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우리가 보던 흔한 법정물과 다른 지점

억울한 피해자와 공분을 일으키는 가해자. 증거를 찾아 가해자를 검거하려는 검사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변호사. 혹은 공명정대한 사이다 판결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아니면 권력과 결탁해 약한 자들을 짓밟는 판사. 대체로 우리가 법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던 캐릭터들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부터 대놓고 법정물을 기대하게 하는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그 장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스 함무라비>는 이들 법정물들이 그려내는 그런 장르적 이야기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것이 그런 법정 사건들 자체가 가진 이야기성에만 기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이 드라마가 더 주목하는 건 그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미스 함무라비> 2회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다양한 사건들이 왜 더 자세히 등장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졌을 수 있다. 박차오름(고아라)이라는 열정적이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진 신입 판사가, 바로 그 개인의 열정 때문에 조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을 꽤 오래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차오름의 이런 순수한 열정과 전면적으로 부딪치는 인물은 바로 부장판사인 한세상(성동일)이다. 재판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차오름에게 지청구를 날리는 한세상. 결국 박차오름은 바로 이런 남다른 동정심과 공감능력으로 인해 사고를 친다. 채무자 할머니의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 박차오름은 판사라는 직업의 본분을 망각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것.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박차오름과의 관계를 이용해 상대방을 협박하는 일을 벌인다.

한세상은 그런 열정과 지나친 공감능력이 판사로서의 직업적 본분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차오름은 그 소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손님 사이에 벌어진 법정 소송에 있어서 감동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그저 대충 합의로 끝내라는 한세상의 명을 어기고 제대로 잘잘못을 판결하겠다고 나선 그 법정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인 그 손님의 마음을 들여다 본 박차오름으로 인해 주인과 종업원이 모두 사과를 하고 손님도 소송을 취하하게 되는 결과를 얻어낸 것.

결국 판사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판단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내막을 깊이 들어주고 그 사연에 공감해줌으로써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라마는 박차오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판사라 표정을 보여서는 안되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 

작가가 현업에 있는 문유석 판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현실적인 고민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할 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스 함무라비>에는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법정물이라고 하면 끔찍한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런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우리네 일상에 다가와 있는 느낌을 준다. 판사가 특이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법정물이라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함무라비’ 김명수와 고아라, 그 냉정과 온정 사이

판사라면 어떠해야 할까. 모든 사건들을 냉정하게 다루고, 오로지 법의 틀 안에서만 바라봐야 할까. 아니면 그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야 할까. JT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첫 회는 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판사 임바른(김명수)과 박차오름(고아라)이 한 사무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임바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판사로서의 바른 길을 고집하는 인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암울하다.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에게 사람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판사라는 직업이 좋은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세상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는 월급을 기다리는 샐러리맨과 판사라는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된 건 해직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아마도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살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지만, 그렇게 기자로서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아버지는 해직되어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무능력자처럼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임바른은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렇게 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같은 사무실로 박차오름이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쩍벌남과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주머니를 그냥 넘기지 않고 일침을 가하고, 성추행범에게는 일격을 가하는 박차오름의 모습은 여러모로 임바른과는 다르다.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첫 날부터 한세상(성동일) 부장판사에게 끌려가 말도 안되는 “여자가 조신해야지” 같은 성차별적 소리까지 들었지만 박차오름은 다음 날 더 튀는 옷을 입고와 부장판사와 맞섰다.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에 히잡으로 갈아입고 나선 박차오름은 어느 것이 낫냐고 물어 부장판사의 뒷목을 잡게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지내지만 “인간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임바른과 그 인간들을 공감하는 박차오름은 너무나 달랐다. 인간의 죄를 담아낸다며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임바른에게 아예 대놓고 보라는 듯 다음날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붙이고,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책상 앞에 놓아둔 임바른과 달리, 천수대비의 상을 책상 앞에 두는 박차오름이다. 임바른이 판사로서 냉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면, 박차오름은 세상의 많은 약자들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온정을 덕목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딪침은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할머니를 두고 벌어졌다. 증거가 없어 억울한 판결을 받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시위를 할 게 아니라 항소를 하시라고 권하는 임바른과 달리, 박차오름은 그 할머니의 사연을 눈물을 흘리며 들어주고 있었다. 판사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상과 비정상을 이야기하는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정상이고 비정상인가를 되물었다.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그가 판사로서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딜레마를 첫 회부터 잘 담아내고 있다. 박차오름이 이상을 보여준다면 임바른은 현실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멜로는 단순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게 해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멜로의 구도 속에 법 정의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캐릭터를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것. 냉정한 임바른과 온정 가득한 박차오름의 케미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다.(사진:JTBC)

‘블랙’, 소재는 독특한데 어째서 이리도 어색할까

비행기를 탄 강하람(고아라)이 갑자기 옆에 탄 아이의 뒤편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는 경악하고, 기내의 많은 승객들에게도 그림자들이 있는 걸 알고는 미친 듯이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OCN <블랙>이라는 드라마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보는 소녀가 타인의 죽음을 알면서 막지 못하는 그 능력을 ‘저주’라고 여길 때 그의 앞에 나타난 형사 한무강(송승헌)이 그건 ‘축복’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이 두 사람이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블랙(사진출처:OCN)'

이처럼 <블랙>은 최근 들어 특히 많아진, 타임리프 같은 장르적 장치를 가진(타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재의) 드라마의 참신한 변주처럼 다가왔다. 그 많은 타임리프들이 그러하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예지몽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담은 드라마들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드라마. 게다가 한무강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살아나는 대목은 향후 저승사자가 빙의된 그와 타인을 죽음을 보는 강하람과의 또 다른 모험담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난 한무강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속이 다 보이는 환자복에 잠바 하나를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그 장르적 애매함으로 인해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긴장감을 흩어 놓았다. 마치 속을 다 보이겠다는 듯 쩍벌을 하고 앉거나 롱코트만 걸친 채 바바리맨처럼 여자화장실에서 옷을 열어젖히는 장면은 코미디를 의도한 것이지만 죽음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이 드라마의 장르적 긴장감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즉 어느 정도의 유머는 괜찮을 법 했지만 이런 식의 ‘화장실 유머’가 가진 가벼움은 드라마의 성격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니 가뜩이나 연기로 해석하기 힘든 이 낯선 캐릭터 역시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기 변신을 의도한 듯 작정하고 뛰어든 모습이 역력한 송승헌이지만 그 장면들이 어떤 매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망가진 느낌을 준 건 아쉬운 대목이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고아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비행기 신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경악하고 오열하는 그 장면이 주는 충격파는 충분했지만, 그 후로 이 캐릭터는 너무 울거나 자책하는 장면들이 반복됐고, 때때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응답하라 1994> 이후 늘 보였던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문제도 적지 않다. 한무강이나 강하람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블랙>이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소재가 독특할수록 캐릭터는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야 시청자들에게 그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코미디와 스릴러가 상생하지 못하고 있는 장르적 혼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제시되지 못해 어색하게 느껴지는 연기. <블랙>이라는 괜찮은 소재의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해야할 숙제가 아닐까.

‘화랑’, 문제는 사전제작이 아니라 완성도다

KBS 월화드라마 <화랑>은 결국 7.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지상파 경쟁에서 꼴찌를 기록하며 쓸쓸히 종영했다. 사실 시작부터 그리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첫 회 시청률 6.9%. 100% 사전 제작에 중국과의 동시방영 등을 내걸었던 작품인지라(물론 이건 틀어져버렸지만) 기대감이 높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자들은 그리 반색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갈수록 식어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화랑(사진출처:KBS)'

혹자는 <화랑>의 추락의 이유로 사전제작이 가진 한계를 지목한다.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없는 게 아니다. 즉 문제가 초기에 발견됐을 때 100% 사전 제작 드라마는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화랑>의 경우 만일 사전 제작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첫 회 시청률이 6%대가 나왔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문제를 인식하고 대본 수정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화랑>은 안타깝게도 100% 제작이 완료된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사전 제작 드라마의 한계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사실 <화랑>의 이야기구조를 보면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느슨하게 드라마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된다. <화랑>은 안지공(최원영)의 아들 막문(이광수)이 죽자 대신 그의 친구인 무명(박서준)이 그가 되어 살아가면서 차츰 화랑으로 거듭 난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신라의 골품제도라는 틀이 있고 천민 출신인 무명이 실력으로 다른 화랑들의 귀감이 된다는 이야기는 금수저 흙수저로 얘기되는 현재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태생으로 결정되는 계급 시스템과 대결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그려졌을까. <화랑>은 이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악역들이 제대로 서지 못했고, 그러니 이 주인공이 대결구도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의식도 잘 드러내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이야기는 소소해지고 틀에 박힌 멜로가 빈자리를 채웠다. 여기에 천민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본래 성골이었다는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하면서 시스템과 대결하는 문제의식은 퇴색해버렸다. 결국은 잘난 출생이 숨겨져 있었다는 귀결은 얼마나 허탈한 이야기인가. 

주인공인 선우가 이렇게 제 캐릭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드라마의 또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삼맥종(박형식)은 어미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키지 않고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왕비 지소(김지수)로 인해 전혀 캐릭터가 전면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왕이면서도 왕임을 밝히지 못하는 그 설정 때문에 늘 뒤편에 숨어 있게 됐던 것. 이런 캐릭터는 마지막에 진짜 자신이 왕이라는 게 밝혀지는 그 순간 잠깐 주목되지만 그 과정들에는 대부분 묻히게 될 수밖에 없다. 

<화랑>의 문제는 사전제작으로 인해 수정을 할 수 없었다는 점도 컸지만, 애초에 만들어진 작품이 너무 안이했다는 걸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의 설정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게 구성됐고, 드라마의 전개과정은 너무 느슨했으며 애초의 주제의식도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사실 이건 사전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 부족의 문제라고 해도 될만한 사항이다. 

연달아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고배를 마시는 상황이라, 마치 그 사전제작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전제작 시스템은 어쨌든 과거 쪽대본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제작 환경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사전제작을 제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들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고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그 자체가 리스크일 수 있다. 그러니 그럴수록 더 많은 사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대본, 그리고 촬영 후 갖는 1차 편집본 등등 단계별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면 사전제작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화랑>의 쓸쓸한 종영은 그래서 사전제작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애초에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완성도 부족이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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