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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비하 논란이 촉발한 웃음의 타자 민감성 

그 때는 그냥 넘어갔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최근 <웃찾사>의 홍현희가 한 흑인 분장 개그에 대한 설전과 논란은 웃음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웃찾사(사진출처:SBS)'

인종을 놀리는 일이 전혀 웃기는 일이 아니며 한심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샘 해밍턴의 문제제기는 즉각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일으켰다. 사실 그 개그를 보며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느낌을 가졌던 시청자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것을 끄집어냄으로써, 그것이 사실은 과거에도 그리고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웃찾사> 측은 즉시 사과하고 해당 영상 삭제조치까지 했다. 즉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암시한다. 샘 해밍턴의 공개적인 비판에 황현희가 나서 그 지적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건 이 문제가 향후 개그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를 예고하는 일이었다.

황현희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 같은 사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는 샘 해밍턴의 비판이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비하로 몰아가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가 지금껏 즐겨왔던 영구, 맹구 같은 캐릭터들 역시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밝혔다.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가 있었으며 그것 역시 “흑인비하”인 것인가 하고 되물었고 나아가 샘 해밍턴이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여유롭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황현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강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황현희 역시 이렇게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은 것처럼 치부되었지만(물론 시커먼스는 과거에도 문제로 지적되었지만) 지금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실제로 황현희의 말대로 과거 개그프로그램들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외모 비하 개그나 가학성이 짙은 개그 때로는 집단 괴롭힘이 깔려있는 개그 같은 것들이 “웃음을 준다”는 대전제 아래 용인되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드러낸 건 웃음에 있어서도 타인을 비하하거나 그 고통을 희화화하는 방식은 더 이상 웃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 희화화의 대상이 소수이고 그걸 보고 웃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그 소수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식이 다수에게도 똑같이 느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웃음이 될 수 없다.

과거에는 아무 문제가 안됐는데 왜 지금은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문제라는 것. 다만 과거에는 그것을 문제로 공감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많은 이들이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진행도중 불거진 송해의 아동 성추행 논란 역시 이 연장선이다. 과거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의 고추를 만지는 일이 실제로 그저 장난처럼 치부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 행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안은 지금까지 해오던 많은 개그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타자에 대한 훨씬 민감한 시선을 개그, 나아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 과거에는 웃음을 준다는 대전제 하에 용인됐던 많은 문젯거리들이 이제는 그 문제들 때문에 더 이상 웃을 수 없다는 대중들의 의식 있는 반발에 직면하게 됐다.

Posted by 더키앙

<웃찾사>를 살린 일등공신은 <개콘>이다

 

편성을 변경해 KBS <개그콘서트>와 동시간대 대결을 벌인 <웃찾사>.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시청률로만 보면 <개그콘서트>의 당연한 압승이다. <개그콘서트>12.7%(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반면 <웃찾사>5.9%로 절반가량 적은 시청률 수치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웃찾사(사진출처:SBS)'

하지만 <개그콘서트><웃찾사>의 이 시청률 수치는 단순 비교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그콘서트>는 오래도록 그 시간대를 점유해온 수치인 반면, <웃찾사>는 이제 겨우 편성 시간대를 옮긴 첫 회의 시청률이기 때문이다. <웃찾사>가 옮겨온 후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지난 13.9%보다 1.2% 포인트 하락했다. 대신 <웃찾사>가 들어온 후 SBS는 이전 <떴다 패밀리> 마지막회 시청률인 2.3%에서 두 배 가량 시청률이 오른 셈이다.

 

즉 이 시간대의 시청률을 어느 정도 회복시킨 것만으로도 <웃찾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웃찾사>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를 편성 변경 하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역시 <개그콘서트> 덕분이다.

 

<웃찾사>는 본래부터 <개그콘서트>와의 맞대결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시기를 앞당기게 한 장본인은 <개그콘서트>. 최근 들어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코너들도 정체된 느낌을 주면서 <개그콘서트>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웃찾사>는 발 빠르게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한편 현실에 대한 공감과 신랄한 풍자를 다루면서 <웃찾사>에 대한 호감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뿌리 없는 나무‘LTE뉴스’, ‘배우고 싶어요같은 코너들이 화제를 만들고 있었던 것. 일요일 밤으로 돌아온 <웃찾사>는 여기에 강성범의 모란봉 홈쇼핑같은 새 코너를 장착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웃찾사><개그콘서트>의 아성을 공략하기에는 중과부적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은 <웃찾사>로서는 가장 좋은 이점으로 작용한다. 웃음의 코드는 결국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력이 세고, 대중적인 지지도 커지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풍자와 공감으로 끌어내 웃음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건, 그것을 하는 개그맨들이 서민과 같은 낮은 위치에 서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웃찾사>를 살려내고 있는 건 그 경쟁상대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개그콘서트>라는 존재다. <개그콘서트>라는 골리앗이 서 있어 <웃찾사>라는 다윗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개그콘서트>에도 큰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독주체제란 매너리즘을 만들 위험성도 높고 또 대중들에게도 그리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웃찾사>가 들어와 <개그콘서트>와 경쟁구도를 만들면서 이 시간대를 빼앗아간 MBC의 드라마와의 한판 승부가 앞으로 흥미진진한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웃찾사><개그콘서트>의 경쟁구도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편성 시간대를 무대 개그 프로그램의 시간으로 포지셔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웃찾사>의 편성 시간대 변경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Posted by 더키앙

웃픈 현실 담은 <개콘>의 부활이 말해주는 것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개그콘서트> ‘렛잇비의 마지막 후렴구는 이 우스운 개그에 깊은 페이소스를 만든다. 비틀즈의 렛잇비를 개사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노래로 반전의 웃음을 제공하는 이 코너는 웃지 못할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 하루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날, 입금과 함께 빠져나가는 돈으로 빈털터리가 되는 이야기는 집세에 생활비에 결국 빚쟁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을 제대로 꼬집는다. 입사해 남들 쉴 때 쉬지 않고 앉아 일해서 얻은 건 하체비만이라는 노랫가사에도 힘겨운 회사생활에 몸을 망치는 직장인들의 비애가 묻어난다.

 

이것은 말단 직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뒷담화는 기본이고 회식도 안 끼워주며 심지어 커피에 침 뱉고 카푸치노라고 갖다 주는 부하직원들 때문에 직장상사들도 힘겹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말하다가도 연봉이 2억이라는 말에 롤 모델삼는 것일 게다. 또 일도 못하면서 외모만 신경쓰는 여직원을 욕하면서도 회장님 며느리가 된 그녀를 롤 모델이라 외치는 것일 게다.

 

렛잇비가 샐러리맨들의 현실적인 삶을 개그소재로 한다면 새로 시작한 만수르는 비현실적인 재벌의 판타지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1400조의 재산으로 세계 재벌 만수르의 돈 이야기는 너무 어마어마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위화감이 아니라 웃음이 되는 이유는 모나리자 원본 그림을 1500억에 낙찰해 가져와서는 중고라 싸게 샀나봐?”라고 말하고, 그 얼굴에 낙서를 해대는 장면이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현관에서 직진해 안방사거리를 지나 부엌 톨게이트를 통과하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커다란 괴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웃음을 준다. 생일파티 사회자로 짐 캐리 대신 김준현을 해달라는 아들에게 니가 그지야? 어디 집안에 각설이를 들여?”하고 화를 내고, 벌을 준답시고 가서 금 들고 서 있어라고 하거나 집 나간다는 아들에게 집 나가는 게 쉬운 줄 알아? 2년 걸려 임마!”하고 말하는 장면도 그 비현실감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편 또 다른 새 코너인 참 좋은 시절은 보증 잘못 서서 가난에 허덕이는 집안의 잠자리 풍경이 소재다. ‘만수르하고는 정반대 상황. 가장인 양선일은 아내와 자식들의 은근한(?) 질책에 흐느낀다. 그 우는 것마저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라는 딸의 대사는 웃기지만 슬프다. 이 코너에서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아들의 말은 꿈 속 잠꼬대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참 좋은 시절은 역설적인 표현인 셈이다. 참 어려운 세상이다.

 

최근 그간 살짝 주춤했던 <개그콘서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역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웃픈개그들에서 나오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이들 웃픈 개그들을 통해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힘들어도 렛 잇 비.

 

Posted by 더키앙

<별그대>를 깨운 전지현의 개그본능

 

<별에서 온 그대>가 이제 종영을 앞두고 있다. 최근 들어 이토록 뜨거웠던 드라마도 드물다. 그 힘은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도 들썩이게 했다. 심지어 전지현을 통해 치맥 문화가 전파될 정도라니 말 다했다. 벌써부터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희비극의 공존 때문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별에서 온 그대>400년을 넘는 외계인과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체접촉을 하는 것조차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관계는 그 자체에 근본적으로 비극을 깔고 있다. 천송이(전지현)와 도민준(김수현)이 서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치 헤어짐을 앞둔 연인처럼 비극의 강도도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는 이 비극적 상황을 비극으로 그려내기보다는 유쾌한 희극으로 채워 넣으려 노력했다. 천송이를 살해하려는 이재경(신성록)의 위협 속에서도 그녀와 도민준의 관계는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발했다. 확실히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는 <개그콘서트>를 염두에 둔 콩트 코미디를 드라마에 가미해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전지현의 개그본능은 이 드라마의 천송이 캐릭터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냈다. “하지마- 그러지마-”하며 <개그콘서트>의 오나미를 패러디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마치 <개그콘서트>의 옛 코너 패션 No.5’의 장도연을 보는 듯한 포즈로 빵 터지는 웃음을 제공하기도 했다. 톱배우라는 근자감으로 허세 가득한 그녀가 속내를 들키며 만들어내는 웃음 속에서 여신은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천송이의 소속사가 마치 뿜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것이나, 도민준의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석(오상진)검사와 박형사(김희원)에서 <개그콘서트>의 옛 코너 나쁜 사람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콩트 코미디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 작가로 시작했던 박지은 작가의 구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축조된 웃음들은 그저 웃기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도민준과 천송이에게 하나의 장벽처럼 놓여져 있는 시간(한정된 시간 혹은 시간의 양)에 대한 박지은 작가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도민준이 다가오는 이별 앞에서 천송이에게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은 야속하게 모든 걸 해체시켜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의 행복마저 지워낼 수는 없다는 것.

 

결국 비극을 전제하고도 그 안에 웃음을 가득 채운 <별에서 온 그대>는 그 자체로 우리네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다. 끝없이 개그본능을 드러내며 웃음을 주었던 천송이는 사실상 인생의 행복을 표징하는 인물이었고, 400년을 살아오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웃음마저 잃어버렸지만 그녀를 통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가는 도민준이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에필로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도민준은 이제 천송이가 프로포즈 선물로 남긴 동영상을 보며 울면서 웃는다.

 

우리네 삶이 바로 그런 희비극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헤어질 것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을 때 한껏 웃어주는 것. <별에서 온 그대>가 보여준 99%의 웃음과 1%의 눈물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원 없이 웃고 행복해졌던 것은 운명의 비극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애써 웃으려 노력한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닮았지만 닮아서는 안 되는 것, 개그와 정치

개그와 정치는 냉소적으로 보면 닮았다. 이른바 “웃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그 프로그램에서 종종 정치는 훌륭한 풍자개그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래서일까. 허경영 총재의 연이은 대선 출마는 투표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에 한 바탕의 웃음으로 기억된다. 황당한 공약과 주장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 자체가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는 정치풍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표를 하는 세대와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면서 허경영 총재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허경영 총재의 정치적인 이야기는 분명 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그적인 재미를 갖추면서 지지를 받게 되었다. 분명 달라야 하는 정치와 개그가 같은 맥락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도대체 허경영 신드롬이 왜 지금 일고 있느냐고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 신드롬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개그맨 뺨치는 인기를 통해 놀라울 것도 없는 행보지만, 정치인으로서 등장한 허경영 총재가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따라서 이미지의 혼동을 주게 된다. 그것이 늘 개그 같은 공약을 세워왔던 정치인으로서의 허경영 총재인지, 아니면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으니 어쨌든 재미를 주기 위해 개그를 하는 허경영 총재인지 불분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이미지는 결국 둘 다 허경영 총재의 실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웃고 넘기겠지만.

정치인이 시사 대담 프로그램이나 뉴스가 아닌 개그 프로그램,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으로 공공연히 자신의 인기도를 얘기할 때, 그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인기도일까, 연예인으로서의 인기도일까. 문제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이미지의 힘이 자칫 정치적 권력과 맞닿으면서 생겨나는 부작용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이제 더 이상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될 판인데,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허경영 신드롬의 함정’으로 우리는 실제 그 상황까지 목도하게 됐다.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어 ‘눈빛 하나로 환자를 고친다’는 허경영 총재가 정작 자신은 콧물 감기에 걸려 약을 사 먹는 장면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 이외에 사업적 목적으로 운영 되서는 안 되는 정당의 사업에 당당한 모습과, 비례대표제 공천을 미끼로 노골적인 액수를 들먹이며 국회의원 뺏지를 운운하는 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PD수첩’에서 허경영 총재가 자신의 인기도를 말하면서 언급한 시청률이다. “자신이 나가면 시청률이 두 배로 오를 정도”라는 것. 결과적으로 따지면 KBS ‘폭소클럽’이나 ‘연예가 중계’ 그리고 각종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에서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허경영 총재를 출연시킨 것은 바로 그 시청률이란 괴물 때문이었다. 하지만 되묻고 싶은 것은 아무리 재미있다손 치더라도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또한 정치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던 것일까. 혹 모른 게 아니라 그저 재미있으면 끝이라는 스스로 자신들 프로그램의 영향력에 대한 비하적인 관점을 가진 채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허경영 신드롬은 우리네 정치가와 연예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그만큼 정치가 그동안 참 재미가 없었다는 반증이며, 게다가 일부 정치인들의 개그맨 뺨치는 행보에 대한 냉소적 시선들은 정치인의 위상을 개그맨과 거의 같은 위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것은 연예가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때론 재미만 있으면 다 된다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말해주기도 한다. 정치와 개그는 정말 닮아 보이지만, 실로 이 둘은 닮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허경영 신드롬은 바로 이 두 지점이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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