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성장캐 신인 고윤정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죄송합니다.”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서 고윤정이 맡은 주인공 오이영은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이영은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 병원에서 병아리 중의 병아리다. 책으로 배우긴 배웠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경험해본 게 없어 실수 투성이다. 그래서 선배들과 의사선생님들에게 하는 일마다 꾸중을 듣기 일쑤고, 그 때마다 “죄송합니다”가 입에 붙었다. 

 

게다가 오이영은 이 전공의 과정 재수생이다. 본래 개원해 독립시켜준다던 아빠 말에 의대, 인턴 기간을 버텼지만 사업이 망해 병원을 떠났다가 4천여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병원으로 컴백했다. 산부인과 의사의 길에 그만한 의지나 꿈을 가진 게 아니어서 언제든 빚만 갚으면 떠날 것처럼 보이던 인물이다. 그런데 위급한 환자를 외면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제 손으로 받은 아기를 보면서 서서히 그 길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고 그 길에 별 뜻도 없어 그만한 기대도 별로 없던 인물인지라, 작은 성취가 만들어내는 보람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이영이라는 새내기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고윤정은 바로 이 ‘언슬전’의 오이영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의 자신 같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촬영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할게요.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것이다. 이제 배우를 시작한 지 6년차. 어찌 보면 조금은 알 것도 같지만 여전히 잘은 모르는 그 정도의 위치에 서 있을 법한 연차다. 바로 전공의 1년차 오이영이 서 있는 위치처럼. 그래서 아직은 여전히 낯선 역할이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고윤정은 2019년 ‘사이코메트리 그녀석’으로 배우 데뷔를 해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로스쿨’에서는 의상학과 출신 로스쿨생 역할을 소화했고, ‘환혼’에서는 낙수와 진부연이라는 두 인물을 오가는 1인2역으로 액션부터 멜로까지 도드라지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고윤정이 마치 제 옷 같은 역할을 맡아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디즈니+ 드라마 ‘무빙’을 통해서였다. 무한재생 능력을 가진 체대 입시생 초능력자 장희수 역할로 그녀는 웹툰 원작에서 튀어나온듯한 싱크로율의 외모에 풋풋한 청춘 멜로 그리고 절절한 액션까지 보여줌으로써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이후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의 멜로 연기를 거쳐 ‘언슬전’의 주인공 역할로 돌아오게 됐다. 

 

배우는 같은 역할을 해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색깔을 더해 넣을 때 빛난다고 하던가. 고윤정의 특별한 색깔은 특유의 털털함이다. ‘환혼’에서 아예 ‘절세미녀’라는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모의 소유자지만, 고윤정은 예상외로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을 가진 배우다. 특히 의외의 중저음 허스키 보이스는 배우로서의 신뢰감을 주는 매력을 지녔다. 그 반전의 목소리는 자신의 연기를 외모가 아닌 진짜 연기 그 자체로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고윤정의 털털함은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녀가 연기에 데뷔하게 됐던 일화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별 생각없이 대학 잡지 표지 화보를 찍게 됐었는데, 그걸 보고 여기 저기서 캐스팅 제의와 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래 미술전공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 모두 거절했던 고윤정에게 지금의 회사 대표가 “안해보고 왜 못한다고 하냐”며 “일단 해보고 정 아니면 하지 마라”고 했단다. 그 말에 고윤정은 곧바로 “그러네?”하고 납득한 후 휴학을 하고 연기 공부를 했다는 거였다. 그녀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잘 묻어나는 이야기다.  

 

고윤정의 이런 털털한 면모와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녀가 맡은 작품들 속에서도 은연 중에 캐릭터에 묻어난다. ‘무빙’에서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친구 봉석이를 응원하는 장희수라는 캐릭터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건 고윤정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평소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무표정 뒤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날 때 그 밝은 에너지는 더 밝게 보인다. 

 

이런 그녀가 가진 매력이 인물 그대로 나타난 듯 보이는 작품이 바로 ‘언슬전’이다. ‘언슬전’의 오이영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주눅드는 새내기가 아니다. 산과 펠로우 2년차인 명은원(김혜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구도원(정준원)에게 논문 쓰는 일로 갑질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자 대놓고 그걸 콕 집어 사과하라 말하는 똑부러지는 새내기다. 게다가 좋아하는 마음을 먼저 드러내고 거리에서 안고 있는 연인을 보면서 자신도 “안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MZ세대’의 면모가 묻어난다. 또 동기인 김사비(한예지)가 질투를 해 선생님이 남긴 메모를 슬쩍 바닥에 버리는 걸 보고도 그걸 털털하게 이해해주는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모두 응급 수술에 들어가 자리가 비자,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배를 메스로 가르는 과감함도 보여준다. 새내기인지라 모든 게 어설프고 그래서 실수 연발이지만 결코 주눅들지 않고 털털하게 웃으며 나가는 오이영처럼, 고윤정 역시 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에서 낯설어도 꿎꿎히 나가는 모습이 엿보인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고윤정은 “퇴근할 때”라고 해맑게 말했다. 그 말에 유재석은 빵 터졌지만, 거기에 고윤정은 전제를 붙였다.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할 때라는 것. 그 누구도 새내기 아닌 적이 있으랴. 그 시간들을 거쳐 능숙한 베테랑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힘든 하루지만 그것을 ‘퇴근의 행복’으로 바꾸는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새내기들이 포기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고윤정이 걸어온 길처럼. (글:국방일보, 사진:tvN)

‘언슬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의학드라마의 진심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여기서 키도 제일 작고 몸무게도 제일 조금 나가요. 여기서 꼴찌예요.”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에서 엄재일(강유석)은 신생아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홍도(배현성)에게 자신이 처음 탯줄을 자른 아기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초음파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는 그 아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내는 엄재일의 이야기는 언뜻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새내기 병아리인데다 하는 일마다 실수 투성이라 선생님들에게 꾸중 듣는 일이 일상인 엄재일이다. 

 

내원한 산모들의 초음파를 볼 때면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레지던트 2년차 선생인 차다혜(홍나현) 같은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해 확인을 하는 엄재일이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4년차 구도원(정준원)은 그건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행동이라며, 그렇게 차다혜 같은 선배들의 시간을 뺏는 건 그들에게도 다른 환자들에게도 민페가 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려줬다. 

 

사실 <언슬전>에서 엄재일은 종로율제 산부인과에 들어온 1년차 레지던트 중에서도 가장 적응을 잘 못하는 인물이다. 의과에서 배웠던 기본적인 내용조차 기억을 못해 선배들의 지적을 당하기 일쑤고, 산모가 변비로 생긴 변을 종양 같은 문제로 의심해 선배들의 시간을 뺏기 일쑤다. 그러니 자존감이 있을리 없다. 칭찬보다는 늘 꾸중이 일상인 전공의 생활이니 말이다. 

 

그런데 엄재일에게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민폐를 주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부르지 않아 시간이 상대적으로 나는 엄재일은 산모의 초음파 보는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천천히 자세히 보려 하고 산모의 입장이 되어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아기가 너무 걱정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초음파를 보러 오는 산모를 담당의인 차다혜는 힘겨워 하지만, 대충 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그 산모에게 “나라도 괜찮겠냐”며 천천히 초음파를 봐주는 엄재일의 모습은 이 인물이 거북이 스타일일뿐, 영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엄재일의 이 천천히 자세히 보는 초음파 검사는 잘 찾아내기 어려운 산모의 자궁파열을 초기에 발견해내는 의외의 성과를 해낸다. 결국 의술이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실수나 잘못은 이들 병아리 의사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엄재일이라는 인물은 말해준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산모와 아기를 지켜내려는 그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진짜 의사는 탄생한다고 이 의학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언슬전>은 마치 엄재일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시선을 확 끄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보다 보면 점점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구도원 같은 인물도 그렇다. 굉장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늘 후배들을 챙기려 하고 환자들의 입장이 되어 보려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물론 명은원(김혜인) 같은 여우 의사에게 이용당해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호구 도원’이라고 말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대신 욕을 해주는 오이영(고윤정)과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진다. 

 

“꼴찌면 어때? 지금 꼴찌인게 뭐가 중요해. 나갈 때 1등으로 나가면 돼지. 인생 1일차잖아. 이제 시작인데 뭐,” 신생아실 앞에서 ‘꼴찌인 아기’ 이야기를 할 때 장홍도가 하는 말은 <언슬전>이라는 새내기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격려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구도원도 엄재일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해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이들이 겪는 병원에서의 좌충우돌이 보여준다. 아직 능숙하진 않지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산모의 위급할 수 있었던 상황을 찾아낸 엄재일처럼, 촘촘히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의학드라마가 바로 <언슬전>이다. (사진:tvN)

‘무빙’, 초능력보다 공감 능력!

무빙

“초능력 그게 뭔데?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게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영웅이야? 용기 내서 한 행동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마치 네가 더 잘났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뽐내듯이 보여 줬잖아. 봉석이가 한 행동은 하나도 멋있지 않아. 히어로? 아니야. 다른 사람 마음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 그건 아무 것도 아냐.”

 

기분이 좋거나 너무 슬프거나 하는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면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공중부양을 하는 봉석이(이정하). 어린 봉석은 정글짐에서 ‘번개맨’을 흉내내며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 친구를 보며, 자신도 마음껏 공중부양을 뽐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보인 공중부양은 그 친구를 상처받게 하고 따라하다 다치게 만들었다. 봉석의 엄마 미현(한효주)은 봉석에게 그런 건 히어로의 행동이 아니고 멋있지도 않다고 선을 긋는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의 이 장면은 이 슈퍼히어로물이 가진 특별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저 날아다닐 수 있고, 다쳐도 치유능력이 있어 다시 회복되거나, 미세한 소리까지 다 듣거나, 투시능력 같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무빙>에는 등장한다. 당연히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 액션들이 펼쳐지고 스펙터클한 영상들이 매회 채워진다. 하지만 <무빙>이 이러한 슈퍼히어로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려는 건 그런 외면적인 액션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이들을 통해 <무빙>이 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봉석에게 미현이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초능력 이전에 사람의 진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 능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남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거운 덤벨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고, 혹여나 몸이 뜰까봐 잔뜩 먹어 살을 찌우며 감정 동요가 올 때마다 원주율 3.14를 애써 주문처럼 외우는 봉석이. 친구 하나 없던 그는 전학 온 희수(고윤정)와 가까워진다. 

 

늘 남을 배려하고 응원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봉석의 가치를 알아주는 희수에게 자신이 공중부양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들킨 봉석은 그것이 ‘비결’이 아닌 ‘비밀’이라는 걸 알려주고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보여준다. 공중부양에 대비해 천장 가득 쿠션들이 붙여져 있는 방. 그 봉석이 부딪쳐 낡아버린 방은 꼭 봉석 자신을 닮았다. 그런 봉석에게 희수는 그의 능력이 놀랍긴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며 특별한 거라고 말해준다.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

 

<무빙>은 이처럼 봉석과 희수 같은 저마다의 가능성을 지닌(그것이 초능력으로까지 은유되는) 존재들을 그리면서, 이들의 능력을 애써 감추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은퇴한 초능력자들인 부모들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일상적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겪어서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더욱 아이들이 능력을 드러내는 막으려 한다. 

 

봉석과 희수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세계와, 이런 능력들을 무기화해 써먹고는 다 쓰고 나면 폐기처분 하려는 어른들의 세계. <무빙>은 이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에 봉석과 희수 같은 입시 전쟁에 들어 있는 고3 학생들 같은 한국적인 현실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이를 억압당하는 고3 학생들의 처지는 그래서 날 수 있지만 날개가 강제로 접힌 채 무거운 짐을 가방 가득 지고 다니는 봉석과 겹쳐진다.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선별해내 육성하고 요원으로 쓰려는 국정원 비밀세력이 있고, 거기서 파견된 이들이 선생님이 되어 특별한 아이들을 테스트 한다. 이들의 능력은 그러나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 같은 한국을 둘러싼 나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미국은 그 능력의 싹을 자르려 하고, 북한 역시 이를 도발로 느끼며 모종의 움직임을 보인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초능력 슈퍼히어로들의 액션이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이들이 꾸려가는 이야기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일상적인 면모들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 소박한 이야기는 미국과 북한 같은 글로벌한 스파이전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실로 디즈니가 무려 500억이 넘는 제작비를 쾌척할 만한 신박한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시원시원한 시각적인 만족감만큼, K콘텐츠 특유의 몽글몽글하고 귀엽고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른바 ‘K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될 법한. (사진:디즈니+)

 

신무협 트렌드에 올라탄 tvN 토일드라마 ‘환혼’

우리에게도 ‘무협’이라는 장르는 익숙하다. 하지만 영상물로서 무협 판타지를 다루는 작품들은 대부분 중국 콘텐츠에서 많이 시도됐던 게 사실이다. tvN 토일드라마 <환혼>이 과감하게 펼쳐놓은 무협 판타지의 세계가 남다른 의미와 가치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환혼

홍자매가 가져온 신무협의 세계

우리에게 과거의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주로 ‘사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진짜 역사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담은 삶의 공간이 제시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기대하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환혼>은 작품의 시공간을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이 등장하고 이로 인해 ‘운명이 뒤틀린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환혼>은 대놓고 이 작품이 사극이 아닌 ‘무협 판타지’라는 걸 분명히 해놓고 시작한다. 이렇게 한 건, 워낙 최근에 ‘동북 공정’이니 ‘문화 공정’ 같은 역사 왜곡 논란들이 드라마 한 편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전례들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즉 완전한 가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전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의 빌미 자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방어적인 선택만이 아닌 보다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도 들어 있다. 그것은 주로 중국 콘텐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했던 무협 판타지를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사실 무협소설의 역사가 우리도 결코 짧지 않고,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을 통해 이른바 ‘신무협’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도 무협 장르는 그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다만 드라마 분야에서 무협 판타지가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건, 제작비, CG기술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어딘가 이 장르에 ‘중국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중국의 무협소설보다 우리의 무협소설이 훨씬 재밌다는 건 단지 ‘국뽕’의 차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현실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무협소설들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중국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 무한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 현실을 모르고 가본 적이 없어 하나의 상상의 세계로서 마음껏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신무협’ 트렌드는 이러한 국적성 자체가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소림파 무당파 등이 등장하는 무협소설과 달리 몸을 바꾸거나 인생을 리셋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 설정 같은 것들이 더해진 특징을 갖고 있다. <환혼>은 바로 그런 신무협의 세계를 드라마로 가져왔다. 물론 홍정은, 홍미란 작가는 이미 이전부터 <쾌도 홍길동(2008)>에서부터 <화유기(2017)>에 이르는 액션 판타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 <환혼>은 훨씬 더 과감하고 본격화된 무협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다. 어찌 보면 많은 중국의 무협 판타지들 속에서 한국형 무협 판타지의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과감함이 엿보인다. 

 

혼을 바꾸는 설정, 그래서 만들어진 신박한 스토리

많은 판타지물들이 그렇지만 <환혼> 역시 ‘혼을 바꾼다’는 하나의 판타지 설정이 다채로운 스토리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일단 주인공 장욱(이재욱)이 가진 출생의 비밀이 바로 이 설정에서 비롯된다. 환혼술을 알게 된 장강(주상욱)에게 병든 선왕 고성(박병은)이 자신과 7일간만 혼을 바꿔달라 요구하고 그렇게 환혼술로 장강의 몸에 들어간 왕이 장강의 아내인 도화와 동침해 장욱이 태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장강은 태어난 아들 장욱의 기문을 막아 술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기문이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욱에게 나타난 희망이 바로 무덕이(정소민)다. 무덕이는 실제로는 물 한 방울 튕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초절정 살수 ‘낙수(고윤정)’가 부상을 입은 후 환혼한 인물이다. 낙수와는 정반대로 기력 하나 없는 무덕이는 어쩌다 장욱의 몸종으로 들어가지만, 장욱은 그가 낙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그를 자신의 막힌 기문을 뚫어줄 사부로 삼는다. 그래서 이 관계는 복합적으로 뒤얽힌다. 겉으로 무덕은 장욱의 몸종으로 이들은 주종관계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장욱이 무덕의 제자가 되는 사제관계가 생겨난다. 무협 판타지지만 홍자매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미된 작품은 그래서 이 관계의 비틀어짐에서 만들어지는 웃음과 그러면서 점점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달달함까지 더해진다. 

 

물론 무협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성장스토리’는 이러한 관계의 재미라는 구슬들을 하나로 꿰는 실이다. 무덕이는 기문이 막혀버린 장욱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주는데, 그 방식은 그들이 함께 벼랑 끝에 서는 것이다.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함으로써 조금씩 어떤 한계를 넘어 성장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진 청춘들이지만 기성세대들에 의해 꼬인 현실 속에서 그 꿈과 능력을 제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물론 이런 한계를 넘어 한 단계씩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RPG 같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보다 깊은 질문들까지 던질 수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장점들과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들이 효력을 나타내면서 <환혼>은 최고 시청률 7.0%(닐슨 코리아)를 넘겼고 높은 화제성도 기록했다. 파트1, 파트2로 나뉘어진 작품으로 파트1이 20부로 편성되었고 이미 촬영을 마쳤으며, 최근 파트2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기보다 <환혼>이 대작이라는 의미다. 

 

톡톡 튀는 대사와 흥미진진한 설정이 만들어내는 신박한 관계의 재미가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환혼>은 시작부터 여주인공 교체로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본래 박혜은이 캐스팅되었지만 부담감을 이유로 하차했고, 대신 정소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행스러운 건 정소민이 몸종과 사부 나아가 연인의 면면을 오가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즌2 촬영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여주인공 교체 이슈가 떠올랐다. 시즌2에는 정소민이 아닌 본래 낙수 역할을 했던 고윤정이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이건 ‘환혼’이라는 이 드라마의 설정으로 인해 낙수가 제 몸을 찾아가거나 회복하는 새로운 스토리로 인해 나온 이야기일 듯싶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 속에는 ‘환혼’이라는 혼이 바뀌는 설정이 뒤로 갈수록 관계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즉 무덕이만 봐도 그 몸은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잃어버린 첫째 딸로 추정되고, 그 몸에 혼으로 들어간 낙수는 진무(조재윤)에게 속아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다. 이렇게 인물의 정체가 ‘환혼’이라는 설정 때문에 복잡해질 수 있고, 자칫 ‘출생의 비밀’ 같은 ‘정체의 비밀’ 코드 활용에 빠져들 수 있다. 정작 이렇게 혼을 바꿔 삶을 연장하거나 어떤 욕망을 취하려는 이들의 파국이 담아내려는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 요컨대 마치 옷을 바꿔 입듯 혼을 바꾸는 잔재미(?)에 빠지다보면 보다 깊은 드라마의 질문들이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진짜 한국형 무협 판타지가 중국의 그것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려면 이러한 판타지 설정의 함의하고 은유하는 묵직한 메시지까지를 이 발랄한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르적 묘미를 충분히 즐기면서도, 그 여운이 오래 갈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글:매일신문,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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