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천부관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무덕이가 어찌된 일인지 수기를 빼내려는 환관으로부터 거꾸로 수기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러자 자신이 폭주한 줄 알고 다가오는 장욱을 무덕이가 막으려했을 때도 이런 멜로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 “안돼. 만지지마 내가 폭주한 거면, 네가 나를 만지면 너는 수기를 빼앗겨 죽을 거야.”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장욱은 무덕이를 꼭 껴안아준다. 그건 장욱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무덕이가 폭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장욱이 송림의 정진각 술사로 들어가고, 자격이 없는 무덕이는 송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른바 ‘송림하인선발대회’에 나가겠다며 장욱에게 던졌던 고지문에 대한 에피소드도 이들의 애틋한 관계를 에둘러 드러낸다. 결국 무덕이가 대회에 나가 하인으로 선발되고 송림에 들어오게 됐을 때 장욱은 무덕이가 던졌던 그 고지문을 꺼내 보이며 거기 담긴 의미를 자신이 읽었다고 말한다. “내가 이 짓을 해서라도 너를 꼭 보러 가겠다. 너만 볼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것. 

 

그러자 무덕이는 애써 이를 부인하며 그 종이를 태워버린다. 하지만 장욱은 “이미 주고받은 게 태운다고 없어지겠냐”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스승님. 제자가 최근에 안 보이느 걸 읽는 걸 읽는 술법을 익혔습니다. 심서를 읽었다고 했잖아. 한번 보실래요? 보이지 않는 걸 읽을 땐 이렇게 집중해서 들여다 봐야 돼. 그리고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거야. 무덕아.” 결국 장욱의 그 말에 무덕이는 속내를 들켜버린다. 그러자 장욱이 말한다. “읽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냐. 그저 숨기고 있는 거지.”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 아마도 <환혼>에서 장욱과 무덕이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일 게다. 사제와 주종을 가장해 숨기고 있지만 특정한 상황 속에서 저도 모르게 불쑥 불쑥 나오는 마음들과, 거부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가는 것. 마치 음양옥이 서로 반응하듯 불이 켜지고 부인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되는 그 마음을 읽게 되는 것. <환혼>의 멜로는 그렇게 무심한 척 시청자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사진:tvN)

'삼시세끼', 유해진의 너스레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단함

 

"야 진짜 해진씨가 고생 많이 했겠다. 계속 만재도부터 혼자.. 아 정말 그니까 이렇게 계속 있었을 거 아니야. 허리 아픈데.." tvN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간만에 유해진을 따라 낚시에 나간 차승원이 손호준에게 그렇게 말한다. 뭐라도 잡아오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저녁에 터덜터덜 빈 양동이를 들고 들어오며 괜스레 멋쩍은 듯 농담과 너스레를 늘어놓던 유해진의 얼굴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 너스레 속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단함을 차승원은 그 몇 시간의 갯바위 낚시를 통해 슬쩍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손호준씨가 (같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많이 못하잖아요. 계속 낚싯대만 보고 있으니까. 만재도에서 특히나 예전에 죽 만들어서 배달했을 때 7시간 정도를 비탈 있는 바위에서 낚시를 했거든요. 근데 처음에는 낚시 나갈 때 바다도 보고 나름 괜찮겠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외롭고 고단하고.. 그리고 심적인 부담감. 왜냐하면 뭐라도 잡아와야 하는데 이런 거. 되게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은 거야."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차승원은 유해진의 무거웠을 어깨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닷가에 낚싯대만 던져 놓으면 척척 물고기가 잡힐 것 같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 입질조차 없는 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비탈이 있는 곳에 서 있기도 힘들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몸도 얼얼해지는 그런 시간들 속에 유해진은 서 있었다.

 

하지만 특유의 유머와 농담을 유해진은 계속 던졌다.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에게 "오래 걸려"라며 서있지 말고 앉아 있으라 얘기해주며 웃는 유해진의 모습에서 못 잡았을 때의 그 마음의 무게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낚시에도 타인을 먼저 챙기는 유해진이 아닌가. 그러니 자신이 잡아올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이 느낄 실망감을 어찌 그가 모를까.

 

그래도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역시 차승원이다. 무전기로 괜스레 아무 것도 못 잡으면 저녁에 대안이 있냐고 묻자 차승원은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해진의 농담이 이어진다. "뭉툭한 건?" 차승원은 그 농담을 또 받아준다. "뭉툭한 건 있어." "그걸로 먹자." 없고 부족해도 웃을 수 있는 건 그 없는 상황조차 농담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다.

 

유해진의 부담감을 제대로 알게 된 차승원은 유해진에게 무전으로 "대안을 생각해놨다"며 김치부침개를 해먹자고 한다. 그 말에 유해진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그것도 맛있다"고 말하고, 차승원은 부담을 덜어주는 말을 툭 던진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자구." 그런 이야기들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손호준이 마치 유해진의 너스레가 전염된 듯 농담을 던진다. "내일 날씨도 안 좋고 그러면 저번에 갔던 레스토랑 한 번 더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농담에 차승원은 빵 터진다. 그건 지난 번 먹을 게 없어 감자, 고구마를 삶고 구워내 마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처럼 유해진이 유쾌한 상황극을 했던 걸 말한다.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유해진이 끊임없이 던지는 아재개그와 너스레다. 그는 힘들 수도 있는 상황에도 그걸 슬쩍 뒤집어 농담을 던짐으로써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끝없는 너스레와 농담은 차승원이 직접 겪어보고 알게 된 것처럼 쉽지 않은 부담감과 고단함을 슬쩍 감추고 다른 이들을 웃게 만드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5년 만에 참돔을 잡아 며칠 간 참돔으로 몇 끼를 해먹을 정도로 풍요로운(?) 시간들도 있었지만, 어쩌면 꽤 많은 다른 시간들은 늘 부족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며 느껴왔던 풍요로움과 여유는 실제 먹거리가 풍족해서가 아니라 없어도 마법처럼 풍족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차승원과, 헛헛함을 너스레와 유머로 채워 정신적 포만감을 주는 유해진 그리고 '없이 살아도(?)' 잘 따라주고 그림자처럼 챙겨주는 손호준이 있어서였을 게다. 마치 누구나의 가족이 그러하듯이.(사진:tvN)

‘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황금빛 내 인생’ 천호진과 김병기, 두 가장의 너무 다른 행보

슬퍼도 너무 슬픈 가장의 희생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천호진)는 우리 시대 희생하는 가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너무 가시밭길만이 이어져 심지어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까지 하는 이 가장은 한때 상상암을 진짜인 줄 알고 오히려 ‘축복’이라 여긴 바 있다. 하지만 가족의 남다른 사랑으로 이제 조금씩 다시 살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차에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삶이 너무 힘들어 암 통보조차 ‘축복’이라며 웃음을 짓던 이 아픈 가장은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 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끝까지 챙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진단으로 받은 보험금을 딸 지안(신혜선)의 핀란드 유학비로 건네주고, 아픈 와중에도 서지안과 서지수를 걱정했다. 

서지수(서은수)의 친부모인 노명희(나영희)와 최재성(전노민)이 노진희(전수경) 부부에 의해 주주총회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중소주주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이 노진희의 차명계좌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다닌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서지안의 물음에 서태수는 그것이 자신의 딸 서지수의 친부모 일이고 또 딸 서지안이 사랑하는 사람 최도경(박시후)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주주총회에서 위기에 처한 노명희와 최재성 그리고 최도경은 서태수의 결정적인 증거로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너무 가시밭길의 연속이기 때문에 서태수의 희생을 바라보는 것이 힘겹다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가족을 위한 가장의 희생을 굳이 집어넣은 건,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해성그룹 노양호(김병기) 회장과의 대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노양호 회장 역시 여러 차례 의식을 잃는 위기를 겪지만 깨어날 때마다 각성은커녕 자신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노양호 회장은 해성그룹을 자신이 홀로 일궈왔다며 딸 노진희가 모든 걸 가로채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노진희의 그건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틀린 건 아니다. 창업자의 가족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지금의 변화된 기업문화의 바람직한 양태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갖고 있는 두 인물의 이토록 다른 양상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금수저든 흙수저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걸 접한 이들의 반응은 너무나 다르다. 없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가진 이들은 가족보다는 자신을 챙기려 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달라서 달라지는 반응일 수밖에 없다. 

서태수와 노양호 회장의 서로 다른 가장의 모습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느 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가를 생각해보면 서태수의 희생이 주는 느낌은 숭고함까지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삶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일까. 시청자들은 이런 선택을 하는 서태수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족들과의 행복을 함께 누리길 바란다. 비록 기적 같은 일이 필요할지라도.(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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